26강, 요한복음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너무 놀라서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주님께 묻자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강조 합니다.
생명입니다 우리 생명이 아니라 반드시 거듭난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거듭난 생명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5장입니다
지난 시간에 잠깐 말씀을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요한일서의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삼위일체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어를 독해하는 능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까? 아니 헬라어 원어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삼위일체가 됩니까?
저는 아무리 보아도 삼위일체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그 말씀에 대해서 설명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어떻게 날 수 있는가를 설명을 하고 그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말씀을 보고 삼위일체의 근거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가 제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이 말씀을 저에게 보이면서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라고 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5장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영의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8절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셋이 하나라고 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말씀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6절에 뭐하고 말씀을 합니까?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과 피는 대등한 자격으로 이어 주는 접속 조사입니다. 그러니까 물과 피는 대등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물과 피 대등하게 그러니까 이것이 같이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 입니다. 이 둘은 대등합니다. 그러니까 물로도 되고 피로도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증거하는 이가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물이든 피든 둘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증거하는 이가 성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셋이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삼위일체라고 말을 할 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가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성령은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삼위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목사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까?
아니 문자적으로 보아도 삼위일체라고 할 수 없고 의미적으로 보아도 삼위일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국어 독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증거하는 이가 성령입니다
그 성령이 무엇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1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6절부터의 말씀은 11-12절에서 말씀을 하는 생명에 대해서 성령이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물로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고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셨고 그것을 다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증거를 받았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성령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성령이 증거를 해 줌으로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우리 안에 생명이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물과 성령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는 물입니다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 샘물을 누구에게 주셨는가 하면 대낮에 우물로 물을 뜨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면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이렇게 거듭나는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거듭난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해야 거듭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을 안 본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거듭남을 깨닫고 있는데 이 시대는 신약 성경을 보면서도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두 번 날 수 있는가 하면 주님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들음으로 해서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성령이 오셔서 증거를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고 선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스스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너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또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거듭남을 말씀을 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과 같이 땅에서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19절을 보겠습니다. (구 4쪽)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거듭남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입니다 반드시 거듭난 생명이 있어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거듭난 사람에 대해서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흙에서 취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은 흙에서 취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육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이렇게 분명히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육과 성령으로 난 영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두 가지를 가지고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가 되면 하나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합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을 비교를 해서 두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그저 문자를 보면서 자기들이 육체에 성령이 임하셨다고 하면서 성령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두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생명과 성령으로 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육체에 성령이 임하신 것으로 보고 있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서 성령으로 난 영이 자기들의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두 생명에 대해서 분명히 구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으로 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증거를 해 주시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생명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입니다
창세기의 말씀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흙으로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만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라서 흙으로 돌아간 그것을 다시 영으로 살리셔서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육이 다시 영으로 살 수 있다면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정의를 내려서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으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 육으로 난 것에 다시 영의 생명이 거할 수 있는 것으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입니까?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이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교리입니다
그들은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신학교에서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육으로 난 그 신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기독교의 교리라 해도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저는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기독교조직신학이라는 책에서 말을 하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 쓰레기와 같이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나서 바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 육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입니까?
그것을 실제로 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이 실제가 된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부모 가족 친척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중에 누구라도 부자와 같이 음부의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럼 그가 나를 보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천국에 있는 나를 보면서 사정을 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곳이 천국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아들입니다
그리고 내 부모입니다 음부의 고통 중에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하고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곳을 천국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정신세계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아브라함도 없습니다. 나사로도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모두가 흙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육으로 난 것이 천국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것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는 그 육으로 난 것을 보고 천국에 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 주님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장례식 때에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39:6절을 보겠습니다. (구 830쪽)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편144:4절을 보겠습니다. (구 907쪽)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존재는 헛것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
실제로는 없는데 있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귀신을 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착시 현상을 일으켜서 보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 역시 영원이라는 시간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빅뱅입니다
137억 년 전에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학을 믿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6000년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흔적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다 헛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헛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는 우리 인생을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가지고 천국에 가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우리는 헛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영의 생명을 모르고 니고데모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70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이제는 다 안 계십니다. 제가 눈으로 보고 함께 살았던 분들인데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땅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림자를 본 것과 같이 이제 기억조차도 많이 지워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이 우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그들이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고 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다 해도 좋습니다. 그들은 헛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헛것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분명하게 육은 헛것이라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의 관원이고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가르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니고데모나 이 시대 목사들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아니 니고데모는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깜짝 놀라기라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교회 안에만 있으면 거듭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내 생각과 내 주장을 하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 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애착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헛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를 보면서 그것을 붙잡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혈과 정에 매여서 육체의 것을 끊어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안개입니다 우리 인생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본다고 하면서 인생을 보고 그것을 실체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누군가 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물과 성령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실체를 지금은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어서 인생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지만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를 들의 풀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의 풀을 보면 어떻습니까? 여름 한철 동안 잠시 싱싱하게 자라다가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그 풀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 풀이 어떻게 되는가를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 육으로 난 것이 교회 안에 있으면 마치 귀한 것이나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교회 안에 있으나 교회 밖에 있으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의 안에 생명이 있습니까? 그렇다 해도 그의 육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해도 역시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 쓸모없는 헛것이기 때문에 아니 도리어 죄만 짓고 악만 행하는 육체이기 때문에 그 육체와 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헛것을 가지고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별의별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50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또 다시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은 영이 될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육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성경에 이렇게 문자적으로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에 있는 말씀을 계속해서 인용을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꼭 주님이 비유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았어도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비유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조직신학입니다
부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영적 부활만을 믿는 자들이 사도 바울 시대에도 다소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성경은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체의 부활이었으니 그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도 같은 종류의 것임을 의미한다” 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고 그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입니다
마태복음22:31-32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명백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하였다고 하는 그 말씀이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이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형제가 일곱이 있었는데 그 형수가 후사가 없어서 그들의 율법대로 칠 형제가 모두 형수를 취하고 나서 죽었고 그 여자도 죽었는데 천국에서 누가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주님의 답변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아있습니까?
이삭과 야곱이 살아 있습니까? 루이스뻘콥이라는 사람도 그렇고 그의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육체는 다 죽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이 말씀을 가지고 앞뒤 문맥은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지금 정면으로 배치가 되고 있습니다.
누가 틀렸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한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과 주님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루이스뻝콥이 성경을 오해를 한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면으로 반대가 되는 성경말씀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육입니다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이삭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있습니다. 그들의 육이 산 자입니까? 주님께서 그들의 육체를 말씀을 하면서 산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자를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죽었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죽었습니다. 그들의 육은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어서 생명이 있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살아 있던 죽었던지 다 죽은 자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입니다. 야곱입니다. 그들은 산 자의 영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육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고 주님께서 산 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들을 보고 산 자라고 한다면 사두개인들의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칠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형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다 죽은 후에 천국에 갑니다. 그들이 천국에 가는 것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 가는 것이 뭐가 다릅니까? 칠형제와 그의 형수도 육으로는 죽은 자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역시 육으로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이름을 말씀을 할 수 없으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그들의 안에 있는 생명을 산 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육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산 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입니다
사실 이 기독교 조직신학을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배웠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루이스뻘콥이 지은 이 책을 거의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검증도 없이 당시 목사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지었습니다.
그 시기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가 되는 시기와 딱 맞아 떨어졌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를 한 사람들이 그 책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번역을 하고 그 책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을 했는데 물론 이 세상의 책으로는 참으로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입니까?
특히 우리나라 기독교는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그 육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을 인용을 해서 그것도 오해를 한 그 말씀을 가지고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담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흙으로 안 돌아가고 살아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주님께서 그 육을 보고 지금 그들이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믿음의 선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해서 그들에게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을 믿는 그들을 말씀을 하시면서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도 썩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썩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흙으로 돌아가서 썩었는데 아브라함이 썩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시대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의 이름만을 생각하면서 그가 쓴 책을 성경 보다 더 우위에 두고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은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 안에서는 우리는 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생각하지 마시고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 생명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산 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제자에게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죽은 자를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말씀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난 것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러운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이 세상 종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기들의 육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신체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것은 영의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영의 생명이 있어야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도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까?
그럼 우리 인생은 무엇입니까?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을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 영원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생명의 빛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성령을 구하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내가 성경을 본다고 해서 성령이 오셨다고 하지 마시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서 반드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두 번 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육으로는 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믿음으로서 역사를 해서 그것이 실상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6:6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5쪽)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이 육으로 난 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물과 성경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육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서 교리로 배웠기 때문에 그 교리가 너무 강하게 임팩트가 되어서 성경을 봐도 그렇게 보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초등학문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자기들도 그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육체가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고 그들이 말하는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하는 것을 생각을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을 상고 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과 다르다고 생각이 되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영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그림자가 아니라 영원히 있는 생명입니다 그런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에 있어서 막연하게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 있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단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입니다
주님께서 그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주님께 찾아오자 주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반드시 두 번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인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은 육의 생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일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은 반드시 이 두 번 나는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번 나는 생명은 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에서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는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서를 배우면서 육으로 난 그것이 영과 어떻게 결합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 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복음에서는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을 떠 올리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것을 5장에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성경을 알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성령이 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이 영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는데 이 영이 바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강해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니 사도 요한 뿐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의 생명을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이라고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영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를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난다고 말씀을 하니까 실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는 분명히 1장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낳게 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증거하는 이가 성령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은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을 요한일서 5장11절에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두 번 낳는 것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내가 두 번 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주님의 말씀을 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성령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 영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증거를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 안에 영이 거하시고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성령이 진리로 인도를 하신다는 말씀이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거듭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입니다
그 문장만 보면 우리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루이스뻘콥 같은 사람이 한 문장만 보고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을 기독교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그가 유명하다고 하는 것으로 아무 생각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것이라고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어느 한 문장을 보고 정의를 내리고 알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고 성경 전체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문장을 보고 생명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생명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거듭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성경에서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6절에서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가 그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4: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생명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아니 이 생명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이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몰랐고 또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도 이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결과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삼위일체 사상이 너무 강하게 자리를 하고 있어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더욱 더 성령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말씀을 가지고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근거로 삼는 말씀으로 인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한글개역성경을 보면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두 번 낳는 일에 대해서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낳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더구나 이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지나가고 나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되자마자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만드는 악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이 시대까지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말씀을 드립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주님께서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진리의 영을 우리의 언어로 표현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그 이유만으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상입니다.
성령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니까 생명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한 위의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생명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단 한 가지의 사상이 성경 전체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그가 교회에 영향력이 있고 위대한 종교인이 되면 그가 한 마디 한 말이 거의 교리가 되어 진리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처음부터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고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으로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있고 하나님이 거하심으로 해서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많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성령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된 교리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성경을 잘못 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 지혜가 꽃을 피우고 있던 헬라 사상이 만연을 하고 있는 그때에 자기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을 보고 만든 그것을 사람들은 이 시대도 마치 고상한 지혜가 있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상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종교의 힘이 얼마나 강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1700년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반대를 했고 그 때문에 그들이 종교 재판에 넘겨져 종교인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설령 잘못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예표와 비유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지 말고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신약에 와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를 한 후에 멀리 하라고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였습니다.
그 자체로 그들은 이미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만약에 종교의 힘이 세지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상 때문에 이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깜깜합니다.
소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성경을 보면서도 두 번 나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것을 알아야 그럼 어떻게 해서 두 번 날 수 있는가를 고민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그것을 6절에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영에 대해서 증거를 한다는 말씀이고 그 영이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저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의 생명 안에 거하고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증거를 하는 것을 주님께서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두 번 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 영의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의 생명 안에,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이 생명에 대해서 믿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4:28-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가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아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이 말씀을 보아도 보는 그 사람에게 성령이 오시지가 않으면 증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이 어떤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해도 그들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까지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이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성령이 증거를 해 주는 생명이 그의 안에 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지금 요한복음에서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해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기독교는 탄생이 되지도 않았고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으로 난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일입니다
분명히 우리 육체로 한번 났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한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 곧 생명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두 번 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이삭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자녀가 있고 약속의 자녀가 있는데 우리 성도들을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이삭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육체의 이삭을 보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난 육신의 이삭을 보고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 이삭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은 썩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해서 마치 그 이삭이 천국에 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니까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교회를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하갈과 사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갈은 땅에 있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라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이삭이 누구에게서 났습니까? 바로 사라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인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삭의 육체의 어머니인 사라를 비유로 해서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입니까? 육체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말씀을 보고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자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난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자가 누군가를 비유로 말씀을 하기 위해서 사라를 비유로 해서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이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삭 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육신을 따라 난 이삭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 역시 사라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성령으로 난 자입니까? 그의 육체가 성령으로 난 자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 이삭을 보고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과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창세기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 차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희롱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다 예표고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난 자가 누군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삭입니다
육신의 이삭이 성령으로 난 자입니까? 그는 성령으로 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육신으로 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안에 성령으로 난 생명이 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사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고 그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난 이삭이 성령이 오심으로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 성령으로 났다면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었다고 해도 그 육신은 성령으로 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증거를 해 주시는 영이 그의 안에 거하시는 것을 보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는 것이지 육신의 이삭을 보고 성령을 따라 났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육신을 보고 아니 육신 안에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서 성령으로 난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거듭난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증거하는 생명이 있는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삭을 비유로 해서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삭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삭을 보고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우리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두 번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나는 성도를 물과 성령으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을 보고 물과 성령으로 난 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우리의 어머니로부터 난 자를 두 번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 생명에 대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신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육으로난 것은 육입니다
그 육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그 육을 보고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 육은 반드시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 죽으면 그 육은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 하면 우리도 이삭과 같이 성령을 따라 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이삭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우리의 어머니로부터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난 자가 있어야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 시대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서도 두 번 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두 번 나는 생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육신은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두 번 나는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성령이 생명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생명이 실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있다는 것을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고 믿음으로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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