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강, 요한복음 3: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5쪽)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성경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렇게 방대하고 어려운 성경을 주셨습니까? 그 대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은 바로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을 하려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할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영생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영생을 할 수 있고 그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이 생명이 우리에게 거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우리가 지금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 생명에 대해서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사실 이 생명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려서 말씀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의 언어로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설령 누군가 말씀을 한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세의 일이다보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체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믿으면 됩니다.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먼지와 같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생명이고 이 생명은 썩어 없어지면 그것으로 사라지고 마는 생명입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우리 인생들에게 진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우리 육체의 생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하늘에 속한 자의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생명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있어서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거듭난 생명이 있는 자만이 아니 이 거듭난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무슨 생명입니까? 그것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목사가 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기독교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조직신학 책에서 조차 이 생명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믿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생명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으로 두 번 나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느끼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인도를 하심으로 해서 이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 있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저는 이 일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고 있고 거듭났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고 그 거듭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혜가 있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 보다 뛰어 납니까? 제가 다른 사람보다 율법을 잘 지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에 대해서 알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생명이 너무도 소중하고 제게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거듭난 생명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까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육체의 생명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이고 선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밤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겠습니까?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는 다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죽은 후에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거의 모두가 자기는 천국에 간다고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자신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심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이 알고 있는 그런 내세에 대해서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 나라를 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믿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자기를 만나서 첫 말씀을 너는 거듭나지 않아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두 번 낳다
사실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대답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하신 거듭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제 늙었는데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읽은 사람입니다
그런 니고데모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신약 성경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니고데모도 이해를 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전혀 이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이 거듭나는 것도 세상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고 니고데모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사상으로 가득차 있는 유대인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니고데모 역시 주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것입니다
분명히 니고데모는 두 번 나는 것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날 수 있느냐고 주님께 다시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이렇게 주님께 다시 묻고 있는 이 말씀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거듭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입니다
거듭남에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하고 있는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것 역시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그 교회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 역시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두 번 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니고데모는 너무도 놀라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이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입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목사가 되면 뭐 합니까? 차라리 이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가 더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거듭남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그가 목사가 되어서 무엇을 가르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다
니고데모 정도만 되도 그래도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 정도도 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목사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고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입니다.
이 세상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는 거듭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세상에 있다가 이제 기독교인으로 잘 성장을 해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본 니고데모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 있는데 신약 성경까지 보고 있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도 중요한 일을 사람들은 성경을 그냥 세상 책을 보듯이 하고 있고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안에 있으니까 거듭났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거듭났습니까?
이 시대 누가 거듭난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지금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에게 두 번 난 생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두 번 나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반드시 두 번 나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니고데모도 그렇게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변화가 된 것이지 두 번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과 두 번 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 하면 거듭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가 거듭남으로 해서 두 번 남으로 해서 그 두 번 난 자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니고데모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니고데모가 두 번 나야 하고 그 두 번째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윤주만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럼 나 인간 윤주만은 뭐냐고 따질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혈과 정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인간 윤주만과는 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윤주만이가 만약에 하나님 나라를 가게 된다면 거기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을 해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혈과 정에 매여서 인간 윤주만을 끊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인생이 생각을 하고 이성이 있다 보니까 이 인생에 대해서 너무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아니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무엇이 실체고 무엇이 그림자라는 것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그림자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실체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실체입니까?
니고데모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니고데모는 실체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그림자라고 그리고 인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럼 실체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 실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생명이 실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거듭난 생명이 실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습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져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을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이 80년을 살다보니까 그것이 실체와 같이 보이지만 빅뱅이 있었던 135억 년 전에서부터 시작을 한다면 우리 인생은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어디 있습니까?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잠시 보였다가 다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영은 영원히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생명이 실체가 되겠습니까? 물론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 영에 대해서 알 수 없기 때문에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두 번 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 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두 번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갑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 주님도 보고 사도 바울도 보고 믿음의 선진들도 보고 또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보고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아서 이렇게 천국에 왔다고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니고데모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 왔습니다. 이 세상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두 번째 난 생명이 있는 그러니까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알아듣고 있지 않습니까?
구약 성경만 보고 하나님을 믿은 니고데모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까지 보고 있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니고데모가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 있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거듭나지도 않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평생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죽었다 해도 그가 거듭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답답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막힙니다. 이런 말씀을 할 때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을 하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아니 거듭나지도 않은 그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온갖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주변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거듭남의 비밀을 우리에게 밝히 비춰주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두 번 나는 것을 알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림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니고데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남으로 해서 그것이 실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믿어지는 역사가 참으로 가슴 벅차게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야 합니다.
어떻게 두 번 날 수 있는가를 주의 형제 야고보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일입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게 났습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낳는 것은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기의 뜻을 좇아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우리 부모의 뜻으로 났습니다. 그런데 두 번 나는 생명은 어떻게 낳는가 하면 자기의 뜻을 좇아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가 두 번 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두 번 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두 번 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인도를 받음으로 해서 그러니까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인도를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그것을 앎으로 해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해서 거듭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가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 성경에서 진리를 알게 하심으로 해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게 하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고 그것이 실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를 낳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나야 합니다.
니고데모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물으면서 이 거듭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했다면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왔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냥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그런 충격적인 말씀을 듣고 주님께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고 묻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는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이 니고데모와 같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아니 주님께 정말 자기 생명을 걸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그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자기 생명을 걸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정도가 되어야 그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거듭남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치는 것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고 있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지혜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고 거듭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대답입니다
그가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까? 그 말씀이 안 보이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고도 그 말씀이 안 보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듭남에 대해서 두 번 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이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그저 막연하게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목사들이 거듭났다고 하니까 거듭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5절을 보겠습니다. (신 145쪽)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거듭남입니다.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니고데모 역시 그렇게 알아듣고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일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니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니고데모는 서로 대화를 하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니고데모는 인생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듣고 너무도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두 번 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따라 긍정적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도를 해서 그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인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니고데모가 대화를 하고 있는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이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아니 두 번 나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몰라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두 번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바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사람이 이 시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입니다
그들이 남겨 놓은 책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거듭남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의 교리를 정리한 책이라고 하는 조직신학이라는 책에서 조차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입니다
유대교나 기독교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살아가면서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물론 이 시대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고 있고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예표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적은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 믿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경계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면 우리 이방인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고 주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듭나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 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두 번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거듭나는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 생명은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25:25절을 보겠습니다. (구 940쪽)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요한복음4: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8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물과 성령으로
~과~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행동이나 일을 함께 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 것이 어떻게 거듭나는가 하면 물과 성령이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함께 함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누가 일을 합니까?
물과 성령이 함께 일을 함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서 날 수 있는가 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만 있어도 안 됩니다.
그리고 성령만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일을 함으로 해서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을 함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사격 조사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남은 몰라도 자기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아는 것에서 출발이 된 것이 아니라 맹목적이라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거듭난 생명이 거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거듭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듭난 생명이 어떻게 날 수 있는가 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마릅니다.
우리는 잘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 여름에는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너무 더운 날씨로 변하고 있고 그 더위에서 목마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그러한 일이 거의 없지만 중동 지방에서 물이 없이 목이 마르다는 것은 곧 사망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듣는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냉수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의 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 곳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이 말라 죽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냉수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기 위해서 그 여인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서 우물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예배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물입니다
누가 목이 마르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주님께서 목이 마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물을 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사라미아 여인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4장에 가서 다시 자세하게 말씀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는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을 하도록 하는 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물은 곧 살고 죽는 문제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육체적인 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마른 자에게 주는 기쁜 소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나의 주는 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실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생의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영생에 있어서는 다 목마른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목마른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목이 마른 자인가 하면 영생에 있어서 목이 마른 자입니다. 그 목마른 자에게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물이 있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나의 주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 목마른 인생들에게 하늘에서 오셔서 좋은 기별을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주는 물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도 요한이 기록을 하고 있는 요한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물을 먹어야 합니다.
영생을 하려면 반드시 이 물을 먹어야 합니다. 아니 거듭나려면 반드시 이 물을 먹어야 합니다. 이 물을 먹은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생의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듣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거듭나는 생명이 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영의 생명에 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영의 생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흙으로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 난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있어야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누가 들어갑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이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는데도 그저 성경을 막연하게만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 인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인생이 들어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이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은 우리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복음을 보고도 마치 그것을 우리 인생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전혀 다른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천국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는 우리가 믿음으로서 역사를 해서 믿어야지 그것을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천국입니다
성경에 천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그 단어를 보고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이성으로 상상을 하면서 천국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인생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되니까 천국,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만약에 그것이 구체적으로 설명이 될 것 같으면 성경에 자세하게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 그러니까 영의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물을 먹어야 영생을 할 수 있는 생명이 그의 안에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거듭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모스8:11절을 보겠습니다. (구 1283쪽)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마태복음4:23절을 보겠습니다. (신 5쪽)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물입니다
어떤 물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모든 말씀을 다 하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수많은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하시는 명령이 무엇인가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생에 대한 모든 것을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들 중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마지막이 무엇인가 하면 영생에 대해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런 예표와 예언의 성취를 보고 내세의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실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천국에 대해서 알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생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천국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물을 마셔야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목마름에 대해서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가를 이제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듣는다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복음을 듣고 성령이 오심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거듭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이 사용을 하고 있는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 것이 아니라고 아모스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안 보았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성경을 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생에 대해서 갈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에게 이 영의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본다 해도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니고데모입니다
유대인의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성경을 보았겠습니까?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만나고 나서 주님께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자 사람이 어떻게 두 번 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안 보았습니까?
이 시대 목사들은 속된 말로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성경만 보고 산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보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없어서 영생에 대해서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목말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 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고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니고데모 역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있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그에게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거듭나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충격입니다
니고데모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요한복음에서 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보고도 충격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 살다가 이제 교회 안에 들어와서 기독교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기들이 거듭난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 어느 누가 영생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아니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 어느 누가 듣고 있습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두 번 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아니 이 시대 목사들에게 이 말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 생명이 실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저 막연하게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세뇌가 되어서 그렇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다 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은 분명히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천국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고 그 천국에 누가 들어가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운 목사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교회 안에서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듣고 있는 그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을 어떻게 그들이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듭나는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듭나는 생명이 있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는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신체의 구원은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신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도 신체가 구원을 받습니다.
불교도 윤회를 하다가 결국에는 신체가 구원을 받아서 그들이 말을 하는 극락에 가고 있습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고 모든 종교가 다 그렇게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듭납니까?
놀라서 묻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이 함께 일을 함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난 생명을 믿고 있고 그 거듭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8절을 보겠습니다. (신 309쪽)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물과 성령으로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는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주님의 영생의 말씀과 성령이 함께 일을 함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내가 주는 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이 무엇인가 하면 영생하도록 하는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생하도록 하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영생하도록 하는 말씀과 성령으로 난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말씀을 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러니까 그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이 인도를 함으로 해서 거듭나는 생명이 그의 안에 거할 수 있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이제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있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빛인데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물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요한복음에서 보고 있듯이 유대인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도 주님께서 거듭나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너무 놀라서 다시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선생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만 그렇습니까? 이 시대 목사들도 이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니고데모보다도 더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두 번 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는 아예 그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의 생명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시대 신약을 보고 있는 목사들이 영에 생명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나의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누가 성경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럼 이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성령이 그 말씀을 믿을 수 있게 인도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되어서 실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믿어질 수 있습니까? 절대 안 믿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 말씀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영의 일에 있어서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인도를 함으로 해서 우리 가운데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이 생명을 우리가 느끼고 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믿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말씀이 믿어지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믿어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그것이 믿어지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들이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것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들었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설령 누군가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전한다 해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믿어질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해서 이것이 실체가 되어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거하시게 되고 이렇게 생명에 대해서 믿는 것을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8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입니다.
주님께서 물과 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주님은 물과 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물과 피에 대해서 이제까지 성경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구속의 일을 물과 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다 이루시고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까? 이제 뒤에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영생하도록 하는 샘물을 주셨고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우리 죄를 깨끗케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누가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성령이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셋이 합하여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에 있어서 이 셋이 하나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반드시 이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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