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강,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로마서13:11-14절을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성경은 비유와 은유입니다
그 비유를 비유로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뜻이 되고 또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됨으로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고 또 육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을 탐했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는 더욱 더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님의 침묵이라는 한용운의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보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시로 표현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시가 나라를 잃어버린 뜻을 담고 있지 않고 그저 하나의 연애하는 감정을 시로 표현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가슴에 와 닫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 님을 이성적인 님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나라로 볼 것인가는 너무도 다른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이와 같이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되기도 하고 그 전체를 모르게 되면 이상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과 육을 분별을 못 합니다
너무도 쉬운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육의 종교고 오직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는 그들이 영과 육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치명적입니다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을 못한다는 것은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두운 일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눈으로 보려하는데 있습니다.
어두운 것을 눈으로 보려하고 있고 빛을 눈으로 보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보아야 하는 것임에도 눈으로 보려 하고 있고 자기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빛이라고 하고 자기 눈에 보이는 나쁜 것을 어두운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세상 종교화 되어 있습니다.
사실 불교에서 전하는 것이나 천주교에서 전하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전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있다면 예수 믿으라는 그 말을 한다는 것뿐입니다. 모든 설교 내용이 불교나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천주교나 다르지 않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를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립 서비스에 불과하고 사실은 세상 종교의 사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갇혀 있지 말고 불교에서 스님들이 하는 말이나 천주교에서 신부들이 하는 말이나 교회에서 목사들이 하는 말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 가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보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 한국 종교를 보면 기독교 불교 천주교가 서로 아주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을 하고 있고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극성 신자들이 세뇌가 되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종종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이나 조계종 총무원장이나 한기총회장등은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사라졌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세상 종교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건들이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 이득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마 싸움을 하게 되면 서로가 피해를 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서로를 적대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밑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과도한 충성으로 충동적인 행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적당한 긴장을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교회 안에 들어와 자기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두운 일이 아닌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은 다 빛의 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은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두운 일인 줄을 모르고 있다가는 평생 어두움의 일을 하다가 죽고 난 후에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보니까 자기가 행한 모든 일이 어두움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때는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분을 참지 못 합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 교회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왜 분을 참지 못하느냐면 자기는 분명히 빛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예수님에게 대적을 했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똑 같이 대적을 하면서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일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선데이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들은 안 그럽니다. 그러나 세뇌가 되어 있는 일반 교인들은 아니 자기들이 생명을 걸고 지키고 있는 주일을 선데이라고 하면 대적을 하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그것을 깨고자 무슨 일을 하시더라도 꼭 안식일에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자기들이 생명과 같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에 자기들의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시는 것을 보니까 참지를 못하고 대적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빛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육의 일이고 어두움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깨부수고자 병자를 고쳐도 꼭 안식일에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솔직히 친척이 그리고 형제가 일생에 단 한번 혼인을 하는데 그 혼인에 참석하는 것과 주일을 성수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대 다수의 사람들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고 당연히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렇게 어두움에 일에 열심을 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이스라엘과 똑 같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제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빛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말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시라도 어두움의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 됩니다. 이스라엘도 자기들이 다 빛의 일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확신을 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한 모든 행위는 어두움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한국 교회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실체이신 예수를 몰라보았고 지금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어두움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을 합니다.
누가 자고 있었습니까? 열 처녀의 비유에서 열 처녀가 다 자고 있었지만 슬기롭지 못한 다섯 처녀는 자고 있었습니다. 육적으로는 모두 자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다섯 처녀는 잠자고 있었습니다. 지혜에 대해서 깨어 있지 않는 자는 모두가 자는 자입니다
이 시대는 자고 있습니다.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깨어 있지만 지혜에 대해서는 자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배운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말씀은 거의 행위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믿음에 대해서는 배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깨어 있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사모하지 않는 자는 자는자인 것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역시 잠자는 자입니다 처음 믿을 때 보다 구원이 점점 더 가까워 져야 하는데 교회는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상담을 많이 합니다.
한 결 같이 하는 구원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는 것이고 진리에 대해서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에 대한 확신이 들고 어떻게 해야 구원에 확신이 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무리에 끼어서 남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까 나도 구원을 받았다고 입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조금도 의심이 없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으로는 내가 깨어 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깨어 있는 것은 내 영이 깨어 진리를 사모하고 그 진리를 통해 내가 구원에 확신이 점점 들어갈 때 내가 깨어 있는 자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대해서는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기도 하고 또 봉사와 헌신과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육체에 대해서 깨어 있는 것임을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영이 깨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가까워 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구원에 대한 확신이 점점 강하게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구원에 대해나 확신이 오히려 의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그것이 믿어지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깨어 있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행위에는 너무도 잘 깨어 있는 그들이 진리에 대해서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밤이 깊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영혼은 밤이 깊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빛의 일을 하고 있다고 큰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이 무엇입니까?
로마서는 교리서입니다 성경의 뼈대가 되는 말씀이고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무엇인 줄 알고 있습니까? 술 먹고 주정하고 또 세상의 정욕에 빠져 도박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또 명예를 얻기 위해 비굴하게 하고 하는 것이 어두움의 일입니까?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은 교리서이고 또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로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두움하면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상 적으로는 나쁜 것이 어두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이 세상 세 살짜리도 아는 것이라면 사도 바울이 굳이 교리서인 이 로마서에 기록을 했겠습니까? 혹시 다른 성경에 기록했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교리의 기초가 되는 로마서에 어두움을 그렇게 단순하게 기록을 했겠습니까?
요한복음3:19절을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무엇을 더 사랑했습니까?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기들의 행위를 더 사랑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더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빛 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두움이 더 좋게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과연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그 어두움을 사랑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들은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어두움은 너무도 밝은 빛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두움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선하고 착하다고 하는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치 빛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조금의 의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보여도 어두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 행위는 다 어두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는 빛입니다 내가 빛을 행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율법주의 사상입니다 우리는 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를 위해 내가 하나님을 위해 내 생명을 내 놓는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이 빛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내 생명을 내 놓는다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은혜로 입혀지는 옷입니다
내 행위의 의는 어두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빛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빛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움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갑옷을 입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선하고 의로운 일이 다 어두움에 속해 있다는 것을 모르면 결국 구원에서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 다수도 역시 그 어두움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벗어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이 시대 다수의 교인들이 빛의 갑옷을 입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행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말씀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은 성도들은 굳이 행위를 강조하지 않아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모르고 있습니다.
내 눈에 가장 빛나 보이는 그 행위가 가장 어두운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하고 의로운 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로마서는 교리서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내 눈에 정말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그 일이 바로 어두움의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3절“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성도는 단정합니다.
단정한 것은 화려한 것과는 다릅니다.
빛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정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금 교회가 얼마나 빛을 내고 화려하게 가꾸고 있는 가를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행위 또한 더 빛을 내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8절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는 것이 바로 방탕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아주 독한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자기가 술 취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술에 취해 있는 가를 모르면 결국 그 영혼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로마서4:15절을 보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요한계시록에 진노의 포도주를 먹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못지않게 지금 이 시대는 율법에 취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있으면서 그런 자기 모습을 보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 빛의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율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줄을 모르고 음행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율법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음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마음껏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버리든지 아니면 예수를 버리든지 반드시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이 둘을 다 행하는 것은 음행이고 그런 음행한 여자를 주님께서는 반드시 내치실 것입니다 어느 남자가 자기 말고 또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그 여자를 그냥 두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그런 음행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호색을 하고 있고 쟁투를 하고 있고 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율법과 행위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행위를 너무나도 강조를 하고 있는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방탕하라고 하고 있고 술 취하라고 강조하고 있고 음행을 하라 하고 있고 호색과 투쟁과 시기를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못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교회에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라 죽어라 강조를 하고 있고 그 죽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정죄를 하면서 믿음이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율법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빛을 가리고 있고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가를 모르고 그저 열심에 열심을 내면서 스스로 사망의 길로 재촉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입니다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겉으로 보여 지는 옷이 아니라 구원의 옷입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그러나 이 옷 입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입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옷 행위의 옷을 입고 그것을 보면서 아주 좋아하고 있고 서로 칭찬을 하고 있고 자기들과 같이 그런 옷을 입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일이라고 하니까 세상의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이 다 육신의 일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 일은 내 육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는 것입니까? 이런 기본적인 사고가 안 되니까 자기가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어두움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다 육신의 일입니다
만약 그것이 육신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거나 아니면 바보입니다 신앙생활에 대해서 너무 잘하려고 하는 일 그 일이 바로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정욕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모든 일 다 정욕에서 나온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고 하는 순간 정욕에 빠지게 되고 또 육신의 일을 자꾸 도모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너무도 많은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으면서도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너무 의욕이 앞서 있습니다.
남이 안하는 새로운 것 그리고 남 보다 더 빛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욕이고 또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리는 기초입니다
그 기초를 모르면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내 눈에 가장 선하고 의롭게 보이는 그것이 바로 정욕이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어두움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고 단정히 행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빛의 갑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임하셔서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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