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강,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18:1-14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없음)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인이라고 자부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만유인력이 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저 드넓은 우주 우리가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는 그런 우주에서도 무소불위하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에서는 만유인력이 지극히 상식이지만 다른 별에서는 전혀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달만 해도 그렇습니다.
중력이 작용을 하지 않으니까 우주인들이 가서 우주복을 무겁게 하고 걸어가는데도 걷는 것이 마치 둥둥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성적이라고 하는 그 사상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별에선가는 크기가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아주 큰 것이 그곳에 가게 되면 아주 작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실제 별들을 관찰하는 과학자들의 경우에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이 하나 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별에선가는 태양이 두 개일 수도 있고 또 태양이 다섯 개 일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 갇혀 있으면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이곳에서의 상식이 마치 천국에서도 그렇게 작용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제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천국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 보지를 못 했습니다. 제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제가 이단적인 사상에 심취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 지구에서의 사상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천국도 지구와 같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사상입니다
지구와 달만 해도 모든 조건이 다른데 지구와 같이 생각을 하고 달에 갔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에서의 생각을 가지고 그 이성을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했다가는 분명히 살지 못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천국도 모르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지도 않고 달에 가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서서 너무 태평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지구에서의 상식을 가지고 천국에 가고자 합니다.
1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사실 어쩌면 매우 타당성이 있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이 지구에서의 생각이며 마치 만유인력이 달에서도 똑 같이 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 천국에 대해서 물어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지구에서도 왕이 있고 신하가 있고 또 종이 있고 다스리는 자가 있고 다스림을 받는 자가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매우 타당성이 있는 질문입니다
천국을 모릅니다.
지금 제자들도 천국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천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도 제자들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더욱 큰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럽니다.
자기가 천국에 갔다 왔더니 어느 목사의 집은 3층으로 대궐 같은 집이 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사람의 집을 보니까 아주 초라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천국에 갔다 왔겠습니까? 한 마디로 무식한 변론이고 천국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그런 생각이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지구의 생각입니다
지구 안에서는 분명히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겠지만 어느 별에서는 모든 것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에는 돌멩이 크기가 다 다르지만 어느 별에서는 다 똑 같은 돌멩이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는 크다 작다 하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별이 몇 개나 되는 줄 아십니까?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만도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고 그 수많은 별들 중에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용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느 별은 다이아몬드만으로 되어 있는 별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구의 상식을 가지고 천국을 말하겠습니까?
조금 이해가 됩니까?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구라는 우물에 갇혀서 그 안에서 보고 있는 생각으로 천국을 생각하려고 하다가는 낭패를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 상식으로 아니 이 지구의 상식으로 천국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의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도 마치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큰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다가 미련에 빠져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부입니다
오직 신랑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일부다처제라고 하면 아마 어느 부인은 더 사랑을 받고 어느 부인은 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실제 야곱의 부인중에 라헬과 레아의 말씀을 보아서 알겠지만 서로 투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더 크고 누가 더 작고 또 누가 더 사랑을 받고 또 누가 더 행복을 누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가 동일하게 모든 것을 다 누린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 하기 보다는 작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어서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말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적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가고 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 이 세상에서 아직 천국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천국에서 큰 자 작은 자를 따지다가 결국 불행하게 됩니다.
성경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안다면 절대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주인이 크게 주고 적게 주는 것은 그분의 뜻입니다 아니 다 똑 같이 준다 해도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따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선하게 살았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복음을 위해 일했다 해서 큰 자가 되리라고 생각을 했다가는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것을 가지고 거지 열 명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것을 똑 같이 줄 수도 있고 어느 거지 한 사람에게 다 줄 수도 있고 또 세 명만 주고 나머지는 안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입니다 그렇게 했다 해서 거지가 나에게 따질 수 있습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거지가 따진다면 그것을 내 것이 아니라 거지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다 생각을 가지고 행하고 있는데 주인 것을 가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을 하면서 마치 자기 것 같이 분배를 하고 내가 큰 것을 받을 것이라고 하고 너는 작은 것을 받으라고 한다면 그 주인은 화를 내고 그런 사람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라 해도 거지가 여러분 것을 자기 마음대로 분배를 한다면 화를 내고 안 줄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 다 거지입니다
2절,“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은 18장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오히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워낙 아이들이 영특해서 크고 작은 것은 가리지만 예전에만 해도 어린아이들은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크고 작은 것을 따지는 자가 가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것 보다는 가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성도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2000년 전입니다
아마 6-70년대를 살아온 성인들만 해도 그 당시 어린 아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거의 생활수준이 같았고 부자라 해도 별로 차이가 안 났기 때문에 누가 큰 가 작은가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자기 또래면 친구로 지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 천국을 가는 것에 즐거워하는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4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큰 자가 없다는 것을 기초에 두고 이 말씀을 생각해야지 마치 이 세상과 같이 천국에서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면 그것은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큰 자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실제 큰 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한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크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자를 영접해야 합니다.
이 소자는 물론 어린아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처음 복음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그 사람을 소자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성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 영접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를 보면 예수 이름으로 영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이름으로 또는 어느 목사이름으로 영접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예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교회를 보면 과연 그들이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있는가 하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5절,“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고 또 자기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자가 되겠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은 소자 하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너무 열심을 내다가 자기 뿐 아니라 작은 소자를 실족케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마음이야 얼마나 좋겠느냐 만은 그 마음이 너무 강해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소자를 오히려 실족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이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 닫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 하다가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율법주의에 빠져 그렇습니다.
자기 딴에는 그 소자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소자에게도 강요를 하다가 소자가 오히려 실족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는 그 한 행위로 인하여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 하다가 오히려 망하는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열심이 지나칩니다.
특히 인터넷을 보면 분별도 안 되는 사람들이 무조건 복음을 전하겠다고 아무 자료나 갔다가 다 카페에 올려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딴에는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만약 그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 문제가 생긴다면 그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일로 인하여 소자가 실족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하고 있는 그것으로 인하여 소자가 실족이 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무조건 하나님의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예배, 기도, 찬송, 전도, 봉사, 사랑, 이것이 만의하나라도 소자를 실족하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정통의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소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를 실족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로 인하여 소자가 실족을 당하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실족을 하라고 열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7절,“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는데 그 일로 인하여 소자가 실족을 하게 된다면 그에게 화가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교회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소자를 영접하기 보다는 오히려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소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을 하기 보다는 그 소자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하다고 하는 그 일의 대부분이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또 그 소자를 구원을 해 주실 수 있는데 내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마치 아는 것과 같이 행동을 하다가는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지구에서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는 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천국을 오해를 하고 사과는 반드시 떨어진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그 사과나무아래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내가 소자를 위한다고 하는 그 일이 오히려 소자를 실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그 일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안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르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경계로 하시는 말씀이고 누가 실족하게 하느냐면 바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는 자로 말미암아 소자들이 실족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목적을 둔 사람은 소자를 실족하게 하지 않지만 천국을 이 세상으로 생각을 하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되고 싶어 욕심을 부리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소자가 실족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큰 자가 되고 싶어 하는 자로 말미암아 소자가 실족이 되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8절,“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무엇이 소자를 실족하게 합니까?
바로 내 발과 내 손이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손으로 하고 있는 일 바로 하고 있는 그 일로 인하여 소자가 실족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손으로 발로 더 열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손과 발은 거의 내 모든 행위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사실 손과 발입니다 그런 일로 인하여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소자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소자에게 자기가 하고 있는 손으로 하는 일, 발로 하는 일을 가르쳐 주면서 소자를 행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발로 무엇을 해야 하고 하는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를 가르쳐 주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죄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서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지금 현재 교회는 너무 행위에 빠져 자기들이 손으로 하고 발로 하는 그 행위를 믿음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손이 하는 그 일이
내 발이 하는 그 일로 인하여 소자를 실족하게 한다면 차라리 그것을 찍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럼에도 이 시대는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발로 하는 그 일로 인하여 소자를 가르치고 있고 그것으로 소자가 행위에 빠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소자를 실족하게 만드는 그 일이 가장 큰 범죄입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을 천국에서 큰 자가 되겠다고 설치다가 오히려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행위를 가르치면 소자를 반드시 내가 하는 행위를 따라 하게 되어 있고 내가 믿음을 가르치면 소자도 역시 믿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서 분명히 행위냐 믿음이냐고 사도 바울이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손으로 발로 하는 그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손으로 하고 발로 하는 모든 행위가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 일로 실족하게 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에 자기를 달아 깊은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이고 예수님께서 한 영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겠다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소자를 자기가 어떻게 하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주님께서 알아서 구원을 해 주실 수 있는데 나로 인하여 방해를 받고 그 소자가 지옥 불로 들어가게 된다면 나는 예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범죄를 합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천국에 너희가 많이 들어가라고 오히려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범죄를 자기 손으로 발로 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의 다수는 자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9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눈이 범죄케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어서 자기들의 생각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안다고 합니다.
진리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진리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교회 안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소경으로 있으면서도 자기 눈이 다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다 보고 있습니까?
정말 예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기에 예수를 전하고 있고 또 예수를 전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얼마나 다 알고 있기에 영의 눈이 열려서 다 보고 있기에 그것을 함부로 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본다고 하는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그것을 소자에게 가르쳐 주었다가는 소자는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성경을 다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전하기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보지도 못하고 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성경에 대해서 못 보면서 본 것처럼 소자에게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성경에 대해서 몇 독 읽지도 않은 그들이 말씀을 해석을 하고 그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주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강심장일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영혼에 대한 문제 인데 자기도 모르면서 마치 아는 것 같이 성경을 해석을 하고 전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실제는 그 일로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자도 못 들어가게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눈을 빼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눈을 빼어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그 열심히 지나쳐 무리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소자를 실족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10절,“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누가 업신여깁니까?
믿음은 마음에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는 업신여기고 말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행위는 눈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 미치는 것을 보면 당연히 업신여기게 됩니다. 눈은 소경이면서 보는 척을 하고 또 손으로 발로 범죄를 하면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소자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 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소경이면서 본다고 하는 그들이고 또 손으로 발로 하는 그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인들은 너무 열심이 많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있고 또 자기 마음에 있는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고 싶어서 그것을 손으로 발로해서 나타내고자 노력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보지 못하면서 자기들이 본다고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만 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따라가던 모든 사람이 함께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소자를 업신여겼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지어 개라고 표현을 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아주 멸시를 하고 업신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지킨 율법의 고운 옷을 보고 사람들이 다 취해서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전도를 하고자 하는 이 소자를 하나님의 천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발로 손으로 해서 범죄를 하고 또 눈으로 성경을 보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해석하지도 못하면서 본다고 하면서 소자를 가르치고자 할 때 만약 그 소자가 그것으로 실족하게 된다면 그 천사가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고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원수입니까?
바로 이 소자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손으로 발로 그리고 눈으로 범죄를 해서 이 소자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나는 몰랐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한 소자를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내가 범죄를 함으로서 얼마나 불행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교회 안에서 설쳐대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큰 죄악입니다
소자가 나로 인하여 사망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고 가장 큰 죄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또 이스라엘이 그랬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현대 교인들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늘 그래왔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90% 이상이 소자를 구원한다면서 범죄를 해 왔고 또 그 소자를 업신여기면서 자기들의 미련을 나타내면서 교회 안에서 주류로 살아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 현대 교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방해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12절,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있는가를 아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놓고서라도 그 양을 찾아 나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에 들어왔다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나온 광야 교회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갔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그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지금 교회는 다르다고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나 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이스라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오히려 그 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낫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보는 한국 교회는 아니 세계 교회는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교회 안에 예수는 사라지고 있고 율법이 성행하고 있고 바알 사상인 기복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고 또 은사에 미쳐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나내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내가 전도한다고요?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복음이 있는 성도를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수는 지극히 적고 또 그 복음이 있는 성도를 분별하지를 못하고 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수는 망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습니다.
13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교회 안으로 데려 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수십만 명이 있으면 뭐 합니까? 그리고 수천 명을 전도하면 뭐 합니까? 만약 그것이 소자를 망하게 하는 길로 이끌었다면 그는 하나님과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숫자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잃어버린 한 양 구원을 받고자 원하는 그 소자를 주님께 영접 시키는 그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가 너무 적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크고 작은 자가 없지만 실제 이렇게 할 수 있는 자가 너무 적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큰 자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교회가 구원을 방해를 하고 천국 문을 막고 있다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정말 한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너무 없기 때문에 아니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큰 자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막말 좀 하겠습니다.
정말 부탁이니까 함부로 설쳐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열심이 소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자를 사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예수님께서 너무도 잘 알고 있으시기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싶습니까?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천국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람이 소자를 구원하겠다고 설쳐 대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반드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욕심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을 보다가 구원론에 대해서 한 가지라도 의문이 있으면 잠잠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고 또 소자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손으로 발로 열심을 내고 또 보지도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 그것으로 범죄가 되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도 얼마나 큰 은혜인데 거기서 또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자기 영혼도 망하게 하고 소자도 망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르면 가만히 있으세요.
괜히 소자를 구원하려고 하다가 그 소자가 만의 하나라도 나로 인하여 실족하게 된다면 어찌하시려고 합니까? 그러나 한국 교회 교인들은 너무 겁 없이 발로 손으로 열심을 내고 있고 진리에 대해서 어두움에 있는 그들이 마치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소자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교인으로 가르치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 아주 충실한 한 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갈 수 없는 이 세상의 교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내 주변에 있는 예수를 모르는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지만 혹시라도 내가 모르고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먼저 내 자신 안에 있는 믿음을 확증하고 난 후에 소자를 구원하는 일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간 것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늘 내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고 영혼을 사모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세요.
거기는 작은 자도 없고 큰 자도 없는 곳이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곳입니다 그 천국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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