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강, 쉬지 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5:17절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성령의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맨 마지막이 바로 절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열매를 기록하시고 난 후에 맨 마지막에 절제를 말씀하셨겠습니까?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희락이 넘칩니다. 성령의 나머지 8가지 열매를 다 갖추고 그것을 행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절제를 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오히려 정욕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제를 하지 못하는 인생들의 심리를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마지막에 절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제를 하지 못하는 사랑은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도 적당히 넘치지 않게 해야지 사랑을 받는 쪽에서 부담이 안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성령의 열매를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까닭도 없이 무조건 사랑을 하려 한다면 그것을 받는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끼리 뿐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무조건 표현을 하려 하다가는 상대에게 오해를 사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도 가려야 할 것이 있고 또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남녀가 너무 그런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껴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남자를 사랑한다고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표현하기 위해 그 남자에게 가서 스킨십을 한다면 그 남자는 분명히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다 압니다
내가 정말 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해도 표현을 해야 하고 안 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고 그런 것을 아주 잘 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진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해도 남녀 간에는 조심스럽게 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희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기뻐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또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일은 분명히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쁘다고 표현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기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들도 신앙생활을 해서 천국에 가서 기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상중에는 기쁨을 내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절제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나머지 8가지 열매를 다 나타낸다 해도 만약에 절제가 안 된다면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교회 안에서도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에게나 가서 사랑 표현을 하고 아무데서나 기쁨이 넘친다고 해서 웃고 해 보세요 그 사람을 누가 바르게 볼 수 있겠습니까?
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사장이 일을 이만큼만 하라고 했는데 자기가 충성을 하겠다고 더 많이 하는 것이 물론 좋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더 하고 싶어도 그래서 인정을 받고 싶어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농장이 있습니다.
사과나무를 심기 위해서 땅을 100곳만 파라고 했는데 충성을 한다고 더 많이 심겠다고 1.000곳을 팠다면 오히려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과욕에서 비롯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1.000곳에 아니라 10.000곳을 파면서도 그것이 충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100.000곳이라도 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그렇게 하는 자기 모습을 보고 아주 충성되고 신실하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칭찬을 하고 있고 못하는 자기를 보면서 스스로 정죄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입니다
절제를 모릅니다.
내가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하는 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많이 하면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한국 교회 교인들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절제가 안 되는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 기관차의 결국은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가속이 붙고 또 붙어서 나중에는 세우고 싶어도 세울 수 없는 지경에 까지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안 잡힙니다.
그리고 어디서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막연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절제가 안 되는 성령의 열매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와 같이 오히려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서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절제[節制]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을 절제라고 합니다.
내가 사랑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고 또 희락을 누리더라도 그 이상을 누려서는 안 됩니다 또 충성을 하더라도 거기까지만 해야지 맹목적으로 무조건 충성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50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내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 50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을 준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정욕의 브레이크가 안 잡혀서 자기도 100을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기도를 안 하는 성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입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기도가 있는데 사람들은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하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좋은 산책길이 있습니다.
저도 시간이 날 때 마다 그 길을 걸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바라는 마음 그리고 또 하루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부분이 있으면 그 시간 걸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아주 좋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제가 산책을 하는 시간이 몇 분이 올라와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또 방언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또 전도를 하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반감이 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 그 사람들을 통해서 아주 안 좋게 비춰 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제 주변을 지나가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열심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기도를 통해서 오히려 기독교가 반감을 사게 되고 전도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장소가 없습니까?
가까운 곳에 기도원도 있고 또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그 길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서 기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기도를 통해 복음이 방해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기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기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 교회 교인들의 기도는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바알을 섬기고 있는 기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주를 찾고 있지만 그들의 기도 내용을 보면 바알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도가 만사형통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기도하세요. 그리고 기도해 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무당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무당이 상대에 대해서 즉시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기도를 해 보겠다고 하고 있고 자기가 산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겠다고 하고 있고 언제 기도하러 산에 들어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때 자기가 기도를 해 주고 답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합니까?
자기 미래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바른 가 틀린가를 알고 싶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무당도 하고 있고 또 절에 가면 스님들도 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 기독교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오히려 기독교인들보다 그들은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 해서 무당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용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는 기도와 똑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면서 단지 하나님을 찾고 있다 해서 내 기도가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13: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광야는 지금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서 행하시면서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춰주시면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을 인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또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낮에는 따가운 햇살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구름 기둥을 세워 주시고 또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족해서 원망을 하고 또 주를 시험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울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울었다는 말씀은 그냥 운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기도는 원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고 있는 그 기도가 원망이 된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광야 물론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인도하시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는 신앙생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서 편안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래서 때로는 원망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순종을 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보았다면 불과 15일 정도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편하게 살면 뭐할 것입니까?
광야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하면 뭐할 것입니까? 내가 광야에서 기도를 잘하고 찬송을 잘하고 또 특별한 은사를 나타내면서 칭찬을 받으면 뭐할 것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할 것입니까?
밤을 새워 기도를 하고 이레에 이틀 정도는 철야를 하면서 기도를 하고 시간을 정해서 기도를 하면 뭐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쓰레기에 불과한 기도입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 기도는 진정으로 하는 기도라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 기도만 진정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기도를 할 때 다 진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만 믿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믿으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는 믿음으로 하는 기도고 다른 사람이 하는 기도는 율법적이고 형식적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할 때는 나름대로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가 그리고 내 기도가 어떤 기도 인가를 모른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 교회 기도에 미쳐있습니다.
제가 좀 심한 표현을 쓰더라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고자 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하나님의 주권도 무시를 하고 내가 기도를 하면 무조건 들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한 기도의 응답을 보면서 마치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6:31-32절을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내가 지금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어도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또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또 평안하게 살게 해 달라고 하는 모든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건 예수 그리스도를 찾건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또 입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있어야 하실 줄을 아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거의 모든 기도가 이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악한 마음인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가 하는 그 일을 받으시겠는가를 안다면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늘 뉘우치고 있습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제 마음에 이런 마음이 싹트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도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고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초대 교회에 신실한 사도들과 성도들은 정말 부자로 살았어야 하고 이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면서 마음껏 복음을 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참했고 또 복음을 전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생명을 빼앗기는 일을 당했습니다.
기도가 다 정욕적입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더욱 풍성하게 하겠다는 것도 정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정욕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고하는 그것을 정욕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하겠다는 그 일도 사실은 정욕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교인들이 기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게 하느냐면 이방인이 구하는 기도를 하게하고 있고 또 정욕에서 나온 기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응답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그 기도의 대부분이 사실은 사단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기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4:3절을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정욕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구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기 시작을 하면 자기 마음에서 더 잘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이 하나를 하면 나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욕구들이 이기지 못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 교회 안에서 정욕에 사로 잡혀서 구하는 것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응답 받는다면 그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그 기도를 누가 들어주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 정욕에서 나오는 기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기도를 폄하해서도 안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에서 기도하는 그 내용들을 보면 과연 저들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인가 의구심이 들 때가 너무 많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여러분은 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이방인이 구하는 그런 기도도 그렇다고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그런 기도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는 것 그리고 아무 것이나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중언부언을 하는 기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고 이 말씀을 기록했다고 생각합니까? 사도 바울은 실제 쉬지 않고 기도를 했고 또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쉬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이방인이 구하는 그런 기도도 아니고 자기 정욕을 위해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더 무엇을 잘 하려고 하는 그런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꼭 눈을 감고 또 시간을 정해 놓고 또 예배 시간에 기도를 하는 그것만이 기도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기도로는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하고 또 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떤 순간에 형식을 갖추어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평생을 살면서 바라는 한 가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양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정말 쉬지 않고 기도를 했다면 가나안에 다 들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에 대해서 몰랐고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 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는 이방인이 구하는 기도도 아니요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정욕적인 기도도 아니요 오직 천국을 바라보는 기도여야 합니다. 저는 늘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시도 그것에 대해서 소홀히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제 기도입니다
슬플 때나 힘이 들 때나 그리고 정말 앞이 깜깜할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비천에 처해 있을지라도 소망하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바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임을 믿고 받아들이고 비록 그럴지라도 내가 천국에 갈 것에 대해서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세상에 미련이 그렇게 없습니다. 물론 오늘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설교를 작성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그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가야하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기도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그것을 늘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 그것이 성도의 기도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해서 쉬지 않고 기도를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곳에서 모든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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