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강,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수기 11:31-35절을 보면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탐욕, 탐심을 우리는 경계를 해야 합니다.
먹을 것을 과하게 탐을 내는 사람을 식탐이 있다고 말하고 또 재물에 대해 과하게 탐을 내는 사람을 구두쇠라고 합니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성도들이 탐욕을 부리는 것입니다
탐욕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탐욕이 무엇인지 조차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탐욕을 부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탐욕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탐욕[貪慾]의 사전적인 뜻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말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에 있어 지나치게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탐하려 하는 행위를 탐욕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나치다는 기준이 조금 애매모호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지나치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전혀 지나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10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20억을 벌겠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억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10억으로도 충분한데 더 욕심을 부린다고 하면서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자를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 같은 서민은 그 정도만 있어도 만족을 할 것 같은데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더 많은 부를 축척하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가 안 되어 본 사람이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 역시 부자가 되어 그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자와 같이 많은 것을 벌고자 할 것입니다
탐욕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절제할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볼 때는 역시 탐욕을 부리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래 악인은 자기가 참 인자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탐심을 부리는 사람 역시 자기는 욕심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탐욕을 부렸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부린 탐욕이라는 것이 생각에 따라서는 그렇게 과한 탐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 나와서 매일 만나만을 먹고 있다 보니까 고기를 조금 먹고 싶어 한 것뿐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탐욕을 부린 것이 아니라 섞여 사는 무리 중에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기에 동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재앙이 이스라엘에게 내렸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대에 매일 채소만 먹고 살라고 하면 며칠이 안 되어서 불평을 하고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 역시도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며칠 고기를 안 먹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밥을 먹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탐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절에 들어가 살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고기를 요구한 그것이 탐욕이 되었다면 우리는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채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탐욕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부린 탐욕은 물론 육적으로 고기를 탐하였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이 탐욕입니까?
이스라엘의 육적인 것은 우리 영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경계를 삼으시고 지금 이 시대 성도들에게 무엇이 탐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하게 하셨고 또 그들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영적인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자기 영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의 육적 양식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는 영적인 양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31-35절을 보면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만나는 생명을 주는 양식이었습니다.
바로 이 만나가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는 생명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육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이 시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광야는 가나안에 가기까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를 사는 성도가 천국에 가려면 교회라는 광야를 거쳐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갔던 것은 그들이 소망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같이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정이며 천국을 가기 위해 가고 있는 길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이지 이 광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지 결코 광야에서의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약속하신 그 언약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목적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받은 선물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거저 주시려고 하는데 그 가나안을 생각하기 보다는 광야에서는 풍족함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굶주리지를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 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고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나만 먹고도 그들이 가나안을 들어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먹기를 거절했습니다.
만나로 족함을 여기지 않고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생각하면서 탐욕을 부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먹고 충분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1:5절을 보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스라엘은 만나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생각하고 또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싱싱한 채소들을 생각하면서 더 많은 것을 먹고 싶어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가지고 탐욕을 부렸는가 그리고 그들이 왜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만나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는 광야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면서 애굽에 있을 때 먹었던 것들을 먹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애굽은 이 세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을 얼마나 성행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것 애굽에서 먹던 그것을 추억하면서 그것을 먹고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세상 것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외는 모두가 세상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설교에 얼마나 많은 애굽 것들이 들어가 있습니까? 애굽의 예화가 들어가 있고 애굽의 유머가 들어가 있고 애굽의 정치 사회가 들어가 있습니다.
목사들이 예화집을 사서보고 예화를 찾으려 인터넷을 뒤지는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먹으면서 은혜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나,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모든 것은 이 세상 애굽의 것임을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유명한 목사의 말도 그가 어떻게 행했는가 하는 예화도 모두다 애굽의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탐욕입니다.
그들이 음식을 가지고 탐욕을 부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떡입니다 바로 음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먹고 있고 먹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탐욕입니다
애굽의 것을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급속하게 세속화 되어 지고 있고 세상의 것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런 것이 아주 융통성이 있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애굽의 것을 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탐욕을 부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뻔히 알고 있고 성경을 연구한 그들이 역시 또 탐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가지고 탐욕을 부렸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39절을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예수 그리스도면 천국을 가는데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자기 겉을 깨끗하게 하는 탐욕을 부렸습니다. 그들의 흠 없는 율법의 의가 바로 또 다른 탐욕이 되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탐욕이 가득하면 예수를 죽입니다.
탐욕이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율법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되어 있고 그 율법의 의라는 것은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속성에는 탐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를 지키면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칭찬을 받고 싶어서 다른 율법을 지키려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율법을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려 자꾸 탐욕을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보고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을 예수님께서 탐욕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정을 할 정도로 너희의 겉은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겉이 깨끗할 정도로 탐욕을 부리면서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탐욕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 그것이 오히려 탐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잘 믿고 율법을 잘 지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제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 탐욕을 부리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국 율법으로 탐욕을 부리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하고 말게 됩니다.
나쁜 것만 탐욕이 아닙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사망을 당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탐욕을 부려서 사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으로 탐욕을 부리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 지킨 것은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도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잔의 겉은 깨끗했습니다.
깨끗하기 때문에 더 깨끗해지기 위해서 탐욕을 부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천국에 충분히 갈 수 있는데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탐욕을 부리면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천국에 가느냐고 말 합니다
아주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어서 천국을 가지 예수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런데도 율법주의에 세뇌를 당해서 이런 말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지금 교회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습니까? 안 기다렸습니까?
그들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자기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베풀 때 당신이 오실 그 입니까? 우리에게 밝히 말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자기의 의를 깨끗하게 하다가 결국 메시야가 왔을 때 알아보지를 못 했습니다
율법에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도 믿지를 못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탐욕이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탐욕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탐욕을 부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해서 죽고 말았는데도 역시 이스라엘은 또 탐욕을 부리다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악을 행했습니다.
예수로 충분합니다.
제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를 스스로 의롭고 선하게 하려 하는 율법적인 행위들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는 있지만 실제 그것이 그물이 되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율법적인 것으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3절을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탐욕이 될 만한 것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율법 때문에 망한 것을 뻔히 보고도 아직도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탐욕을 부리다 망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내가 지키고자 하는 한 가지 율법이 나를 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한가지로 끝이 나면 좋은데 율법은 자꾸 탐욕을 부리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아니 아직도 육적인 이스라엘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율법에 대해서 아직도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것으로 족한 줄을 알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까지는 우리는 광야라는 교회에서 사는 것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은 그런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었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십 여일 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재앙을 내리시고 또 그들이 어떤 탐욕을 부리다가 재앙을 당했는가를 예표하신 것은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그런 똑 같은 탐욕을 부리다가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그리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애굽의 것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하는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고기를 먹는 대신에 아직 고기가 그 잇사이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 있는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애굽의 것을 구하고 그것을 받고 난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하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탐욕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조상들과 언약한 약속의 땅을 주시려고 지금 그 땅을 향해서 가고 있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그 땅 보다 이 세상의 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천국이라는 약속을 받아 놓고서도 그것이 부족해서 이 세상의 것을 탐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천국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애굽의 보화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모르고 또 이 세상의 것 애굽에 있는 것을 탐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도 가지고 또 이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누리려고 아주 지독한 탐욕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율법주의에서 나온 기복주의 사상입니다.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탐욕을 부리다 재앙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아끼지 않고 당신이 선택한 백성도 아끼지 않고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우리가 탐욕을 부리면 그냥 두시겠습니까? 반드시 재앙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뻔히 탐욕을 부리다가 재앙을 당한 것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 교회 목사 이 모든 것도 이 세상의 것입니다
더구나 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보다 더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마 록펠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웨슬레 목사를 예수님 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유머가 판을 치고 있고 웃기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그리고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교회에서 얻고 그것을 듣는 것을 아주 고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탐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은근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탐욕을 부리면 재앙을 당 합니다
골로새서 3: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모든 것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그것을 탐하는 순간 탐심이 그 안에 가득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명한 목사도 그리고 교회도 유명한 인물도 다 땅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왜 탐욕이 재앙을 당 합니까?
탐심은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 하늘로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탐하는 것은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예수 이외는 다 우상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이외는 모두가 우상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들의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예화라는 것으로 너무 많이 들려지고 있고 그것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만나면 충분합니다.
이 세상 것으로 탐욕을 부리지 마시고 오직 예수만을 사모하면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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