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74강,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5. 26. 06:29


74,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신명기 9:22-24절을 보면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사람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아는 사람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그것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참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가 불분명한 사람은 어떤 일을 행하면서도 잘 하면 좋고 못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태어났을 때는 그 어미가 자기 종족을 보존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짝짓기를 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심지어는 자기 생명을 잃으면서 까지도 종족을 보존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DNA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서 살던 연어가 회귀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대양에서 살다가 자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아주 작은 하천으로 떼를 지어 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하천에 올라와서 알을 낳고 난 이후에는 다시 대양으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거기서 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연어들은 강을 올라가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알을 낳고 거기서 생을 마칩니다. 아마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알을 낳지 않는 것이 낫지 자기를 죽이면서 까지 알을 낳고 죽으려고 강을 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난 후에 죽는다면 사람은 벌써 멸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어들에게는 그렇게 사는 것이 분명한 목적이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들의 생명을 내 놓으면서까지 자기 종족을 보존하고 그 생을 마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도 하지 못하는 것을 미물들이 하고 있습니다.

연어뿐만 아니라 물고기들 중에는 알을 낳고 난 이후에 거기서 생을 마치는 종류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의 분명한 목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연어를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 하셨을 때는 그것을 보면서 더듬어서 창조주를 찾게 하셨습니다. 그냥 만들어진 것이 없이 모두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미물도 목표가 있는데 사람이 목표가 없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주셨다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그저 세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목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셨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그것이 자리하지를 못했고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마는 불행한 일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목표보다는 세상이라는 애굽을 더 그리워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세상을 그리워하고 또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세상을 모두 끊어버리고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그 영혼의 결국이 구원을 받느냐 멸망을 당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조금 어렵더라도 참고 나갈 수 있습니다.

 

디베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광야의 여정 길을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이동을 해야 하는 그 길이 너무도 험난하였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대한 분명한 목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행군하는 그 길이 너무도 고행의 길이 되므로 하나님을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선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의로워서도 아니고 자기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맹세를 하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은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400년 터전을 삼고 산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중국으로 가서 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여정 길을 걸어서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원망을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잘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가서 살라고 하면 당연히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 인도하시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원망을 하게 됩니다

 

맛사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물론 광야에서 물이 없다면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컷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광야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만나도 내려 주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물이 없어 목이 마르면 그 물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만나를 먹는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영생에 얻었으면서도 다른 이 세상의 작은 것을 안 주신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목이 말라 죽게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6:33절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얻게 하시면 하나님께서는 나머지는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을 얻고도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당연히 채워 주실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인내하지 못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을 얻었는데도 이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결국에는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베라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이스라엘은 애굽을 추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양식 만나를 매일 내려 주셨지만 이스라엘 무리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추억을 했습니까?

분명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애굽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인도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참지 못했고 또 세상에서 먹던 것들을 추억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만을 먹는 것을 불평하였습니다.

 

가나안을 잊어 버렸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고 나온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안주를 하려고 하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을 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반 강제적으로 끌어내다 보니까 분명한 목표 의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보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교회 안에서 분명한 목표 의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나안을 바라보는 성도는 그곳에서 있을 축복을 알기 때문에 지금 삶이 조금 고달프더라도 인내를 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행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생각하고 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던 것을 그리워하면서 자꾸 하나님에게 그것을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탐욕을 부리다가 멸망을 한 것과 같이 똑 같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실감하지 못 했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백성인가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선택하셔서 인도하시는 가나안에 가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광야로 나왔지만 그들에게 있어 가나안은 너무 먼 길이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다 나와서 먼저 그 땅을 정탐하자고 하면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한 지파에 한 명씩 해서 열두 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들어갑니다

 

민수기 13:27절을 보면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들의 실과를 가져오고 또 그 땅을 보고 난 후에 정탐을 나갔던 모든 사람들은 과연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를 합니다. 실제로 그들이 보았던 가나안 땅은 너무도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 했습니다

 

민수기 13:31절을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그러나 정탐꾼들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실제 가나안에 거했던 사람들은 장대하고 또 강한 성벽을 쌓고 있어서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그들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정탐꾼들의 눈에는 그들이 강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 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인 애굽에서도 자기들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믿지 못 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병사들이 홍해에서 죽은 그 사건을 목격하고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능력을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난 후에 애굽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강대국 애굽에서도 자기들을 인도하셨는데 그 애굽에서 어떻게 해서 나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3:32-3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제 그 땅을 악평을 합니다.

처음에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던 그들이 거대한 아낙 자손을 보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오히려 악평을 하면서 들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그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었다면 아무리 거대한 아낙 자손이 있고 또 강한 성벽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 같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의 말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어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들어가게 하시면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싸워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 약속을 지키시고자 하시면 나는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들어가려 하지를 않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대적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싸워서 이기려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자기 능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지금 현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생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에도 다수가 가나안을 자기가 싸워서 들어가려고 하다 보니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힘써 싸워서 들어가려고 하다 보니까 자꾸 실족을 하게 됩니다

너무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감당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천국에 가려고 하다 보니까 가나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적을 보니까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 대적이 이스라엘에게는 거대한 아낙 자손이었다면 지금은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을 보면 늘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처지와 가나안에 거하는 아낙 자손을 보니까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가나안 땅을 혹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혹평합니다.

아니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모릅니다.

이 시대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를 않고 그저 막연하게 좋은 곳이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너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누가 싸웁니까?

이스라엘의 대적 아낙 자손과 누가 싸웁니까?

이스라엘은 들어가기만 하면 되고 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아낙 자손에게 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없는 분이고 거짓 약속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것입니다

 

실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을 할 때 하나님께서 싸우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믿고 백성들을 이끌고 들어갔고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싸우셔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믿지 못 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아낙 자손이 보였고 그것을 보고 겁을 먹었습니다.

 

신명기 31:8절을 보면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광야에서도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앞서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구름이 올라가면 구름을 따라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보고 미리 겁을 먹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가려고 하는 자는 모두 죽습니다.

실제로 가나안에 거하는 아낙 자손과 이스라엘이 싸운다면 이스라엘은 무조건 패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었고 또 든든한 성에 있는 사람과 광야에 있는 사람과의 싸움은 실제 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이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 했습니다

 

요한복음 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어렵다고 믿는 사람은 어려워서 못 들어가게 되고 그 명령이 쉽다고 믿는 사람은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명령을 아주 어렵게 믿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요한복음 11:25-2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는 것이 어렵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도 이스라엘과 같이 믿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내가 가서 싸우는 것이 쉽습니까? 자기가 싸우려 하다 보니까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이스라엘과 같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의뜻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설명을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사역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가 아낙 자손과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낙 자손을 보면 당연히 상대가 안 되니까 지레 겁을 먹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간단명료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명령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자기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니까 너무도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아낙 자손과 같이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정탐꾼을 보내서 그 땅을 탐지한 결과로 결국 20세 이상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거역한 것이 무엇이냐면 디베라에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행로의 곤고함을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 하였습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것을 당연히 채워 주실 텐데도 그것을 참지 못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는 탐욕을 부렸습니다.

생명의 떡 만나로 부족을 해서 애굽에 있는 고기와 수박과 부추와 마늘 등을 추억하면서 탐욕을 부렸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족을 해서 이 세상의 것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것들을 끌어들여오고자 하는 행위들이 탐욕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믿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을 거역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경계로 하신 말씀입니다 나 역시도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시험을 하고 이 세상 것에 탐욕을 부리고 약속을 믿지 않으면 그들과 같이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바로 천국을 행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 가를 모르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