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교회(5)
고린도전서 5:1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교회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 역시도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지난번 강의 때 분명히 말씀을 드렸지만 주님의 아내인 이 교회를 교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성경의 예표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아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주님의 아내를 자기 아내와 같이 대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주님의 아내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아내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너무도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게 보여서 더욱 사랑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지나칩니다.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그런 일이 있습니다. 참담해야 할 일을 오히려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와 통간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식이 없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와 통간을 한다는 것을 안다면 과연 그들이 그렇게까지 교회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다 해서 다 성도가 아닙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성도와 가라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은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는 가라지들이 더 많이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진노를 불러일으킬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오히려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에 대해서 바른 정립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정말 아내를 사랑하면 어떻게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에스더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보고 심히 사랑스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내를 보고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말하면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만이 나중에 에스더에게 자기 생명을 구명하기 위해 치마 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왕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에스더를 강간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하만을 죽였습니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남편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고 또 누구라도 자기 아내를 건드리려고 하면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만지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이치로 생각을 할 때도 다른 남자의 아내를 건드리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평범한 사람의 아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왕의 아내를 건드렸다가는 그것은 바로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될 수 있어도 주님의 아내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절대로 용서가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보고 음욕을 품고 있는 가 그렇지 않은가를 주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주님의 아내를 보고 음욕을 품는 일입니다. 사실 거기서 다 문제가 발생이 된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주님의 아내인 교회 때문에 율법주의가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가 왜 생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아내인 교회 때문에 율법주의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교회 밖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교회 밖에서는 이 세상의 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율법주의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안식일에 대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이 안식일을 너무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키시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 때문에 주님을 핍박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셔도 꼭 안식일에 고치시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주님보다 그 아내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의 사상을 깨뜨리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 일로 주님께 분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교회로 인하여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주님이 세우십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사람이 세우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와 사람이 세우는 교회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교회가 사람의 아내가 되어 버려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의 상상 보다 더 많은 음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영생에 대해서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교회이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형의 교회를 사람들이 자꾸 유형의 교회로 만들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보고 있는 유형의 교회를 무조건 반대를 하고자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 사람이 세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시는데 어떻게 주님이 세울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순간에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로 영혼들이 죽습니다.
교회는 정말 꼭 필요하지만 그러나 이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는 성도라면 주님이 세우시고 있는 교회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정확하게 분별을 해서 음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5:1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성경에서 음행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음행이 진짜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는 음행이냐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데 음행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육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을 육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묻겠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물론 이 세상의 도덕적 이성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 그런 일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로 구원을 못 받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의 구원을 어떻게 받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에서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어떤 것으로 우리 육체의 도덕적인 죄로 구원이 취소가 된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 정말로 통탄할 일이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구원을 받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이 흔들리게 되면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오묘한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오직 예수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한 죄를 지었다 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분명히 구원을 받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도덕이 중요합니까? 영생이 중요합니까? 도덕 때문에 영생에 대해서 바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든 도덕을 다 버리더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전하는 것이 바르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입니까?
아비의 아내가 진짜 사람이 아비의 아내를 취한 것입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성경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바로 정립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지난 번 교회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아도니아가 아비의 아내를 취하려고 했다가 결국에는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는 아비의 아내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아비의 아내가 교회인가를 고린도전서 5장의 말씀을 바로 해석을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성경의 비유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 있을 때 그 아내를 비유로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덥혔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교회로 예표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두 짐승이 교회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교회에 대해서 많은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비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바로 알지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적인 표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을 볼 때 이런 비유와 은유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당연히 이런 비유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게 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아도니아가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분명히 아도니아라는 인물을 보여 주셨는데 사도바울은 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구약의 아도니아가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말씀을 사도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그때 말씀을 드렸지만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아내로 삼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것을 성도님들이 깨달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2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아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참담한 일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 인간의 이성적 생각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적 생각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정말로 통한히 여겨야 하는데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 자들은 여러분의 모임에서 제거되어야 할 터인데도 그것을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난 체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비의 아내입니다
그것이 왜 교회 인가를 쉽게 알 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도의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아비의 아내를 취했다면 그 일을 누가 알게 하겠습니까?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 일은 둘 만의 비밀이고 그 일이 밝혀지면 아마 사람들과 교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설령 교회가 아니라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웃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자기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 해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것을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난 체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진짜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 교회에서 잘난 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육적인 일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일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육적으로 아비의 아내를 취한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공동번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어떻게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 잘난 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도니아와 같이 아비삭을 아내로 삼고 싶어 하고 그것을 실제 고린도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고 있으면서도 교만하여 져서 통한히 여기지도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도 교만하여 져서 통한히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면서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아내를 취하고도 교만하여 져서 통한히 여기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참담해야 하는 일을 하고도 얼마나 사람들이 교만해져 있으면 오히려 잘난 체를 하고 있겠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무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아내를 취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그 일을 서로 잘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도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 것을 모르고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다.
교린도교회 안에 있는 누구의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비유의 말씀을 모르면 자기가 교회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잘한다고 하는 그 일로 인하여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건축을 할 때 자기가 헌금을 했으면 그것으로 잘난 체를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잘난 체를 하고 있고 또 예배를 드리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로 잘난 체를 하고 있고 그렇게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도 통한히 여기지를 않고 오히려 잘난 체를 하면서 그것을 간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을 물리치지 않으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물리치지 못 했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잘 하는 일이고 또 더구나 잘난 체를 할 만큼 누가 보아도 인정을 받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이 일을 하고 또 저 일을 하고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누가 물리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잘 한다고 하면 했지 그 사람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하든 칭찬을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간증을 하게 해서 더욱 그 일에 열심을 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부탁드리지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 말씀을 듣는 분들 중에는 이 복음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마치 복음의 일을 하는 것까지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지혜가 있는 성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그 일에 협력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은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설교를 그리스도편지에 올려놓으면 이 복음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혹시 이용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바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때에 정말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협력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써 도왔는가를 로마서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진리가 있고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사도바울을 도운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안 해도 좋습니다.
아비의 부인을 취하는 일만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을 안 하는 것은 그래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지만 아비의 부인을 취해서 잘난 체를 하고 있는 사람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번 그렇게 잘난 체를 한 사람이 그것을 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 일을 행한 자를 물리치지 아니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가운데서도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물리쳐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이 시대 교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물리치고 말 것이 없이 다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판단을 받고 있습니다.
물리치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참담하게도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 있는 자들이 더 큰 소리를 내고 있고 그렇게 하지 않는 성도들이 그들에게서 쫓겨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지 않으려고 하다가는 교회에 다니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그리고 통한히 여겨야 하는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만해 져서 자기가 행하는 일로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교만하면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도 잘난 체를 하겠습니까? 그런 음행에 거의 모든 교회가 빠져 있는데도 통한히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5:3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늘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나면 그 교회에 장로를 세우고 나서 바로 또 다른 지역으로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그 전도한 교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참담한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멀리 떠나 있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 성령입니다
사도 바울이 진리의 성령을 받은 것 같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 역시 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한 성령 안에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너희가 나와 한 성령 안에 있다면 이런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판단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누가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알고 있기에 사도바울이 내가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판단을 하면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자를 판단을 하면 무조건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죄를 짓고 있는 것을 판단을 하면 이 말씀을 들이대면서 너는 누구관데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이 말씀은 율법의 죄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판단을 전혀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영적인 죄에 대해서 판단을 하면 오히려 교만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판단을 하고 또 그 안에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자들을 판단하는 설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마치 내가 하나님이 되어 판단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가지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육적인 것을 보고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영적인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판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도 바울도 아비의 아내를 취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판단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영적인 일에 대해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죄에 대해서 판단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육적인 죄로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죄로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럼 누군가 아비의 아내를 취했으면 그것을 잘못 되었다고 판단을 해 주어야 그가 지혜가 있으면 깨달아 돌이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지혜롭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영적인 죄를 짓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판단을 해 주어야 다른 사람들이 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사람들은 판단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잘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적인 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판단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영으로 함께 하고 있는 성도가 판단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가 판단을 해 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잘난 체를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죽고 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죄 입니다 다른 사람이 빤히 죽는 것을 보고도 어떻게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을 빤히 알고도 그것을 판단을 해 주지 않는다면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의 도리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래서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내가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를 판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판단을 해 주어야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판단을 해 주면 오히려 교만하다고 하면서 네가 하나님이냐고 하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신령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신령한 자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판단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진리의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고 그것이 악인가 선인가를 판단해 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누구 압니까?
아비의 아내를 취한 것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령한 자 뿐입니다 그런데 이 신령한 자가 판단을 해 주지 않으면 그나마 사람들은 더욱 더 아비의 아내를 취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잘난 체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저를 공격해도 좋습니다.
제가 이 시대 교회를 판단을 하고 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판단한다고 해서 저를 욕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판단하지 않으면 오히려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는 죄를 짓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그런 공격과 욕이 무서운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어떠한 욕을 하고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한다 해도 신령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그대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판단이 잘못 되었다면 그것은 제가 받을 벌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함부로 판단을 하고 성도들을 판단했다면 그 죄는 분명히 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쓴 설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율법의 죄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어느 누구도 그리고 교회도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4-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이 편지를 써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어 쫓으라는 말씀입니다
내 영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를 너희에게서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능력으로 너희가 이런 자를 내어 쫓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쫓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영이 너희와 함께 있어서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린도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내어 쫓으라고 하니까 이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너무도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내어 쫓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교회에서 누군가 들어와서 교회에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를 내어 쫓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내어 쫓지를 못 합니다.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누군가 우리의 모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하면서 이 교회를 위해서 열심을 다해 일을 한다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내어 쫓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주 예수의 능력으로 그런 자를 내어 쫓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군가 와서 자기 아내에게 하는 것 보다 더 잘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과연 내 쫓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도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는 너무도 잘 하는 일이고 너무도 선한 일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내어 쫓을 수 있습니까? 그런 자를 어떻게 사단에게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주 예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시범케이스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시범으로 보여 주시는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쉽게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는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지 아비의 아내를 취하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통회할 일입니다. 이런 자를 주 예수의 능력으로 사단에게 내어 주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육신을 내고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회개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의 육신을 사단에게 내어 주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모르고 끝까지 아비의 아내를 취해서 자기 아내를 삼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내어 주니까 사단이 그 육신을 멸하기 까지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욥이 그랬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 그 육신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이 회개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사단에게 그렇게 내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로 내어 주었는가 하면 육신을 멸하기 까지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육신은 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육신까지 멸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했을지라도 육신을 멸해 버리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가 회개를 하고 나서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가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주 예수의 날에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욥과 같이 자기 육체에 고난이 닥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난 체 하던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를 할 수 있게 주 예수의 능력으로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아내 삼고 자랑을 할 정도면 이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아주 잘 나가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욥과 같이 사단에게 내어 주니까 자기가 행한 일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구원 못 받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 초대 교회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욥과 같이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성경에서 시범케이스를 다 보여 주셨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6)-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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