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강, 교회(2)
(Church, 敎會)
요한계시록 2:4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음녀가 자기를 사랑하게 함으로 해서 처음 사랑을 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이 둘이 되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동침을 하다 보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 아름답고 교회가 너무 사랑스러워지다 보니까 그 교회를 섬기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는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정말 이 시대는 교회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교회를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녀는 이렇게 교인들을 미혹을 해서 하나님 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9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교회는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음녀는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부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유대인들이 얼마나 부요합니까?
유대인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을 동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음녀는 이렇게 유대인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부요함을 보여 주면서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동침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401쪽)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불의의 삯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렇게 불의의 삯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이 교회인 아내와 통간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면서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복주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설교들은 다 그리스도 편지와 복음과 율법에 올려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안 드리겠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이렇게 성도들을 간음을 하게 만들고 있고 이 여자에게 넘어지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니골라당이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누군가 특정한 사람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아니 지금의 세계 교회는 담인 목사의 의해서 교회의 모든 전권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지배자들이 교회 안에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회가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지만 교회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담임 목사의 말이 곧 법이고 그의 말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모든 교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니골라당의 전형적이 모습인데도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0절을 보겠습니다. (신 401쪽)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우상의 제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듣는다 해서 그것이 마치 생명의 떡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율법주의가 만연을 하고 있고 은사주의가 성행을 하고 있고 성화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도 자기들은 아주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충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음녀는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해서 또 다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교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3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데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타성에 젖어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그 복음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진 그 교회가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녀의 큰 능력과 아름다움을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려면 완전히 지키든지 아니면 성령의 감동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를 정확하게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율법도 지키면서 또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은 율법을 지켰지 성령을 감동을 받지 않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그 눈이 눈을 먼 것과 그가 구원이 없어 벌거벗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음녀와 통정을 하게 되면 그렇게 교회들이 자기들이 어떻게 하는 줄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9:8-9절을 보겠습니다. (구 61쪽)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 모든 소유를 다 자기 손에 위임을 했다고 말 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사람이 없어서 주인이 아무 것도 나에게 금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금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라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가 설령 아무리 떼 부자가 되게 해 준다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한다면 그것은 참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지만 당신만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이치로 따져도 만약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살아남지를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내를 건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내에게 마음을 주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예뻐도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러분이 그 아내에 마음에 빼앗기는 순간에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예쁜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망합니다.
그 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모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정말로 안타깝게도 보디발의 아내와 아주 즐겁게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정을 합니다.
아주 마음껏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인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 통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 미련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가 볼 수 있지만 구약은 정말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잘못 보고 있는 성경 하나가 내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도 망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치 물귀신 같이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함께 끌고 가서 죽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39:10절을 보겠습니다. (구 61쪽)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여러분에게 지금 이 시간에도 날마다 통정을 하기를 청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에서와 같이 이 여인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통정을 하자고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이런 요구를 할 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얼마나 괴롭게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음녀와 너무도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늘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에 깨어 있는 성도는 교회가 얼마나 우리를 미혹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그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 아마도 절절하게 실감이 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 나오라고 닦달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못 견디게 만들 정도로 같이 있자고만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요셉이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남의 교회의 일이 아니라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면서 어떻게 하든 통정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교회에서 자기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새 음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난 후에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교인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있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회와 통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충성을 해야 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교회가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음행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가증한 일입니다
성도는 신부입니다 또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 두 여자가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증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생명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음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주님이 진노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주인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인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주인을 욕보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아내를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내는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에 주인이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에베소서에서 주님께서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사랑하는 아내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내가 사랑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아내는 주님만이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건물이라는 교회를 지어 놓고 그 아내를 자기들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큰 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반대를 하면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왜 그것을 자기들이 걱정을 합니까? 주님께서 사랑하셔야 하는 교회를 가지들이 사랑을 하면서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말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름다운 주인의 아내를 섬기는 일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근사한 교회를 지어 놓고 그 교회를 유지하느라 정신이 다 팔려 있습니다. 영적으로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중요합니까?
주인을 위해서 교회가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려면 교회라도 내 마음에서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범죄인지도 모르고 교회와 그렇게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교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유지하느라 진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짓기 위해서 빚을 내고 있고 또 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면서 헌금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행위들이 다 영적으로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반대를 하면 교회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견디지를 못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가 그렇게 성도들을 못 견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정을 하게 만들려고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냥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육체의 통정을 이긴 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습니까?
요셉과 같이 주인의 아내가 통정을 하지고 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영적인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에 제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종교화 되어서 보디발의 아내와 같이 통정을 하자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이 시대 음녀에게 유혹을 당해서 다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 보다 주인의 아내를 더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을 하게 되는 순간에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교회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언제든지 이렇게 통정을 하자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습니다. 주인이 그 집을 맡겼으니까 싫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 주인의 종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는 종을 안 하겠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내가 유혹을 하면 정말로 꼼짝도 못하고 통정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그렇게 통정을 하자고 할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넘어갑니다.
요셉을 통해서 너무도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한번 붙들리면 어떻게 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다 이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전도서 7:26절을 보겠습니다. (국 955쪽)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바로 이 여인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이렇게 돌변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주 정상적이라고 보는 교회가 그렇게 요셉과 통정을 하자고 못 빠져 나가게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올무와 같고 손이 포승과 같은 여인은 사망 보다 더 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언제든지 음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음녀에게 한번 붙들리게 되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음녀와 한번이라도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음녀는 절대로 놓아 주지를 않고 포승으로 묶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왜 개인의 통정 관계를 성경에 기록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요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아내가 되는 교회라는 여인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고 그 여인이 요셉에게 아무리 간청을 해도 요셉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무섭습니다.
거기에 한번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교회를 너무 좋게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바른 교회라 해도 우리는 늘 그 교회로 인하여 타락할 것을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여인의 함정에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망에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창세기39:12절을 보겠습니다. (구 61쪽)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옷을 붙잡습니다.
이 옷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혀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요셉의 옷을 붙잡아서 빼앗은 것 같이 우리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음녀로 변하는 순간 이렇게 구원의 옷을 빼앗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다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든지 종교화 되면서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내가 되는 교회가 성도들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는 그렇게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종교화 됩니다.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워지면 아주 빨리 그것이 종교로 변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들이 있을 때 벌써 교회는 율법주의 은사주의 경건주의 그리고 영지주의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가면 구원에 대해 방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통정을 하게 부추기고 있고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100명이 있으면 거의 100명이 다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것에 우리는 충성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섬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주님 한분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교회라 해도 그것을 위해서 주님의 복음이 가려지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 종말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통정을 하자고 합니다.
무엇으로 통정을 하자고 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또 은사 주의로 빠지게 하고 있고 교회라는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연인에게 취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는 일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교회를 섬기고 있고 이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옷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옷을 벗는 순간에 구원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고 종교화 되어서 자기를 섬기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주인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9:20절을 보겠습니다. (구 61쪽)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요셉은 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연인과 통정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과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모두가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예표 합니까?
요셉은 실제 이 여인과 통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통정을 한 것으로 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구원의 옷을 이 여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그것이 증거가 되어 그 주인은 요셉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교회와 통정을 해서 구원의 옷을 빼앗기는 순간에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걸려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을 무고한 것과 같이 이 여인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요셉과 같은 성도들과 통정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 여인에게 걸려들면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있고 그것과 아주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이 여인과 너무도 가까이 하고 있고 너무도 친숙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과 가까이 하는 교인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고로 옥에 갇혔지만 이 여인과 가까이 하여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결국에는 옥에 갇혀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를 외면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여인을 위해서 교인들이 수고를 하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잠언 22:14절을 보겠습니다. (구 935쪽)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깊은 함정입니다
함정을 알면 누가 거기에 빠지겠습니까? 절대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이 음녀가 음녀라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깊은 함정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다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음녀를 보고 진짜 참 교회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릅니다.
함정을 파 놓을 때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 팝니까?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그 함정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하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요셉은 보이는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고 누가 음녀라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더구나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음녀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누군가 음녀라고 하면 싸우자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음녀는 깊은 함정과 같아서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음녀라는 것을 도무지 분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 7:4-5절을 보겠습니다. (구 917쪽)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누가 나를 지켜 줍니까?
지혜가 명철이 나를 지켜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지혜와 명철이 없으면 그것을 분별할 수 없고 또 내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를 하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를 인도하셔서 지혜와 명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지혜와 명철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아내가 된다 해도 그 교회를 지나치게 섬기는 일을 해서는 결국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큰 음녀의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보이는 교회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그 교회가 종교가 되는 순간에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라 해도 그것과 통정을 하는 순간 그 영혼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깨어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어서 자기 영혼을 보존하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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