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교회(4)
(Church, 敎會)
열왕기상 2:17절을 보겠습니다. (구 512쪽)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이것이 죄입니다.
아도니야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 입니다 이 시대도 누구라도 이 아도니야와 같은 죄를 짓는 다면 당연히 그 영혼이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죽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비삭이 누구입니까?
다윗 왕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한다면 아비삭은 누구를 예표 하는 것입니까? 이런 예표를 모르고 있다 보니까 이 시대 자기들의 영혼이 죽는 줄도 모르고 그저 교회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에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해석이 안 되니까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더구나 그 일이 자기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일에 오히려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아비삭은 교회입니다.
아도니야가 단지 동녀 아비삭을 구해서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일로는 절대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도니야는 화평한 목적을 모르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욕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로는 화평한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를 자기가 취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영적으로는 주는 교훈이 너무 큽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아도니야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심히 아리따운 아비삭을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입니다
그 일이 바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아내로 삼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누구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너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심히 아리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건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개척 교회라고 우리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개척교회도 그 아비삭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매달 월세를 내기도 급급한 교회가 아비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비싼 화분과 꽃을 같다 놓고 있고 그런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솔직히 대형 교회를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있는 기구들이 얼마나 호화스럽습니까? 그들이 성물이라고 하는 그것들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아리따운 것들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심히 아리따워서 마음을 안 빼앗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물이라고 하는 것들로 치장을 해 놓아 정말 누가 보기에도 심히 아리땁습니다.
성가대는 어떻습니까?
그 노래만 들어도 감동이 밀려 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 성가대에 서서 노래를 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아비식의 아리따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와 같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내보다도 교회에서 하는 것을 더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아내를 삼고 싶습니다. 실제 자기 아내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아내에게 하는 것보다 더 잘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도니아가 아비삭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고 아내를 삼고 싶어 하는 것 같이 이 시대 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내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지 우리가 아내를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의 아내를 왜 우리가 아내로 삼으려 합니까? 왜 남의 아내에게 그렇게 잘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옆집 남자가 내 아내에게 선물을 사 준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최고급으로 사준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에게 꽃을 준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고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을 아주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에게 왜 선물을 합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화를 낼 것이고 또 아내에게도 화를 낼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받는 아내에게도 받지 말라고 할 것이고 또 내 아내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고 있는 그 사람에게도 분명히 경고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 일을 하면 그 남편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물이라고 합니다.
정말 한심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다가 여러분이 무엇을 하는 것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정말 수수하게 보여도 좋습니다. 그런 교회의 겉모습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너무 아름답게 꾸미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죄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더 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내 삼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아도니야와 같이 교회를 아내 삼으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교회를 아내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너무도 잘 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를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를 아내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이미 그들에게 아내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영혼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아리땁게 하지 마시기 바라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큰 죄악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너무 아리땁게 지어 놓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리따운 것으로 채워 놓으면 사람들은 다 아내를 삼고 싶어 합니다. 그 교회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마치 아내 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이 평안함을 사람들의 느끼고 있습니다.
아비삭
심히 아리따운 동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교회 인가를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아내 삼으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누구라도 아비삭을 아내 삼으려 했다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11절을 보겠습니다. (구 15쪽)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사라입니다
애굽의 왕이 사라를 보고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하면서 사라를 취하려고 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심으로 해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창세기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라는 아리따웠습니다.
그래서 주변 왕들이 사라를 보고 다 취하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로 인하여 자기가 죽을까봐서 사라에게 내 누이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리따운 여인인 사라가 무엇을 예표를 하고 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라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아리따운 여인인 사라는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아비삭도 역시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도니아가 인간적으로 다윗의 몸을 덥혔던 아비삭을 달라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직 예수만이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겁이 없습니다.
단지 아비삭이라는 아리따운 여자가 아닙니다. 다윗의 몸을 덥혔던 여자는 바로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히 아리땁다는 것을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건물의 교회는 교회라기보다는 실제는 건물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에베소서 5:26-27절을 보겠습니다. (신 316쪽)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사람들이 아내를 삼고 있습니다. 영적인 교회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비삭을 눈으로 보고 있고 심히 아리따우니까 모두가 아내를 삼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자기 아내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그 메타포를 찾지 못하면 여러분은 성경을 보면서도 눈뜬 소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이는 건물을 자꾸 보이는 아비삭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비삭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안에서 만족을 누리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솔직히 대형 교회를 가 보시기 바랍니다. 아비삭 안에서 사람들은 아주 충만하게 은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삭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아비삭이 누구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여러분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자체가 아니 그것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아비삭이 얼마나 심히 아리따운가를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 아내와 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아내라 해도 내 아내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라면 당연히 주님의 아내를 내가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의 교회라고 하는 그들이 교회를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다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는 그 교회를 짓기 위해서 자기 전 재산을 내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아내에게 그렇게 합니까?
실제 자기 아내에게 전 재산을 줍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일이라면 재산의 절반도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새로 교회를 짓고 있다면 자기가 그 교회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 교회가 화려해지기 시작을 했습니까? 교회가 탄압이 끝이 나고 나서부터 교회는 점점 화려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실제 아내에게는 아까워하는 그들이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도니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도니야는 반드시 죽습니다.
여러분이 아리따운 아비삭을 보는 순간에 여러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자기 아내에게 하는 것 보다 더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 아내를 위해서는 무엇 하나 사는 것이 아까운 그들이 교회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아내라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아리따워도 안됩니다
여러분이 그 교회를 아내 삼고 있는 순간에 아도니야와 같이 솔로몬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평화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영혼 구원에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이 시대는 다 아비삭을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2:21-25절을 보겠습니다. (구 512쪽)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성경은 도덕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솔로몬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비삭을 아내로 삼는 것은 무엇과 같은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삭은 주님만이 아내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그 아비삭을 아내로 삼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주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도덕적으로 잘못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해서 영생을 못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아도니야가 죽은 것이 마치 도덕적인 문제인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교회 그리고 성도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지 문자에 나타난 심히 아리따운 수넴 여자 아비삭이 아닙니다. 이 아비삭은 교회를 예표하고 있는데 그 교회를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하니까 솔로몬이 브니야를 보내서 아도니야를 쳐서 죽이게 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리고 아비삭은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히 아리따운 아비삭을 보고 아도니야가 아내를 삼고자 하니까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아도니야는 왕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다 존귀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사랑해서 자기 아내를 삼고자 할 때 평화의 왕이 죽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도니야가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아도니야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도니야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아비삭이 심히 아리따울지라도 그에게 마음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다들 아비삭을 보고 아내를 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아비삭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연모를 하고 있고 아내를 삼고 있습니까? 그것을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비삭이 심히 아리따우면 사람들이 다 미혹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어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들판에서 전하시고 산에서도 전하시고 광야에서도 전하시고 또 바닷가에서도 전하시고 했습니다. 또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서 전하시고 했습니다. 물론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교회가 심히 아리따우면 누구라도 그 아비삭을 아내 삼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제가 아카데미 강의를 사무실을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보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교회도 아니 이곳에서 말씀을 전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아비삭이 자리하고 있고 그녀를 아내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아카데미 강의하는 사무실은 교회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잠언 6:29절을 보겠습니다. (구 917쪽)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남의 아내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내 아내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주님이라고 해도 주님의 아내는 내 아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문제들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면 그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남의 아내와 통간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옷이 다 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을 하는 자는 구원의 옷이 타고 숯불에 발이 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못 받는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지기만 합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만지기만 합니까? 남의 아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아내에게 자기들이 그 아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나갑니까? 질문을 하면 어느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여 달라는 말입니다
남의 아내를 만지기만 해도 죄가 없지 않은데 지금 이 시대 아도니야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님의 아내를 자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아내를 위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움질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남의 아내를 가지고 자기 것이라고 싸우고 있습니까?
참으로 코미디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을 하면 남의 아내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겠습니까? 진짜 남편은 따로 있는데 자기들이 마치 남편이나 되는 것같이 교회를 차지하겠다고 싸움질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아내도 아닌데 왜 자기들이 싸우고 있습니까?
잠언 6:32절을 보겠습니다. (구 917쪽)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부녀와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했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직접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예표입니다 남의 아내를 자기 아내 삼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교회에 대해서 예표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남의 아내를 자기 아내와 같이 생각을 하고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입니다
내 아내가 누군지 남의 아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는 정말로 무지한 자입니다 아무리 그 여자가 심히 아리땁다 해도 자기 아내인가 남의 아내인가를 모르고 그 여자가 통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무지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무지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까?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일을 그렇게 열심을 내면서 하고 있습니다.
구원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아내 삼는 순간에 사망에 따라온다는 것을 정말로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교회가 쓰러져 가는 초가이면 어떻습니까? 그 안에 진리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초대 교회는 카타콤이라고 하는 그런 오지에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아리따운 아비삭을 만들어 놓고 아내를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삽니다.
왜 교회에서 그렇게 삽니까? 그것은 자기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행위들이 부녀와 통간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통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도니아와 같이 자기 아내를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를 가지고 싸우고 있고 또 교회에 대해서 너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지 않습니까?
잠언 6:33-35절을 보겠습니다. (구 917쪽)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교회에 대해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남의 아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남의 아내가 아니라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아내를 내가 예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옆집 사람이 아내 옷을 사다 줍니다. 솔직히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죽여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물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을 자기들이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참담해야 할 일인데 그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오십니다.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참고 계시지만 그때 자기 아내를 만지고 통간하고 간음을 하고 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십니다. 그런 분이 벌금을 받으시겠습니까? 혹시 가난한 사람은 벌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인데 그 분에게 무슨 벌금을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벌금을 낼 수도 없고 우리는 그런 능력도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안 받으십니다.
우리가 내는 벌금은 쓰레기 보다 못할 것이 분명한데 주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자기 아내와 간음을 하고 통간을 하고 만진 자를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남편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자기 아내를 건드리는 자는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창조주의 아내를 건들이고도 자기가 벌금으로 때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벌금을 얼마나 낼 수 있습니까?
이 교회를 통해서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건드려서 통간을 하게 만들어서 영혼이 다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주님께 무엇으로 벌금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벌금도 그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와 통간을 하고서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도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러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그런 일을 아주 열심을 내면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무 벌금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십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무슨 선물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아내인 교회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교회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에 죽는다는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남의 아내를 만지려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성경에서 주님의 아내라고 분명히 기록을 하고 있는데 왜 쓸데없이 만져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까?
예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가면 되는데 왜 주님의 아내인 교회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만지고도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만약에 그것을 안다면 절대로 만지지도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도 무지하고 또 배우는 자도 너무 가르치는 자의 말에 맹종을 하다 보니까 무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것이 너무도 바른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비밀을 모르면 자기 이성을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그렇게 사망에 이르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너무 이성적으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을 땅의 일로 생각해서 보려고 하다가는 화가 임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아내 삼으려고도 하지 마시고 또 간음을 하지도 마시고 만지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이라 해도 남의 아내를 그렇게 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주님의 아내를 그렇게 하고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해서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27-28절을 보겠습니다. (신 6쪽)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도니야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바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아도니야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고 부녀와 통간을 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 문제는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느냐 사망을 당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히 아리따운 아비삭을 보고 음욕을 안품을 남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다 아도니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삼고 싶을 정도로 음욕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마음에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보면 알지 않습니까? 음욕을 품을 정도가 아니라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알지 못 합니까? 저는 성도는 그 정도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교회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음욕입니다
아도니야와 같이 아비삭을 보고 음욕을 품다 보니까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했습니다. 왜 교회를 보고 음욕을 품고 있습니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간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자입니다 이 세상의 생리적인 여자가 아니라 교회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교회가 음녀가 되기도 하지만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이 교회의 아리따움을 보고 자기 아내를 삼고자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교회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교회가 음녀가 되기도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교회를 보고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하고 또 부녀를 보고 통간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입니다
성경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그렇게 사람의 이성을 미혹을 해서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있고 또 악을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은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구원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가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도 있지만 청함을 받은 자가 왕 같은 아도니야와 같은 자가 아비삭을 보고 자기 아내를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하는 자체가 이미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9-30절을 보겠습니다. (신 6쪽)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우리는 아비삭을 보고 있습니다.
심히 아리따운 아비삭을 보고 있습니다. 아비삭을 보고 음욕을 안품을 사람은 없습니다. 솔직히 아카데미에 나와 있는 성도님들도 큰 교회를 보면 거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입니다 그 교회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저기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교회를 보면서 그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고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삭을 아내를 삼고 싶어 하고 만지고 있습니다. 찬양으로 만지고 있고 기도로 예배로 만지고 있고 또 헌신으로 만지고 있고 수도 없이 만지면서 음욕을 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자기도 모르게 이성을 따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체를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그것이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보고 음욕이 일어나면 정말로 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오른 눈을 빼어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그리고 내 오른 손을 찍어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고통이 있어야 부녀를 보고 통간을 하지 않고 만지지도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누구나 아리땁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더구나 주님의 교회 인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내 아내에게 하는 것 보다 절대로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면 그는 누구라도 다 망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눈에 아리땁게 보이는 그 교회를 사랑했다가는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모르고 교회를 사랑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고 그 교회를 아리땁게 꾸미려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는 반드시 아도니아와 같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아내가 아무리 아리땁다고 해서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마음을 주는 순간에 음행을 하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를 연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아비삭이 아무리 아리따워도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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