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42강, 도피성

윤주만목사 2019. 3. 26. 10:34


42, 도피성

 

민수기 35:11-15절을 보겠습니다. (256)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도피성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이 가나안에 들어오는 여정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에 들어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산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오는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와 살아가고 있는 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정해 놓은 하나님의 율법은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도피성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주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것은 생명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모두가 이 영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을 해서 모든 사건과 말씀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불쌍한 자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 소홀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영생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을 믿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하였고 또 이스라엘 스스로도 자기들이 선택을 받은 선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율법과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스라엘은 전혀 믿지를 않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급히 타락을 해서 사사기를 보면 그들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하고 또 그들이 하나님을 찾으면 사사를 보내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입니다

잠시 환난을 당할 때 그때는 믿음이 있는듯 하다가 또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다시 그 지방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서 살았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법에 매여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시고 혹시라도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보호하게 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도피성은 단지 이스라엘의 살인한 사람을 피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이 도피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도피성

피하여 숨는 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백성들에게 도피성을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도피성은 요단 저편에 3성읍 요단 건너편에 3성읍 6성읍을 도피성으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6성읍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 6성읍을 도피성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너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지역에 있게 하기 위해서 6성읍을 도피성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성읍을 도피성으로 만들어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죽은 사람의 가족이 그 사람을 죽이면 재판도 받지 않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가족을 죽였는데 우리가 그를 죽이면 우리는 살인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나라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으면 그 사람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일 수가 있기 때문에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도피성을 만들고 도피성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4:41-42절을 보겠습니다. (268)

때에 모세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이는 과거에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로 그곳으로 도피케하기 위함이며 그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로 그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라

 

과거에 원한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닌데 실수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과실치사라고 하는데 물론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법적으로는 분명히 살인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죄를 묻고 있습니다. 죄를 묻지만 가볍게 묻고 있습니다.

 

오살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그 보수 자가 와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빨리 도피성으로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원한이 없이 살인한 사람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같으면 차를 운전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어 죽게 했을 때를 말 합니다.

 

신명기4:43절을 보겠습니다. (268)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요단 건너편에서 3성을 도피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3지파는 요단 건너편에 땅을 달라고 해서 그 땅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도피성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세 성읍을 찾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20:7절을 보겠습니다. (350)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게데스, 베셀, 헤브론 이렇게 6성읍을 구별하여 만들었습니다.

 

여호수아20:4-5절을 보겠습니다. (350)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6개의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도피를 하는 자가 도피성에 들어와 장로들의 귀에 자기가 왜 도피를 하고 있는 가를 말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도피를 한 사람을 보수자가 뒤 따라와서 그를 내어 달라고 해도 살인을 한 사람을 내어 주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지중에 죽였을지라도 그를 쫒아가서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죽였다면 문제가 될 것도 없지만 일을 하다 보면 사고로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나무를 하는데 옆에 있다가 도끼자루가 빠져서 사람을 죽일 수가 있고 실수로 나무를 잘못 쓰러뜨려서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부지중에 자기가 죽일 생각을 안 했는데 죽인 사람일지라도 보수자들은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죽은 사람의 가족이 나를 죽였다면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자기가 죽이려고 마음먹지 않고 어떤 실수를 해서 상대가 죽었을 때는 빨리 도피성으로 도망가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살 수 있는 길은 도피성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여호수아20:9절을 보겠습니다. (350)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회중 앞에 선다는 말은 재판받을 때 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재판 받을 때 까지 도피성에 숨어 있습니다. 도피성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고 그를 살리든지 죽이든지 판결을 합니다. 만약 계획적인 살인이라면 그가 도피성에 들어갔더라도 그를 끌어내어 죽입니다. 원함이 없으면 그가 살 수 있고 평상시에 원함이 있어서 죽였다면 도피성에 들어왔어도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민수기 35:22-28절을 보겠습니다. (257)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 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도피성이 왜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함이 없이 우연히 과실치사로 사람을 죽였을 때 피를 보수하는 자에게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도피성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실수를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끔찍한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보호를 해 줍니다.

그런데 그가 원함이 없이 죽였다 할지라도 제사장이 죽을 때 까지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재판한 제사장이 나이가 늙어서 빨리 죽으면 빨리 나올 수 있지만 제사장이 젊으면 오래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도피성에 들어가 있다가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자기가 볼 일이 있어서 나오면 보수자들이 죽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실수를 해서 죽였다 할지라도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에서 나오면 보수자들이 그를 죽였다 할지라도 죄가 아닙니다. 정당한 것입니다 반드시 제사장이 죽기까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피성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영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이 도피성은 분명히 원한이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피하게 해서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평상시 원한이 있어서 마음에 그를 죽이고 싶었다 하면 그 사람은 도피성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끌어내어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이 도피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살인자가 피하는 도피성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는 실수로라도 살인을 안 했기 때문에 살인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 이 도피성에 대한 말씀은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분명히 이 도피성은 살인을 한 사람이 원한이 없이 실수로 살인을 했을 때 피하여 그 생명을 보수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 있는 성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아니 이 세상의 다수는 도피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살인자라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가 살인자입니다. 아마 이 말씀을 하면 내가 무슨 살인을 했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으로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는 살인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은 우리의 영입니다

사실 이것이 육적인 살인이라고 하면 이렇게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을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의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사상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살인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이 있는 성도는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44절을 보겠습니다. (160)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도 너희 아비의 욕심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살인을 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분명히 살인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살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인자입니다

우리 육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살인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를 살인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도 살인자였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잘 몰랐을 때는 살인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육체는 마귀에게서 났기 때문에 모두가 살인자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살인을 안 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몰랐을 때는 살인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거짓의 마귀에게 미혹이 되어서 사실은 모두가 살인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이 도피성에 대한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살인자라는 것을 모르면 도피성은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살인자이기 때문에 이 도피성이 우리에게 필요로 한 것입니다

 

어떤 살인자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살인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이 내가 고의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살인을 했습니다. 지금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님들은 이 말씀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37)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찾아다녔던 사람입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그렇지만 사도 바울 역시 영적으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라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자기가 모르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한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영혼을 살인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영적인 살인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 끔찍한 살인을 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이 강하다 보니까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시대 모두가 살인자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이 살인을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믿음이 있으면서도 살인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며 그는 하나님께서 살려 두시지를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살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살인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혼들을 무참하게 죽이면서도 자기가 살인자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살인자라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살인자는 그래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적인 살인을 그렇게 하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몰랐을 때 영적인 살인을 실수로 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이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에게만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성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살인자입니다

모르고 죽였든 알고 죽였든 살인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영혼을 살인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다수의 사람들은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살인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르고 있기 때문에 도피성으로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살인을 안 했습니다.

육적으로는 자기가 살인을 안 했기 때문에 도피성으로 피할 생각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피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보수자가 따라와서 그를 반드시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해야 살 수 있는 인생들이 자기들이 육적으로 살인을 안 한 것으로 보고 도피성으로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그것은 육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8:2절을 보겠습니다. (808)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왜 도피성을 6개 만들었습니까?

너무 멀면 살인을 한 사람이 피하기도 전에 보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6개 성읍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자기가 실수로 살인을 했더라도 보수자가 따라 오기 전에 피할 수 있게 이스라엘에 6개 성읍을 두셨습니다.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수자가 오기 전에 빨리 피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살인하게 만들어 놓고 우리를 죽이려고 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빨리 오고 있는가 하면 베드로전서에서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살인을 하게 만들어 놓고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살인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다 먹어 버리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살인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태평하기만 합니다. 도피성으로 피하려 하지도 않고 있고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 안에 있으면 마치 그것이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 같이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실수로 살인을 했으면 빨리 도피성으로 가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안위를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미혹이 되면 그렇게 모두가 보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하기만 하면 보수자가 더 이상 따라 오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를 마치 도피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5:8절을 보겠습니다. (121)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부지런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피난처로 빨리 도망하시기 바랍니다. 보수자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사단은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찾아다니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주 한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시라도 빨리 급하게 피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군가를 실수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어떻게 하든지 빨리 도피성으로 피하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하느라 자기가 도피성으로 피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보수자가 자기 영혼을 삼키고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급합니다.

정말 한시가 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피성으로 빨리 피해야 보수자가 더 이상 따라 오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보수자가 뒤 따라 오고 있는데 다른 것에 마음을 둘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빨리 도피성에 들어가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인한 자로 있을 때 빨리 우리 생명을 죽여서 우리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기가 살인을 한 자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빨리 이 도피성으로 피하려고 할 것이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를 않습니다. 나를 죽이는 보수자가 따라 오고 있는데 한눈을 팔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도피성으로 피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 도피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으로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피성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지를 않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안심을 하고 있다가는 반드시 보수자가 우는 사자와 같이 찾아와서 삼켜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피성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깨어 성경을 보면서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 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피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도피성이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9절을 보겠습니다. (332)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구약에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이 도피성은 원함이 없이 살인을 한 자가 그리로 피하여 그 생명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도 역시 원함이 없이 모르고 살인을 한 자입니다 그런 살인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억기 하시고 있습니다.

 

도피성은 살인자를 살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살인을 한 마귀의 자식들로 태어난 우리를 살리시고 있습니다. 육체로 태어나서 살인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들어가서 살았다면 이 시대 영적인 살인을 하면서 살았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어야 하는 살인자를 살리는 것이 도피성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살인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을 예표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있지만 그 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살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빨리 보수자가 오기 전에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원한이 없이 실수로 살인을 한 사람이 도피성에 들어가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고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은 자기가 살인을 한 자라는 것을 알고 빨리 도피성으로 피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도피성으로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피성이 빤히 보이고 있는데도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교회에서 어정쩡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보수자가 언제든지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6:18-20절을 보겠습니다. (35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대제사장이 살아 있을 때까지입니다.

도피성에 피하여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이 살아 있을 때까지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아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피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대제사장이 있는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우리가 피하는 도피성은 아주 튼튼하고 견고해서 어느 누구도 거기를 뚫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보수자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있는 성도에게 다가 올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휘장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면 얼마나 튼튼하고 견고하느냐면 절대로 보수자가 죽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그 안으로 들어가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빨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가 살인자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또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마치 도피를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는 도피성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또 거기서 진심으로 예수를 믿는다 해도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아직 도피성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모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구원을 받았는가를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다 죽습니다.

살인을 하고도 도피성으로 피하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보수자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여서 살인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살인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영혼을 살인하고 있는 살인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살인자라고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살인을 한 자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에서는 율법을 한 가지라도 어겼을 때는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살인을 한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살인자가 너무도 태평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을 육적으로만 이해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가 육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살인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18:2절을 보겠습니다. (813)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피난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피난처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난처입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의 피난처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저 교회 안에서 안주를 하고 있다가 보수자에 의해서 영혼이 죽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입니다

다른 것은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것도 또 어떤 장소도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빨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자기가 살인을 했으면 보수자가 오기 전에 빨리 예수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구원자에게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피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종말론자들에 의해 이 말씀이 악용이 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해석을 하면서 7년 환난을 이야기 하고 또 3년 반 환난을 이야기 하면서 도피성으로 피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특정한 장소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종말론 자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말세가 되어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 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페트라성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목사들이 페트라 성에 숨는다고 너나없이 주장했습니다. 이 말에 거의 모든 사람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웃기는 소리입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 입니까?

19세기 초 만해도 통할 이야기를 지금 주장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얼마나 발달 했습니까 인공위성에서는 지구 곳곳을 살피고 있으며 어디 숨을 곳이 없습니다. 달을 왔다 갔다 하는 이 시대에도 그런 허황된 말들을 믿고 그것이 진리인양 배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30센티 정도 되는 것도 정밀하게 다 보고 있는 세상입니다.

 

어디 가서 숨습니까?

어떤 곳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를 범한 자가 피신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서 보수자가 보수하지 못 하도록 정당하게 법대로 처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살인자이지만 모르고 했기 때문에 예수 안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에 아주 정당하신 분입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법에 어긋나는 것은 용납 하시지를 않습니다. 죄를 범한 자가 들어 왔을 때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서 나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성에 있으면 안전 하지만 도피성밖에 나오면 안전하지 못 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예수님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안전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 밖에 나오면 안전 하지 못 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망자들은 빨리 도피성을 찾아야 하는데 도피성을 못 찾아서 해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종말론자들은 자기들이 정해 놓은 곳을 도피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식한 이야기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편46:7절을 보겠습니다. (8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하나님이 피난처입니다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을 보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 합니다 산으로 가야 안전 하다고 말 합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는 한국이나 일본은 숨을 만한 곳이 없고 저 이스라엘 광야 암혈 속에 숨을 만한 곳이 있다 그곳에 가야 한다고 주장 합니다 그곳은 암벽속의 도시 페트라 성입니다

 

그곳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라 그 목사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목사 가운 입은 사람들도 못 가고 배 나온 사람도 못 가고 천박한 사람도 못 가고 그런 기준들이 있습니다. 말세론 책을 출간했는데 아주 잘 팔리고 있습니다. 피난처를 아는데 짧은 치마 입은 사람도 못 간다고 쓴 책이 아주 잘 팔리고 있습니다. 정말 한심한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신학교 교수라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디든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어디가 피난처 입니까? 바로 내가 있는 자리가 피난처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을 만났을 때 그 장소가 피난처입니다 엘리사가 그 사환과 같이 있는데 아람 군대가 와서 그 성을 포위 했습니다 적군이 와서 포위했지만 저들의 눈을 감겨 주시옵소서 하니까 눈이 감겨 졌습니다. 자기 사환이 겁에 질려 떨고 있으니까 그 눈을 열어 보게 했습니다. 주의 천천만만의 군사가 둘러 진치고 있었습니다. 거기가 피난처입니다 어디로 도망가려 합니까?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이십니다

도망 갈 때가 없습니다. 종말이 오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 지는데 어디로 도망갑니까? 도망가도 살 수가 없습니다. 피난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제가 내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지구에 종말의 때가 오면 피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이 세상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면 그런 것을 걱정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면 절대로 종말이 오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을 때 그때가 종말의 때입니다.

 

그런데 왜 피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스스로 살려고 피난처를 찾고 있습니다. 지구가 종말이 오면 이 지구 자체도 불못에 던지 우는데 어디로 피한다는 것입니까? 아니 종말의 전이라 해도 환난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 성도들이 있는 이상은 이 세상에 종말론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그런 환난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종말론자들에게 미혹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없는 7년 환난이나 3년 반 환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교인들을 겁박을 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시편61:3절을 보겠습니다. (845)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방패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도피성을 만들어서 그곳에 들어가서 살게 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도피성에 오는 자들을 한 사람도 상하지 않게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기 때문에 아니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고 어디로 피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7년 환난이나 3년 반 환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난 기간 동안에 어디에서 숨어서 아니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휴거를 당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잠자는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리고 이 세상에 그런 환난이 있는데 이 환난 때에 견디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휴거 없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휴거는 없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보기만 해도 휴거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이 휴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휴거가 있기 때문에 종말의 때에 환난이 오면 피해야 하는 피난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도피성을 주신 것은 이 시대 우리가 어디로 도피를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면 그 장소가 어떤 곳이든지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수자가 따라옵니까?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설령 보수자가 따라온다 해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을 이기신 우리의 왕입니다 그런 왕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가 왜 두려워합니까? 이 종말의 때를 두려워한다는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증거고 내게서 그 어떤 것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주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두려워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데 있지 않고 가까운데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내가 피해야겠다고 생각만 하면 다 피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도피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도피하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피할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피하려 하지 않고 자기 육체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육체로 살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91:9-10절을 보겠습니다. (870)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지키게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피난처입니다.

예수로 피난처를 삼는 사람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에게로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는 것이지 예수 안으로 피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그 생명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자를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숨어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나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화가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 평생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잠도 주무시지 않고 눈도 감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평안하지를 못 합니다

조금 문제만 있어도 안절부절 하지를 못 합니다 우리 모든 길을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지금 일시적으로 좀 힘이 들어도 그 분은 반드시 우리를 평안한 곳으로 인도 하실 줄 믿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그가 지켜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그리고 왜 피난처를 찾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이런 종말론에 빠져 들어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휴거를 주장하는 거의 모든 교회의 교인들이 종말 때에 어디로 피해야 하는 가를 가지고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믿고 말고 할 것 아닙니까? 성경을 모르니까 목사들이 그런 겁박을 하면 두려워하고 있고 또 자기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 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는 이런 종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찾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는데 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걱정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면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들어와서 그 사람을 잡아 갈 것입니다 도피성을 지키는 사자들이 있습니다. 이 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막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피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주의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도피성 안으로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입니다.

도피성이 멀어서 그 도피성까지 가지 못 해서 잡혀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 마음에 갈등을 가지고 도피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헤매고 있습니다. 종교란 종교는 다 다녀보고 기독교 안에서도 별별 곳을 다 찾아다닙니다. 이렇게 찾아 두드리는 동안에 진짜 도피성을 찾지 못해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피성의 길을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의 사명은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우리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명하사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조금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네 모든 길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길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주의 사자들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자유 하는 가운데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말세를 만나서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염려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종말의 때에는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면 아직 종말의 때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모 교회 유명한 목사는 피난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난처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자가 자기라고 주장 합니다 피난처로 가는 길이 숨겨져서 지금은 찾지 못하는데 사람하나 들어 갈 동굴같이 작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들어가면 엄청나게 넓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밑에는 불이 있고 그네를 타는 것과 같이 한 사람씩 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그네를 이동하면서 교제한다고 말 합니다 그 교회가 수만 명 다니는 교회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아멘! 아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길 때가 없어서 그런 옹색한 구멍으로 집어넣어서 숨기 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는지 정말 한심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이십니다 그런 구멍에 안 들어가도 주의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지켜 주고 있습니다. 육의 일과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육체를 어디 숨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곳을 찾고 있는 한심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말세가 되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목자가 있는 양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풀만 뜯어 먹습니다 이리가 와서 잡아먹으려 해도 멍청하게 풀만 뜯어 먹고 있습니다.

 

왜 양들이 도망을 안가고 풀만 먹고 있습니까?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지켜주기 때문에 이리가 와서 물어가든 말든 양은 풀만 먹고 있습니다. 지켜주는 것은 목자가 지켜주는 것입니다 양이 어디 가서 숨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가 얼마나 시원치 않아야 양을 잃어버리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있으리로다

스스로 숨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목자가 우리를 지켜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서 지켜주시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양을 한 마리도 안 잃어 버렸습니다. 사자가 와서 양을 먹으려고 하면 사자하고 싸워서 양을 찾는 것입니다 얼마나 용감합니까? 사자의 수염을 잡고 그 입에서 양 새끼를 구했다고 말 합니다 그것이 진짜 목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는데도 피난처를 찾아서 해매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 해매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복음을 깨달아야 그런 것이 이해가 되고 알게 됩니다. 이상한 교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습니다. 지금은 육적인 시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612절에 보겠습니다. (316)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은 반드시 예수를 모셔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대장되신 예수가 없으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절대 승리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싸움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긴다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숨기는 것은 육의 싸움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영과 육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육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영의 일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아무리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해도 육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육의 싸움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육적인 싸움을 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육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한심한 것은 자기들의 눈으로 보이는 육체의 것을 가지고 싸우면서 영의 싸움이라고 주장을 하고 그것을 이겼다고 해서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 같이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영의 싸움입니까?

그것은 육체의 싸움입니다. 주일을 못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왔는데 그럼에도 자기가 주일을 지켰다고 하면서 영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이야기 입니까? 자기 육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싸웠으면서 그것을 영의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고 개선장군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하는 것에 대한 싸움이 영의 싸움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고 하는 것은 자기 육체의 것을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마치 그것이 영의 싸움인 것으로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육과 영을 모르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하는 것은 다 육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를 믿는 것이 바로 영의 싸움입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방해를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육의 싸움을 하게 만들어서 영의 싸움이 무엇인가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영의 싸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육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내는 것으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육의 싸움을 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이긴 것 같이 만들어 버리니까 사람들은 그것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육의 싸움은 이기나 지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사단은 일부러 그런 싸움을 하게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이 죄를 짓게 합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아직도 그런 초등학문 아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도 사단이 죄를 짓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고 있는 사람들도 사단이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 사람도 알고 있는 것을 초등학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의 싸움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포기하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육의 싸움에 매달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더욱 견고히 해야 합니다. 그런 중요한 영의 싸움이 있는데 왜 육의 싸움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죽는 것이고 믿음이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사단은 물론 죄를 짓게도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인들이 부처를 믿는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도피성은 생명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 도피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믿음의 비밀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싸움 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이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면 주님께서는 절대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천사가 타락해서 된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단을 죽었다 살아나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단은 사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입니다 양은 사자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목자가 지켜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아무리 강한 사자가 와도 주님께서 이기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을 믿기만 하면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이기는 자 편에 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나를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왕이 되시는 예수님만 세워 놓으면 됩니다. 예수가 앞에 있으면 뒤에 있는 우리는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예수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십니다 승리한 자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피난처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시편46:7절을 보겠습니다. (83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는 아빠가 함께 있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빠가 지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있다면 굳이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함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피난처를 찾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666을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가 되면 매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환난이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사놓고 쓸 것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산중에다가 그런 것을 가져다 놓고 자기가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핍박이 오기 시작하면 그렇게 해서 살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오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쓸 모가 없게 됩니다.

 

그런 행위들 자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면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방법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난을 말 하면서 교인들을 은근히 겁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말한다고 하면서 모양은 참으로 좋습니다. 미리 대비한다고 말하니까 혹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4:16절을 보겠습니다. (173)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고 있는데 왜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성령께서 영원히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데 내가 어디로 피합니까? 하나님이 있는 내가 피난처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을 알면 이런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곳이 피난처가 아닙니까?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도피성은 육적인 생명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 성도는 다른 피난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피난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보수자가 절대 못 이깁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 있으면 사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매일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비밀입니다

 

사단이 우리 육체는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는 사단이 죽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보혜사가 있습니다. 처음 육체는 사단이 죽일 수 있었지만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오는 새 생명은 사단이 건들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놀라운 비밀인데도 사람들이 알지를 못하니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단이 죽일 수 있는 육체가 아니라 사단이 만지지도 못하는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영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이미 사단에게 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범죄를 한 순간에 우리 인생의 육체는 사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우리 육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새로 태어나게 해서 비록 우리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준바 되었어도 영으로서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안으로 피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종말론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육이 피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은 어디로 피해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우리가 어디를 가서 숨는다고 한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시편62:7절을 보겠습니다. (846)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피난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아니 우리를 보호해 줄 어느 존재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말론자들에게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어떻게 피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어떤 곳도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교인들을 겁을 주고 있습니다. 겁을 주는 그들도 문제겠지만 스스로 지혜를 구하지 않고 그들의 겁박에 미혹되어 두려워하는 것 역시 영적인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거짓 선지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세워서 교인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는 사단이 아무리 미혹을 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렵게 하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역시 죄를 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기 안에 그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4:7절을 보겠습니다. (374)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얼마든지 사단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대적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사단을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사단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피합니다.

나는 약합니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기셨습니다. 나 혼자만 있다면 사단이 나를 피하지 않겠지만 자기가 진 예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대적을 하면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아주 작은 강아지가 큰 개에게 대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뒤에 무서운 주인이 있으면 강아지가 짖어도 큰 개가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해 있습니다. 그가 우리 뒤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감히 대적을 하지 못하고 피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사단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대적을 해서 사단이 피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내가 이미 믿음으로 이겨 있기 때문에 사단이 감히 대적을 못하고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육으로 대적을 하면 마귀가 피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단과 싸우면 우리는 백전백패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긴 자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사단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하고 피한다고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73:28절을 보겠습니다. (85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살아 계시는 우리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으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안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안전합니다. 내가 만약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무서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 안에 있다면 절대로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피난처 도피성을 몰라서 해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로 가는 길을 잘 알기 때문에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가진 자들의 사명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이십니다 예수는 나의 요새시요 나의 반석이시요 이 반석이 우리를 믿을 때 안전하다고 믿고 우리 입에서 찬송이 나올 수 있도록 확신해야 합니다.

 

성도의 사명입니다

이제 피난처로 피한 성도는 이 피난처를 이 세상에 전파를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만 피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살인자들이 보수자의 의해 죽지 않도록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주의 행사를 전파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밖에는 피난처가 없다는 것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께 피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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