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때와 시기
아모스 3:7절을 보겠습니다. (구 1227쪽)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종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것을 믿고 있고 또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꼭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지구는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종말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아니 이단적인 사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는 이 종말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구는 언제까지라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이 지구에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들이 원하는 나라를 세워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문학자가 아니지만 그들이 연구를 하고 관측을 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어느 별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문을 연구하던 때부터 별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그렇게 언젠가는 이 지구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말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종말론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다고 말씀을 하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지구의 종말이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종말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살아가야 하고 주님의 세상이 올 때는 이 지구는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문제는 종말론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종말론 자들이 일어났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자기들이 성경을 통해서 연구를 한 것을 가지고 종말의 날짜를 정해서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꼭 날짜를 정하지 않더라도 곧 있을 종말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종말을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고 그 종말을 대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을 대비합니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는 종말을 대비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노아의 방주를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핵폭탄이 투하가 되도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건축물들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몇 년을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고 분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말이 두렵습니까?
구원을 받는 성도들에게는 절대로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이 두려워해야 할 일도 아니고 또한 걱정을 해야 할 일도 아닌데 사람들은 거짓에 미혹이 되어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종말의 날짜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날을 기다리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날짜를 안다고 하는 주장을 하는 말에 타당성을 주고 있는 말씀이 아모스의 말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종말론 자들이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자기에게 종말의 날짜를 보여 주셨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이 되어서 종말론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말씀들을 자기들이 자의적으로 비유로 해석을 해서 자기가 이 시대 선지자라고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종말을 때와 시기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 그런 종말론이 교회 안에는 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교회를 다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어느 교회는 이 종말론에 빠져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목사의 말에 신뢰를 하고 있고 그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실 때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고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안에는 재림시기를 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92년 휴거 사건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재림을 말하고 있으며 그들은 또 다른 시기를 정하여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림시기를 말하는 사람이 합당치 못함을 알고 그들과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해 주어야 합니다.
재림을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말씀이 아모스3:7절의 말씀입니다 아모스3:7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재림의 날짜도 비밀이니까 그것도 때가 되면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시고 재림하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상당히 타당 합니다
때가 되기 전에는 안 보여 주시지만 때가 되면 보여 주신다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시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결코 행하심이 없다면 재림 날짜도 그때가 되면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고 이 말씀에 필이 꽂혀 있는 사람들은 다른 말씀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왜 말도 안 되는 이런 말씀에 사람들이 미혹이 되는 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 말씀을 가지고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의 말에 신뢰를 할 수 있게 성경에 있는 여러 가지 말씀들을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왜 율법주의에 빠집니까?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 있는 이 말씀 때문에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율법주의에 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은 전혀 다른 말씀인데도 사람은 그저 이 한 구절만을 인용을 해서 보아라! 성경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하지 않느냐 너희도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너무 강합니다.
아니 사실 이 말씀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 누가 있습니까? 유명한 신학자라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행위와 연결을 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실 반박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성경에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 같은 말씀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율법이 폐해졌다는 말씀도 있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일반 교인들이 그것을 바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신학자들도 그것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누구도 반박을 할 수 없고 또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모르니까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냥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은사주의, 기복주의, 경건주의, 성화주의 그런 것들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 성경에 근거를 해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강하게 임팩트가 되면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자기들의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단이 됩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더 어리석어서 이단에 빠진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호를 해 주시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단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로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바른 진리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 성경을 근거로 주장을 합니다.
또 성경은 진짜 그런 것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를 한 사람들도 성경을 수백 독을 읽은 사람도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종말론에 빠지는 것도 어느 말씀들을 강하게 주장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점점 그 말씀이 자기 생각에 각인이 되어서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모스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답변하기가 곤란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림 날짜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비밀을 알려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해주고 재림하실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다 가르쳐 주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행하시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아닙니다. 지금 아모스의 말씀은 그 시대에 일어나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에 대해서 때가 되면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18:17절을 보겠습니다. (구 22쪽)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나의 하려는 것을 숨기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종말론 자들에게는 이런 말씀들이 너무도 잘 이용이 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나중에 어떻게 멸망을 할 것인가를 예표로 보여 주시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망을 시킬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시고 행하고 있습니다.
때와 시기
물론 주님께서는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이 되는 것을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그 조카 롯을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단들에게는 너무도 좋은 말씀입니다
자기가 선지자라고 하면서 자기를 생각해서 구원해 주실 사람을 가르쳐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고 이 종말론을 강하게 주장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거기에 점점 빠져 들어가 그 말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계시가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 말고 또 다른 계시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미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말씀이 이 성경에 계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말씀이 필요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말론에 빠지게 되면 또 다른 계시가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 믿고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종말론 자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다 알게 하십니까?
구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성경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있어서는 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구원에 대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종말론에 빠지면 마치 미래를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계시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36절을 보겠습니다. (신 42쪽)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는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절대로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그와 반대가 되는 말씀이 있더라도 그 말씀을 흔드는 순간 이단이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흔들리게 되는 순간에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율법을 지키라는 것 같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라면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했다는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흔들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초라고 하는 말씀이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말씀에 반대가 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우리는 그 기초를 흔드는 반대되는 말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는 말씀도 그대로 수용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말씀을 바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지 기초가 되는 말씀에 반대가 되는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임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리가 필요합니다.
교리를 모르면 그런 기초가 흔들려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리가 사라져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율법이 폐해졌다고 하면서도 또 율법을 지키고 있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종말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의 이 말씀이 기초가 됩니다. 이 말씀을 흔들어 버리는 순간에 종말론 자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흔들어서는 안 되는 말씀을 흔드는 순간에 이단이 되고 다른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까지 일관성 있게 한 가지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기초를 흔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이 기초에서 흔들리게 되면 저 역시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단이 되는가 하는 것은 바로 성경의 기초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잘 모릅니다.
이 말씀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또 저 말씀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종말론에 빠지고 있고 목사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성경에 없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때와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다 이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 때와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는 이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말에 대해서 자지가 무엇을 아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역시 이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말은 말 그대로 끝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때에 무슨 일이 있고 또 어떻게 종말이 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성경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뿐이고 또 그것이 거의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를 보고 이것이다. 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을 보겠습니다. (신 42쪽)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모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홍수가 나서 모두가 멸망을 당할 때 까지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왜 몰랐습니까?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하늘에서 비가 안 내렸습니다. 지구가 지금의 지구와 같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절한 환경을 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비가 하늘에서 내린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를 몰랐습니다.
그런 그들이 방주를 들어갈 생각을 하겠습니까? 혹시 한번이라도 비가 왔다면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비가 안 왔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가까이 온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미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마 주님이 오실 때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을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말씀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종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그때가 아마도 종말이 오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이 세상 사람들이 종말이 온다는 것을 예측이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홍수가 나서 사람들을 다 멸망을 시킬 때가 되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 같이 종말에 대해서 분명한 것을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왜 모릅니까?
비가 안 왔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임하는 종말도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종말이 어떻게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다 비유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하게 말씀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의 비유로 되어 있는 말씀이고 또 우리가 상상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나기 전에 사람들이 얼마나 평온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또 시집가고 장가들고 하는데 어떻게 종말을 생각하겠습니까?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있습니까? 이들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때는 다른 종교가 발생이 안 되었던 때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집가고 장가들고 했습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가 나서 멸망이 되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 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하나님을 잘 안 믿고 있었다면 아무도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을 때 하나님께 물어 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너무도 잘 믿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 볼 필요도 없었고 또 홍수가 나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상상도 못하는 그 시대에 종말이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종말론자들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아직 종말의 때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했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를 낫게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자로 몰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역사라고 말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보고도 모릅니다.
종말의 때도 자기들 앞에 닥치고 있는데도 그것을 보고도 마치 눈 뜨고 당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임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종말이 온다고 하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25쪽)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소돔과 고모라의 때도 그렇습니다.
그때에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유황불이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한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은 종말의 때가 와도 그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나 세상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종말의 때가 임할 때는 전혀 깨닫지를 못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종말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입니다 아니 자기들이 때는 종말이 안 온다고 확신을 하고 있을 때 그때가 종말의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온다고 알면 누가 먹고 마시고 집을 사고팔고 하고 집을 짓겠습니까? 그 때를 안다면 아마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은혜를 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그렇게 변합니다.
이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종말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단들이 나타나서 이 지상에서 천년 왕국이 있다고 주장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지상에서 천년 왕국을 기다리는 그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그런 이단이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천년 왕국이 있다고 하면서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천년 왕국을 누리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그때가 바로 종말의 때가 임할 것 같습니다. 저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노아의 때를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런 때가 있을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후 천년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점점 후 천년설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지상에서 천년왕국을 지낸 후에 주님께서 재림을 하신다고 하는 주장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년 왕국을 지내는 것과 같은 시기가 올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럼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오실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을 보내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지나야 주님이 오시니까 종말에 대해서는 아직 천년이 남아 있고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천년설에 대해서는 강의를 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린 글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나중에 말씀을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상상도 안 합니다
진짜 종말의 때는 종말이 온다는 것을 상상도 안하고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하시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역사를 해 오시고 있기 때문에 이 종말의 때도 그렇지 않을까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보인 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10:3-4절을 보겠습니다. (신 408쪽)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일곱 우뢰가 발합니다.
요한은 보는 것마다 다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꼭 그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실 날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밀입니다
사도요한에게는 보여 주셨지만 이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재림 날짜가 되었든 다른 것이든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는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요한은 특별한 선지자이기 때문에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보여주셨다면 허공에다 대고 아무필요 없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어떤 되어 질 일에 대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후 문맥으로 보았을 때 재림에 대해서 보여 주셨던 것으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여 진 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해서 기록하지 못했는데 그 후에 어느 누구도 이 부분의 비밀을 알지 못 합니다 지금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어떤 사건입니다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 하셔서 기록하지 못 했습니다
모릅니다.
이것은 인봉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인봉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이 인봉이 되어 있는 말씀을 자기들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이 인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종말에 대한 문제도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종말이 어떻게 오느냐 언제 오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은 성도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종말의 때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자체가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사실 종말의 때와 시기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설령 그것을 알면 뭐하고 모르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단자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와 시기를 아는 것에 마음을 두기 보다는 자기 영혼에 대해서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인봉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것을 억지로 해석을 해서 자기가 그 인봉한 것을 풀었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설령 그 인봉한 것을 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작 중요한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는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른 것은 조금 몰라도 됩니다. 더구나 요한계시록에 있는 말씀들은 환상을 본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강조를 하면서 이 요한계시록을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자기가 이 인봉한 것을 해석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활과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종말에 대해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종말에 대해서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환상과 비유로 되어 있는 이 요한계시록을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 의해서 종말론이 주장이 되고 있고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재림의 날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합니다. 또 사도행전1:7절에서는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성도들에게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 것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다 물려줍니다. 재산이고 뭐고 다 물려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장성하면 다 줍니다 그런데 안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녀에게 주지를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는 것이지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죽을 때 나머지는 다 줍니다 그 자녀에게 내가 무엇이든지 다 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평생 모은 것을 다 준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달라고 하면 안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다 줄지라도 자기의 권한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은 재림날짜입니다 재림날짜는 하나님의 권한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 주는 것입니다 이 재림의 날짜를 굳이 알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를 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재림 날짜를 알아도 구원을 받고 몰라도 구원을 받습니다. 또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는 종말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몰라도 구원을 받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가 구원을 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고 또 재림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고 그것을 대비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이런 종말론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말을 말합니다.
그 중에는 7년 환난이나 3년 반 환난을 말 합니다. 전 3년 반 환난 후 3년 반 환난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난을 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기 전에 환난이 있는데 그 환난을 대비하고 있어야 하고 그 환난에서 견디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난이 시작 되었다 7년이면 환난이 끝난다는 말을 합니다.
환난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직접적으로 시기를 정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시기를 정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시작되면 앞으로 7년 후에 재림이 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년 반도 마찬 가지입니다 3년 반 환난이 시작되었다는 사람도 앞으로 3년 반 후에는 어떤 사건이 온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 모두는 시기를 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7년 환난 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에서 보고 같다 붙이는 데 그것은 재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미 성취된 예언입니다 말세에 있을 예언이 아니고 이미 지나간 역사입니다
다니엘서가 종말의 예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다니엘서는 이미 지나간 예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에게 있을 일들을 다니엘이 예언을 했습니다. 다니엘서의 거의 모든 예언들은 다 지나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일부 예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예언들은 이미 성취가 되어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7년 환난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환난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다 교인들을 미혹하여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휴거를 주장을 하고 있고 휴거가 되고 난 후에 7년 환난이나 삼년 반 환난이 있는데 그것을 견디고 이겨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두 번 휴거를 주장하는 아주 이상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년 반 환난이 끝나고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이런 말들은 다 자기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난을 견뎌야 한다고 하면서 이 환난에 대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환난이 있을 때 자기들이 피난처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피난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다 근거가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지나간 예언의 말씀을 마치 종말과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육적으로 있었던 환난에 대한 예언들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종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인데 그것을 요한계시록과 연결을 해서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말씀들을 바로 알면 이런 종말론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종말을 말씀을 하고 있다 보니까 종말론에 빠져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409쪽)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숫자는 다 상징입니다 이것을 누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마흔두 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다 예언적으로 사실 우리가 정확히 해석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맞다. 라고 어느 누구도 주장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아직까지 요한계시록 전체를 자세하게 해석을 하지 않아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읽고는 있지만 사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숫자와 그리고 환상을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히 그런 것에 빠져 들어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구원입니다
늘 강조를 드리지만 구원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고 모든 성경에서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런 환상과 숫자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히 몰라도 구원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요한계시록을 너무 쉽게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들의 해석에 대해서 솔직히 문제가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순서가 아닙니다. 물론 순서대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있지만 또 내가 보니 하는 말씀은 순서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일 후에 이렇게 기록된 말씀은 순서와 상관이 있지만 또 내가 보니 그렇게 시작을 하고 있는 말씀은 종말의 순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가지고 재림 날짜를 정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자기들이 성경을 바로 해석을 했다고 하면서 재림 날짜를 정한 것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림에 대해서 곧 있을 것이다 환난을 대비하라고 하는 종말론 자들이 지금 이 시대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는 곳으로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와서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기 전에 환난이 오면 그것을 피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말하기도 하고 또 어느 특정 장소를 말하기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다 행위를 주장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재림날짜를 정하는 사람들이 왜 날짜를 정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잉태한 여자가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저희에게 홀연히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 빛의 자녀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있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빛의 자녀들에게는 알려 주신다고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은 재림 날짜를 안 가르쳐 주는데 빛의 자녀들에게는 가르쳐 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금만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도 알 수 있는 말씀인데도 종말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미혹이 되면 성경이 다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니까 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알게 오신다는 말씀을 하는 것으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때와 시기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때와 시기를 말할 때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다른 복음이 있을 때는 그것이 성경 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에 대해서 강하게 미혹이 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 종말론에 빠지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는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이 특별하게 계시를 받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참으로 오묘해서 그렇게 주장을 하기 시작을 하면 모든 성경이 그렇게 해석이 됩니다. 정말로 절묘하게 짜 맞추어서 성경을 해석을 하는 것이 이단들의 특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기본이 있습니다.
가능한 성경에서 답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해석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 답이 안 나오는 것은 가능한 해석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마흔두 달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말씀은 우리가 가능한 의미적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어느 답을 내 놓으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있는 대부분의 말씀들은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자기가 답이라고 내 놓는 것은 솔직히 문제가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답이 없는 것은 복음적으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십니까? 알게 오십니까?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한 부분은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시고 한 부분은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까?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까? 도적 같이 안 오신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까?
믿는 사람들에게는 도적같이 안 오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적 같이 오십니까? 그럼 우리가 시기를 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도적같이 오시지 않으니까 시기를 정해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으니까 그 오는 때와 시기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하고 또한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참으로 어렵 습니다
재림 시기를 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어두움의 자녀라서 모르고 자기들은 빛의 자녀라서 알 수 있다고 말 합니다 하나는 도적 같이 오시고 하나는 도적 같이 오시지 않는다. 두 말씀 중에 어느 것을 믿어야 합니까? 빛의 자녀라서 도적 같이 오시지 않는 다면 우리가 날짜를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볼 때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너희에게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때와 시기에 관한 문제는 알 필요도 없고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기간에 있어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예수님이 도적 같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할 필요도 없느냐면 사도바울이 다시 이야기 할 필요도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이미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림 시기를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재림 시기를 정하지 말라고 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림시기를 정하면 안 된 다는 것을 너희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기초를 흔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 시기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럼 이제는 율법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또 다시 말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때와 시기에 대해서 방점을 찌고 있는 것입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알고 있는 것을 무엇 하러 또 이야기 하느냐는 것입니다 때와 시기 문제는 도적 같이 오시니까 너희에게 다시 이야기 할 것도 없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말론 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다시 거론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5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라는 말씀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게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비유로 해서 주님의 때를 이해를 시키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도적같이 오시고 부모와 자녀 관계에 있어서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먼 곳으로 장사 갔다가 올 때 자녀가 쿨쿨 자는데 들어와도 부모는 도적 같이 오시지 않습니다. 오기는 와도 떳떳이 오지 도적 같이 오지 않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가 와서 같이 있다가 만나 줍니다. 그러나 도적은 만나주지 않고 갑니다. 부모는 오면 반드시 자녀를 만나 줍니다. 부모와 자녀관계에 있어서는 도적 같이 오시지 않겠다는 말씀은 오면 너희를 만나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때와 시기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 가를 말씀을 하는 것이지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주님이 오시고 빛의 자녀들에게는 주님이 부모와 같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의 자녀들은 안 만나 주시고 빛의 자녀들은 주님이 오시면 만나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때와 시기를 말씀합니다.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 주시지 않고 도적 같이 오시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언제든지 오면 너희를 만나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시기를 말해주시지 않으셔도 오면 당연히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오셔도 만나 주십니다.
자녀만 되면 만나 주십니다.
만나려고 하면 깨어 있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깨어 있는 빛의 자녀들은 부모가 멀리 갔다가 오면 자녀를 깨워서 만나 주는 것 같이 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빛의 자녀이고 항상 깨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6:15절을 보겠습니다. (신 415쪽)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을 자기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니까 잠을 안자고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늘 깨어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철야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말론 자들에게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거의 매일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예배를 드리고 있고 집회를 하면서 자기들의 그런 행위를 나타내면서 깨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옷을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옷을 입고 있는 성도는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그 성도가 밤이 되어서 졸려서 자고 있어도 구원을 받은 성도는 구원의 옷을 입고 있음으로 자기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으면 그 성도는 깨어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졸려서 쿨쿨 자고 있어도 그 성도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깨어 있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도적 같이 오십니다.
이 세상 종말은 우리가 준비를 할 수도 없고 또 그 때와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도적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도적이 오는 것을 누가 압니까? 도적이 올 때는 정말 주인이 모르게 오는 것이지 도적이 내가 간다고 하면서 가는 도적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재림을 하실 때는 아무도 모르게 오십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휴거와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날이 너희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주님이 오시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데살로니가전서는 그 당시 너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주님께서 빨리 재림을 하는 것을 바라고 있어서 그것을 위로하기 위해서 기록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5장도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언제 죽을지 몰랐습니다. 그것도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는 끔찍한 형벌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재림을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위로의 말로 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휴거는 없습니다.
종말론 자들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가지고 종말을 주장하고 있고 또 때와 시기를 자기들이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때를 알기 때문에 자기들이 휴거를 당한다고 하면서 휴거를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것만을 바로 알고 있어도 이 종말론에 대해서 누가 어떤 주장을 한다 해도 미혹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말론은 결국 휴거와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을 전하고 있는가 하면 휴거를 주장하는 것 뿐 아니라 7년 환난이나 삼년 반 환난 후에 또 휴거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휴거를 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얼마나 모순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 재림을 할 때 휴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칠년 환난이 끝나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는 나중에 또 구원을 받는다고 말 합니다. 결국에는 두 번 휴거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깨든지 자든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과 함께 같이 살게 하는 것입니다
깨든지 자든지 같이 살게 하려고 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깨든지 자든지 만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깨든지 자든지 입니다.
이 말씀은 죽어 있든지 살아 있든지 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데살로니가전서는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재림을 해서 너희를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으로 위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반드시 죽어야 주님이 오신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사자 밥이 되고 있던 성도들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아니 차라리 예수 믿는 것을 포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령이 오시면 그것까지도 견딜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이렇게 기록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죽어 있든지 살아 있든지 하는 말씀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자 밥이 되는 성도들에게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오해를 하다 보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을 하고 있고 또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때와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휴거가 있는 것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말을 알 수 있는 것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빛의 자녀들에게는 부모와 같이 와서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이 재림을 하실 때는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때와 시기를 정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재림 시기를 정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권한에 있는 것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신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아버지와 같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범죄가 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가 있고 영적이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육적인 죄를 사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육적인 죄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육적인 죄를 짓더라도 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영적인 죄가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 영적이 죄를 범하는 순간에는 그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는 그 어떤 것을 지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죄는 단 한 가지라도 범하는 순간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모르고 영적인 죄를 범 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죄라는 것을 알고 회개를 하면 그것은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르고 지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죄는 사실 거의 다 비유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 영적인 죄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영적인 죄를 범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지었을지라도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입니다.
모르고 지었다고 그것이 용서가 됩니까? 영적인 죄를 모르고 지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알고 지었든지 모르고 지었든지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실 때 쫓겨나는 사람들이 알고 죄를 지었습니까? 다 모르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적인 죄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아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있고 사울 왕이 있습니다.
다윗왕은 택함을 받고 사울왕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윗왕도 죄를 지었고 사울왕도 죄를 지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죄를 지었는데 다윗왕은 택하시고 사울왕은 왜 버리셨는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사무엘상13:9-12절을 보겠습니다. (구 426쪽)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말 합니다
그 말은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적군은 지금 전쟁을 곧 하려고 하고 있고 사무엘은 오지 않고 얼마나 초초하겠습니까? 그리고 전쟁에 나갈 백성들은 흩어지고 있습니다. 부득이해서 빨리 은혜를 구하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더구나 정한 날짜에 사무엘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책망을 합니다.
사무엘상13:13-15절을 보겠습니다. (구 427쪽)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 가량이라”
사울 왕이 버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사울이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번제를 자기가 드려서 사무엘로부터 책망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사울이 버림을 받은 것은 번제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지금 전쟁 상황에서 왕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 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번제로 이깁니까?
그리고 급하니까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으면 되는데 사울은 그것을 모르고 자기가 번제를 드려서 그것으로 전쟁에서 이기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영적인 범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해서 결국에는 자기가 번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왜 부득이 합니까?
그것부터가 믿지를 않은 것입니다 사무엘이 조금 늦게 오더라도 이 전쟁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눈으로 보는 백성들을 보고 있다가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윗의 생애를 보겠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를 보겠습니다. 다윗이 범죄 했습니다 간음하고 살인하는 굉장히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이 범죄 했을 때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 간 것 같이 나단이 찾아 갔습니다
사무엘하12:9-13절을 보겠습니다. (구 480쪽)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누가 더 매달렸습니까?
사울은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13장에서 사무엘의 옷자락이 찍어질 정도로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죄를 고백만 했습니다.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그런데 다윗을 용서 하셨습니다. 나단이 당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용서를 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사울은 진정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다윗은 진정한 마음으로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사울도 정말 애타게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버림을 받고 다윗은 큰 죄를 짓고도 다시 쓰임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진 죄는 살인하고 간음한 죄입니다.
사울의 죄는 전쟁에서 싸워서 이기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번제를 자기가 드려서 전쟁에서 이기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지를 못 했습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죄를 보면 이성적으로 보면 다윗의 죄가 더 커 보입니다.
다윗은 더구나 계획적으로 진 죄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진 죄입니다. 정말 부득이 하게 진 죄입니다. 계획적으로 진 죄는 용서를 받고 부득이 해서 진 죄는 용서를 못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죄와 사울의 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가를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죄는 율법적인 죄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죄는 하나님을 안 믿는 죄입니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지은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환경을 보고 다급하니까 자기 생각을 따라 행하는 그것이 영적으로 큰 죄를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재림 시기를 정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지은 죄입니다.
내가 깨어 있어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이 때와 기한에 대해서 굳이 생각을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죄가 영적으로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기와 때를 정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합당하지 못 합니다
7년 환난이니 3년 반 환난이니 이것도 안 됩니다 이것도 일종의 시기 입니다 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몇 년 환난이 일어나든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왜 상관이 없냐면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환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반석이 되시며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 바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모든 문제가 해결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피난처를 찾아 도망가려 합니다. 자기들이 어디 가서 삽니까? 절대로 못 삽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 야지만 삽니다.
여러분이 피난처로 도망가지 않아도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이 피난처입니다
시편에 보면 주의 천천만만의 천사가 둘러 진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천사가 지키고 있으면 그곳이 피난처 아닙니까? 엘리사가 주의 천천만만의 군사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천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 합니다
그런 것으로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종말의 때와 기한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종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은 성도가 있는 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망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 안에 있으면 주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반드시 우리를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는 날에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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