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1-34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난 후에 이제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있던 신앙적인 사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그 정점이 6장의 오늘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고 또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성경적인 의미를 이제 예수님께서 밝히 드러내시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6장의 말씀입니다
터닝 포인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 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던 그것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상식이 어떠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극락이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는 거의 공통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하게 살라고 합니다.
또 의롭게 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법이나 규례를 지키거나 어떤 수행을 통해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고 또 사람들의 사상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갈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은 다 율법주의에서 나왔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그렇고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도 자기가 잘 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믿는 신을 잘 섬기는 그런 행위를 통해서 덕을 쌓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아마도 그 방법 이외에 다른 것을 말하면 거짓이라고 말 합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도 또 자기 조상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서 보고도 역시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워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상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생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두개인들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들은 부활도 없고 천국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는 구약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단어조차 없었고 또 내세라는 단어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주의 성산 장막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현세를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세례 요한에 의해서 처음 언급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의미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잘 몰랐을 수 있지만 신약에 와서 천국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를 하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 따라 내세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스라엘이 천국에 대해서 바로 알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 천국에 대한 실체가 보여 졌지만 역시 사람들은 이 천국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세상의 이성적인 사고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이 세상의 이성적인 사고로 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8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성경을 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 이유는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고 또 평생을 연구를 했다 해도 그것이 사람의 지식이 된다면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시각들이 너무도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감추어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면서 문자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율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한 자기들의 생각대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정립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보통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수준의 상상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간다고는 하고 있지만 믿음에 대해서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더라 하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몰랐기 때문에 이름을 못 불렀고 이 시대는 그 이름을 알고 있어서 부르고는 있지만 예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천국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전혀 없었던 말씀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처음으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곧 이어서 그의 나라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천국을 가는 방법에 대해서 제시를 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의 결론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어떻게 해서 구할 수 있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처음으로 밝히 드러낸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천국을 구할 수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는다고는 말하고 있지만 실제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그의 나라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구하면 모두가 다 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구한다고 해서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성경을 오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어떻게 구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 했습니까?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또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의 길에 서 있는 가 아니면 악인의 자리에 서 있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분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성도인가 아니면 가라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천국을 비밀로 감추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비밀이기 때문에 성경을 그냥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가 않고 들어도 깨닫지를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은 그림자라고 합니다. 신약 역시 거의 모든 성경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이기 때문에 허락이 되지 않은 사람은 그 비유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도 비유입니다
사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이 되는 말씀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비유를 성경에서 찾아야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또 비유에 대해서 바른 해석을 하지 않고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오해를 합니까?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갈지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은 분명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오해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지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김칫국을 마시고 있습니까? 분명히 줄줄 알고 김칫국을 마신 것입니다 천국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도 않고 계시는데 자기들의 생각으로 줄줄 알고 교회에 나와서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이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천국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오해를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가는 너무도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다른 것은 다 오해를 해서 설령 내 생명을 빼앗긴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성경을 오해를 했다가는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자기는 천국에 갈 줄 알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기초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천국에 가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라를 어떻게 구하는 가를 마태복음 6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주님 천국가게 해 주세요 하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어떻게 구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했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칼뱅이 되었어도 또 웨슬레가 되었어도 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름도 없고 아니 그가 세상에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도 그가 천국에 들어갔다면 그는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비천하게 산다 해도 천국을 얻었다면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이 천국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소망이 끊긴 자 같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이 천국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천국을 구해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6:19절을 보겠습니다. (신 8쪽)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보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 보물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쉽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재물입니다 실제 이 세상에서 통용이 되는 돈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재물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늘에 쌓아 둘 수 있습니까?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고 해서 그것이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까? 그런 생각부터가 이 세상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하늘에 쌓아 두기 위해서 자기들이 믿는 종교에 보물을 가져다 드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분별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아니 종교가 무섭습니다.
땅과 하늘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진짜 문자 그대로 땅과 하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땅과 하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마도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질문을 하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고 말 할 것입니다
그것은 땅입니다
교회도 이 세상에 땅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드린 보물이 하늘에 쌓입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종교에 빠져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드린 것이 하늘에 쌓여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이 세상 것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도 사라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데 이 보물을 너희를 위해서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해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쌓아 두면 반드시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와서 그것을 훔쳐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것은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도적이 와서 도적질해 간다면 그것은 이미 내 보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는 가능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와서 그것을 훔쳐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20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거듭 말씀을 하시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깨달아야 합니다.
이 보물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이 보물이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보물이 있는 자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실 때는 이 보물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 보물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이 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물은 땅에 쌓아 둘 수도 있고 하늘에 쌓아 둘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가운에 이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고 또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시기 바랍니다.
땅에 쌓아 두면 반드시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만이 도적질을 안 당해서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방법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1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지극히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보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 보물이 정말 극히 귀한 것이라면 늘 마음은 보물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보물은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신 보물입니다 땅에 쌓아 두는 보물도 있고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도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보물을 다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금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고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반드시 도적에게 빼앗길 것이고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은 그 보물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22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갑자기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시고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눈이 온전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온전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하면이라는 단언에 1)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밑에 성경을 보면 온전하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온전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땅에 보물을 쌓아 두다가 그것을 도적이 와서 도적질 해 가버리면 보물이 없어져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6: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00쪽)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소경입니다
이스라엘은 눈이 소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이 시대도 소경의 눈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의 비밀을 도무지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사실 빛을 보는 사람보다는 소경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 역시도 소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눈은 등불입니다
이 눈이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합니까? 등불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데 마치 등불과 같이 밝아서 성경에서 천국에 대한 비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84쪽)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예언입니다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온전하면 등불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등불은 눈이 온전해야 바로 볼 수 있지 눈에 온전하지 못해서 진리에 대해서 소경이 되어 있으면 성경을 보고 있어도 온전하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온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을 보고 천국의 비밀을 알아 온전하게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눈이 온전하여 등불을 밝히 보는 사람은 너무도 적습니다. 정말 소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소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3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눈이 나쁘면 어두울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못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눈이 온전하면 등불을 보고 그 보는 눈으로 구원을 받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져 그것으로 구원을 못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눈이 어두운 사람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눈이 나쁘면 어떻게 됩니까?
참 빛을 못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눈이 나쁜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눈이 등불을 보지 못하고 있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5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이 어두워서 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어두워서 참 빛을 보고 깨닫지 못했습니까? 그들도 빛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영광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 율법은 참 빛이 오면 사라져야 하는 그림자인데 이스라엘은 눈이 어두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눈이 온전한 사람은 참 빛을 볼 수 있고 눈이 어두운 사람은 어두움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지만 눈이 온전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눈이 어두운 사람은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다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0:1절을 보겠습니다. (신 362쪽)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가 밝습니까? 어둡습니까? 눈이 어두운 사람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율법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자는 밝은데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데서 보이는 것입니다 밝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율법에 매여 있어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눈이 온전하면 등불을 보고 그 몸이 밝아집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다 어두움에 거하게 되고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성경을 보면서 그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멸망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 빛을 못 봅니다.
교회는 나와 있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눈은 어두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어두움에 거하면서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사람의 눈에는 밝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밝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법을 지킨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어두운 것입니까? 절대로 어둡지 않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밝게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밝게 보이고 있지만 눈이 온전해서 참 빛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두운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의 몇 가지 행위를 보고 온전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은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눈이 온전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실 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법보다 더 온전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율법으로는 온전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보물을 말씀 했습니다.
그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반드시 도적질을 당하게 되고 하늘에 쌓아 두면 도적이 훔쳐가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말씀하면서 눈이 온전하면 성경을 바로 보고 온 몸이 밝아지는 것 같이 빛에 거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눈이 어두우면 그 사람의 온 몸도 어두워져 구원을 못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절대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는데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보물이 두 주인입니다
땅에 쌓아 두는 보물도 주인이고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도 주인입니다 이 보물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것이 주인이 되어서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미워하게 되고 하나를 중히 여기면 하나를 경히 여기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다 사랑하고 또 다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입니다 이 둘을 다 사랑하고 또 다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두 주인을 말씀을 하는데 그 두 주인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과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둘을 함께 사랑하고 또 함께 미워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나라를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보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고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밝은 사람은 온전하여 그것을 하늘에 쌓아 두어 온 몸이 밝아지게 된다고 말씀을 하시고 이 보물이 이제 두 주인으로 말씀을 하면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주인이 하나님과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를 부자 청년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가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2쪽)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스라엘의 생각입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자기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다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선하게 산 사람을 보면서 다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죄를 많이 진 사람은 죽어도 좋은 곳에 못 갔을 것이라고 말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이렇게 선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 사상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가지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국은 의로운 사람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은 후를 생각하면서 가능한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도 역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죄를 안 짓고 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바로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천국이라는 보화를 얻기 위해서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내가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쌓았습니다.
사실 율법을 다 지키기 위해서 이 청년이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아마 그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느 것 보다 더 큰 보물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재물이 되어 자기에게 쌓고 있습니다.
인생은 땅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의를 가지고 몸에 쌓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그것을 너무 잘 쌓았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와서 자기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자기 땅에 재물을 쌓아 두었습니다.
이 세상의 사상입니다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전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선하게 살아야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말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내 재물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은 다 재물입니다 말로는 구원 받은 성도로서 지킨다고 하지만 율법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이 부자청년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잘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10: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제까지는 율법의 의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이제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율법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의가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의와 나의 의라는 제목의 강의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기서는 이 의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지 않겠습니다.
천국에 가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을 교회 안에서 누누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는 천국 가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에서도 밝히 드러내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너무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상수훈을 마치는 마태복음 7장28절에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이 산상수훈은 이제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이성적 지식을 완전히 깨 버리는 너무 놀라운 말씀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어떻게 들려지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면 저를 사랑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경히 여길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이 하나는 율법의 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인데 이 둘을 함께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율법의 내 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둘을 함께 사랑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이 둘을 함께 사랑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잘 지키면 더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면서 한 주인을 사랑하면 한 주인은 반드시 미워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두 주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라면 내가 율법의 의를 얻기를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일조를 잘 내고 있는데 십일조를 안 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엄청 나게 미워할 것입니다 상대도 안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예수님께 말씀을 하신 것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십일조를 내는 율법의 의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율법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2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못 합니다.
이 청년은 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다 팔라고 한 이 말씀이 정말 이 세상에 소유를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네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는 그 율법의 의를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재물을 팔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3:44절을 보겠습니다. (신 22쪽)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 소유가 진짜 재물입니까?
그렇다면 재물이 있는 사람은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소유는 내 율법의 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의롭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그 의를 소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못 팝니다.
왜 자기 재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팔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보물인데 어떻게 팔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하는 그 율법의 의를 다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의롭게 살아서 천국에 가는 그것을 버리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그렇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면 하늘의 보화를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가 어디 있습니까?
성령론에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보물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의를 자기 육체에 쌓아서 천국에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 주인을 함께 사랑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했으니까 미워해야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 세상에서 성도의 도리로서 의롭게 사는 것이 율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렇게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분명히 천국에 가는 또 다른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이 율법을 어겨서 결국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율법의 기능이 그렇습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율법은 그것이 아니라 천국에 갈 수 있는 또 다른 주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성도는 율법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미워서 안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으로 방종을 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 법으로도 얼마든지 도덕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25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무엇이 중요합니까?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무엇이 중요한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한 것을 이미 얻었다고 오해를 하고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모두가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안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들이 어떠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늘 고민하고 그것을 하느라고 모든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또한 무엇을 입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삐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들이 무엇이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이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 있으면 마치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을 하고 이제는 생명을 얻었으니까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생명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생명에 대해서만 성경을 통해서 알려고 할 것이고 재물에 마음에 가 있는 사람은 재물에 대해서만 마음이 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은 물론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럴지라도 성도는 생명에 대해서 늘 사모하고 있습니다.
재물에 마음이 가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마음에 가 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해도 율법의 행위에 마음에 가 있고 의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면 그는 재물을 얻기에 급급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에 확신이 있어도 성도는 늘 구원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깨달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평생을 이 구원에 대해서만 들어도 구원을 받을까 말까 한데 지금 이 시대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재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사야 64:6절을 보겠습니다. (구 1045쪽)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재물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가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그토록 보물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재물이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재물이 영광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 재물은 더러운 옷과 같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또 죽으면서 다 바람과 같이 날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중요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까? 거지 나사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재물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지만 음부에 갔고 나사로는 거지와 같은 차림이었지만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미혹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는 성도는 중요한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그들의 생각에는 율법을 지키는 그 일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을 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율법을 지키는 자기의 행위를 보면서 믿음의 증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6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생명을 어떻게 얻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심어야 거둘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켜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심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새가 자기 생명을 위해 농사를 짓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먹을 것을 하늘에서 주고 있습니다. 새들도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있는데 왜 염려를 하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살아 갈 수 있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기르시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위해서 염려를 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새들도 때를 따라 양식을 주고 있습니다.
새들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또 창고가 있어서 거두지도 않지만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양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랑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양식을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때를 따라 은혜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양식을 주셨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의 양식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은 생명의 참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참 떡은 내가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들이지도 않아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 먹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먹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재물에 배가 불러 있습니다. 영혼의 생명을 위한 참 떡은 먹으려 하지 않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재물을 얻기에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참 떡으로 오셨습니다. 그 떡을 우리는 먹기만 하면 됩니다.
마태복음 6:27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누가 키를 크게 할 수 있습니까?
이미 다 성장을 한 사람의 키를 누가 더 크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하려고 율법을 지키면서 재물로 삼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보화가 되어서 내가 이렇게 하면 천국에 가겠지 하고 생각을 합니다.
키에 2)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성경 아래에 보면 생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생명을 스스로 얻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무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상은 자기가 노력을 해야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의 재물로는 절대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재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28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의복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이렇게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좋은 옷을 입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의 의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백합화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물론 세상에는 예쁜 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백합화는 희고 아름답습니다. 누구나 그 백합화를 보면 가까이 가서 보고 싶고 또 향기를 맡아 보고 싶어 하는 꽃 입니다 그런데 그 꽃이 어떻게 자랐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8쪽)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수고 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정말 수고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고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수고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결한 백합화를 이 세상에 내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이 백합화 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려고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29-30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솔로몬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솔로몬의 영광은 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의 영광을 이 세상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솔로몬과 같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솔로몬의 누린 영광을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이 꽃보다도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솔로몬은 죽었지만 지금 이 꽃은 피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의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이고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솔로몬과 같이 살고 싶은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지금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보다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백합화도 이렇게 입히신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주시는 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백합화 같이 더 아름답게 입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백합화 보다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너희를 어떻게 입히시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너희가 재물로 수고해서 얻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백합화 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것은 수고를 해서 입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의를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땅에 있는 재물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보물에 가 있으면 당연히 믿을 것인데 땅에 있는 재물에 마음이 있어서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입혀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옷을 입는 사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입을 수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한 그 말씀이 예수님께서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는 미워하고 하나는 사랑합니다.
교회 안에서 만약에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입술로는 아무리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그는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고 이 문제가 정립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1-32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가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있고 또 그것을 위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하는 줄을 아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줄을 아시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 그리고 마셔야 하는 것 입어야 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6:48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마태복음 26:28절을 보겠습니다. (신 46쪽)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로마서 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58쪽)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모든 사람은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나름대로 무엇을 먹어야 하나 무엇을 마셔야 하나 무엇을 입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참 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는 피를 마시는 것은 죄 사함의 언약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재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깨끗한 의로 우리를 옷 입혀 주시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경륜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아시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행위에 빠져 그것을 사랑하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어떻게 천국에 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공부를 하고 있고 또 자기 속이 시원해 질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체험을 하려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스스로 선해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종교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국에 어떻게 가야 하는 줄 미리 아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참 떡을 먹이기 위해서 오셨고 또 우리에게 언약의 피를 통해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 주시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이방인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둘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를 아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천국과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데 구하면 안 주시겠습니까? 문제는 구하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자기들이 구원에 방주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천국에 대해서 구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됩니까?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내가 무엇을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필요한 것을 다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하고 있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12쪽)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찾지도 않고 있고 두드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느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욕에 빠져 자기 육체의 것을 구하느라 모두가 미혹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입니까? 지식입니까? 재물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게 하는 것입니까? 선을 행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마음입니까? 헌신하는 열심입니까? 이 모든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빙자해서 교회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하는 것과 절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은 몸만 교회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하는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아니라 이 세상에 정욕에 빠져 구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각각의 분복으로 주셨습니다. 더 좋은 하늘의 것을 얻는 성도는 이 세상의 것을 분복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34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우리는 내일 죽는다 해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미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비록 이방인들이 얻는 것을 못 얻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선물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입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스스로 선하게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재물을 땅에 쌓아 두었습니다. 내 스스로 의롭게 살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천국에 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준비를 해 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 계십니다. 그것이 내 의가 되어서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종교에 빠져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합니다
반드시 율법을 사랑하면 예수는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그렇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천국의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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