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14강, 은혜의 해

윤주만목사 2019. 3. 6. 19:40


14, 은혜의 해

 

누가복음 4:18-19절을 보겠습니다. (94)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그 사역을 이사야서에 예언한 것을 지금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해야 하는 사역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 되었습니다

 

이 은혜의 해를 누구에게 전파를 하고 있습니까?

은혜라는 단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를 누가 받는가를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부자나 강한 자가 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가 받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가난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를 스스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부자가 되어서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실 다 가난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 들어와 한 두 가지 율법을 지키다 보면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내가 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마음에 부자가 되어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부자였습니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이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부자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자들은 실제 돈이 많은 부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이 복음은 참으로 묘해서 율법의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전해지지가 않고 가난한 자에게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를 지어 율법의 의로 가난한 사람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은혜는 가난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부자는 은혜를 주려고 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이 상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은 충분히 자기가 그 물에서 헤엄을 쳐서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도와준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능력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도와주면 자존심이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도와줘도 되는데 왜 도와 주냐고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나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 도와주면 그것이 너무도 큰 은혜가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이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의를 주겠다고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데 뭘 줍니까?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그래서 천국 잔치의 비유에서 보면 부자들은 예복을 주었지만 안 받아 입습니다. 자기 옷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예복을 받아 입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옷이 거지같은 사람은 예복을 주면 얼른 받아 입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복음을 들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려 있는 자를 자유 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61:1-3절을 보겠습니다. (104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가 복음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사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사역에 대해서 예언을 했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지금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을 했고 또 예수님께서도 성경에 기록된 예언 그대로 오셔서 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은혜의 해가 지금 이시대도 전파 되고 있습니다.

 

은혜의 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은혜의 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21절에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쉰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201절부터 보면 십계명이 나옵니다. 십계명 가운데 8절부터는 안식일을 지켜라 말씀하면서 안식일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 말씀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고 말씀하면서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있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고 말씀합니다.

 

종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날은 무슨 날입니까?

종들은 매일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날에 일을 안 하면 혼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일을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이 종들에게 이 날은 은혜의 날입니다 사실 종으로 팔려갔는데 하루를 쉰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들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일을 해야 하지만 특히 종들은 주인이 쉴지라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식일만은 평안하게 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안식일은 은혜의 날입니다

 

은혜의 날에 무엇을 하도록 했는가 보겠습니다.

 

레위기 24:8절을 보겠습니다. (184)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안식일에 대한 규례입니다

매 안식일마다 떡을 진설하면 지난번에 올렸던 떡은 내려가고 새 떡을 진설 합니다

 

그럼 이 안식일은 새로운 떡을 먹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종들에게 은혜의 날입니다 이 은혜의 날에는 새로운 떡을 먹습니다. 새로운 떡을 진설하고 그곳에 있던 떡을 먹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가져온 떡을 먹는데 이날은 새로 내려온 떡을 먹습니다. 새 떡을 진설하고 그곳에 있던 떡을 먹습니다.

 

온 인류에게 일주일 동안 일하고 쉬는 날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고 이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은혜의 날에 쉬는 날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어떤 날이었나를 보겠습니다.

에스겔 20:12절을 보겠습니다. (1178)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했습니다.

안식을 주어서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은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만들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다고 말씀합니다.

 

안식이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뜻은 편안하게 쉬는 것을 안식이라고 말 합니다 안식은 사실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쉬는 것을 안식이라고 합니다. 그 날은 모든 백성이 다 쉬는 날로 정해졌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그래서 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은 이렇게 매주 마다 돌아오는 날인데 평안히 쉬는 은혜의 날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7일에 하루를 쉬는 것뿐만 아니라 7년에 한 해를 쉽니다. 7년에 한번 쉬는 이 해도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은혜의 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 해에는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7년 되는 해는 농사도 짓지 않고 거두지도 않습니다. 밭을 그대로 놓아둡니다. 그 해에는 파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 땅에서 자란 것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매 해 농사를 짓다가 그 해에는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직장 생활을 하니까 그런 일이 없겠지만 밭에 씨를 뿌리지 못하면 그 해에는 노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 일하고 엿새 되는 날에는 두 배를 주셨습니다. 하루를 놀면서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6년 동안은 농사짓고 1년은 농사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6년 되는 해에는 다음 해에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축복 하셨습니다. 그냥 노는 것입니다

 

그럼 과일 나무에는 과일들이 저절로 열릴 것 아닙니까?

이 해에는 그렇게 열린 과일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 해에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객들이 와서 그것을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농사도 안 짓고 남의 밭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따서 먹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른 해에는 남의 밭에 있는 것을 따 먹으면 도적질을 한 것이 되지만 안식년에는 아무 밭에라도 들어가서 과일이 있으면 그것을 따 먹을 수 있습니다. 그 해에는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가 먹도록 그 주인은 거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시고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구약의 모든 절기나 안식일과 안식년을 정해 놓은 것은 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신약에 와서 천국의 안식을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신앙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지를 못했는데 그러나 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주심으로 해서 그들에게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일을 통해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 거지들 농사지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해가 얼마나 행복한 해가 되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열심히 종 생활해도 배를 채울까 말까 했는데 이 해에는 일도 안하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일해서 일당을 받아서 먹을 때는 가난하기 때문에 배부르게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해에는 가는 곳마다 나무에 열매가 맺혀있어도 그 주인이 거두어 가지 않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거두지 않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이나 종들이 가져다 먹는 것입니다 기업이 없는 사람들이 먹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7년 이 안식년은 그들에게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는 해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해입니다

 

7일에 하루 쉬고 7년에 1년을 쉽니다.

그리고 7년에 7년을 곱해서 49년이 되는 해에다 1년을 더해서 50년이 되는 해가 있습니다. 50년은 무엇을 상징해서 만든 해인가를 보겠습니다.

 

레위기 23:5-8절을 보겠습니다. (181)

정월 십 사 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 오 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 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여기에 말씀하는 114일은 유월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레위기23:15-16절을 보겠습니다. (182)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14일 유월절을 지키는 날부터 해서 7X7=49일해서 하루를 더해서 50일 째 되는 날은 오순절 안식일을 지키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7X7=491년을 더해서 50년 되는 해에 만드셨습니다.

 

50년째 되는 해를 가르쳐서 은혜의 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7일도 은혜의 날이고 7년도 은혜의 해지만 특별히 50년째 되는 해는 은혜의 해입니다 왜 은혜의 해라고 하는지를 찾아보겠습니다. 6일 동안 일하다 7일에 쉬고 6년 동안 일하다 7년 째 되는 해에 쉬고 이것은 피곤한 여정 가운데 안식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3:1절을 보겠습니다. (35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모든 이방을 멸하시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그때를 가르쳐서 안식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전에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았습니다. 광야는 계속 이동하면서 생활합니다. 그것은 쉼이 없는 생활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정을 풀고 옮겨 다니지 않고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평안히 쉴 수 있는 그런 때가 왔습니다.

 

교회는 광야고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안식일이나 안식년은 광야 생활 하면서 피곤하게 살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하는 것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쉼이 없는 세상을 살다가 천국에 가서 평안히 쉬는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50년째 되는 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가를 보겠습니다. 이해를 가르쳐서 은혜의 해라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3-7절을 보겠습니다. (185)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군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

 

7년 째 되는 해에는 가난한 자들이 전부 먹습니다.

잘난 사람도 먹고 못난 사람도 먹고 심지어는 짐승들 까지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해에는 부자나 가난한자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거두지 말라고 하니까 그냥 누구나 가서 따 먹으라는 것입니다 거두어 가지는 못하고 따서 먹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집으로는 가져가지 못하고 실컷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남종이나 여종이나 나그네나 짐승이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해는 사실은 부자들의 해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해입니다 못 살고 못 먹던 사람들의 해입니다 7년 되는 해는 그렇습니다. 50년째 되는 해는 또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이 해에는 특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돈이 없으면 밭을 팔아먹습니다.

조상 밭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쪼들리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궁핍하다 보니까 그 밭을 다 팔아 먹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밭을 다 팔았으니까 살길이 없는 것입니다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자기 집에 딸을 종으로 팔아서 곡식을 가져다 먹습니다.

그것을 다 먹어도 가난이 해결이 안 되면 아들을 팝니다. 하나씩 자녀를 다 파는 것입니다 그래도 먹을 것이 없어 빚을 지면 자기도 종으로 가야 합니다.

 

가난해지면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까지도 종으로 가야하고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하는 이런 입장에 있을 때 자기 재산을 다시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더 궁색해 지기 때문에 그때는 자기 능력으로 찾을 길이 없어집니다. 이런 경우에 도저히 자기 밭이나 자기 집이나 자녀들이나 다시 회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50년째 되는 해에는 돈을 하나도 주지 않아도 밭이나 집을 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50년째 되는 해에는 밭이나 집이나 모든 것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은혜의 해입니다

 

자녀를 종으로 팔고 자기도 종 생활 하면서 어쩔 수없이 그렇게 살 때 50년째가 되면 돈을 하나도 안줘도 밭도 찾고 집도 찾고 종으로 갔던 자녀도 모든 것을 다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50년째 되는 해를 가르쳐서 구약에는 희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희년을 가르쳐서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해라고 말씀합니다.

 

레위기 25:8-12절을 보겠습니다. (185)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 년이라 칠 월 십 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50년째 되는 해에는 전 국민에게 나팔을 붑니다.

속죄일 710일에 나팔을 붑니다. 이 해에 전국 거민에게 나팔을 불면서 자유를 공포하라 말씀합니다. 이 나팔 소리를 들으면 종 되었던 모든 사람들이 자유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 갈찌며...”

 

희년에 나팔 소리가 들입니다.

그러면 종으로 있는 사람들이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자기 기업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해에 자유를 공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나팔 소리가 들려지면 모든 백성은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종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또 자기 기업을 다시 찾습니다.

 

이 날이 얼마나 즐거운 날이 되겠습니까?

이 해에도 역시 농사를 거두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먹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먹는데 7년에 한번 씩 돌아오는 해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50년째 되는 해에는 종들이 돌아가서 먹습니다. 7년째 되는 해에는 종 생활하면서 그냥 먹을 수 있지만 50년째 되는 해에는 모든 종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자유를 공포하는 것입니다

 

이 날에 나팔 소리는 모든 매여 있는 사람들이 놓임을 당하는 날입니다

얽매여서 살던 종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빼앗겼던 기업을 다시 찾는 날입니다 이 날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종으로 살아 보지를 않아서 그 기쁨을 잘 모르겠지만 남의 종이 되어서 살던 사람은 이 희년의 나팔 소리가 정말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나팔 소리는 종으로 있던 사람만이 기뻐하는 은혜입니다.

 

레위기 25:13-17절을 보겠습니다. (185)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50년을 정 했습니다

50년 다음해부터 시작해서 다시 50년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금년이 49년이면 50년 되는 해는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년 남았으면 땅 값이 비싸겠습니까? 싸겠습니까? 싸게 되는 것입니다 년 수를 따라서 1년부터 시작할 때는 값을 많이 주고 년 수가 적으면 값을 적게 주고 년 수에 따라서 값을 정하라고 말씀합니다. 땅 값이 싸냐. 비싸냐는 50년이 금방 지났냐. 50년 지난해가 오래냐. 이것에 따라서 땅 값이 싸든지 비싸든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50년이 되면 무조건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방 샀다가도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이것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희년에 자유를 공포 합니다

없는 사람은 잘 먹을 수 있고 자기 기업을 찾을 수 있고 자기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희년의 나팔소리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무엇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이 들리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뜻은 복된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희년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큰 은혜입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가난한 자들이 종에서 풀려나고 거저먹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복된 소리 입니까?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정말 열심히 일해도 겨우 먹을까 말까 하는데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그런 해가 온 것입니다 참 복된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려서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복된 음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첫 번째로 포로 된 자들이 자유를 얻습니다. 50년 희년 나팔 소리가 들리니까 포로 된 자들이 자유를 얻습니다. 종 생활하던 자가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구약 당시에 50년 희년을 만들어 놓으신 이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저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희년과 같이 거저 우리는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다시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되어서 도저히 천국에 갈 수 없는데 이 희년이 공포가 되어 나팔 소리가 들림으로 해서 자유를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밭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밭을 다 팔아 먹었습니다. 팔아먹은 것을 희년이 되면 다시 찾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나팔, 희년의 나팔을 불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빚을 지면 땅을 다 팔아 먹습니다. 땅을 팔면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찾겠습니까? 찾을 수 없는데 찾는 제도가 하나 있습니다.

 

레위기 25:23-28절을 보겠습니다. (186)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이 판 것을 무를 것이요...”

 

가난하여 팔았으면 찾을 길이 없습니다.

사실 한번 팔아 버린 땅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형제나 친척 중에 누구든지 갚아 주고 찾아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기 땅이 있는데 그것을 팔아먹었으면 도저히 찾을 길이 없습니다. 자기가 찾지 못하니까 친척이나 형제나 이것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 와서 값을 지불하고 찾아 주는 것입니다 희년부터 계산해서 찾아 주고 그래도 해도 해도 안 되면 희년에 와서 찾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팔아먹었습니다.

아담이 사단에게 팔아먹은 에덴동산을 찾을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이 없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담이 잃어버린 값을 지불하고 찾아서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아담이 잃어 버렸던 에덴동산을 값을 주고 찾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피로서 이 지구를 사서 잃어 버렸던 자에게 다시 환원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가 빚져서 찾지 못할 때 형제 중에 친척 중에 그것을 물러서 다시 찾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에덴 땅을 어떤 사람도 찾을 길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찾아서 우리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포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단에게 포로 되어 있었는데 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기 땅이 없으면 남의 집에 가서 종 생활 하는 것입니다 종 생활 하는 것은 그 집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돈에 팔려서 그 집에 포로가 되어서 꼼짝할 수 없는 그때에 누군가가 그 돈을 지불하고 그 사람을 꺼내 줍니다. 이런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구약의 희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셔야 할 사역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사단에게 눌려 있던 자들을 전부 자유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그 집에서 종 생활하면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일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이 불었는데 만약 종이 가려고 하는데 주인이 붙잡고 못 가게 하면 주인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멍청한 종이 안가고 그냥 그 집에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머물러 있으면 주인은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자기 집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붙잡고 너 일해야지 어디 가냐고 못 가게 하는 것은 법적으로 재판을 받아서 주인이 처벌을 받습니다. 아무도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사는 멍청한 종은 그 집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도 그냥 종 생활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은혜의 해, 희년의 나팔을 불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럼 희년의 나팔이 불었으면 전부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권리를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멍청한 종들은 안 나오고 있습니다. 자기 기업으로 안돌아 오는 것입니다 안돌아 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멍청해서 안돌아 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돌아오려고 하는데 주인이 붙잡고 있으면 주인이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돌아오려고 하는데 사단이 붙잡고 있으면 사단은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의 해가 선포 되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 율법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3절을 보겠습니다. (30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이 세상의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교회를 보면 오히려 율법으로 더 강하게 매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종교화 됩니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무엇으로 매려고 하겠습니까?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 율법의 줄에 한번 매이게 되면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에 매였습니까?

율법은 단 한 가지만 지켜도 그것에 종이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율법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게 종노릇 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김 씨네 종이 되었습니다. 그 종은 김 씨가 시키는 말만 듣습니다. 물론 종이기 때문에 박 씨에게도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 씨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 종이 박 씨의 말을 들었다가는 김 씨에게 혼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박 씨의 말을 들었다 해도 그 종을 주관하는 것은 김 씨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관하는 자에게 순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율법에 종이 되어서 순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율법의 종이 아니라면 아무리 율법이 강하게 요구를 할지라도 우리는 당당하게 거절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 씨의 종인데 박 씨가 그 종에게 일을 시키는데 그것을 듣겠습니까? 만약 박 씨가 시키는 것을 그대로 듣고 순종을 하고 있다면 그 종은 정말로 멍청한 종입니다 왜 박 씨가 시킨다고 그것에 순종을 합니까? 종은 한 주인만 섬기는 것이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혹시 김 씨가 박 씨 말을 들으라고 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종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만 들어가면 스스로 율법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그렇게 만듭니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율법의 종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이 시대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에 종이 되게 하려고 만들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종으로 매려고 하면 그것에서 벗어나야 여러분이 참으로 은혜를 받은 성도라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 사람, 교회, 은사, 이런 모든 것에서 여러분이 매이게 되면 그것에 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모르면 종이 됩니다.

교회에 나와는 있지만 내 스스로가 진리 안에 있지 못하면 종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종에서 분명히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5절을 보겠습니다. (306)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 있습니다.

법아래 있습니다. 국가의 모든 제도도 그렇고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법아래 있어서 나중에 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게 되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믿지를 못 합니다.

아니 바로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시 율법에 종으로 팔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의 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값으로 사셔서 자유를 주시고 있는데 성경과 반대되는 일을 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해가 선포되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법에서 자유 함을 얻었는데도 지식이 없으니까 아직도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종으로 팔려 있는 사람을 누군가 값을 지불하고 종에서 놓아 주고 자유하게 했는데 그것을 몰라서 종노릇 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것이 이 세상에서만으로 끝이 나면 그마나 다행 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주인인 율법이 반드시 완전한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 요구에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진노를 내린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실컷 율법의 종노릇 하다가 구원도 못 받고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 지식이 없어서 그렇게 율법의 종이 되기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습니다.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게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던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종이 아니라 율법에게서 놓임을 받아 자유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속량이라는 말씀으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런 말씀들을 알지도 못하고 있고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싶은 대상을 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만약 바로 알지 못하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믿지를 못하니까 율법의 종이 되어서 자유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어떻게 하든지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종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18절을 보겠습니다. (30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하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재한 사람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율법의 어느 한 모양이라도 취하고 있다면 그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물론 다른 것으로도 분별을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가장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주장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이 율법입니까? 아닙니까?

십일조가 율법입니까? 아닙니까? 제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삼가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정죄를 하고 또 정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중에 성령 론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율법의 모양을 지키려 하고 있고 또 그런 모양을 내고자 하고 있다면 그는 성령이 아직 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유하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절대로 자유 할 수도 없고 법을 안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간단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갈라디아에서도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는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과 성령은 함께 공존을 할 수도 없고 서로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결국 율법의 종이 되어서 나중에는 율법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 합니까?

아니 마음껏 자유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초등 학문에 매여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자유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르면 당 합니다.

그러나 알면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해가 선포 되었는데도 그것을 모르면 그대로 종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의 해가 선포 되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더 이상 종으로 살지 않고 자유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이 세상에서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희년입니다

희년을 바로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 희년을 모르면 어쩔 수 없이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종으로 사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나중에 율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는 너무도 슬픈 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종 생활하다가 놓임을 받는 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종이 없으니까 그런 실감을 못 느끼실 것입니다 이것이 실감이 안 나는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유다서에 사단이 붙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서 1:9절을 보겠습니다. (397)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사단이 모세를 붙잡고 있으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듣고 종들이 돌아가려 하는데 종들을 놓아 주지 않으면 그것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아담과 하와가 잃어 버렸던, 팔아먹었던 그 에덴, 이 지구를 주님께서 사서 놓아 주려고 희년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희년의 나팔이 불었는데도 지금도 안 돌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 돌아오려는 사람을 못 가도록 사단이 붙잡고 있으면 사단을 치고 하나님께서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종들은 미약 합니다 남의 집에 팔려가서 사는 사람들은 꼼짝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그 나팔 소리를 듣고 깨달은 종들은 힘이 있습니다.

 

나를 붙잡고 있으면 너 큰일 나 너 혼난다. 주인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 함부로 붙잡지 마, 나를 갈 수 있게 놓아, 그전에는 큰 소리 칠 수 없지만 희년 나팔 소리가 들리면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놓아!

내가 이제 종에서 놓였잔냐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를 알았다면 사단이 우리를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편에 서서 사단을 이기고 사단 손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지금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구약 당시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도 멍청하게 그대로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지금도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주장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멍청한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이 불었는데도 종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종 생활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희년의 나팔을 불었는데, 은혜의 해를 선포 했는데 그냥 있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농경 사회입니다 종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고 했습니다. 종들끼리는 서로 압니다. 저 사람은 누구네 집종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기 종들끼리도 서로 압니다.

 

소나 양을 많이 키우는 집에는 종들이 많았습니다.

방목을 하다 보면 서로 함께 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아는데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전부 자유를 얻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 갈 때 보니까 옛날 자기 동네에 같이 살던 여러 친구가 있는데 한 친구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 안 나오면 자기 혼자만 가면 안 되고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종에게 가서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조금만 똑똑해도 아는데 정말 멍청한 종은 몰라서 그냥 있습니다.

 

주인이 일시키는 대로 그냥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남의 집에 팔려 와서 종 생활하지만 똑똑한 종은 희년이 되면 그 집에 희년을 모르고 그냥 있는 종을 빼내야겠다고 가서 다른 집에 사는 종에게 나팔 소리가 울렸으니까 나오라고 전해 줍니다. 데리고 나오면 그때서야 지금이 희년이냐고 그렇게 해서 자기 동료들끼리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해서 데리고 나옵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희년 나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서 자기 혼자만 집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 친구들을 생각해서 안 나오는 친구들에게 찾아가서 희년의 소식을 전해서 그 사람에게도 자유를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두 부류의 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희년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 소리가 나니까 자기 혼자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깨달았는데 자기 혼자만 좋아 합니다 율법 속에 있다가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 복음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혼자만 알고 알려 줄 수 있는 옆에 사람에게도 안 알려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은혜의 해, 희년을 가르쳐 주었으면 여러분도 또 다른 사람에게 은혜의 해가 되었다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이 희년을 모르고 아직도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가 복음의 기쁨을 누렸다면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정말로 종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하지 말라고 해도 전해 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희년이 되어서 종에서 풀려나는데 자기 혼자 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르고 있는 다른 종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게 가서 희년이 되었다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50년 동안 종 생활 하다가 오늘 풀려나는 날입니다 얼마나 자기 집에 가고 싶겠습니까? 자기 가족들 형제들이 보고 싶어서 가는데 조금만 생각한다면 그 소리를 몰라서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겠다는 그런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이런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았으면 정말 전해야 합니다.

 

성도의 사명입니다

아니 사명이라고 할 것도 없이 거저 종에서 놓임을 받는다면 다른 종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가 뻔히 계속해서 종으로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가 무슨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쉽게 알 수 있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어떻습니까? 설교도 아주 문자를 써가면서 합니다. 히브리어를 하고 헬라어를 하고 영어를 하면서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렵게 하면 종들이 어떻게 알고 자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렵게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가르치면 자기 인격에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가장 무식하고 가난한 자가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잘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나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안 전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복음은 정말 나 혼자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저도 이것을 다 개방하고 오픈 하니까 또 좋은 글로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나 혼자만 알고 있지 않고 나눠 주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리스도편지를 가능한 복음의 장으로 만들고 싶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이 너무도 복음과 동떨어져 있어 많은 한계를 느낍니다. 복음을 계속해서 보시면 자신이 성경 속에서 더 많은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은 다 아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계속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나도 더욱 풍성해지고 하늘의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정말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메일로 보내 드리는 파일을 보내서라도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육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사실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습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으면 전에 나와 같이 종 생활 하던 사람이 주변에 있는 가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종 생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라 나오면 재산도 다 찾고 자유도 얻을 수 있다 분명히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레위기 27:20-24절을 보겠습니다. (191)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 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을지며 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갈지니라

 

내가 돈이 많아서 남의 밭을 샀습니다.

밭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드리면 하나님 앞에 드린 것도 영원히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 안 되서 희년이 되면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 밭을 가져서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런 밭까지도 희년이 되면 본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밭을 받쳤던 사람이 돈을 주고 밭을 다시 사서 희년이 되면 본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받쳤던 밭까지도 희년이 되면 본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얼마나 강한 것입니까?

희년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자기 소유가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디로 팔려갔던지 다 본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돌아갑니다. 우리는 잃어 버렸던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을 다시 찾습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찾습니다.

옛날 평화로웠던 곳을 우리는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이 울리면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팔 소리가 들리는데도 나팔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 생활 하면서 나팔 소리가 들리면 자기 밭을 그냥 찾는 것입니다

거저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밭 값을 지불해서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희년 나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찾는 것인데도 그것을 지불해서 찾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거저 다 받아야 하는데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도 자기가 무엇을 해서 대가로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값을 주고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 천국 간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무엇을 많이 바쳐야 천국 간다. 이런 사람들은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듣고도 자기가 값을 지불하고 사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렸으면 완전한 자유로 돌아가야 합니다.

완전히 자기 기업을 거저 찾아야 하고 잃어 버렸던 것들을 거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잃어 버렸던 생명을 거저 받는 것입니다 잃어 버렸던 생명을 거저 받아야 하는데 이 생명의 값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그 밭을 살 수가 없습니다. 돌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희년의 나팔을 듣고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요한계시록 20장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회복 됩니까?

종으로 잡힌 것은 그 집에서 꼼짝없이 죽은 사람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꼼짝 못하고 그 집에 잡혀 있습니다. 사망은 사단에게 잡혀 있습니다. 사단에게 잡혀 있어서 사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데 희년의 나팔은 꼼짝 못하고 잡혀 있는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게 됩니까?

 

요한계시록 20:4-6절을 보겠습니다. (420)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절을 보겠습니다. (33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모든 사람은 사단에게 사로 잡혀서 영이 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사단에서 나오는 것이고 진짜 육체가 죽어 있는 상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천사장의 소리와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들리면 무덤 속에서 무덤을 깨뜨리고 그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 첫 째 부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팔 소리가 납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진짜 무덤 속에 있던 사람들이 그 무덤에서 살아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자고 있던 성도들의 영혼이 깨어서 나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을 하는 것 역시 성도들에게는 희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희년의 나팔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희년의 나팔을 불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들립니까? 나팔 소리가 들렸다면 우리는 그 나팔 소리와 함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율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결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망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철저하게 종교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서도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교단과 교회는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조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법은 빚을 지면 사람을 종으로 잡아 둡니다.

 

은혜의 해가 우리에게 전파 되었습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는 법으로 빚을 진 사람도 잡아 두지 못하는 것이 희년의 나팔 소리입니다

 

얼마나 강합니까?

법은 그들을 잡아 두었는데 법을 초월한 희년의 나팔 소리는 법도 그를 잡아 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돌려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서 사단에게 사로 잡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나팔 소리는 이런 모든 것에서 우리를 해방 시킨 것입니다 완전한 자유자입니다

 

누가복음 4:18-1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94)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령이 임하셨을 때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도 성령이 임하면 포로 된 자를 자유케 눈먼 자를 다시 보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율법에서 벗어나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합니다. 성경은 복음을 깨닫기 전하고 복음을 깨달은 후하고 보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참 이상 합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있을 때 성경을 보면 전부 율법으로만 보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보는데도 이상하게 다 율법의 행위로만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만 찾아서 설교 합니다

이것 해야 되고 저것 해야 되고 해야 되는 것만 보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성경이 다시 보여 집니다 눈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면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눈이 열려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열려지게 해야 합니다

 

이사야 43:8절을 보겠습니다. (1019)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눈이 있어도 소경이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소경이 보고 귀머거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 열어지게 해야 합니다 눌린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에 눌려 있습니다. 겁이 나서 하루 저녁 철야 안가면 큰일 납니다 왜 그러냐면 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만 다른 일 하면 이상하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사단이 그렇게 합니다.

 

꼭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같이 그렇게 만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실수 하면 달달 볶는 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밤에는 평안히 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몇 날을 밤을 새고 기도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매주 아니 거의 매일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 안 했다고 당장 두드려 패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정말 잘못된 사상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단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마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눌려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이 성령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의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은혜는 거저 주는 것 아닙니까? 거저 주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는 생명도 거저, 천국도 거저, 부활도 거저,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희년 나팔 소리가 들리면 종들이 나가서 보면 열매가 나무마다 달려 있습니다. 종들이 나가서 마음껏 따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누가 막는 사람 없고 때리는 사람도 없고 남의 집에 것을 따먹든 내 집에 있는 것을 따먹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는 것이 희년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누구도 일 안한다고 말 안 합니다 일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이 모든 사람에게 공포가 되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않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받으시고 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았으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눌려 있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신앙생활이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율법에 잡혀 있으면 매일 겁이 나고 벌벌 떱니다.

무엇을 해도 평안 하지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들은 것 같이 평안하고 자유롭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은혜의 해를 선포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포로를 자유케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사명이 주어 졌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내가 직접 할 수 없으면 복음 전하는 자를 돕는 것도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할 때 여러분들을 통해서 사로잡힌 종들이 해방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이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현재 어려운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것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오직 복음입니다 사나 죽으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을 우리도 성령을 받았으니까 이 일을 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기쁨이 넘쳐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