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17강, 최고의 보물

윤주만목사 2019. 3. 8. 17:02


17, 최고의 보물

 

로마서 15:4절을 보겠습니다. (259)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말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성경도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냐고 말 합니다 또한 수많은 이단들은 성경보다 더 좋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진리를 가린 나름대로의 책을 가지고 진리를 왜곡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애써 폄하하면서 세상에는 성경과 같이 좋은 책이 얼마든지 많다고 주장 합니다

 

오늘은 성경이 최고의 보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돈을, 명예를, 아니면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하면서 자기 자신이 귀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가지면 돈으로 해서 만족함이 없습니다.

명예를 가져도 또한 그것으로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다 얻는다고 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돈을 풍족할 만큼 또한 명예를 대통령이 안 되어 봐서 그렇지 그것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것을 최고로 생각하고 살지만 막상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지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어느 정도는 몸이 편하고 마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돈이 많거나 명예를 얻거나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는 편안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성경이 그런 안위를 주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아마 이 시대의 교인들은 그런 것을 통해서 안위를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옵니다.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안위를 받으려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을 자기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런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통해 안위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적으로는 안위가 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진정으로 안위를 줄 수 있는 것이 됩니까? 재물이라는 것이 명예라는 것이 그리고 지적인 능력이라든지 은사라든지 그런 것이 끝까지 안위를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살아서도 절대적으로 안위가 되지는 못 할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고 또 그것을 더 벌려고 늘 고민을 하게 되어 있고 또 명예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안위가 아니라 근심입니다

아마 행복지수를 조사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위로를 받는 것을 안위라 합니다.

몸이 편안하다고 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만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일을 안 하고 놀고만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에게 적당한 일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이라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또 어떤 것으로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남은 잘 모를지라도 자기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위로를 해 줄 수 있습니까?

나만이 알고 있는 너무도 연약한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이야기 하지도 못하는 것을 누가 알고 위로를 해 줄 수 있습니까? 자기만 알고 있는 수치를 누가 알고 그것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있습니다.

모두에게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혹시 위로를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은 수치가 더 많이 있고 그것을 늘 마음 한 편에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이겨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 보지만 육체의 한계를 느끼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해서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다고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번 죽는 것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이 죄로 인하여 죽는 것입니다

 

죄인입니다.

누가 죄인을 위로를 해 주겠습니까? 물론 작은 죄에 대해서는 위로를 해 주고 격려를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 부모일 때 가능하지 남은 용서를 하기 보다는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위로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갑자가 엄마가 없어져서 아주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맛있는 과자를 주고 또 웃기고 하는 것이 위로가 됩니까?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아이는 과자를 먹으면서도 서럽게 울게 되어 있습니다.

 

위로가 안 됩니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을 수 있어서 잠시 그것을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아이를 위로하지는 못 합니다.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엄마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아이도 엄마가 오면 울음을 그치고 엄마에게 달려서 안겨서 웃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위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66:11절을 보겠습니다. (1048)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성경에서 주는 위로입니다

물론 이 위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위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위로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보세요.

아무리 울던 아이도 엄마가 돌아와서 그 젖을 물리면 그 안에서 서럽게 울던 울음을 그치고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아마 아이를 길러 보신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이 엄마가 되어 보신 분들이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5:4절을 보겠습니다. (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왜 애통을 합니까?

우리 인생은 잃어버린 에덴을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내 마음에 있는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그 죄로 인하여 천국에 가고 싶지만 도저히 갈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죄는 아는 성도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애통한다고 하니까 뭐 이 세상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단에게 져서 죄를 짐으로 해서 천국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애통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를 간절히 소망하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애통입니다

그렇게 애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젖을 빠는 자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로가 여러분에게 임해야 성경에서 안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런 위로가 은혜로 넘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66:13절을 보겠습니다. (1049)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얼마나 가슴이 짠합니까?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 우는 아이를 엄마가 찾아서 위로를 해 본 사람만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잃었습니다.

영의 부모를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다시 찾아서 위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위로는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그렇게 젖을 물리는 그런 위로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이보다 더 큰데 더 이상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미가 젖을 물리는 것으로 표현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위로를 성경을 통해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받는 안위는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은 어떤 위로를 받더라도 그것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너무도 모르고 성경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21:4절을 보겠습니다. (420)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성도는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죄인입니다 너무도 연약해서 그것을 이기지 못해서 늘 지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애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의 눈물을 씻겨 주시고 그 죄로 인하여 다시 사망이 없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아픈 것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아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런 아픔을 낫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저 육체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영의 말씀입니다

육체의 안위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과 환란을 당하면서 살아간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천국을 위해서는 그 육체의 것은 기꺼이 감당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고 영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6:18-20절을 보겠습니다. (35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우리에게 큰 안위를 주고 있습니다.

소망을 얻으려고 가는 우리에게 큰 안위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이런 안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요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소망의 안위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셔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성막 안에 휘장이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것이 바로 휘장입니다 이 휘장 안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은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의미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씻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 대제사장의 제사가 받아들여야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속죄제에서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해진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를 믿는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안위입니까?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가서 살 수 없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살다가 짐승과 같이 죽어야 하는데 그런 죄인인 우리를 안위를 해 주기는 것이 바로 우리 앞에 계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가 엄마가 와서 젖을 물려서 안위를 받게 하는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고 우리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기록해 주고 있고 이것을 통해서 안위를 받게 해 주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엄마가 없어 젖을 못 먹고 있는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는데 그 아이에게는 엄마 보다 더 큰 보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주고 금을 주고 다이아몬드를 줘 보시 바랍니다. 그런 것으로는 아니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안위를 받지 못 합니다

 

그러나 엄마가 오면 됩니다.

그리고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아이는 큰 안위를 받고 금세 미소를 짓고 방긋 웃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또 다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보물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육체어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육체의 안위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최고의 보물입니까?

그것은 젖을 물수 있는 엄마의 품이 최고의 보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내세를 소망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고난과 환란을 당하고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최고의 보물이고 그것을 통해 안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보물이 될 수 있고 또 그것이 저주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보물을 찾는 사람은 그것이 보물이 될 수 있고 보물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2-3절을 보겠습니다. (325)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왜 성경이 최고의 보물입니까?

그 안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이 예수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직 실감을 못 합니다.

아니 인생들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도무지 무엇을 실감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뜬 구름 같이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더 이상하게 보여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찾으면 다릅니다.

성경 안에서 보물을 찾으면 내가 이 세상에 얻을 수 있는 그런 안위가 아니라 마치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며 느끼는 안위 같은 아니 그보다 더 큰 안위를 얻을 수 있고 또 영혼 구원을 받아 천국에 있는 모든 보화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가 된 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잡스가 죽었습니다. 불과 56년의 짧은 생을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돈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진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인생 자체로는 안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오는데 어떻게 안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안위를 받으려면 죽음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그가 죽는다면 그는 안위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결과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안위입니다

마치 아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과 같은 안위를 주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최고의 보물을 찾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을 많이 보고 있고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들이 안위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 젖을 빠는 어린아이가 받는 그런 풍족한 안위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안위가 있다면 성경에서 최고의 보물을 찾은 성도라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안위로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만 바로 알아도 이 말씀에서 흔들리지만 않아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가 함께 공존하는 가운데서는 행위의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소망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까?

이생의 소망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여러분의 영혼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 소망을 갖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소망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고 모두가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잘 보아야 합니다.

아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서 안위를 얻을 수도 있고 또 그 안위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안위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정죄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성경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실제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정죄를 당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것은 안위가 될 수 없습니다. 안위는 우는 아이에게 아무 조건이 없이 엄마가 젖을 물렸을 때 안위를 얻는 것입니다

 

지금은 말씀의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리고 소중함을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합니다. 미디어가 발달을 해서 어디서든지 쉽게 말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귀한 것인 줄을 모릅니다. 또 분별이 안 됩니다 가장 귀한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말씀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천하를 다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다 얻고 나서 우리의 생명을 잃는 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이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우리의 생명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요한복음 5:39절을 보겠습니다. (15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이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에 성경이 가장 귀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극히 귀한 보물인 이 성경이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육체가 뻔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죽음 이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당장 자기 육체를 이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영생 좋지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 멀리 있고 당장의 빵이 더 좋습니다. 그 빵 때문에 성경에서 영생을 찾는 것이 막히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영생에 대해서 찾으려고 하지를 않고 당장의 빵을 찾으려 하다가 보물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영생은 미래의 것으로 생각을 하고 당장의 이생의 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오직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바로 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상고하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빵이 더 급합니다.

이생의 복이 이생의 의로움이 더 급합니다. 그런 것으로 인하여 정작 중요한 보물을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고 다른 것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로마서 15:4절 말씀을 보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해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최고의 소망은 영생입니다

그 소망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가장 귀한 보물을 가졌습니다. 세상에서 보물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왜 기록이 되었는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늘의 것을 찾기 보다는 이생의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가져다주는 보물이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3:15절을 보겠습니다. (346)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성경에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는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사실 지금 살아 있다 보니까 그 구원이라는 것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구원

죽은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실감할 수 있느냐면 나라가 빼앗겨서 그것에 저항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날을 기다리다가 나라가 해방이 되어 그 옥에서 놓임을 받은 사람만이 이 구원에 대해서 실감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잘 모릅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는 것인 줄을 예수를 믿으면서도 실감이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기 죄를 알고 또 그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그것을 아는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이 구원에 대해서 실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성경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하신 명령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 구원을 못 받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3:16-17절을 보겠습니다. (34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도 사람이 쓴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합니다.

성경은 1600여 년 동안 기록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쓰여 진 기간이 1600년 이란 기간이 걸렸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약40여명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부류는 왕으로부터 어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6세기 이전 사람과 16세기가 지난 사람의 사상과 생각의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16세기 이전 사람과 지식적 문화적 차이는 엄청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컴퓨터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50년 전에 사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아마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나와서 다양한 정보를 집에서 사무실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실시간으로 누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50여 년 전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50년만 지나도 이렇게 엄청난 문화적 지식적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1600년이란 긴 기간 동안 기록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600년 전 사람이나 1600년이 지나서 기록한 사람의 지식이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1600년 전 사람과 그 후에 사람의 지식을 같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수천 년 전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현대인이 구원 받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또한 40여명의 저자가 기록을 했습니다.

왕으로부터 어부 농부까지 기록하였는데 그들의 지식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 차이 없겠지만 50여년전만해도 왕과 어부의 지식차이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왕이나 어부의 지식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어부, 농부의 지식이 더 높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그 자체가 성경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부분을 살펴 볼 때 인간이 스스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서두에 거의 모두가 하나님이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자기가 기록 했다면 자기의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한권으로 되어 있지만 성경은 한권씩 따로 있는 것을 모아서 편집한 것입니다

 

이 성경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썼다면 서로의 사상이 담겨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식 차이가 없이 기록 되었습니다 같은 시대 사람들이 한 가지 주재를 가지고 말한다 할지라도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학력 같은 나이의 사람이 기록하더라도 다른 것이 나옵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 지역적으로 다른 곳의 사람이 썼을 지라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에서 오류를 찾으려고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내면 그것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담겨져 있는 보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구분해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다른 쪽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시한 분이 한분이라는 증거입니다 성경을 기록하도록 지시한 분이 한분이기 때문에 지식이 많다고 해서 자기 지식을 자랑 할 수 없으며 지식이 없다 해서 무식함을 드러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록하라고 한 대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자기 사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자기 지식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 하셔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시대적인 신분적인 지식적인 차이가 있어서 모두가 동일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의 담화문을 벽보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럼 그 벽보를 보고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담화문을 대통령이 직접 쓰지 않았을 지라도 대통령이 말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이 글을 쓰도록 지시한 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사람이 기록했을 지라도 그것을 쓰도록 지시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고 지시를 하셔서 선지자들이 기록을 했습니다.

 

1600전에 어떤 사람이 기록한 글에서 해답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1600후에 쓴 사람의 글에서 그 해답이 나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처음 기록된 책에서 해석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1600년 후에 기록한 사람의 책에서 그 문제가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분의 말씀입니다

비록 저자는 다를지라도 모든 성경이 하나로 통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성경 자체가 스스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2:34절을 보겠습니다. (1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 말씀은 뜨인 돌이 하나 나타나서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는데 이 말씀은 구약의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만 보면 이 뜨인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2:4절을 보겠습니다. (37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가 나아와.......

구약에 한 돌이 나타나서 신상을 부숴뜨린다는 해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그것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신약에 와서 그 답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신약에 있는 것을 구약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13:1절을 보겠습니다. (41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보아서는 해석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선지자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해석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뿔이 열 있는 짐승이 나왔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 해석을 찾아보겠습니다.

 

사실 이 말씀도 해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시대 새로운 열 나라가 나타난다고 하면서 유럽이 하나의 통화를 쓰면서 유로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같이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아마 이 열 뿔에 대해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 열나라가 유럽을 지칭하는 것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열나라가 마지막에 나타나서 마치 그가 세계를 통일을 함으로 해서 사람들을 다스릴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시아의 열 나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각각 그 해석이 분분합니다.

 

다니엘7:24절을 보겠습니다. (1246)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신약의 열 뿔 짐승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열 뿔이 구약에서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신약의 어려운 문제들을 구약에서 해석 하도록 하나님께서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신약의 사람이 언제 이 말씀을 쓸 줄 알고 옛날 사람이 그 말을 미리 기록 하겠습니까?

 

이 열 나라는 나중에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이 열 나라는 지금 이 시대의 열나라가 아니라 이미 헬라 시대가 지난 후에 태동을 했다가 사라진 열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쓸 수가 있겠습니까?

신약에 와서 해석 되어야 할 문제를 옛날 사람이 기록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옛날 사람이 기록한 말씀에서 그 해석이 나옵니다. 이런 문제들을 볼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부인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말씀마다 서로 다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에서는 야고보서를 마치 다른 성경처럼 해석하고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마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교리서라고 이야기를 하고 믿음으로 살다 보니까 행위가 문제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야고보서를 기록해서 행함을 강조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허황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가 행위를 강조하는 말씀입니까?

사실 야고보서는 성도의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로마서 보다 더 강한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행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인데도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반대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그냥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구원론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면 야고보서도 역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입니다

만약에 로마서는 예수 믿어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이고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하는 말씀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보물을 발견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또한 도마복음이라든지 외경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미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으면 요한계시록으로 끝내지 않고 더 많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아는데 부족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데 조금도 부족 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은 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이런 예언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1년부터 10년까지 어떤 사람이 예언을 하였는데 9년까지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 되었다면 나머지 1년도 성취 되는 것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 남은 약속은 사람들이 믿기 힘든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냥 부활만을 생각한다면 믿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러나 처음 약속부터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게 하기 위해서 방대한 분량의 성경을 사람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예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말씀을 통해서 창세기부터 예언된 모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졌음을 말씀을 통해서 밝혀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3:19절을 보겠습니다. (171)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나중에 믿게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수많은 예언들이 하나하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 이루어지는 일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해서 쓰셨음을 성경을 보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육적으로 구원하는 것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구원을 받을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귀한 보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보물을 보물로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또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보물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선지자들의 생각을 보겠습니다.

 

욥기23:12절을 보겠습니다. (784)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그 입의 말씀을 일정한 음식보다 귀히 여겼구나...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정한 음식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사실 영혼 구원을 사모하는 성도가 아니고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성경이 여러분에게 일정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시편19:9-10절을 보겠습니다. (81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 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

음식을 먹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음식 가운데 최고로 맛있는 것이 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적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음식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에 꿀 송이 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 사실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 얼마나 단가를 말씀을 통해서 경험을 해야 합니다.

 

꿀 송이 보다 더 답니까?

성도님들은 아직 꿀 송이 보다 달지가 않지요? 말씀이 꿀 송이 보다 더 달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서는 꿀 송이 보다 더 달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냥 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심령을 감동시켜야 그 말씀이 정말 달아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때가 되면 성경을 보면서 깨달아 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꿀 송이 보다 더 달게 됩니다. 사형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에게 자유를 선포한다면 그 말이 얼마나 달게 느껴지겠습니까? 누군가 그 말을 전해 줄 때 그 말은 정말 꿀 송이보다 더 달게 느낄 것입니다

 

그냥 성경을 평범하게 읽어서는 달아 질수가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이 정말 꿀 송이 보다 더 달다는 것을 체험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보는 여러분에게도 아직 꿀 송이 보다 달아보지 못한 분들은 성령께서 달아 지도록 인도 하실 줄 믿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이 꿀 송이 보다 더 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꿀 송이보다 더 달도록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생명에 목말라 있던 사람에게 생수와 같은 시원함을 주심으로 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구원에 대한 말씀이 하나하나 깨달아 질 때 정말 성경이 달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잠언 8:9-10절을 보겠습니다. (918)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정금 보다 지식을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은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으며 정금보다 하나님 아는 지식을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정금보다 하나님 아는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지식을 얻으면 정말 꿀 송이 보다 더 달게 됩니다.

예레미야15:16절을 보겠습니다. (1075)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최고의 희락 최고의 기쁨 최고의 만족을 하나님 말씀이 가져다줍니다.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에게 살 수 있다고 하는 소식은 아마 최고의 기쁨과 희락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밖에는 없다는 것을 실감해야 합니다.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기쁨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 기쁨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 그것을 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요한복음17:17절을 보겠습니다. (178)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시대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지금이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리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어떤 나라 말도 번역이 되었어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변한다고 하는 사람은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저들에게는 낫습니다.

 

시편119:105절을 보겠습니다. (894)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발의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길을 찾아 갈수 있는 등불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길을 찾아 갑니까? 인생의 길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집을 찾아 가는 길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말씀이 아니고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길 곧 그 참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참 길을 찾아 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말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진리가 되고 빛이 되고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물론 가장 중요한 구원의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당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진리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성경에서 벗어나서 많은 예화로 꾸며서 사람의 감성을 자극 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바른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설교에 예수가 들어 있어도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보다도 세상 예화가 중심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세상 이야기로 살며시 가리는 것이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시편10:4절을 보겠습니다. (809)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교회 안에 악인이 있습니다.

악인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부분은 자기들의 선택 또는 의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이단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 입니까? 성경 이외에 다른 책을 중시 한다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원리 강론이 있습니다. 이단들을 보세요. 그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그 길은 참 길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등대가 됨을 깨닫고 성도의 삶에서 어떤 문제가 부딪칠 때 말씀에서 그 길을 찾습니다. 말씀을 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말씀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그 해석을 말씀에서 찾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사도행전17:11절을 보겠습니다. (217)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지혜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베뢰아 사람이 더 신사적인 이유는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이 맞는가를 성경 안에서 검토해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특별한 말씀을 전하면 이 말씀이 맞는가? 틀리는가? 를 성경 안에서 검토 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도 마찬 가지입니다

받아 보시는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맞는 가 틀리는 가를 검토해야 신사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찮은 사람의 말씀을 들었어도 성경을 비추어 검토하여 맞으면 그 분은 참 진리를 전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유명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이 성경과 다르면 이 세상의 어떤 유명한 사람이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신사적인 사람이 적습니다.

신사적인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말씀이 성경과 일치 되는 가를 확인하는 사람이 신사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사는 사라졌고 맹목적인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그들의 맹목이 무지가 되어서 나중에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신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기를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분이 전하는 말씀이라고 무조건 아멘! 아멘! 받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5:12-14절을 보겠습니다. (357)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사람은 선악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하는 말씀을 듣고 분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입니다 무조건 의심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내 스스로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 가 살펴보아야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젖을 줘도 먹고 독약을 줘도 그냥 받아먹습니다.

주는 대로 먹습니다. 장성한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구별해서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주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분별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믿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때가 오래되어서 선생이 되어야 될 텐데 아직도 어린 아이가 되어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혹시 잘못 전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이 지적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도 살고 여러분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선악을 분별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지를 않습니다. 줘 봐도 먹지를 않습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먹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독이 되는 가 생명이 되는가 분별을 해서 먹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참으로 분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5-16절을 보겠습니다. (387)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는 약한 사람들이 스스로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어려운 문제들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이단들이 억지로 푸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억지로 풀다가 망 합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어려운 것들만 억지로 풉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먼저 안 사람들을 통해서 그 다음 사람이 알게 해 주십니다 먼저 배운 사람이 그 다음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누가 억지로 풀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율법을 보면서 그것을 억지로 풀었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들 스스로의 생각으로 풀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억지가 무엇입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믿고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또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 같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성경에는 정말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저기를 보면 꼭 행위를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말씀들을 바로 해석하지 않고 믿음도 주장했다가 또 율법도 주장을 하는 것이 바로 억지로 풀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에 반대 되는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정말 묵상을 하면서 왜 이렇게 반대 되는 말씀이 기록이 되었는가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말씀을 왜 그렇게 기록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 훼손 되지 않게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억지로 해석을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망합니다.

억지로 해석을 하면 망하는 길입니다 성경에 기초가 되는 것이 흔들리게 되면 억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2:2절을 보겠습니다. (344)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귀중 합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될 수가 있습니다.

 

목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가 기초가 되어 든든히 서갈 때 말씀을 계속 먹다 보면 그 말씀이 어느 순간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늘 묵상하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을 계속 받아먹다 보면 그것이 저절로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쳐흐를 때는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합니다.

말씀을 우리 스스로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해 주셔야 가능 합니다 여러분도 혼자서 성경을 어느 부분을 읽고 깨달으신 것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령께서 인도 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요한복음14:26절을 보겠습니다. (17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보혜사가 오셔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깨닫는 것은 그것은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운행 하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는 자체가 성령이 감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 합니다. 사실 성령이 감동하지 않으면 복음을 못 듣습니다. 아니 듣는 것 자체를 너무도 싫어합니다.

 

히브리서4:12절을 보겠습니다. (35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더 예리하다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냥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나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으니까 그 말씀을 보거나 들으며 사람의 심령이 뒤집혀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 날선 검보다 예리 합니다 마음을 찔러 쪼개기 까지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사모해서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전혀 불가능 한 것도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능력이 되어 나타납니다.

성도들이 성경 읽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성도는 분명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심령을 변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3:29절을 보겠습니다. (108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고 방망이 같습니다.

진리를 거부하면 그 마음이 쿵당쿵당합니다. 그 심령을 치니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길로 가면 마음이 요동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마치 세상의 좋은 예화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능력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그 심령을 주관 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어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은 한마디만 들어가도 능력이 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은 놀라운 운동력이 있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귀중함을 성경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개역 성경을 개역 개정판으로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보물 중에 보물입니다

그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처럼 여러분에게도 꿀 송이처럼 단 맛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구절을 통해서도 그 맛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늘 말씀을 묵상해서 그 안에서 보물을 찾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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