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강,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마태복음21:12-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성경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지적으로 똑똑합니다. 그렇게 똑똑한 것이 절대로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똑똑한 것이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주님이 오셨을 때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너무 똑똑해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을 잘못 믿어서도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그들은 진실 되게 하나님을 믿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입니다.
지적인 사람들은 팩트를 중시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팩트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이 팩트를 기준으로 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팩트를 중시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팩트가 없이 무엇을 주장한다는 것은 사실 그것은 너무도 허황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팩트에 충실하명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팩트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성경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팩트 그대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팩트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욱 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에 집착을 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했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그런 이스라엘을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성전에서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었고 그 팩트를 받아들이고 있는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제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지금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은 틀리고 주님의 말씀이 맞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팩트의 기준에서 보면 분명히 이스라엘은 팩트 그대로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팩트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는 책망을 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 성경의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마태복음의 말씀은 분명히 주님께서 잘못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팩트 그대로는 주님께서 잘못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성경에 없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심이라는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는 분명히 팩트입니다.
세상의 이성적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팩트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팩트가 영의 일로 볼 때는 팩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성경의 문자의 팩트를 어겨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그대로가 팩트가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팩트가 됩니다. 법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재판관이라고 해도 법전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벗어난 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팩트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을 했습니다.
그럼 그 살인에 대한 법전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가 팩트가 됩니다. 그것을 재판장이 마음대로 변경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은 성경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마치 세상의 법전을 보듯이 보았고 그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문자 중심으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문자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팩트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의 일에 있어서는 팩트가 될 수 있는가를 우리는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고 이방의 교회 역시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의 단어의 뜻입니다. 또 헬라어의 단어의 뜻입니다. 그것을 보고 팩트라고 하고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스라엘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던 것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단어를 압니까?
그리고 그 뜻을 압니까?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인용을 하지 않는가 하면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면 도무지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팩트만을 고집하다가 결국에는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팩트를 보고 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역시 성경의 문자를 고집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자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목사들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뜻을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자기 육체의 생명이 걸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암 병이 걸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병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겠습니까? 아마도 밤을 새워가면서 내가 걸린 이 병을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영생의 문제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있고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는 그 팩트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시 성전에서 그렇게 했지만 그것이 영에 일에 있어서 팩트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하나
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팩트입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죄에 다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그것은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누가 알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이 말씀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이성적 지식입니까?
그것은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고 있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고 있는 그것이 팩트가 아니라 이제 내가 가면 성령이 오시는데 그가 오시면 영의 일에 있어서 팩트를 말씀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아카데미 강의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시면 이제까지 사람의 이성으로 알고 있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를 내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팩트가 아닌 것을 가지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팩트라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신명기14:25절을 보면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팩트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입니다 이 말씀은 십일조에 대해서 율법에 정해진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 하면 성전이 멀면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서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거기서 사서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했습니까?
우리는 정말 냉정하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이스라엘이 잘못했다고 하지 마시고 왜 이스라엘이 잘못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우리는 주님을 믿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조건 옳고 이스라엘이 뭔가 잘못을 했으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하지 마시고 또 그들은 진심이 없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보다는 인간적으로 보면 그들이 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팩트에 근거를 하면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모르셔서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영의 일에 있어서 팩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세상 말로 쉽게 말을 하면 행패를 부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먼저 그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을 보아야 이해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팩트는 실상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실상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먼저 이 신명기에 대한 말씀을 설교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그리면 십일조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비유로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실상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는 실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스라엘이 팩트가 맞지만 성경의 비밀을 깨닫게 되면 그것은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실상을 모르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것에 팩트라고 하면서 그대로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이제 영의 일에 대해서 실상을 이스라엘에게 행동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역시 이 시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17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성전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성전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될 것을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는 자들이 성행을 하게 되고 그렇게 매매를 하는 자들은 모두가 짐승에게 사로잡힌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미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그 환상과 같이 짐승이 되어 버린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짐승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짐승이 되어 있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내어 쫓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영의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성전에서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이 주님의 육체가 되어서 이 성전을 보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서 성전에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되었습니다.
저의 육체가 되어서 이스라엘이 이 성전을 보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육체의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 행위라는 것을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서 매매를 하는 장소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성전을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보이는 성전을 주님께서는 무너뜨리셨습니다.
왜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그것은 바로 팩트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의미를 모르고 영의 일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대로 하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 역시 성경의 문자를 보고 팩트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텍스트입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성경을 안다고 한 그 모든 행위들이 매매하는 자들의 행위가 되어서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대로 하고 있습니까?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성경대로 하는 것을 참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기독교 안에서 부르고 있는 노래도 성경의 문자 그대로를 곡조를 붙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인간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마치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어 주고 매매를 하는 것과 같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팩트가 무엇입니까?
성전은 주님의 육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십일조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짐승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그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심지어는 자기들이 건물로 지어 놓은 것을 보고 성전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문자로도 없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성경에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하나도 정의를 내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다 지금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하고 있는 매매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건물로 지어 놓은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고 돈을 바꾸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을 보고 그대로 행위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 시대 역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건물로 지어 놓은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고 돈을 바꾸고 있습니다.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짐승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것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하고 있는 매매하는 일이며 돈을 바꾸는 일이 되고 비둘기를 파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2000년 전에 오셔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똑같은 행위를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전은 주님의 육체입니다 그 성전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향단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56:7절을 보면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성전입니다
보이는 성전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예언을 하신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이제 그 성전이 어디로 갔습니까? 교회가 성전입니까? 정말 무지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절대로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그 성전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지금 교회가 기도를 하는 집입니까? 교회 안에서 많은 기도를 한다고 해서 마치 그 교회가 기도를 하는 집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하고 있는 기도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기도가 아니라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습니다. 내 기도가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인지 성경에서 말씀하고 기도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도입니다
이 시대는 그저 교회에 나와서 그리고 자기 혼자서 눈을 감고 말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하면 그것이 마치 기도를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아니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은 실상은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일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육체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도를 하는 집인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는 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기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그저 눈 감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하는 것을 기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왜 합니까?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까? 그런 기도는 무당도 하고 있고 절에 있는 스님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하신 것은 구원에 대해서 기도를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7:11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일이었고 그것을 보고 주님께서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한 모든 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사망의 길고 갔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기도를 하라고 하면서 바알에게 분향을 하게 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면 역시 강도의 굴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강도입니다
누가 강도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있는 바리새인과 제사장이 강도가 되어서 이스라엘의 영혼들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은 건물을 지어 놓고 그것을 교회라고하고 있고 심지어는 성전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서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여러 가지 행위를 하면서 영혼들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강도의 굴혈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 놓고서 사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바로 그 종교인들에게 속아서 저주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아니 강도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해서 팩트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행위들이 제사가 되고 있고 바알에게 하고 있는 분향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신명기29:4절을 보면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도행전20:32절을 보면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소경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은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의 일을 모르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샤머니즘에 빠져 무당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소경입니다
왜 소경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보는 눈을 주시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영의 일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안다고 해서 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영의 일에 있어서 실상이 아니라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는 자입니다
왜 저는 자인가 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은혜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들이 은혜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은혜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것을 팩트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또 성전 뜰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은 주님이 하신 일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니까 이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팩트입니다
자기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가 와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하고 있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을 내어 쫓으시고 또 둘러엎으시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지금 이 시대 교회라는 건물에 주님이 들어와서 똑같이 하고 있다면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저 사람이 미쳤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알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주님이 미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주님께서 둘러엎으시고 내어 쫓으신다면 저 사람이 지쳤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의 문자가 그렇습니다.
그것을 팩트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은 분명히 미쳤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에서 행패를 부리는데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못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환상에서 보니까 이 시대 교회가 짐승이 되어서 매매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예수께서 그들을 남겨 두고,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에서 밤을 지내셨다.
시편8:2절을 보면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베드로전서2:2절을 보면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다윗과 같은 왕이라고 찬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분이 나서 참지를 못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시편에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젖먹이입니다
시편에서는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입니다.
그리고 젖먹이입니다 이들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고 있는 신령한 젖을 먹고 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있어 그들이 주님을 찬미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원을 하기 위해서이고 그들이 신령한 젖을 먹고 찬미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주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젖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들이 구원을 받는 그 자체가 주님을 찬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해서 영혼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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