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외식
누가복음 5:30절을 보겠습니다. (신 97쪽)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이스라엘은 죄인들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함께 먹지를 않았습니다. 이것은 율법에 유월절의 규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규례로 내려오면서 율법주의자들은 죄인들과 함께 먹으면 자기도 죄인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아직 초대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 중에는 바리새파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15장에서 말씀을 보았듯이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율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조상대대로 지켜온 율법도 지키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도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어찌하여 너희가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그 제자들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어찌하여 율법을 어기느냐 그리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라고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사상들이 그대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것을 직접 보이시면서 세리와 죄인들과 먹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 분명히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보면 알겠지만 바리새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는 이미 한번 이 경험을 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먹었습니다. 그 일을 유대인들이 알고 나서 베드로를 힐문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환상으로 보여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고 그렇게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입니다.
이런 율법의 문제가 정립이 안 되어 있었던 때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베드로도 그때 분명히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났던 일이었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또 그런 일이 있자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함께 먹다가 그 자리를 서둘러서 피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도도 이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보혜사가 오셨습니다, 그런 그도 역시 이렇게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외식에 빠지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쉽게 외식에 빠집니까?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베드로도 쉽게 외식에 빠져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베드로도 이렇게 쉽게 빠지는 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베드로가 외식에 빠진 것은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다가 외식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절대로 외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다 보니까 외식에 빠지고 그것이 성령의 책망을 받을 일이고 만약에 그가 면책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29:25절을 보겠습니다. (구 944쪽)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베드로가 누구를 두려워했습니까?
할례자들을 두려워하다가 외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할례자들을 두려워했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두려워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아직 성경이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이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 정립이 안 되어 있는 초대교회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할례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두려워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도 역시 잠시 이렇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두려워서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인하여 비방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하지만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어떻게 미혹을 당하는 가를 베드로의 외식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잠시 외식에 빠졌을지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면책을 하게 함으로 해서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왜 두려워합니까?
사람의 이성은 바로 법입니다, 그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행위를 내가 어겼을 때 그 사람이 나를 비방할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 행위가 올무에 걸리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도 이렇게 됩니다.
외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외식에 빠지는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쉽게 빠지는 것이 외식입니다, 그리고 그 외식이 어떠한 결과는 가져오는가 하면 사단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3쪽)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머지 유다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게바와 함께 물러나갔고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외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같이 외식을 하고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이 유혹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외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 외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도 아주 철저하게 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바나바는 그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에 복음을 전했던 바나바도 그렇게 쉽게 외식에 빠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집사가 순교를 당한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가까운 지역으로 흩어진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메섹이기도 하고 또 안디옥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바리새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자기 조상들이 메었던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흩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외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외식이라는 것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식이라는 단어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겉모양을 좋게 꾸미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좋게 꾸미는 겉모양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외식이라고 하니까 나쁜 의미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겉모양을 내는 것 자체가 외식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꼭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외식하므로 심지어는 바나바까지도 외식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외식한 것이 나쁜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보았을 때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이방인과 함께 먹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일을 수천 년 동안 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겉으로 모양을 냈던 그 모든 행위들이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그 외식이라는 것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외식이라고 하니까 마치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그대로 행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믿는다는 것을 겉모양으로 나타내고 있다면 그것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누가 외식을 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외식을 했고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외식을 했고 바나바까지도 외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외식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으면 했겠습니까?
만약에 사도 바울이 면책을 하기 전에 이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한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베드로가 그렇게 안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외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 외식이 자기 조상 대대로 지켜오던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잠깐 자기도 모르게 외식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을 두려워서 그렇게 했습니다. 왜 두려워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그것을 안 하면 그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식사 기도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식사 기도를 하지 말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냐고 물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을 감사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외식입니다.
자기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행위는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이 시대는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누가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했는가를 실제로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기도를 해야 하는 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했다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근거로 해서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궁색하기만 합니다.
왜 식사 기도를 합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타내는 것을 외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진심으로 감사해서 기도를 하는 마음까지 제가 폄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감사해서 했을지라도 겉모양을 나타내고 있다면 그것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기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식사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그 모양이 보기에 좋지 않습니까? 진심이라는 그런 말은 그리고 믿음이라는 그런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정말 냉정하게 보지 않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5절을 보겠습니다. (신 8쪽)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외식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결국 외식에 빠져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도 진심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진심이고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 역시도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일부러 보이려고 했든지 믿음으로 했든지 사람에게 보이면 같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했으면 사람에게 안 보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 뜻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도 이러한 행위들이 하나님을 믿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 사람들이 회당과 큰 어귀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이 시대 교회 안에서와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공공의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나는 진심입니까?
나는 믿음으로 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허탄한 이야기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했더라도 그것이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것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양을 보고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고 인정을 한다면 그것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식사기도 외식입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분명히 외식입니다. 그러면 주님도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축사하신 것도 외식이냐고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육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실제 영의 양식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천 명도 먹이시고 삼천 명도 먹이셨습니다.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믿음으로 했든 진심으로 했든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 시대 왜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물론 감사하는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사 기도를 모두가 다 하고 있는데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할까봐 식사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기도 뿐 아닙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외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겉모양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 다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식사 기도만 외식이 아니라 너무 많은 외식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행위를 보고 아!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정을 하면 그것이 바로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외식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외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외식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어느 누가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시작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해 보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보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따라 했고 그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외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기도 뿐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이 있는 성도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러한 행위들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여지다보니까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종교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교회에서나 그리고 가정에서 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중이 있는 식당에서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다 들으라고 기도를 큰 소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사람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이들은 이미 상을 다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라고 부르는 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상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상은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왜 육체를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가 하는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유혹이 되었습니다.
바나바까지도 그들에게 유혹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이방에 가르치고 있는데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를 하러 간 바나바까지도 베드로의 외식에 유혹이 되어 넘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외식을 도리어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 것이나 믿음이라고 하면 믿음이 되어버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2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쪽)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에게 분명히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내게서 외식하는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분명히 성경에서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겉을 아름답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 겉을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니까 정말 외모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름답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름답습니까? 안 지키는 사람이 아름답습니까? 제가 아무리 이런 말씀을 드려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저 지식으로 알고 겉을 아름답게 꾸미는 그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자입니다.
주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부자가 고운 베웃과 자색 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의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이 무엇입니까? 그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한 모든 행위가 그것이고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겉을 아름답게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일부러 죄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입니다, 그것은 예배도 될 수 있고 기도도 될 수 있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될 수 있고 봉사와 헌신을 하는 모양도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겉을 아름답게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식당에서 식사 기도를 하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은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을 합니다. 그렇게 인정을 하는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일입니다.
겉은 내 행위입니다.
아니 내 전체가 겉입니다. 그것은 내 행위만이 아니라 내 족보와 그리고 내 지적인 능력도 겉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안수를 받고 박사 학위를 받고 하는 것도 역시 겉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겉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제 목사로는 안 되니까 박사가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케스트라 같은 찬양대가 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최고로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다 외식에서 나온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누가복음 12:1절을 보겠습니다. (신 114쪽)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것이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구제할 때도 시장에서 나팔을 불면서 했습니다. 기도할 때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어귀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도 아주 길게 했습니다. 금식할 때도 얼굴에 칠을 해서 슬픈 기색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니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산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몄습니다. 이것은 아주 지극히 일부의 일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지금 이 시대도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했고 이 시대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했고 이 시대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이고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이 시대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아니 바리새인들은 율법이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모든 일이 다 외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율법입니다. 그것에다가 바리새인들이 겉모양을 내려고 했던 모든 것이 다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그런 외식에 너무도 깊이 빠져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외식을 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다 외식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 교회 역시도 외식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율법이 반포되고 1700년 동안 늘 지켜왔던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관습입니다. 지금도 역시 초대교회가 지나고 나서 2000년이 흘렀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외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그 외식을 지금 이 시대 그대로 하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 시대 믿음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2:1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3쪽)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라도 외식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외식의 모양이 하나라도 나오고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진리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악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신 성도도 이렇게 쉽게 외식에 빠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냥 뭐 어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그러면서 외식을 하고 있다면 그는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외식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진리를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은 외식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말로만 오직 예수라고 하지 실상은 외식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겉모양을 보고 예수를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단 한 가지 외식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 바울은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외식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외식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정말 그 일을 함에 있어서 힘써 행해야 합니다. 아니 힘에 지나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한 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영지주의가 되라고 복음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외식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늘의 큰 축복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정말 이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한다고 하면서 외식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외식을 하는 순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화가 임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제 율법을 버리고 살아가지 않고 있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네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를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누가 했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했습니다, 그런데 왜 너는 외식을 하지 않으면서 이방인들에게 외식하는 것을 보여서 외식하는 유대인과 같이 살게 하려고 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온 이후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외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외식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네가 유대인으로서 외식을 버렸는데 네 외식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외식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방인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지만 이방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유대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외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이 우리에게 와서 유대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외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 지금 이 시대는 믿음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종교는 있어도 교회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만들었습니다, 그와 같이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라고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다 외식에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외식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외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겉모양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는 일입니다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바로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모양이라도 외식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게 주의하여야 진리를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