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말라기 3:7-12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심이 참으로 지나칩니다. 사실 유럽의 교회에서는 벌써 사라져 버린 이 십일조를 다시 살려낸 것이 우리나라 기독교라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신명기에 있는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는 분은 먼저 그 말씀을 보고 생각하면서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기초적인 말씀을 모르고 이 말씀을 보면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라기의 말씀은 거의 비유로 되어 있다 보니까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서 우리 영에 대한 일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를 이야기를 하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했던 십일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옳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행위를 하면서 그들은 저주를 받았어도 자기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바리새인이 되어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규례
지켜야 할 규칙과 정해진 관례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는 규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여러 가지 규례를 정하신 것을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스라엘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라기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을 이방에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소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말라기 선지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면서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포로가 되어 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율법주의로 갔고 사실 이 말라기 시대는 율법주의로 가는 정점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말라기 시대는 신약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마태복음23장에서 화 있을찐자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하면서 7번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주의의 정점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성경에 있는 규례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성경에 문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규례대로 했는데 주님으로부터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스바냐 2:3절을 보면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잠언 3:34절을 보면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언 20:1절을 보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니까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갈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잘 지키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규례를 지키는 것이 되느냐고 반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이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규례를 지키는 것이 되느냐고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동문서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잘 지켰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규례를 지키는 것이 되느냐고 묻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정말로 열심을 다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가 열조로부터 해서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사도들을 다시 보내서 너희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면 아마도 이스라엘과 똑같은 대답을 하면서 반문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규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 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대답입니다
그것을 스바냐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있고 누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가를 잠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규례를 지키고 있습니까?
세상에 겸손한 자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있는가를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거만은 반대어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겸손한 자가 규례를 지키면 거만한 자는 안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왜 안 지킵니까?
그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포도주를 먹고 있는 사람은 거만한 사람이고 포도주를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포도주입니다
굳이 이 비유에 대해서 다시 성경을 찾아서 말씀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율법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거만한 사람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켰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너희 열조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규례를 지킬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마치 누구와 같습니까?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에게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고 있는 이스라엘의 청년과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6절을 보면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라디아서입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신 것을 믿음으로 해서 내가 율법을 지킨 것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복음은 자기 육체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육체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육체로 율법을 지키라고 성경에 그 많은 규례들을 정하셨습니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이 말라기서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말씀을 하고 난 후에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규례입니다
우리는 이 규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문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것이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다 지켰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킨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킨 사람입니다 이 영생을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니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얻을 수 있습니까?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려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성경을 이상하게 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라기의 말씀을 보면서 더욱 더 율법주의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규례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을 좇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복음이 무엇인지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라기서를 보면서도 지금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떻게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이 깨달아질 때까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만 보고 기록이 되어 있는 단어만 보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뒤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일조에만 집중을 하지 말고 무엇이 사람의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에서 하는 십일조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사람의 것입니까?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래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냉정하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서 일을 해선 번 돈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번 돈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만약에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자기들이 번 더러운 것을 썩어 없어지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돈은 결국에는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을 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돈입니다
그 돈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문자만 보고 아니 자기들이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서 그 더러운 돈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돈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을 하신다면 저는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썩어 없어지는 육체가 아니라 영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영은 거룩합니다. 그런데 더러운 돈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들은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종교인이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6:28-29절을 보면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성경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을 자기들이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특별한 말씀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이 하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셔야하는 일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가 있습니다. 그러면 왕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만약에 그것을 백성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역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미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분명히 누가 해야 하는 일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이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도적질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고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 물으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무조건 자기들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무조건 자기들이 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도적질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 그 십일조를 누가 하는 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하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것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명기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모르면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 자기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했던 소득의 십일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교회가 강도짓을 하고 있습니다.
강도입니다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강요를 해서 빼앗는 것은 강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강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것을 마치 하나님의 것인 냥 말로 속여서 강도짓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악합니까?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을 하는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는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이용해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돈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 빼앗아서 자기들 마음대로 쓰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했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의 것을 도적질 하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도적질 했습니까 하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라기서는 신약과 바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라기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와 그대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가 나타난 후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하면 바로 이 말라기 시대부터 해서 이스라엘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400년 가까이 지독한 율법주의로 가서 정점에 이르렀을 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온 나라입니다
성경을 거의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신약 시대와 연결을 해서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도리어 거꾸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온 나라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때입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온 나라가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만약에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복음을 완전하게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그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
이 시대 목사들이 이 말씀을 보고 이스라엘의 온 나라가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온 나라가 십일조를 했을 가능성과 십일조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 중에 어느 것이 높겠습니까?
그들은 십일조를 했습니다.
온 나라가 십일조를 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아서 포로가 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 전부가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소득의 십일조를 함으로 해서 주님이 하실 일을 자기들이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고에 쌓아 두고 먹여야 하는 십일조를 가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해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백성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해야 하는 일을 자기들이 하다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저주를 자청하는 바리새인의 소득의 십일조를 하느라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강도들은 그 문자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득을 취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온전한이라는 단어를 이용을 해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의 소득의 십일조를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더해져서 저주를 받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5절을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같은 말씀입니다
말라기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온전한 십일조와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서 이 온전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온전한 율법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온전하게 하신 율법을 야고보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러니까 주님이 지키신 율법을 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그 행하는 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온전한 십일조를 누가 합니까? 주님이 신명기에서 하신 십일조가 온전한 십일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십일조가 너희 창고에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한 것이 온전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람이 한 것은 어느 것도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만이 온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니 온전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온전하다고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바리새인들의 소득의 십일조를 온전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십일조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양식입니까? 주님께서 내 살은 생명을 위하는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양식이 있게 하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바알의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이 교회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양식이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저 다른 이야기를 실컷 하다가 예수 믿으라는 그 말 한 마디 하는 것으로 마치 교회 안에 양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씀은 영의 일에 대해서 하고 있습니다.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황충을 금하게 하여 이스라엘로 구원을 받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포도나무의 과실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말라기의 말씀을 반대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온전한 십일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의 문제는 저주를 받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창고에 들여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하겠다고 하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상고를 하지도 않고 그저 문자를 보면서 온전한 십일조라는 말에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땅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 몸을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더럽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의 행위로 자기들이 열심으로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것입니다
그것은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 땅이 아름다워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소득의 십일조를 보면서 아름다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고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땅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그것으로는 주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십일조의 뜻을 바로 알고 주님이 그 십일조를 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 양식을 삼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집에 이 영생의 양식이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양식이 없습니다. 도리어 저주를 자청하는 바리새인인의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십일조를 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셨습니다. 그 분이 하신 십일조를 우리는 성경에서 보고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바로 아시고 예수 그리스께서 하신 일을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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