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의 생명이 있고 그리고 영의 생명이 있습니다. 육적인 우리를 통해서 부르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지 않고 있다면 우리를 부르셨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실제 우리 육체가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신체는 다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 동안 누가 복음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의를 믿는가 하면 바로 우리입니다 비록 우리라고 하고 있지만 구원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이고 그 또한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에 있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에 빛을 비춰 주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역시 이방의 교회도 이 빛을 보기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청함을 받았는지 택함을 받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청함과 택함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저 교회에 있는 목사가 자기들이 택함을 받은 자라고 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가 누군가 택함을 받는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기들이 택함을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막연함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다 청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택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우리 육신은 모두가 청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택함을 받았습니까?
분명히 임금이 혼인 잔치를 하면서 예복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청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그 예복을 입으라고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그 예복을 입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예복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복이라고 하니까 마치 우리가 입는 옷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가운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목사만 입는 것이 아니라 성가대도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을 입은 것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예복을 입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은 가운을 입은 그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복을 입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청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다 청함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육신의 나는 청함을 받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신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를 하신 예복이 바로 택함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복입니다
부르셔서 예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그 예복은 우리가 겉으로 입는 옷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예복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르셨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셨습니다. 겉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육신으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이 복음을 모르고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않고 있다면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철저하게 육으로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그는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나입니다.
그 육신을 보고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 무엇을 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의 미련한 것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 외에는 우리는 우리가 육신을 보고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이 아닙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는 것이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우리 육체를 통해 깨닫게 하고 있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나인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신 자들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유대인 중에서 십사만 사천 명을 부르셨고 이방인 중에서 허다한 무리를 부르셨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이런 비유의 말씀을 너무 자기들에게 편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런데 비유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서 비유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셨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제 버리시고 우리 이방인을 부르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 절입니다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라면 앞에 말씀이 맞습니까? 뒤에 있는 말씀이 맞습니까? 앞에는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뒤에서는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대인 중에서도 부르셨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이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호세아 글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하면서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말씀을 하신 그대로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참 어렵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도 어느 누구도 감히 따질 수 없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을 자기 마음에 생각이 나는 대로 해석을 해서 교회 안에서 말을 해도 어느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입니다.
유대인을 버리시고 이제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호세아에서 기록했다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유대인은 백성인데 하나님께서 이제 유대인을 버리시고 내 백성 아닌 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로마서의 문자를 보고 이방인인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대인은 다 강퍅케 여기시고 우리 이방인은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내 백성 아닌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물론 육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인이 그리고 이방인인 우리가 백성이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른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리고 우리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물론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구약을 보면서도 그림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내 백성이라고 하니까 이스라엘이 마치 내 백성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신 자입니다.
누가 부르신 자인가는 지난 시간에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경에서 내가 부르심을 받은 자인가를 알아 자기 안에서 믿음으로 확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출애굽기6:7절을 보겠습니다. (구 89쪽)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육적인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 육적인 약속을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천국 모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로 내 백성을 삼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애굽에서 나온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들이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너희로 내 백성을 삼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세 이상으로 총기가 있는 사람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을 예표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는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입니다
물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맞습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서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백성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들은 광야라는 교회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출애굽기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나안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육적인 이방인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해서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9장에서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같은 말씀입니다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광야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에서 빼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거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지어 놓은 교회라는 건물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애굽의 무거운 짐에서 하나님께서 빼어 내 주셔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누구의 백성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왔다고 해서 그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 시대 이방인들이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와서 몇 명이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60만 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예표입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사람은 모두가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아론이나 모세나 그리고 성전을 지었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표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긍휼히 여김을 받은 성도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성경을 너무 자기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잘 따라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위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이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한 자입니까?
정말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면서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육의 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4:7-8절을 보겠습니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애굽기34:28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내 백성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가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한 그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써서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십계명을 보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생각을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이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청년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 십계명의 문제는 아마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걸림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이 십계명을 보고 이스라엘과 같이 똑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 십계명을 듣고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성경에서 십계명을 보고 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한 말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십계명을 보면 마음속으로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성경에서 십계명을 보았으면 그 십계명을 다 준행을 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청년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고 있고 이 시대 역시 십계명을 외우면서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서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이 언약에 동참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의 뜻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켰고 이방인들도 역시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백성입니까?
사람들이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당연히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면 이 십계명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볼 때 어느 성경에서도 십계명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없습니다. 도리어 십계명을 언약서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어떻게 받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을 보면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십계명을 지켰고 이방의 교회 역시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은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십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는 십계명을 안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들은 당연히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써서 주신 십계명도 안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우리를 보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이 언약서를 듣고서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안 지킨다고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그러니까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 심지어는 십계명에 있는 살인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마치 살인을 해도 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십계명을 지키지 않습니까?
살인을 해도 되니까 안 지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십계명도 안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고 마치 우리가 살인을 해도 되는 것과 같이 주장을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십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 같은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한글개역성경은 정말 잘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들부터가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아주 조금 알고 있는 헬라어를 보면서 도리어 한글 개역성경을 폄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완전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한극개역성경 만큼 원어에 가깝게 잘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으로 잘 이해가 안 되면 아주 조금 알고 있는 헬라어를 보면서 그 뜻을 알려하다가 도리어 소경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 나온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그대로 이해를 하고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십계명을 보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31:16절을 보겠습니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계 만민 중에서 선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어느 정도 지켰는가 하면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니까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로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방인들은 그 안식일이 변해서 이제 주일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마도 제가 주일이 율법이라고 하고 그것이 악한 일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지키는 주일을 율법의 행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도 압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들이 결혼식을 해도 기독교인들은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주일을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안 온다 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은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가 안 지킬 수 있습니까?
감히 주일을 안 지킨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생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할아버지가 지켰고 그들의 아버지가 지켰고 그리고 그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주일을 부정을 하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으로 삼고 있는가 하면 신학교에 가면 가장 먼저 제출하는 리포트가 바로 이 주일에 대한 타당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그들이 가장 먼저 성경에서 주일에 대한 타당성을 찾고 있고 그것을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안식일이 언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주일 역시 언약이 되어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도 그래서 다른 것은 조금 못하더라도 주일만은 성수하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성수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주일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그 한 마디만 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주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일요일이라고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으로 삼아서 자기들이 주일이라고 말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것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일이라고 부르고 있고 우리는 일요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주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일요일이라고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비록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아니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의 그릇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이지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도 지키지 않는 우리를 보고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그릇이 우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 아닌 자가 이방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우리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 사도 바울이 지금 호세아서를 인용을 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하니까 마치 이 시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방인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가 성경을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거의 모든 목사가 그렇게 해석을 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고 우리 이방인들이 내 백성이 아닌데 이제 내 백성이라고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앞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부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스라엘은 이제 백성이 안 되고 이방인이 백성이 된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을 무조건 백성 삼으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 절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을 아주 편하게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지키고 또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91:1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로마서9:25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새번역에서는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그 뜻을 이해를 하지 못하면 이렇게 다른 성경을 보면 조금 더 쉽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씀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앞에 있는 말씀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성경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누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순전히 사람의 이성을 따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은 영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모를 보면서 누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또 누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병이 듭니다. 아니 좀 특별한 병이 든 사람이 있습니다. 치유가 잘 안 되는 병이 들었을 때 그 사람을 보고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그 사람이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에 잘 나가지 않으면 거의 모든 사람은 봐라 하나님을 잘 믿지 않으니까 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병이 들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사기를 당한다든지 아니면 사고가 난다든지 하면 사람들은 그가 신앙생활을 잘 했으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려고 고난도 주신다고 하고 있고 그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면 봐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런 일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으면 아니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런 일들이 있으면 봐라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시니까 저렇게 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구덩이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그런 일이 누구나 있습니다.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누구나 그런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는 정말 심합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가 그런 우환이 닥치면 말하기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봐라 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까 구덩이에 빠져 건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서 있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육체적으로 잘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이렇게 잘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간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5절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말씀에서 영의 일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육적으로 건짐을 받고 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높아지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높아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어떠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은 자 같은 사람을 사랑한 자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랑을 받는 백성입니까?
이 시대 아주 좋은 교회를 지어 놓고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는 십일조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십일조를 이렇게 많이 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천주교의 성당이 얼마나 화려하게 지어 놓았습니까? 그것을 이 시대 교회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해도 하나님이 분명히 사랑하는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최고의 것들을 가져다 놓고 그것을 성물이라고 하면서 거룩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 안에는 들어가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견상으로만 보아도 그 교회가 얼마나 화려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교회를 짓는데 수천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같이 남의 사무실을 쓰는 곳과 비교를 하면 누가 보아도 사랑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높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 거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지어 놓는가 하면 사람들이 생각할 때 분명히 그곳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곳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인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랑을 받는 자인가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세상에서 실패를 했습니까? 사기를 당했습니까? 아주 초라해 보이고 있습니까? 물론 그것으로 반드시 사랑한 자라 부르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육의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자가 보았을 때 우리는 십계명도 지키지 못하는 넘어진 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가 없어 아주 낮은 자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아니 기독교인들이 볼 때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 자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받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높이 설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인정해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한 자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백성입니다 어느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한 자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람의 이성에 역설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이성을 따라가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2:2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성경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오해를 하는 순간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오해를 하고 있는가 하면 거의 모든 목사들이 앞에 있는 말씀은 이스라엘을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뒤에 있는 말씀은 이방인들인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앞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르신 자가 사람들이 볼 때는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백성이 아닌 자로 보이고 하나님이 사랑치 아니한 자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20억 명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지키고 있고 또 주일을 지키고 있고 어느 교회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육체를 통해서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을 백성이라고 부르시겠다고 또 사랑한 자라 부르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은 성도와 같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세상을 살면서도 오해를 하면 엄청난 대가가 따릅니다. 하물며 영의 일이고 자기 생명에 대한 일인데 이 일을 오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주 편안하게 오해를 하고 있고 이방인인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하면서 성경과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고 자기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안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면서 이방인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자기들이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면 죽습니다.
이 시대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의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 거의 모든 성경을 육적으로 보면서 자기 육체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육체에게 미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의 생명에 대해서 능력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육체를 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사랑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를 사랑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한 자라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있어서 절대로 오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모르면 우리는 죽습니다. 아니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오해가 성경 전체를 흐리게 만들어서 영의 일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육체의 사람이 되어서 종교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백성이 아닌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치 아니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막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사람의 이성을 따라 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 하시겠다고 하고 있고 또 사랑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2:23절을 보겠습니다. (구 1259쪽)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 교회가 음란에 빠지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욱 음란에 빠져 들어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그런 음란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음란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그 교회는 주님의 아내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얼마나 음란에 빠져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이 시대 역시 호세아 시대보다 더 음란에 빠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보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아세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바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아세라가 세워지고 있고 그 안에 수많은 바알들이 있지만 역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세라의 안에 있고 그 안에서 바알을 섬기는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과 이 시대는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 때에 바알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바알을 위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그 바알을 위하여 하는 행위들이 사람들의 이성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이고 바알을 섬기면서 받은 그 축복을 보고 사람들은 높이 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했습니까? 앞으로 있을 교회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호세아 선지자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인용의 구절만을 보고 있지 호세아 시대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것을 음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란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수많은 바알들이 있어서 음란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바알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렇게 바알을 섬기면서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알을 섬기지 않았던 백성에게 너는 내 백성이라고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만 바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바알을 섬겼고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무수히 많은 바알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 행위를 보고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다 바알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받은 축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경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섬기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계가 되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전혀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인들만을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호세아 선지자 시대에 바알을 섬기며 음란을 행하였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의 이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높아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과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 역시 이스라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2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는 거의 거꾸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편리하게 해석을 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나태함에 빠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의 인용입니다
그 문장만을 보고 해석을 하면 반드시 망하는 길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호세아서의 말씀을 인용을 할 때는 호세아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알고 인용에 대한 말씀을 보아야 하는데 문장도 안 보고 그 절의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입니다
최소한 2장까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음란에 빠져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너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전체가 크게 행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음을 하는 그들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크게 행음을 했는가를 호세아4장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음란을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6장에 가서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음란합니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크게 행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큰 음란에 빠져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지만 그런 말씀들은 전혀 보지를 않고 인용을 한 그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행음을 하고 있는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서 음란한 아내를 취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몸으로 직접 사역을 한 선지자입니다
왜 음란합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제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제사의 행위로 자기들이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셔서 음란한 아내를 취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게 하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음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자기들이 이렇게 축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한껏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미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다 음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음란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음란한 행위가 있으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음란을 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는 그 음란한 행위가 있어야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세아1: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그가 음란한 아내를 취하였습니다. 이 아내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음란한 아내에게서 딸을 낳았습니다. 그 딸은 유다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아내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로암미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란입니다
교회가 음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아들이 태어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고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교회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호세아1장10절을 인용했습니까? 그 말씀만 보고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호세아 전체에 있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로마서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호세아 말씀을 봐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성적으로 타락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성적으로 타락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답답하기만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에 성경이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다 해결이 됩니까?
절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고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살아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억지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음란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음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아름다운 이성을 보고 음욕을 안 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이미 간음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육적으로 해석을 하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고자가 있다면 아니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혹시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상적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계시가 되기 전에는 우리 역시 모두가 음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육체의 일로 생각하면서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바리새인들이 우리는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다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음란을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고 하는 그들이 음란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바리새인만 마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는 같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음란하지 않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가 마귀에게서 났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육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음란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만 음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 역시도 음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이 없이 육체의 소욕에 이끌려서 이스라엘과 같이 음란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소욕에 이끌려서 음란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음란에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음란한 자식입니다
육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는 다 음란한 자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란한 자식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체와 영을 모르고 성경을 자기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1:1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약속의 씨입니다.
로마서9장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1-13절까지가 본문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그런즉 16절에서 그런즉 18절에서 그런즉 30절에서 그런즉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의 말씀을 계속해서 이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음란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만 음행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마치 이스라엘만 음행을 행하고 이방인인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음행을 했다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음행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음행을 해서 사실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죽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진흙 한 덩어리로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해서 그 영광의 부요함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진노의 그릇인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 그릇이 바로 우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육체는 안 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육체는 처음부터 지음을 받을 때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어져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음란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진노의 그릇으로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해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거하시게 하시고 그 영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게 하시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그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 있는 영을 주시는가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영이 있는 성도는 이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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