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93강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윤주만목사 2017. 10. 30. 08:07


로마서9:27절을 보겠습니다. (252)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또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좋은 의미는 교회 안에 자기들이 하고 있고 나쁜 의미는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기도 하고 또 영생을 얻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또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역시 이스라엘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굳게 믿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족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조상들이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하면 그들도 역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화를 낼 것이 분명합니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육신의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족보가 확실한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면 그 백성이 누가 됩니까?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육신의 자녀는 어떻게 살았는가 하면 모두가 음란에 빠져 있고 음행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신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그 육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가 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은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 역시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지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음행과 음란에 빠져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보면 맞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라는 여자와 음행과 음란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음행과 음란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와 그 안에서 하고 있는 사람의 열심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음행을 하지 않는 교회가 하나도 없으면서도 성경을 보면서도 음행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심지어는 세상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고 음행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누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자기들이 육적으로 음행을 하지 않은 것으로 호세아서의 이스라엘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음행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죄를 다 지고 가셨다고 하면서 고백하는 회개를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음행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고, 되지 못하는 일은 영적인 죄로 인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갈라디아에서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하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났다고 하면서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진짜 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해서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우리 성도가 가는 곳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 즐거움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육신으로는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무미건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무미건조한 영의 일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 육신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죽고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고 그 영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씨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씨는 우리 육신이 아니라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난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해서 어떤 사람들이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허물하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떻게 말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면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고 따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면 나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그러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고 그냥 포기를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그런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문장의 연결을 바로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지금 보고 있는 말씀만 보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세상 말로 쌩뚱 맞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계속해서 그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냐고 힐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 우리는 아무 할 일도 없고 그저 로봇과 같이 그렇게 정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느냐고 하면서 운명론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 영생을 얻기를 위해서 상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인용을 하고 있고 이사야서를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영의 일에 대해서 성경에 다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너희가 지혜를 구하지 않아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힐문하는 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호세아서와 이사야서를 인용을 해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0:22절을 보겠습니다. (980)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나 그 주권이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누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면 뭐 합니까?

그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고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 되어서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 육신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성경과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보았습니다.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호세아의 말씀을 보면서도 이것을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주셔서 저희를 불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고 있지만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힐문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신 대로 자기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지금 자기들이 가나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다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일어서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 역시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누구입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 딴에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100만 명 정도는 될 것 아닙니까? 아니 이성이 있는 장정만 해도 최소한 10만 명 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0만 명 중에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몇입니까?

1000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 시대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입니다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남은 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대 모래와 같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라고 하니까 얼마나 적습니까? 바대 모래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바다 모래를 누가 셀 수 있습니까? 아무도 세지 못하지만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수에 치지도 않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대 육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의 예표고 그들이 한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일이라면 사도 바울은 호세아서의 말씀을 그리고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만의 일을 왜 우리에게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합니까?

경계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 역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일이라면 사도 바울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성경에 기록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예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행위를 경계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 역시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음행에 모두가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미가4:6-7절을 보겠습니다. (129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남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막연하게 자기들이 남은 자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남은 자가 누군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남은 자라고 해도 성경에서 남은 자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천만 명이라고 하고 있고 세계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수십억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보다 더 많은 바다 모래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다 모래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하는 것은 이 시대 역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적습니다.

얼마나 적은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호세아서나 예레미야서나 다른 성경을 보아도 아주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시대에 몇 사람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때에만 많은 사람을 구원을 하시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이제 이방에 막 복음이 전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지나고 나서 교회사를 보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회사를 보면 복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다수입니까?

제가 소수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숫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이 시대 역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남은 자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우리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실수를 해도 용납이 되고 또 그 실수에 대한 고통을 자기가 육체로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영의 일은 내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막연하게 자기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남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고 누가 받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안 보고 있고 또 문제는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소경이 되어 이 세상 초등학문을 보듯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습니다. 이 시대 역시 바다 모래 같은 숫자의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면 정말 바다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일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3:19절을 보겠습니다. (130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갈라디아서6:17절을 보겠습니다. (309)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저는 자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데 그 말씀을 성경에서 깨달을 수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경그대로 편찬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에서 그 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게 성경을 편찬해 놓았습니다.

저는 자가 남은 자입니다

그 저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되려면 반드시 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누가 저는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받고 있는 자가 저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서입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괴로움을 받고 있는 저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받고 있는 자가 저는 자입니다

그 저는 자가 남은 자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자는 반드시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괴롭기 때문에 절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너무 고착화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세상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합니까?

성경도 세상 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방종을 하면서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씨가 있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구원과는 상관이 없어도 우리는 그 부탁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행해야 합니다.

괴롭게 하는 자를 벌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누가 자기를 괴롭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이 전혀 괴롭지가 않습니다. 이미 그것이 우상이 되어 있는 그들에게는 괴로운 것이 아니라 우상입니다 그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데 괴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 저는 자가 남은 자입니다 그런데 누가 저는 자인가 하면 괴로움을 받고 있는 자가 저는 자입니다 율법으로부터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볼 때 저는 자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을 안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이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전혀 괴롭지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이 괴로운 사람만이 저는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괴롭지 않으면 절대로 저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괴롭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보니까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다 정말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벌 하셨습니다.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받던 저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괴로움을 받는 성도만이 저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괴로움을 당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괴로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로부터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오직 복음을 믿는 성도만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괴로움을 당하겠습니까?

율법주의자는 바다 모래 같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는 남은 자입니다 누가 괴로움을 당하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제 처음 복음을 듣게 되면 이제까지 교회에서 들어왔던 말들이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에게 복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면 율법주의자들이 자기 말을 듣고 굴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주의자들을 이기지 못 했습니다 그들에게 고소를 당해 결국에는 로마에 있는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우리는 저는 자입니다

왜 저는 자인가 하면 율법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부터 누가 괴로움을 당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율법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당하는 그것이 우리가 저는 자라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저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저는 자로 남은 자가 되게 하셔서 구원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의 수가 바다 모래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저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이 볼 때 우리는 저는 자가 되었습니다.

남은 자입니까?

반드시 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저는 자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율법주의로부터 괴로움을 받고 있는 자가 저는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고난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가 저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힐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그 긍휼히 여기는 자가 누군가를 성경이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 남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구원을 못 받습니까?

결국에는 자기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는 것이고 또 성경을 보았으면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힐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들이 없다면 하나님을 힐문해도 되겠지만 성경을 주셨는데도 안 보고 있고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는 자입니다

왜 저는 자인가 하면 율법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으로 괴로움을 당하기보다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를 하면서 괴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왜 써서 보냈습니까? 할례라는 한 가지 율법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후로는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3:13절을 보겠습니다. (1309)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남은 자입니다

로마서를 보고 막연하게 내가 남은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면서 자기들이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안 보고 목사가 하는 말에 거의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인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 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자입니다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육체를 말씀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는가를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 기독교는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교리로 세워 놓고 있고 그것이 성경과 다르더라도 누구 하나 그 교리를 반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은 자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남은 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되라고 하면 도리어 화를 냅니다.

아니 이단이라고 공격까지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구원을 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면 우리는 반드시 남은 자가 되어야 하고 그 남은 자가 누군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 남은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남은 자를 가르쳐 주면 뭐라고 합니까?

성경을 알레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가 누군가를 찾아서 말씀을 하면 도리어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22절을 보겠습니다. (128)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남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합니다. 정말 이 악에 대해서는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얼마나 이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누가 악한 자입니까? 먼저 생명을 얻지 못하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악한 자입니다 성경의 모든 비유의 말씀들이 다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악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한 자가 누군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악에 대해서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그리고 악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누가 악한 자인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악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도 우리는 악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을 압니까?

그래도 악에 빠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만큼 성경에서 말씀하는 악에 사람들이 쉽게 빠지고 있지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하는가 하면 그 악이 사람의 이성에는 의롭게 보이고 선하게 보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죽을 때까지 악만 행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까?

그들은 모두가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악하다고 하면 악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은 이방에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의 말씀을 보고도 역시 이방인도 악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악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다 악을 행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도 악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율법을 지키는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자라서 악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가 아닌 바다 모래 같이 많은 다수의 사람들은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남은 자가 아니라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가 악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므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가시면서 우리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므나를 주시고 가셨습니다. 이 므나의 비유는 이미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예표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생명과 같은 것을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얻는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악한 자입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왜 악한 자인가 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악한 자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는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는 행함이 없는 자이며 악을 행하고 있는 자며 이렇게 악을 행하는 자는 남은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악한 자는 남은 자가 아닙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로마서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내가 남은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을 행하는 자고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남은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냥 내가 남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이 많을 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악한 자입니다 왜 악한 자인가 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악한 자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감각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조차 모르고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1:6절을 보겠습니다. (388)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로마서2:19절을 보겠습니다. (241)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 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있는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기초가 되는 빛도 모르고 어두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 두 가지 빛입니다.

하나는 율법이고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도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빛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빛입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두움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생명을 얻는 두 가지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내 것으로 가져 옴으로 해서 아니 내 안에 그 의에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거짓입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율법은 거짓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한 가지를 지킵니까? 그 사람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를 행하지 못하면 그는 율법의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 있는 바다 모래 같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 남은 자입니까?

거짓을 말하지 않은 자가 남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더라도 남은 자가 얼마나 적은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누가 어두움 가운데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는 남은 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남은 자가 되기보다는 바다 모래 같은 다수에 속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렇게 구원을 받는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애써 거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남은 자가 누군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은 자가 되기보다는 다수에 속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표와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13절을 보겠습니다. (297)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악을 행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궤휼한 혀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이방의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의 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고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한 말씀을 보면서 이 시대 남은 자가 누군가를 알아야 하고 그 남은 자가 되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궤휼

간사스럽고 교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광명의 천사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볼 때 정말 천사와 같이 그 행위가 빛이 날 정도로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속는 것이 바로 이 광명의 천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광명의 천사는 자기가 육체로 다 보이고 있습니다. 감히 교인들이 하기 힘든 것을 이 거짓 선지자는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 광명의 천사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광명의 천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해서 그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단의 일군이지만 사람들의 이성에는 그가 의의 일군으로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이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바로 궤휼의 역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간사하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율법을 지키게 해서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궤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궤휼에 빠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다른 영을 받게 하고 있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궤휼의 역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람의 이성에는 광명의 천사로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일군입니다

그리고 의의 일군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누가 사단의 일군이고 누가 의의 일군인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궤휼한 혀를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의 말은 거의 세치 혀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영을 모릅니다.

모르다보니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궤휼한 혀를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가장 쉽게 하는 일이 바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거짓 선지자를 알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도 자기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모르고 그 거짓에 열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듣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스바냐3:12절을 보겠습니다. (1308)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남은 자입니다

이 남은 자에 대해서는 이미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남은 자만을 가지고 한 시간을 설교를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남은 자가 중요한가 하면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 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남은 자가 누군가를 또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서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입니다 누가 가난한 자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자입니까? 그들은 부자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한 부자가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왜 부자가 되어 있는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가난해 질 수 있습니까? 일부러 도덕적인 죄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십계명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는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주님 앞에 찾아온 부자 청년과 같이 부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부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용하는 재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재물은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난합니까?

말로만 가난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말로만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말로는 가난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자기가 가난하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려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가난한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세상에 비해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탁하고 보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그 이름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우선은 율법을 절대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보았으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십계명을 보고 죄를 깨닫기보다는 죄를 안 지려고 하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십계명으로 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가난한 자는 십계명을 보고 자기가 그 계명 중에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부자는 그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남겨 두셨는데 이 시대를 보더라도 남은 자가 아주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9:28절을 보겠습니다. (252)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지만 이방인 역시 어떻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방의 교회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이스라엘보다 더 소경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만 구원을 하십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끝내 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남은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 시대 우리 남은 자를 두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이루십니까?

구원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남은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가 있는 가난한 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20절을 보겠습니다. (325)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루셨습니다.

땅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끝을 내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다수가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해서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남은 자입니다.

그 남은 자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라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은혜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면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말로만 은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성도만이 고백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줄도 모르면서 그저 교회 안에만 있으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면서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강퍅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제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이 영의 일을 모르고 강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구원의 일을 모두 끝을 내 주셨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셨지만 사람들은 강퍅한 마음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제 더 이상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문제를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 것을 알 수 있는데도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믿기보다는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강퍅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이 시대 우리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이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밖에는 어느 것으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구원을 모릅니다.

이 시대는 기독교 교리에 모두가 포승으로 묶여서 성경을 보아도 그 교리로밖에는 안 보이고 있습니다. 그 교리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이 시대 우리가 이 영의 신비로운 역사를 깨달아서 믿고 있습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약속의 씨입니다. 신체의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그 신체가 반드시 썩어 없어지게 되면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구원을 믿는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 영에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부활을 하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9:29절을 보겠습니다. (252)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으면 우리는 정말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남은 자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누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로마서에 있는 그 문자만 보고 자기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 중에서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망한 그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지혜롭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음행에 빠져 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음행한 자를 하나님께서 나중에 어떻게 멸하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호세아 시대에 모두가 음행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한 사람도 일어서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 하나님을 몰랐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잘못 믿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강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혜는 강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왜 강퍅한 자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입니다

성경을 보아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씨를 남겨 두심으로 해서 우리 인류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씨가 언제까지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삭의 안에 있는 씨가 이 시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아직 멸망을 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 백성이 아닌 자를 백성이라 부르시고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시기 위해서 아직까지 우리 인류가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의 씨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시대가 다 음행에 빠져 있었고 또 소돔과 고모라가 음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역시 음행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릅니까?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예표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이 교회마다 넘쳐나고 있습니다.

음란이 무엇입니까?

율법주의를 음란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표를 이 시대는 실제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한 행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떻게 음란한가를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더 심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육적으로 음란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적으로 음란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큰 죄인가를 모르고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 음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을 보겠습니다. (37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씨를 남겨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이미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 역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육신은 살아 있지만 성경은 우리를 죽은 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죽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씨는 죽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씨를 남겨 두셔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씨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인류가 아직까지 있으니까 그 인류를 보고 씨가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바로 이 씨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씨를 하나님께서 남겨 두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썩지 아니할 씨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인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우리는 썩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씨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씨입니다. 이 씨가 지금 이 시대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씨가 없다면 이 세상은 벌써 종말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이 씨가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은혜입니다 바다 모래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 해도 이 씨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씨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씨가 많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은혜를 따라 남은 자에게 이 씨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씨를 주셨습니다. 그 씨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씨입니다. 이 씨가 남아 있어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