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3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천국입니다
성경에서 천국에 대한 모든 말씀은 다 비유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 천국의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천국이 있다는 것도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이 천국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어떻게 믿는가 하면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믿음을 갖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고 그 영이 주님과 함께 부활을 해서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내세의 일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줄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사실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진토인 우리 인생은 끝이 납니다. 만약에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또 짐승과 우리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단지 살아 있을 때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성이라는 것 역시 죽으면 그것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율법으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내어 주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영으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그 영이 거하게 하시고 마지막 때에 우리를 살리셔서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영으로 밖에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에도 없는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거듭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표면적이 이유이지만 그 이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거듭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심으로 해서 내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성령으로 난 영이 내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영이고, 그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 양자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 영이 있는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일을 하셨습니까?
만세 전부터 왜 이 일을 예정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이 아들들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부자와 나사로를 보고 문자 그대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비유라고 말씀을 하지 않아서 그것을 비유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단순한가 하면 비유라고 꼭 집어서 말씀을 해야 비유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은 비유가 아니고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영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그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문자 그대로 보면서 바로 풀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억지로 성경을 풀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모든 일을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받은 선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그 중에 어느 일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가서 보니까 누구 집은 좋고 누구 집은 나쁘고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 사람의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선물로 어떻게 주시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받은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천국입니다 이 천국의 모든 것을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상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받은 천국의 모든 것을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모를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모든 것을 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일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지 알지 못하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를 의롭다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자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이 시대는 육체와 영을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육체를 말하고 어느 때는 영을 말하다가도 또 어느 때는 육체와 영을 혼합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고 싶어도 못 믿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지는가 하면 이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율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육체를 의롭다 하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죄를 진 우리 육체를 의롭다 하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육체를 의롭다 하신다면 하나님이 억지를 부리시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해서 마치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의롭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을 의롭다 하시는데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송사할 수 없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억지 부리시는 분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영으로 부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거듭남으로 이 부활의 영으로 산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이 영을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우리 육체인 나를 택하셨습니까? 선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칼뱅의 오대강령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조직신학에서도 이 선택에 대해서 잠깐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칼뱅의 오대강령도 그렇고 기독교조직신학에서도 선택의 주체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 선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선택을 하셔서 그로 사도의 직분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기가 사도로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선택이 있습니다.
그것은 쉽게 말을 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도 스님이 되는 것은 선택을 받은 자라서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스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님이 되기 위해서 선택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선택은 일반적인 선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저도 어떻게 선택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을 선택이 되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말 합니다
아니 기독교 교리가 선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면 그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루뭉술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씀과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는 누가 능히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라는 이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일을 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도 먼저 8장에서 말씀하는 택하신 자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택하신 자는 사도 바울이 아니라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양자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택하신 자를 송사 하리요
사도 바울은 송사를 당했습니다. 그가 송사를 당했다는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 해서 송사를 당했습니다. 만약 이 선택이 그 선택이라면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이 말씀은 안 맞는 말씀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송사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도 바울은 송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선택에 대해서 오해를 하면 이런 말씀들이 서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이 말씀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까?
누가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습니까? 우리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자기의 아들이 된 영을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할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을 보고 택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이 된 영을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택하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을 누가 송사할 수 있습니까? 송사 할 것이 있어야 송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송사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송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누군가 하면 아담의 자손인 내가 아닙니다. 아담의 자손인 나는 이미 송사를 당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것을 선택하셨다는 것도 아니고 송사를 하지 못한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송사를 당하지 않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이상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이미 송사를 당해서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송사를 당했으니까 죽었습니다. 송사를 당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이미 송사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육체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내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선택은 명확하지가 않고 육체와 영을 혼합해서 선택이라는 말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 육체를 가지고 선택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선택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영을 말씀하는 것이지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는가 하면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신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선택을 받았다는 말씀이며 그 영을 누가 능히 송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송사를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송사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택하신 자입니다
내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를 가지고 송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을 누가 송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인데 누가 송사할 수 있습니까? 누가 송사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요한복음5:45절을 보겠습니다. (신 152쪽)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누가 우리를 대적합니까?
누가 우리를 송사합니까? 어느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천사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송사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모세가 고소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반포가 되었고 그 율법이 너희를 고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송사입니다
무엇에 근거를 해서 송사를 합니까? 모든 송사는 다 법에 의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에 비추어서 죄가 있기 때문에 송사를 하는 것이지 죄가 없으면 송사를 할 수 없습니다. 죄가 없는데 고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고소를 한 그가 도리어 무고한 죄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에 비추어서 우리를 송사하고 있습니다. 그냥 막 송사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송사라는 표현을 쓸 때는 법적인 용어입니다. 그 자체로 법에 의해서 송사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고소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범하고 있고 이제 그 율법이 도리어 고소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며 율법이 고소를 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왜 할 수 없는가 하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율법을 모두 지킨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송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셨다고 해서 송사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억지입니다.
왜 송사를 할 수 없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고 하면서 막연하게 송사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율법은 고소를 합니다.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우리를 고소하는가 하면 율법을 가지고 고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고소를 당해서 판결을 보니까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이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육체를 생각하지 말고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너무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지켰던 율법에 의해서 고소를 당해서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율법이 고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법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산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은 반드시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마음으로 지켰다 해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준 율법이 고소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한 것이 나타나면 그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39쪽)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누가 능히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아무도 송사할 수 없습니다. 왜 송사할 수 없는가 하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율법을 완전히 지킨 의로운 영이기 때문에 율법에 비추어 봐도 율법이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신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라는 말씀입니다
왜 송사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 이 말씀들도 사람들이 참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곳에서는 자기 육체가 의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의롭다 하셔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교회에 목사들의 생각이 같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를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어정쩡하게 주체도 명확하지 않게 대충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비록 내세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라도 이런 것은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의롭다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그를 송사할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진 죄인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누가 송사할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억지가 됩니다.
의롭지 않습니다.
죄인을 하나님이라고 해서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죄인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죄인을 반드시 죄인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라 억지의 하나님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억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그런 억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의롭다 하셨습니까? 디모데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셨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의인입니다
요한일서에서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좀 상식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영으로 의롭다 하셨다면 우리 역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하심을 입은 것이지 내 육신이 의롭다 하심을 입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애매모호하게 말을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주 애매모호하게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 애매모호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영의 일을 애매모호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분명히 알아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명확하게 알아도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의롭다 하시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다고 하면서 어느 누구도 나를 송사할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막연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합니다.
물론 영의 일은, 내세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의 일을 가르쳐 주는 말씀들은 분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은 분명하게 보고 있고 그 내세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아주 어정쩡하게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내세의 일을 말씀을 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가르쳐 주면서 위로의 글을 보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받고 있는 그들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천국밖에는 없기 때문에 천국을 우리가 어떻게 가는 가를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고난을 받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 그들은 더 이상 고난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같이 확실하게 복음을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 중에는 성령이 오신 성도들도 있지만 아직 복음을 완전하게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그들이 주변에서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또 때로는 믿음을 져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너희 영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있고 그 영은 율법을 완전히 지킨 영으로서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신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하나님이 설령 택하셨다 해도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육신을 택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택하셨다고 그 영은 율법을 완전히 지킨 영이기 때문에 율법이 우리를 다시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34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누가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영의 일에 있어서 담대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고소를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을 고소를 함으로 해서 로마는 자기들의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그리스도인을 삼았습니다. 마침 유대인들이 고소를 해 줌으로 해서 또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타당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송사를 합니다.
또 당연히 율법주의 자에 의해서 정죄를 받습니다. 우리 성도는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과 같은 국가가 아니라 그때에 정죄를 받는다는 것은 곧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는 아직 박해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 이제 로마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해가 시작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 성경을 사도 바울이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동이 없었다면 아무리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물론 이 편지를 기록할 때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고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난이 예비가 되어 있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영의 일을 명확하게 가르쳐 줌으로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단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라고 하니까 육체의 우리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성도들을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 정죄할 수 없는가를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시라 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주시고 그 영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하시는가를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영이 아니면 우리는 송사를 당하고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무조건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송사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보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을 누가 송사할 수 있습니까? 그 영을 누가 정죄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의인을 정죄를 하면 그는 악한 자가 됩니다.
송사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8장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모르고 막연하게 하나님이 자기들을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정죄를 받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는 곳에는 범함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불의한 자를 대신 해서 죽으신 것은 주님 혼자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정죄를 받았습니다.
의인이지만 사단에 의해서,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정죄를 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신 것은 주님 혼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 역시 함께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서 부활하심으로 우리 역시 그에게 연합한 자가 되어서 함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육체는 죽었고 이제는 정죄를 받을 수 없는 그리고 송사를 받을 수 없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10-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58쪽)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로마서8: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왜 이 여자를 잡아왔습니까? 그것을 15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셨습니까? 예수님께는 육체대로는 판단치 아니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을 판단하셨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이 여자를 왜 잡아왔습니까? 정죄를 해서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보기 위해서 잡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과연 이 율법을 범한 간음한 여자를 어떻게 하시는 가를 보기 위해서 자기들이 고소할 꺼리를 찾기 위해서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죄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여자를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시고 또 이 여자의 영을 보고 있었습니다.
왜 정죄하지 않았습니까?
이 여자의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하면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은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서 구속의 일을 다 마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 여자의 죄까지 지고 가시기 때문에 이 여자를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않고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죄를 하지 않으셨는가 하면 이 여자가 죄가 없어서 정죄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여자의 죄까지 세상 죄를 지고 가실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정죄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정죄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지 않고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잘못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세상 죄를 지고가시기 때문에 그 예언이 이미 구약에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실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여자입니다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죄를 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 여자의 육체의 죄를 주님께서 지고 가실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여자가 구원을 받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은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하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정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셔서 정죄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영이 거하십니다.
그 영을 누가 정죄할 수 있느냐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누가 정죄할 수 있느냐는 말씀이 아니라 이제 우리 육체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사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로마서 8장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까?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육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내 육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할 수 있습니까?
죄가 없는데 누가 정죄할 수 있습니까? 죄가 없는 자를 정죄한다면 그는 무고죄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는데 정죄를 해서 고소를 했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죄가 없는 자를 정죄한 무고의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53쪽)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어떻게 다시 살아 나셨는가는 로마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으로 살아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을 의롭다 하시고 영으로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은 우리 역시 영으로 다시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것을 성경에서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주님이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영이 의롭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는 말씀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마시기고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왜 우리를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우편이 아니라 우편을 상징하고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아스고 하나는 야긴입니다. 보아스에서는 왕을 기름 붓고 있고 야긴에서는 대제사장을 기름 붓고 있습니다.
우편입니다
대제사장을 상징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죄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이 오셔서 단번에 드리시는 제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제사장이 있는데 육체를 따라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신 대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단번에 제사를 드리심으로 해서 하늘 백성인 성도들이 죄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편에 계신 자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대제사장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죄가 없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는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누가 죄가 없습니까? 내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이 죄가 없다는 것을 예표를 해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고 그 제사로 이스라엘 백성이 죄가 없는 백성이 되었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모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영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대제사장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육체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면 그 백성도 역시 하나님 우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육체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미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문자로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초보라 해도 로마서가 어떤 성경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번 쯤은 모두가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읽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끝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하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다시 사셔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이 우편에 계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셨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셨다고 하니까 우리 육체의 죄를 정결케 하시고 그 육체를 구원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정결케 하셨다는 말씀은 우리 육체는 정죄를 받아 죽게 하시고 우리 안에 죄가 없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죄를 정결케 하셨다고 하니까 우리 육체의 죄를 정결케 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지고 가셨습니다. 다 지고 가셨다고 해서 육체가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정결한 영이 거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편입니다
그곳은 오직 대제사장이 계신 곳입니다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우리 죄가 정결케 되고 있습니다. 죄가 정결케 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 이면은 우리 안에 정결한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죄가 정결케 되었다고 말씀하니까 자기 육신이 정결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육신을 보면서 서로 의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이제 우리가 진짜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그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이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실 이 영의 일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것으로 두려워서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성도들은 이 영의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히브리서7: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60쪽)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이 시대는 기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기도를 너무 많이 하고 있고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유창한 언어로 기도를 하면서 그 기도로 성령이 오심으로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못하던 사람이 성령이 오시니까 이제 기도를 잘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유창한 기도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역시 내 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기도도 하나의 형식이 되어 있는 표본 적인 기도가 있어서 그런 기도를 따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간구라고도 합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기도나 간구나 바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기도는 너무 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간구하시는 것은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의 간구가 더 중요합니까? 내가 간구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내가 하는 것은 그것 역시 행위가 될 수 있지만 주님이 하시는 간구는 내가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이 간구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간구입니다
저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하실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간구하시고 계시는가 하면 우리가 온전케 되게 하기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온전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누구의 간구입니까?
주님의 간구가 있어야 우리가 온전한 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간구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우리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실 수도 있고 안 들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간구한다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아니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제가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를 택하셨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간구입니다
우리는 이 간구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도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간구를 하심으로 우리가 지금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정죄를 하지 못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간구를 하고 계십니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시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으로 화해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있습니다.
성소의 가장 안쪽입니다
그 안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성막론을 통해서 분향단을 알고 있습니다. 이 분향단에서 무엇을 합니까? 대제사장이 들어와서 분향할 단에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모형입니다
하늘에서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모세가 보고 그 모형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간구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포기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간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가 열심을 낸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긍휼히 여겨주시는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고 그가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너무 많은 것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간구도 믿어야 합니다. 기도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셔야지만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기도를 해 주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 성령으로 난 영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하시는 기도를 믿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하는 기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막을 왜 짓게 하셨습니까?
그 성막을 보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믿게 하기 위해서 하늘에 있는 모형을 성막으로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성막을 보고 제사를 드리는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고 이방의 교회 역시 구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간구를 하십니까?
우리 육체를 위해서 간구하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양자의 영을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 간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간구를 하시고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은 영의 일입니다
내 육신이 아닙니다. 정말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구원을 받는가를 모르게 되면 육신으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당연히 그 육신이 의로워져야 합니다. 신체의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래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사람의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그가 복음을 듣는다 해도 믿어지는 역사가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종교의 샤머니즘 적인 행위를 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로마서 8:35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제 조금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외에 어떤 다른 말로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은혜라는 단어도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라고 보아야 합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성도는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전체가 신체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절대 다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정말 유명한 자도 있고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왜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영이 탄생이 안 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 아신 바 된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육체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영을 누가 대적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정죄를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대적하지 못하고 아무도 정죄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대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율법이 대적할 수도 없고 율법이 정죄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구원을 해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떠한 고난을 받더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을 보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보면 반드시 실족을 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을 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우리의 구원이 너무 큰 은혜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랄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영의 일은 내세의 일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난을 받으면 더 쉽게 실족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내 앞에 있고 내가 볼 수 있다면 믿음에 굳세게 설 수 있겠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아니 우리 성도들은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또 우리를 정죄하고 있다 해도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이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정말 깊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또 죄를 진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이 누가 누구입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31절부터 계속해서 율법을 의인화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율법을 사단이 잡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대적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주체가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아마 이 시대 이 질문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사단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고 있다고 말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을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송사하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정죄하고 있습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고 율법이 우리를 송사하고 있고 율법이 우리를 정죄함으로 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인화를 하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게 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도 끊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그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진 자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단 한 가지 할례를 행함으로 해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할례는 율법 전체를 대표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실 때 교회 안에 있는 전체를 한 사람으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대표가 할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진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고 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입니다 그 누가 율법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모든 일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삼가 지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초대 교회가 지나가기도 전에 이미 교회는 율법주의가 만연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고소하고 송사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이 일이 서로 대적을 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생명에 대해서 이 둘이 내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굴복을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던 말던 아무 상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한글을 모릅니다.
아니 초등학생이 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그들이, 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그들이,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헬라어에 능통하다고 하는 그들이 한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설교 시간에 자기가 알고 있는 히브리어 한 마디 헬라어 한 마디를 하면서 자기 유식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의 생각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신학에서부터 율법을 지키는 것을 기초로 해서 배우는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을 살펴보아도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전멸입니다
전쟁으로 말하면 모두가 전멸을 했습니다. 율법에 사로 잡혀서 그 율법을 지키느라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졌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이것을 보이게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송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못 받는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9쪽)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요한계시록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누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할 수 있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런 모든 것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것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할 수 없는데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한두 가지만 말씀을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에서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면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핍박을 면하게 하고 있습니까? 할례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받는 핍박을 면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핍박을 주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핍박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곤고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곤고하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곤고합니다. 지금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곤고하지 않게 보이지만 주님이 오실 때 그가 지킨 그 율법이 곤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곤고하게 느낀다는 말씀입니다
다 무엇입니까?
율법입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이 다 어디서 오는가 하면 율법에서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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