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강해 78강 성령을 바로 아세요

윤주만목사 2017. 10. 3. 08:40


로마서8:28절을 보겠습니다. (25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령을 자기들의 상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의인화를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성령과 교제를 한다고 하면서 인격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주체가 됩니까? 만약에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를 하고 있다면 성령이 우리를 구원하는 주체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누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주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이 하신 일을 알고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디서 간구하시고 있습니까?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저가 살아서 항상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그리고 성령입니다 성령은 지혜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지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의가 됩니다.

성령이 진짜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하고 있다면 우리가 분향단에서 배운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퇴색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셔야 하고 성령도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다면 분향단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이 말을 하고 저기서 저 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분향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기도가 거기에 포함이 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문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성경에서 성령이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가 구약에서 본 분향단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구약에 성전에서 반드시 성령도 우리를 위해서 분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성령은 대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으로서 주님이 하신 일을 가르쳐 줄 수는 있어도 성령 그 자체가 대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고 그렇게 보다보니까 성령이 성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를 해서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됩니다.

성령이 간구를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성령은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금향로의 향연이 올라가고 있고 금대접의 기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성령의 기도가 올라간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기도입니다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가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것을 금향로로 그리고 금대접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령의 기도가 맞는다면 요한계시록에 향로가 있든지 대접이 있든지 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성도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는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간구를 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영은 진리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는 것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럼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보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떤 기도가 되어야 하는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기도를 들어보면 우리 마음을 알 수 있고 그가 성령을 받은 성도의 기도 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시대는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진리의 영이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거짓에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들을 보고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에 분향단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사랑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천국을 유업으로 얻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해 주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입으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제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인간적으로 거짓이라고 말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42절을 보겠습니다. (151)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예수님께서 베데스다라는 못에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병자는 삼십 팔년이 된 사람입니다 그 병자를 고쳐 주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네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했다고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물론 이 시대는 자기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역시 주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암묵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좀 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주일이라는 날에 결혼을 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많은 토요일이 있는데 왜 주일에 결혼식을 하느냐고 말을 하게 됩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직접 적으로는 말은 하지 않아도 그 마음에는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주일날 예배 시간에는 인척이라 해도 결혼식도 참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병이 나은 사람이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 말을 합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에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왜 주일이라는 날에 하느냐고 합니다. 그것이 다릅니까? 유대인은 안식일이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자기들은 주일이라서 율법이 아니라 믿음인데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기는 것을 보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주일이라는 날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상고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옳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옳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이 옳은가를 아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무엇이 옳은가를 모르고 옳지 않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일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기독교가 되어 있는 종교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과 교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영생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도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는 자기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떠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겉으로는 모든 사람이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의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믿음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는 것을 분명히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못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종교에 의해서 세뇌가 되어서 율법도 믿음이라고 하니까 모두가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5:3절을 보겠습니다. (39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마태복음11:28절을 보겠습니다. (1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런 말을 못 하겠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말로만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말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따르지 않고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보면서 계명이라고 하니까 율법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 말씀을 할 때는 조심스러웠는데 이 시대는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명입니다

사람의 계명이 있고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키고 있다면 그 계명은 사람의 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계명이 누구의 계명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하셔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계명을 지켰는가 하면 사람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보고 사람이 지키는 것을 주님께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사람의 계명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를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헛되이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럼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분명히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무거운 계명을 지키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데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성도가 영생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의 계명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면 뭐 합니까?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계명을 지키지 않은 사람입니다 영생도 얻지 못하고 있는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서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계명을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도리어 계명이라는 단어만 보고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속에 믿음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아무리 자기들이 믿는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속에서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지만 말로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믿음이 없으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그는 유대인과 같이 저주를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로만 하고 있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누가 사랑하는 줄을 모르고 도리어 대적을 하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도는 압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마땅히 빌 바를 알게 역사를 해 주고 있는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거의 없어서 찾기가 힘이 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누군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어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는 성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4:7절을 보겠습니다. (331)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디모데후서1:9절을 보겠습니다. (343)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케 하셔셔 천국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심 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시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가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영이 탄생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거룩해 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영입니다

우리 육체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역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의 탄생을 모르고 있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온전한 영의 탄생이 아니라 자기들의 혼과 하나님의 영이 혼합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부정합니다.

그 육체를 부르셨다면 우리는 반드시 부정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육체를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는 것으로 나를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육체는 부정해서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체를 부르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육체로 부르신 사람들 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육체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부정한 육체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로 하는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의 일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도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부탁이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을 해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부르심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아담에게서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을 주시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은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부르셨습니까?

영원한 때 전부터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는 이 부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영의 비밀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하면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대로가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는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는 완전히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판단하고 있고 실제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교회가 있는데 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저는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더 큰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도 좋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가 성경에서 그것을 알고도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죄입니다. 제가 한국 기독교를 판단하는 것을 듣기 싫은 사람은 성경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 누구를 그렇게 칭찬을 하고 있습니까? 거의 다 책망과 경계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입니다

율법을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거짓입니까? 이 시대 교회가 율법을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데 제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십일조를 내면서도 율법을 모릅니까? 주일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종교의 법으로 정해진 예배와 온갖 행위를 하면서도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의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성도님들에게 누가 부르심을 입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은 내 육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를 통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을 통해서 하와가 지으심을 입은 것과 같이 그래서 한 몸이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부르심 입니까?

이 부르심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면서 자기가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을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같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하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지음을 받았는가 하면 아담과 같은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 부르심이 어떤 부르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부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던 신체의 형상으로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온갖 제사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우리는 정말 이 부활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시대 영화로 우주에 대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영화는 다 사람의 상상이 만들어 낸 영화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천국에 대해서 상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세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우리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처음부터 있던 자이고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하늘의 별을 세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마치 꿈틀 거리는 벌레가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을 우리가 이 시대 성령을 받아 깨달아서 믿고 있습니다.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한 후에 천사도 우리의 판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런 문자를 보고 알고는 있지만 사실 이 부르심이 상상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를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아주 조금 알고 있지만 가슴이 벅찰 정도로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부활은 그리고 우리가 가는 천국은 정말 상상이 안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입니다

초대교회는 육체의 생명까지 빼앗기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게 우리가 어떻게 부르심을 입었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부르심을 입었는가를 모르고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가 부활합니까?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신 놀라운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썩어 없어지는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을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모르면서도 교회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가 되는 사람들은 겨우 그깟 육체의 일을 하는 것으로 마치 대단하게 부르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안 됩니다 영의 부활은 오직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내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