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6: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세례 요한의 세례입니다
그 세례를 받은 것으로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는 데는 천부적인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성경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반대합니까?
아마 이 시대 제가 그 물 세례를 받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세례를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의 물 세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들이 마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배운 사람들은 세례를 안 받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이 물 세례를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하면 중세 시대에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물을 끼얹으면서 세례를 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그들이 설령 죽더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을 행위로 그대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례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성찬도 마찬가지고 또 세족식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안에서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불교의 사상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가지고 그것을 행위로 나타나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세례를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누가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 중에 누가 세례를 받았습니까?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세례로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합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요한의 세례에다가 그 의미를 짬뽕을 시켜서 세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세례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진짜 받아야 하는 세례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에다가 주님과 합하여 받는 세례를 섞어 버리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주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으니까 성도로서 당연하게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고 있는 아니 지금까지 교회에서 받고 있는 세례는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가 아니라 요한에 세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세례를 받았지만 설령 누군가 와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는다 해도 그런 세례를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이 강림을 하고 난 후에 빌립이 에디오피아 간다게의 여왕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광야에서 그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난 후에 물이 있으니까 둘이 내려가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난 후에 빌립이 세례를 주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말씀이 있다고 해서 마치 이 시대도 물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이 되지 않은 때입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율법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가 외식을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지만 아직까지는 그 모든 것이 정립이 안 되어 있는 때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우리가 교제를 할 때만 해도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식사 기도였습니다. 이 아카데미 강의를 하면서도 그런 외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안 받아서가 아니라 그때까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셔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가 나중에는 이 모든 것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해도 역시 그런 사소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보면서 영생을 사모하다보면 식사 기도가 외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역사를 함으로 해서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 외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베푼 물 세례를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종교적인 의식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세례를 받는 것으로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 세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물 세례를 하면서 성령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 세례의 의미를 다 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물 세례는 물 세례지 그것이 성령 세례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세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의미를 가르쳐 주면서 물 세례를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 해도 그것은 물 세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물 세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모르고 물 세례를 받은 것은 괜찮지만 알고 받는 것은 역시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죄에 거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죄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행위로 나타내고 있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어떤 죄인가 하면 사망이 왕 노릇하는 죄에 해당이 되어서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 세례를 받고 행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모르고 했을지라도 나중에 그것이 물 세례라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행하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사도행전19:3-5절을 보겠습니다. (신 220쪽)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물 세례입니다.
빌립이 사도행전8장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물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물 세례를 주고 빌립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사도행전19장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물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니까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만약의 이 세례가 요한과 같은 세례라고 하면 사도 바울도 물 있는 곳으로 가서 세례를 베풀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절에 안수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수를 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물 세례를 하면서 마치 사도 바울이 행한 세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무리 성령 세례의 의미를 말씀하고 안다고 해도 물 세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물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세례를 받으면서 안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물 세례가 성령 세례가 됩니까?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물에 들어가 이 사람들에게 안수를 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안수를 하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아주 절묘하게 섞어서 하고 있습니다. 물 세례에다가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하고 있는 안수를 섞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 세례가 성령 세례가 될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아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해도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성경을 안 봅니까?
아니 보아도 생각을 하지 않고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세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말씀과 저기에 있는 말씀을 적절하게 혼합을 해서 세례를 주는 것으로 마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 의식입니다
그런 종교 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례를 모르니까 내가 죄에 대해서 죽은 것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세례를 알아야 그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물 세례를 주었습니까?
요한의 세례를 받은 그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을 찍어서 머리에 바르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세례를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종교의 의식의 매너리즘에 빠져 그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이제까지 종교에서 해 왔으니까 더 이상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자기 마음에서 자리하고 있어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그냥 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입니까?
그리고 또 사도 바울이 베푼 세례입니까? 이 시대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요한의 세례는 하지 말아야 하고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베푼 세례를 해야 합니까? 아마도 이 말씀을 보면 또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안수를 하면서 세례를 하겠다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안 됩니다
요한의 세례도 안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하는 세례도 안 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도 역시 믿음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안수를 하면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세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안수를 해서 성령을 받게 한다고 할 사람들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19장에서 설령 그런 일을 했다 해도 이제는 그런 것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안수도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수를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안수를 했으니까 나도 안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만 보면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안수도 행위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런 행위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다 가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율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안수를 받고 안수를 하고 하는 그런 행위도 이제는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성경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입니다 그 외에 모든 행위는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다 부자가 되게 하고 있고 의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준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그 행위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 세례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세례의 의미를 알고 안수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물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자기가 진짜 성도가 된 것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아서 이제 영의 사람이 되었는데 더 부족한 것이 있겠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행위들로 인하여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4-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61쪽)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8장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세례를 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사도들은 세례를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또 제자들도 주님이 살아 계실 때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빌립도 그래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시가 되어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이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자기가 세례를 준 사람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 해도 처음에 모든 것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까지 당연하게 해 오던 행위가 외식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종교적인 의식이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깨닫지를 못 합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서 점차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례를 주었습니다. 왜 세례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부탁을 해서 주었는지 사도 바울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지금 무슨 세례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 세례를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물 세례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 세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물 세례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주는 세례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받고 있는 세례가 어떤 세례인가 하면 사람의 말로 하고 있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를 받는 것을 종교의식으로 정해서 누구는 세례를 주고 누구는 침례를 하면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옳다고 합니까?
안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하고 있는 안수를 하는 것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를 하는 것으로 세례를 해도 되고 침례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말로 하는 지혜라는 것을 모르고 그 세례를 아주 경건하게 의식화해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문자만 보지 마시고 그 뜻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준 것이 사람의 지혜로 한 것이 되어서 이제는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서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었을 때는 지금 이 시대 교인들과 같이 그렇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도 바울이 자기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 안에서 각각 누구에게 속해 있다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었지만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는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세례의 의미를 알고 이 시대와 같이 주었지만 사도 바울에게서 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감사한가 하면 그 세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만 나오면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들의 종교의 법을 따라서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학습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종교의식에 따르는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세례는 법입니다 종교법에 의해서 세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 시대는 당연하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종교의 법에 의해서 세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헛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시대 교회는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게 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안수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이 오시고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지도 않은 그들이 종교적인 의식에 의해서 세례를 받아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기록이 되기 전하고 성경이 다 기록이 된 때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이 되기 전에는 사도 바울도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물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례가 어떻게 될지 모르시겠습니까? 지금과 같이 교회에서 법으로 정해서 의식화해서 준다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 세례를 주고 있습니까?
그것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는 그 말씀은 세례를 주고 있는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세례도 육체의 사람이 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 목사들 중에서 이 말씀을 안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줍니까?
종교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포승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보고도 세례를 주어야 하는지 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서 경건하게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경건한 의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입니다
그가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아니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경건한 의식을 함으로 해서 그것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를 하면서 세례를 주게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는 의식을 치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 세례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수도 안 됩니다 다 의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이미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자인데 굳이 왜 육체의 모양을 내면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세례를 왜 받으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
영의 일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행위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도리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86쪽)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위가 아닙니다.
물 세례도 행위입니다 그리고 안수도 행위입니다 이 시대는 행위에 대한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행위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죄를 진 것과 같이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로 죄를 짓는 것에 더해서 신약에 있는 말씀들을 종교적인 의식으로 행함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육체의 일과 영의 일을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영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육체로 하는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육체로 행하고 있는 그 일들을 영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 세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요한만 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에 사도들 역시도 잠깐 동안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물로 세례를 준 것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성령 세례를 모르고 아니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만 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몇 날이 못 되어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세례를 주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순절이 임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누가 안수를 해서도 아니고 물로 세례를 받아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오순절이 이르러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세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6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는 이 세례를 말씀하는 것이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물로 하면서 안수를 하는 그런 세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례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례 구원입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세례는 종교에서 하고 있는 그런 의식적인 세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 세례는 보이고 성령 세례는 보이지가 않아서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물 세례를 받은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순절이 이르면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절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절기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절기를 예표로 보여 주셨고 예수님께서 오순절이 이르러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몇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성령이 임합니까?
아니면 안수를 한다고 성령이 임합니까?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임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나에게 오순절이 이르러야 임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어떻게 오순절이 임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오순절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저 구약의 절기들을 보면서 그것을 육체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입니다
분명히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오셔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세례입니다 그 세례를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이 이르매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한다고 해서 오순절이 임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죽으셨습니까? 유월절에 죽으셨습니다. 유월절에 죽기 전에 예비일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드시면서 떡을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따라 주시면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여 주셨습니다. 물론 하루 밤에 먹여주셨지만 주님은 지난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유월절 예비일에 유월절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면서 이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오순절이 따로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오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절기는 다 폐하여졌습니다. 폐하여 졌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 사도행전과 같이 제자들이 함께 받았던 오순절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오순절은 이미 페하여 졌지만 개인적으로 오순절이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오순절이 이르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약의 절기는 반드시 차례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유월절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오순절이 있고 그 다음에 수장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절기 폐하여졌습니다.
이제 각자에게 이 절기가 있습니다. 날짜를 정해서 지키는 절기가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의 의미를 그리고 오순절의 의미를 수장절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대로 지켜야 그 다음 절기가 우리에게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이 시대는 이 절기들을 날짜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종교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날짜로 절기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성령이 오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구약의 날짜가 아니라 개인의 절기가 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오순절이 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정해진 날짜의 오순절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오순절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월절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오순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먹었으니까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비일에 먹은 것은 하나의 예표고 실제로는 3년 반 동안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을 먹었기 때문에 실제 오순절에 이르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역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7일도 아니고 또 제자들과 같이 3년 반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개인이 따라 다 다릅니다. 누구는 1년을 먹을 수도 있고 누구는 10년을 먹을 수도 있고 누구는 40년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유월절을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오셔서 세례를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40년 동안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40년 동안 내가 살아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죽으면 오순절이 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유월절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에게는 성령이 오시지도 않고 그러면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없어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하느라 교회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면서 유월절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언제 이릅니까?
반드시 유월절을 먹은 사람에게 이릅니다. 내가 얼마만큼 급하게 먹느냐에 따라 빨리 오순절이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유월절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는 것이 아니라 누룩이 섞여 있는 독약과 같은 떡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교병입니다
어린양입니다 그리고 쓴 나무를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섞이지 않은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듣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듣고 믿어야 하는데 무교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여러분이 유월절을 먹지 않으면 오순절은 절대로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먹지 않아서 아직 오순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매주 성령 세례를 받으라는 무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인들은 매주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집회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지합니까?
오순절만 임하면 성령은 저절로 우리에게 오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이르지 않으면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오순절이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월절을 먹고 몇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라고 하는 그 말씀에서의 세례가 바로 이 세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세례를 어떻게 받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의식을 하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고 침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누구에게서 받았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입니다
그것은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의식입니다 이 로마서 강해를 보면서 일부의 사람들은 심하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주장을 한다 해도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니 사람의 마음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설교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유월절을 먹으시기 바랍니다.
급히 먹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오순절이 임하지 않으면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유월절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오순절이 자기에게 언제 어떻게 임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순절이 이르러서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성도는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성도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그 가운데서 살면서 유월절을 아예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월절을 먹지도 않으니까 그들에게 오순절이 이르지 않고 있고 성령이 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유월절을 완전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짐으로 해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로마서6: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례만 해도 육체의 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고 아주 경건하게 치르려고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의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세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무조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축복만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도 온갖 미사여구를 써 가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습니까? 우리에게 영생을 받으라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성령이라고 하면서 샤머니즘에 빠져 온갖 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더욱 사람들은 어떠한 행위로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당연하게 물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물 세례를 받으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알면 뭐 합니까? 분명히 성경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묻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묻혀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다 살아 있으면서 말로만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례를 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을 사도 바울이 세례를 들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세례로 말씀을 하면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와 합하여 죽고 그와 함께 묻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육체가 죽어서 묻힌 것과 같이 살지 않으면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로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바로 알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아 죽었으면 진짜 죽어서 묻혀 있는 사람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세례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죽은 자가 누가 있습니까?
세상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이 시대는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지금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거대한 짐승에 포승으로 묶여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전부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강해를 보면서 믿고 싶지 않겠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사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사가 되어야 영으로서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내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는 세상 종교보다 더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마음껏 자랑하면서 연락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책을 보듯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물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장사가 되었습니다. 말로만 장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세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누가 못 합니까? 말로 못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말로는 천국을 열두 번도 더 갔다 올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입에 바른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세례를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진짜 죽어서 장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사람은 율법을 안 지킵니다.
아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체가 죽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즉 이라고 하면서 6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해서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무엇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성경에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니까 이 죽었다는 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려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세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례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에 의해서 죽은 것이 세례라는 말씀입니다 뭐에 대해서 죽은 줄도 모르고 세례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물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율법으로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성경도 모르면서 물 세례를 받고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이 없습니다. 물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구더기도 죽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갑니다. 교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곳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저를 다 비난한다고 해도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안 합니다
제가 설교를 쓰는 것을 포기하고 말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종교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사망이 왕 노릇하는 데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데 그들에게 무슨 좋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무슨 좋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제 부모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제 형제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욱 열심을 내면서 주일을 지키라고 하고 십일조를 내라고 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죽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열심을 내서 죽음에 같이 끌고 들어가는지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너무 열심이 지나칩니다. 그 열심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 살아서 날 뛰고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에서 죽어야 하는가 하면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 죄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죽은 것 뿐 아니라 장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의 일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어서 장사가 되어야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은 어느 누구 하나도 죽어서 장사가 된 사람이 없습니다.
골로새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너희가 세례로
우리가 어떻게 세례를 받았습니까? 물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먹고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을 받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물 세례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초보적인 물 세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의 일을 함으로 해서 유월절을 먹고 오순절이 이르러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세례가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그저 물 세례를 받는 것으로 자기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믿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사가 된 것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세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장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장사 되었다고 하면서 미사여구를 쓰면서 감성적으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가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누가 가증한 자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장사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서 장사 되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장사 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성경이 안 보이니까 종교의 의식만 더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세례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보이는 모습으로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실체입니다 그리고도 자기들이 지혜를 받았다고 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망이 왕 노릇 해서 진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누가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들은 물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다 물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다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이 시대는 세례를 받은 성도가 거의 없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보아도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물 세례를 준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못 했으니까 아니 성령이 임하시지가 않아서 세례를 받은 것을 알 수 없으니까 물 세례를 하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 지혜 있는 자들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을 보고 그들이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지 아!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세례를 받는구나 하면서 다 알게 됩니다.
장사 되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장사가 되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장사가 되었습니다. 왜 율법에 대해서 장사가 되었는가 하면 우리는 율법을 범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죽어서 장사가 되었는데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일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다 하고 있습니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한 사람이라도 끌어 들이면 그를 율법을 지키게 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죄에서 죽었습니다. 도덕적인 죄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죄에서 죽었습니다. 아직 도덕적인 죄에서는 죽지 않았습니다. 도덕적인 죄에서 죽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도덕적인 죄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율법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일으키심을 받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분이 우리도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을 성령이 오심으로 믿게 역사를 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물 세례가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가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 합니다. 그런 세례를 받은 것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의 의미도 모르면서 물 세례를 아무리 받아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장사 되었다고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세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세례로는 함께 일으키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지도 못하는 세례를 받아 본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육체의 일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소용이 없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소용이 없어서 구원을 못 받고 그냥 사망을 당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주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는 순간 축복과 저주가 그 사람 앞에 놓이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을 받는 사람은 저주를 받지 않고 저주를 받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표들을 통해서 축복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있으면 마치 모두가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아 한 사람입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어리석어서 육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1000살 가까이 산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천년을 살려면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 시대를 보더라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적은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바쁜 세상을 살면서 유월절을 먹지도 않으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유월절을 아주 급히 먹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 성도는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오순절이 이르러서 성령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령으로 난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세례를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그 말씀은 성령이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순절이 이르러서 성령이 임해야 세례를 받은 성도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생명 가운데 행하려 하지는 않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을 교회 안에서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이 시대 우리에게 이 복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성도님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지만 이런 말씀들이 깨달아 진다는 것이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혜가 있어서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해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이 생명을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81쪽)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세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세례에 대해서 잘 몰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를 다시 시작하면서 세례가 무엇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영의 일입니다 이 세례가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짐승의 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이 시대 사람들이 666이라는 표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666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바코드라고 하고 베리칩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베리칩이 우연히 666이라는 것을 따라갔을 뿐이지 전혀 성경말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 베리칩이라고 합니까?
문자로 보니까 베리칩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표라는 그 단어만 생각을 하니까 세상에서 같이 무슨 표시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베리칩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하는 일을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표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는 것을 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와 같이 표가 나는 것과 같이 그렇다는 비유로 말씀을 하는 것이지 세상의 표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씀을 보고 표가 되게 하려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물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 세례의 표가 무엇입니까?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선한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세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로 더러운 행위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복음이 계시가 되기까지는 우리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세례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는 어떻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육체는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죄에서 살다가 이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며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가 더러운 것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이미 우리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장사가 된 성도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더럽습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 더러움을 씻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씻어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굳이 장사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씻어서 깨끗하게 될 수 있다면 무엇 하러 장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세례를 모르다보니까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더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입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제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면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게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행하여 찾아가서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가 있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78쪽)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세례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합니다.
그때 나타나는 역사가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육체를 씻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새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성령입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한 성령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오시는 성령과 또 다른 사람에게 오시는 성령이 같습니다. 왜 같아야 하는가 하면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같은 새 생명이 탄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으면 새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고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입니까?
이방인입니까?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유자입니까?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진리를 믿게 역사를 하는 것이 세례인데도 도리어 율법의 행위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반드시 성도는 오순절이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세례를 받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서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표입니다 그 표에는 반드시 율법의 행위에서 장사가 되었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세례를 받아야 하는 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으로는 죽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라고 하고 있고 그 세례는 성령이 내 안에 임재 하는 역사입니다
세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내 안에 성령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성령으로 난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 영을 성경은 새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모르다 보니까 이 시대는 육체를 따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제 그 육체의 행위에서 죽어서 장사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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