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6:6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부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그와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고 또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정의를 하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 순간 모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모순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정의를 해 놓은 교리들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교리들이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막연하게 나는 부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끔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해 보면 도무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어서 그냥 웃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면 육체의 일이 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아도 성경이 억지로 해석이 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다 문자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석이 되어도 꾸역꾸역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통할 수 있어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생명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생명을 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으로 새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탄생시킨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전혀 다릅니다.
아담의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두 생명이 연합을 해서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생명은 죽으면 그것으로 썩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습니다.
우리의 혈과 육은 썩어 없어집니다. 썩는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고 하고 있고 그 썩는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썩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하려고 하다가 부자가 되어서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생명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누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천국에 가고 싶어도 이 영의 비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을 듣는다 해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지만 성령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지만 됩니다.
누군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열 사람이 듣는다 해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만 이 영의 일을 받아들을 수 있고 영의 생명이 어떻게 부활을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만 이 말씀이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혈과 육은 썩어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영이 부활한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는 그것이 믿어지지만 세상은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형상으로 부활하는 가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썩지 않는 형상으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그 썩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형상을 보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환상을 보았어도 표현할 수 없어서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부활입니다
우리 신체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본 형상과 비슷하거나 같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끔 SF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그 영화 속에 어떤 형상은 마치 불사조같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형상은 그보다 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우주에서 왕이 되는 역사입니다 천사들도 판단을 받을 정도로 변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거나 비슷한 형상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 부활이 없다면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서 말하는 그런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로 변화하는 그런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에게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먼저 돼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반드시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 본받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옛 사람이라고 하니까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 전과 후로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기 전에 세상에서 살던 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 좋아지기 전에 사람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그것 역시 옛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서신을 보냈고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4: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4쪽)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누가 옛 사람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그냥 옛 사람으로 살면서도 자기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옛 사람입니까?
빌립보서4장19절에서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이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니까 무엇이 더러운 것인 줄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런 말씀들이 깨달아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거의 모두가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가지고 더러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진짜 더러운 것을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이성에 따라 막연하게 성경을 보면서 더럽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이것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이 세상 사람과 같이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더 더러운 것에 욕심으로 내서 행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럽습니까?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초보들이나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는 그런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럽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하지 않은 것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대 동성연애의 법안이 세간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의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성연애를 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동성연애를 사람의 이성으로는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을 세상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은 깨끗하고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지함이 자기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더 악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악한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수자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더럽다고 할 만큼 깨끗하게 살았습니까? 내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더 깨끗하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람이라고 하니까 마치 세상의 그런 사람을 말씀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보다 교회 안에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을 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옛 사람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는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어져 가는 옛 사람에 욕심을 내면서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면서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유혹의 욕심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육체의 욕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서 욕심을 내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욕심을 내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무엇이 욕심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면 됩니다.
육체의 욕심입니다
이 같은 것들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다 문자적으로 보다보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인 줄을 모르고 있고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면서 성령을 좇아 행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육체의 욕심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 하고 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강해할 때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유혹의 욕심에 넘어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에 다 미혹이 되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에서 우상 숭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를 수 있습니까? 성경을 모르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의 바알이 이 시대 율법의 행위로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도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진심으로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십일조가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율법의 행위는 다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어느 율법을 잘 지키면 그것을 누군가는 간증을 하고 있고 그 간증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도 그와 같이 되고 싶어 합니다. 또 목사들은 그런 설교를 함으로 해서 교인들이 우상과 같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다 유혹의 욕심에 넘어가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망입니다
여러분이 이 옛 사람을 버리지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버렸다고 버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내게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욕심입니다
교회 안에서 욕심을 낼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교회 안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냅니까? 아니면 자기를 더 자랑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고 있습니까? 그 욕심이라는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욕심에 이 시대는 다 유혹을 당해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옛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입니까?
그것이 나를 사망으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그 행위가 육체의 욕심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벗어버리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욕심에 유혹이 되어서 다른 사람까지도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옛 사람입니다
누가 옛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이 옛 사람으로 살다가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옛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 예배 시간에 찬양대에 서서 감동을 주는 찬양을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또 전도를 하고 있고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육체의 욕심이고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리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드려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더럽다고 하는 제가 더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예배를 드리고 나면 마음에 한결 평안함이 오는데 그것을 더럽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더럽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일이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의롭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소경이 되어서 안 보입니다.
옛 사람입니다
그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여러분은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옛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면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골로새서3: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옛 사람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때문입니다
땅이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느 일부의 사람이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하고 있습니다.
탐심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우상숭배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로마서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를 벗어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교회는 점점 더 율법주의가 고착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하면 율법이 아닌 것이 되고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거짓말 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누가 거짓말 장이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당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거짓말입니다
바리새인이 거짓말을 했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말로 인하여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거짓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예수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옛 사람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옛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땅이 있는 지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어도 그것이 땅에 있는 지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땅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생각의 전환이 없으면 아니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이런 말씀을 보고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안 죽입니다.
도리어 더 살리고 있습니다. 그 지체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여러 가지 각종 헌금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체가 썩어져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썩어져 가는 지체가 한 행위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칭찬을 받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고상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면서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오직 예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만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들의 행위는 전혀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말씀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입니까?
율법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왜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기 위해서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믿는다는 조건이 있습니까? 이 세상 초등학문인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미를 모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왜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한다고 해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면서 전혀 다르게 교회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증합니다.
누가 가증한 자입니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가증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괘씸하게도 전혀 다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말 따로 행위 따로 입니다.
문자를 알고 있습니까?
사실 성경에서 문자를 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왜 못 박았는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왜 못 박혔습니까?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니까 이 세상 도덕적인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로마서6장을 해석한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주석이나 강해나 설교들을 보면 이 죄를 도적적인 죄로 해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5장부터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도리어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죄를 짓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6장의 죄입니다. 이 세상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율법을 지키는 죄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함께 못 박혔습니다. 왜 못 박혔습니까?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몸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 죄를 생각하고 있어서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이미 5장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면 이 말씀은 도무지 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간혹 가다가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5: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죄의 몸을 멸해야 합니다.
정말 이런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죄의 종이 되어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몸을 멸하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죄를 짓는 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해석이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5장의 말씀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목사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가르치고 선생이 되어 있어서 그에게 배운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경말씀 하나를 잘못 알게 되면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는 그것으로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누구입니까?
지금 교회 밖에 있는 사람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그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 지방에서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입니다
아비의 아내라고 하니까 아마도 자기 친 어머니는 아니고 새 사람이 들어온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그때는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은 마치 물건과 같이 사고 팔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도 부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지방은 그래도 잘 살았던 곳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린도교회 안에 육적으로 실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실제 있었던 일을 비유로 교회 안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이것을 진짜로 생각하고 진짜로 이야기를 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으로라도 이렇게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의 아내입니다
누구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까? 교회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그 아내를 교회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사적으로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세라는 위해서 하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십일조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교회가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하고 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에 있는 십일조를 문자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심지어는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음행을 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를 위해서 어느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아니 사도 바울이 살아 있는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사단에게 내 주었습니다.
왜 내어 주었는가 하면 육체를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 사람이 음행을 했습니까? 복음을 들었지만 자기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가 아닙니다.
영적인 죄입니다. 그 죄를 멸하기 위해서 그래서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몸을 멸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로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사망이 왕 노릇하기 때문에 그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몸으로 죄를 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몸을 멸해야 합니다.
어느 것에서 몸을 멸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몸을 멸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 버리면 더 이상 그 몸으로 육체의 구습을 좇아가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것은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죄의 몸을 멸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죄의 몸이 살아 있으니까 아니 말로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니까 그것이 멸해지지가 않아서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를 이 시대 목사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의 몸을 멸하기보다는 그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려면 반드시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누구라도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감성적인 말에 속지 마시고 내가 어떻게 해야 예수의 부활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6장부터의 죄는 이 세상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모든 사람이 도덕적으로 짓는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살인을 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남의 물건을 도적질 했습니다. 간음을 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혐오하는 동성연애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죄입니다. 세상 죄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는 죄가 세상 죄입니다. 동성연애를 인정을 할지라도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죄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 합니까? 아니 그 죄를 멸하기 위해서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죄를 우리 몸에서 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 안 짓습니까?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 죄를 우리 몸에서 멸하기 위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토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죄를 지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6장을 잘못 이해하고 그 죄를 멸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죄를 멸해서 뭐하려고 합니까?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아담이 진 죄부터 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이 도덕적인 죄를 진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지고 가셨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어렵습니다. 내가 동성연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죄로 부자가 되는 순간에 여러분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싸워야 하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정신이 나간 기독교인들이 육체의 싸움을 하면서 동성연애를 반대하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죄는 사망이 이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동성연애를 반대하면서 부자가 되면 여러분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동성연애를 인간적으로는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입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감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몸을 멸하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죄의 몸을 멸하면 여러분은 죽어야 합니다. 그 죄의 몸을 여러분이 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멸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도덕적인 죄의 몸을 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아시기 바랍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보고 그 죄를 깨닫지를 못하면 여러분은 모두가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 죄의 몸을 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습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 죄를 멸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몸을 멸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의 몸을 멸하기 보다는 이 세상 도덕적인 죄와 싸우느라 자기가 싸워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이 세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신학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공부를 해서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으면서 그저 지나가는 말로 오직 예수라고 하면 교인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까?
반드시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 옛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의 몸을 멸한 성도만이 오직 예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가 아니라 정말 오직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성도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4: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 하고”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창세기를 보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는 여자가 있고 계집 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두 여자를 교회로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두 여자입니다
두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바로 풀지를 못하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두 여자를 교회로 해서 사도 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두 여자를 비유로 하는 교회가 세상에 있습니다. 계집 종의 교회가 있고 자유하는 여자의 교회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가 많습니까?
계집 종의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교회가 계집 종의 교회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계집 종의 교회는 반드시 종을 낳고 자유하는 여자의 교회는 아들을 낳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세상에 이름을 적어 놓은 그 교회들은 다 계집 종의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 안에서는 종만 낳지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집 종이 종을 낳으면 그는 평생을 종 노릇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계집 종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생 종 노릇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갈입니다
그가 어디서 종을 낳았습니까?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에서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갈이 어디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까? 시내산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낳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갈이 시내산에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무엇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율법을 받은 곳이 시내산입니다. 그런데 하갈이 종을 낳은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면서 시내산에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종을 낳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갈이 종을 낳은 것을 율법을 지키는 종을 낳은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가는 시내산입니다.
실제로는 가나안에서 종을 낳았지만 사도 바울은 종이 누군가를 비유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갈이 시내산에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이 시내산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종을 낳은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입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종입니다 아바리아에 있는 시내산이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종노릇하고 있는가 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으로부터 받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종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만 죄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도 죄의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의 종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이 시대 역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죄의 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아무리 죄의 종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도 그것을 율법을 지키는 죄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을 멸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질 수 있습니까?
율법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안 지킬 수는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을 성경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진토이고 우리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고 있지 하지 못할 것을 하라고 강요를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게 하시고 구원을 해 주시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는 불의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고아도 할 수 있고 과부도 할 수 있고 나그네도 할 수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그들이 할 수 있겠습니까?
종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되면 그것에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종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조금 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종이 아닙니다. 내가 못하게 때문에 종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직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까?
그 자유라는 것도 직장에서의 법 안에서 자유입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아무리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해도 역시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직장의 사규에 위배가 되면 언제든지 쫓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것은 종입니다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하는 사람은 자유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아무리 민주국가에서 자유롭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그 직장의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자유자가 아니라 법을 지키고 있는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종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이 시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종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두가 다 자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 아래 있다면 여러분은 다 율법의 종입니다
죄의 종입니다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죄의 종입니다 죄를 지면 쫓겨나는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법을 지켰을 때는 자유하게 살아가고 있다 해도 법을 어겼을 때는 언제든지 쫓겨나면 그것은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에게 종 노릇한다는 의미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반드시 죽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6장2절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죄를 지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또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면 쫓겨나는 것이 죄에게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 종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죄의 몸을 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죄의 몸을 멸하는 것입니다
죄에게 종노릇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않게 하려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을 멸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죄의 몸을 멸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죄에게 종노릇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에게서 종노릇 하는 사람은 반드시 쫓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왜 저주를 받았는가 하면 그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이 산 그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율법을 보았지만 그 율법이 무슨 뜻이라는 것을 모르고 죄를 지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습니까?
이스라엘은 부자 청년의 말과 같이 십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문자 그대로의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면 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우리는 지킬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도 지킬 수 없지만 영적으로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몸을 멸하려면 반드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질 일이 없고 죄에게 종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34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죄를 짓는지 아니면 의를 행하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죄를 죄라고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죄를 짓고 살아가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짓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몰랐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지면 죄의 종이 되어서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집입니까?
천국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어서 천국에 영원히 거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 이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 교인들도 자기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에게는 황당한 일이 올 것입니다
아니 주님의 말씀과 같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영원히 집에 거할 줄 알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그것이 다 죄가 되어서 집에 거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아니 그때 가서는 통곡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주셨습니다.
나 좋은 쪽으로 보라고 이 성경을 주셨습니까? 이 성경을 보면서 영생을 얻기를 상고하라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단어는 자기들이 다 하고 있고 나쁜 의미의 단어는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이 이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면서 교회 안에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죄의 종입니까?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자가 죄의 종입니다 율법을 보고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주님께 끌고 왔습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른 남편을 섬기면서 간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면서 간음을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누가 더 나쁩니까?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는 주님으로부터 정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판단하면서 간음한 여자를 잡아온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고 말았습니다. 누가 죄의 종이 되었는가 하면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끌고 온 그들이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이 간음을 하면서 죄의 종이 되어서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죄를 범하는 자입니까?
세상의 이성으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가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보고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회에 있지 말고 세상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죄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떠라 판단하는 모든 사람은 다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간음을 하는 죄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면서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육체로 판단하는 자는 모두가 범죄 하는 자고 죄의 종입니다
안식일이 맞습니까?
주일이 맞습니까? 세례가 맞습니까? 침례가 맞습니까? 십일조를 해야 합니까? 선교헌금을 해야 합니까? 기도를 해야 합니까? 찬양을 불러야 합니까? 사도 신경을 외워야 합니까? 다 죄의 종이 되어서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이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육체를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 성탄절을 어떻게 지지느냐 성찬식을 하느냐 식사 기도를 하느냐 예배 시간에 찬양을 언제 부르느냐 사도 신경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모르니까 죄에게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신체가 영혼과 연합을 해서 부활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어서 너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이 자기들을 얼마나 부자가 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점점 더 악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성경과는 정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6: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 몸을 멸했습니다.
말로만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 줄도 모르면서 말로는 천상유수입니다 목사들이 이 말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자기는 이미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죽었다고 하는 그들이 죄를 더 많이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만 죄를 지었지만 이 시대는 은사에다가 신약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진짜 육체가 죽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몸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린 가인이 바로 이 율법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살아 있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죽었다면 율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우리 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으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세상을 떠나가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으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니까 도리어 죄를 더 많이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었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절대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순간 우리는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그것을 증거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을 멸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지를 않아서 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죄를 짓는 일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죽으라고 하는데 죽지는 않고 아니 도덕적인 죄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면서 도리어 육체를 판단하면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다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2: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죄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누구를 붙잡았습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을 잡아서 죄에게 종이 되게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로서 죄에게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무엇으로 올무를 놓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의 다툼으로 마귀가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올무를 모르고 벗어나지를 못하고 다 죄에게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마귀의 올무에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어서 죄에게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보고 육체로 판단하는 순간 여러분은 죄에게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게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모두가 그 올무에 걸려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방의 교회 역시도 그 올무에 걸려 2000년이 지난 이제까지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못 벗어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못 벗어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하는 그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마귀는 아주 쉽게 올무를 놓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고 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그냥 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마귀의 올무에 걸리면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어서 아니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마귀의 올무에 걸려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다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 올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오해입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다수의 교인들은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더 잘 지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보다 사람의 말에 다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마귀의 자식이었는가 하면 율법을 지켜서 마귀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율법을 지키게 해 주니까 율법에 매여 벗어나지를 못하고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이 왜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그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자에게 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어두움의 빛을 보게 함으로 해서 참 빛을 볼 수 없는 소경을 만들어 버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참 빛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다는 말씀을 성경에서 문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나서 이제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반드시 죄에서 벗어나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죄에서 벗어난 성도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이 의롭다 하심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절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해도 그에게서 율법의 모양이 단 한 가지라도 나오게 되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그것에서 벗어나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야고보서에는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강해를 했습니다.
이미 그 강해를 듣고 보신 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버리지 않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도 그리고 야고보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만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강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53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0) | 2017.10.01 |
---|---|
로마서 강해 52강 함께 죽으면 (0) | 2017.10.01 |
로마서 강해 50강 세례 (0) | 2017.09.29 |
로마서 강해 49강 세례요한 (0) | 2017.09.29 |
로마서강해 48강 죄에 거하겠느뇨 (0) | 2017.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