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절기에 대하여

제3강,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윤주만목사 2017. 9. 27. 21:24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레위기23:26-3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매년 지키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절기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늘 상기 시키는 일 중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절기로 지키라고 한 것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도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절기를 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사 제도가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들이 절기를 지킨다는 자체가 모순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도 이 시대 제사 제도가 폐하여 졌다고 주장하지 않는 목사나 교회는 없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들이 실제 교회 안에서 전혀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너무도 일관성이 없는 것에서부터 그들이 얼마나 지금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절기를 지킵니까?

말로는 그렇게 단호하게 절기가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들이 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진리에 대해서 너무도 혼미해져 있고, 또 하나는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절기를 절기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에게 미혹이 되면 도대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없는 추수감사절성탄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지각이 있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절대로 그런 절기들을 지키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말씀들을 육적으로 보다 보니까 그런 절기들을 지키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그림자입니다.

아니 율법 전체가 다 그림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을 실체로 보고 있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을 아니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뒤가 맞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게 전해야 합니다. 이때는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이렇게 하고, 저때는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또 폐하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 하나도 그것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일관성이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목사들도 그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모르고 그저 문자적으로 율법을 보다보니까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율법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모르고 율법을 본다는 것은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임을 우리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모릅니다.

절기가 있으면 그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을 알아야 하는데, 그 날짜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육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표입니다.

절기는 이 세상의 시간표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경륜하시겠다는 것을 절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절기는 우리에게 시간표를 가르쳐 주는 것이고, 또 그 시간에 어떤 일이 있는 가를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절기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매년 지키는 절기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베드로후서3: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지구는 태양계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적인 수준은 이 태양계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루라는 그 법에 의해서 갇혀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루가 30일이 되면 한 달이 가고 그 한 달이 열두 달이 되면 일 년이 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시간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시간에 대해서 의심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시간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명분이 없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일주일을 지키고 있고 또 절기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는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태양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계의 법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루가 가고 또 그것이 일곱 번에 되면 일주일이 되고 그 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니까 그 날을 정해 놓고 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하루를 정해서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고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을 바로 알아야 복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 년이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매년 일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일 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은 인생들의 생각에서는 뭔가 좀 무의미 하게 생각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매년 생일을 맞이하는 것 같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날을 정해 놓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시작한 날도 모르고 끝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이 지구라는 곳에서 정확한 시간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그런 날을 정해서 지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성탄절을 안 지킨다 하면 저를 이단으로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어디 성탄절이 있습니까?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시작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매년 지킨다는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줄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은 생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생일이 있습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석가탄신일이 있듯이 성탄절이 있다는 것은 석가와 예수 그리스도를 한 인생으로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 인생이 이 태양계 안에 있는 시간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대입하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밤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낮만 있습니다.

그럼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됩니까? 계속해서 낮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하루가 있고 한 달이 있고 또 일 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미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시간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구는 중심이 태양입니다

그것을 축으로 해서 모든 행성들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별에서는 계속해서 해가 비추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우리 지구와 같이 돌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별이 안돌면 그것은 시간이 정지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루라는 말이 있을 수 없고 한 달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 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 지구의 시간과 하나님이 계신 곳의 시간은 너무도 다릅니다. 거기는 밤이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 인생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절기를 주셨습니다. 또한 절기를 주신 것은 잊지 말고 매년 그것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경륜을 깨달으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절기는 한번입니다.

만약에 절기를 매년 지켜야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매년 지구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유월절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다면, 즉 매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매년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중간에 죄를 짓고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절기를 매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절기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모르고 인생의 시간을 가지고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710일 대 속죄일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중에서 이 지구의 계절로 하면 가을입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후부터 해서 지구의 종말 까지를 일 년으로 보고 있다면 710일은 가을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에 710일은 우리나라 달력으로 하면 10월 달입니다. 이제 추수를 다 하기 바로 직전의 가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대 속죄일을 매년 지켰습니다.

더구나 이 날은 대제사장이 매년 한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면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속죄를 받아서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서 이제 곧 있을 수장절로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715일이 수장절입니다.

대 속죄가 된 이스라엘이 이제 하늘의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710일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가 받아들여졌을 때, 이스라엘은 수장절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속죄가 되지 않으면 수장절의 의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칠월 십일입니다.

이제 수장절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때는 너희에게 성회라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회라는 말씀은 거룩한 모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날에는 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제는 불에 태워서 냄새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왜 대 속죄일에 화제를 드렸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은 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불에 태운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어떤 제물을 불에 태워서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것은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할 수 있습니다.

 

화제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냄새가 나길레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시는지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냄새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 속죄일에 하나님께서 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화제를 왜 드리라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2:14절을 보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대 속죄일에는 영생이 결정이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에 내게 대해서 기록한 것이라(5:34)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가 속죄를 받아서 수장절에 하늘 창고에 들어가기 바로 앞서서 행하고 있는 제사입니다.

 

화제입니다.

그 냄새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냄새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고린도후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속죄를 받아 수장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대 속죄일에 화제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그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시고 그 제사를 받아 주셔야 합니다.

 

이 시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대 속죄일이 언제입니까?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성경을 상고하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 냄새가 나야 우리가 대 속죄를 드린 것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 냄새를 향기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이스라엘은 화제를 드렸습니다. 대 속죄일에는 화제를 드려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그 냄새가 이 시대는 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율법으로 온갖 시체의 썩은 냄새가 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고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저 예수 믿으라는 그 말만 들은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냄새가 나야 합니다.

시체가 썩는 율법의 냄새가 나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야 우리가 속죄를 받고 수장절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고 있습니까?

그런 그가 어떻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썩은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화제를 드려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백독을 하면 뭐합니까? 그들의 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전혀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화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화제를 안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에 매여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화제를 드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정말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있습니까? 저를 욕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는 말들을 보면 전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안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속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어떻게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것도 믿지를 않고 있는 그들이 무슨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고 또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한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에서 그 답을 예수 그리스도로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 속죄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단번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화제를 안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그들이 화제를 드리지 않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전혀 나지를 않고 있고, 그것이 자기들의 영혼의 사망으로 간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왜 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고, 또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이 일에 정말 감동을 받아 행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를 그냥 보내지 마시고 우리는 늘 깨어 진리를 알아가야 합니다. 성도의 마음과 교회 안에 있는 가리지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성도는 자기 영혼의 구원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가라지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면서 이제 교회에서 성도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는 행위에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성도는 행위는 다 버릴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을 알고 있는 성도는 행위의 모든 것은 다 버릴 수 있을지라도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그 냄새를 나게 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악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평생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려고 해도 우리는 다 못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교회에 나온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 속죄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속죄가 이루어져야 수장절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진동을 해서 나를 보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속죄일에 화제를 드린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괴롭게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괴롭게 하라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끊쳐지리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괴롭게라는 뜻을 공동번역에서는 단식(금식)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고행, 또는 자기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

 

번역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날에는 금식(단식) 또는 자기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씀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단식)이라는 말씀이 맞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를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16:24)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믿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율법의 행위를 끊기가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를 믿음으로 아는 자들에게는 너무도 괴로운 일입니다.

 

이사야58:5-6절을 보면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율법의 행위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은 율법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금식을 의미합니다. 대 속죄일 날에 이 금식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백성 중에 끊쳐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대 속죄일 날 까지 율법을 폐하지 못하면 사망입니다.

믿음과 행위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예수를 믿는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 속죄일에 성회로 모인 백성은 모두가 구원을 받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율법에 매여있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16:24) 그 동안에 먹어왔던 율법의 양식을 끊은 성도만이 앞으로 다가오는 수장절이 되었을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금식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루 금식을 하고 일주일을 금식을 하고 하는 그런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행위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금식은 반드시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야 하는, 즉 율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금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금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지구의 시간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시간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개인의 일생에 있어 시간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성도는 그런 금식을 통해서 스스로 괴롭게 해서 수장절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절기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 날이 무슨 날인가는 문자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대 속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단번 속죄 제물이 된 것을 믿어야 하고 또 성도는 성경대로 화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금식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는 금식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금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금식을 한 성도만이 대 속죄일에 속죄를 받아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금식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도는 육적인 금식도 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영적인 금식을 해야 합니다. 대 속죄일을 생각하면서 금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금식을 하는 이유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기도원에서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아무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아무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 속죄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서 너무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을 하면서 그것이 믿음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는 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가 일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가 거저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저 받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저 받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30절을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속죄는 우리가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 이 부분에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그 날에 끊쳐질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것을 믿습니까?

아무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통해서 행위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교인들 거의 다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자기들이 영적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일을 하는데 있어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영원한 규례입니다.

우리의 속죄는 일을 해서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일을 하지 않을 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4:5)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라(4:5)고 다윗이 말했다고 사도바울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행복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고 그 일로 결국에는 영적 이스라엘에게서 끊쳐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율법을 더 이상 먹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의 대 속죄일이 오기 전에 화제를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속죄 일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달 구일 저녁부터 그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칠월 십일 대 속죄일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대 속죄일을 통해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장절 까지 가을이 되어서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이 지구도 마찬가지고 또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 대 속죄일이 지나고 나면 구원을 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다 구별이 됩니다. 구원을 받은 자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고 이 세상에는 모두가 망하는 자들만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우리가 지금 총기가 있을 때가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그때 대 속죄일을 맞이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총기가 다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우리가 속죄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절기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을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를 모르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대 속죄일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속죄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입었다(10:10)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속죄를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