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출애굽기23:14-17절을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율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고 그들과 같이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안 지키면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율법이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예수를 못 보고 있습니다. 요즘 율법을 해석하면서 참으로 참담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가 얼마나 불행한 세대인가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화 되었습니다.
그 종교라는 거대한 세력은 사람들의 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고 사람들은 그 종교를 보면서 마치 자기가 예수를 믿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편 보다 더 심한 중독을 시키고 있지만 종교에 중독이 되어서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보고 있으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보는 자와 못 보는 자입니다.
보는 자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못 보는 자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들이 10만 명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과연 누가 복음의 비밀을 볼 수 있는지 아니 보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에 영향력이 있는 목사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성경을 바로 보고 있다면 우리나라 교회가 이렇게까지 진리에서 타락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 종교화 되어 있는 이 세상의 교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두가 치우쳐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이 있습니다. 과연 그 정통과 이단의 차이가 무엇인가 솔직히 한국교회는 뚜렷이 드러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도 어느 새 교세가 커지면 정통의 자리에 있다 보니까 이단과 정통의 경계선이 이미 무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혜사라고 하지만 않으면 정통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정통입니까?
불과 5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감리교와 장로교는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가 정통이라고 서로를 인정해 주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전혀 다른 이론을 배우고 있으면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의 교리가 다른 교회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적 지식은 이스라엘보다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을 따라가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호세아4: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똑같습니다.
이스라엘과 이 시대는 너무도 똑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그 길을 어쩌면 그리도 똑같이 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외치는 소리가 이 시대도 똑같이 들려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서 이스라엘이 되려고 합니다. 자기들이 무슨 육적인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 같이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율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적으로 율법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 땅에는 진실이 없어졌는데도 그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영향이 있는 목사 한 사람만 있어도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의인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진실이 없어지고 또 인애가 없어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설교를 쓰고 있고 또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마치 벽에 대고 이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거대한 벽이 앞에 가로 막고 있어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데려와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만나보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있는 교회가 있는지 아니 그런 목사가 있는지 만나보고 싶습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목회자들을 비난한다고 너만 잘 났느냐고 말해도 좋습니다.
진실이 없습니다.
율법을 율법 그대로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야 진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주 교묘한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만 그들의 설교에서 예수를 찾기가 힘이 듭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만 그 결론은 율법의 행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넘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양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식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사랑의 모양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자기들의 육체로 사랑의 모양은 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 안에 없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이 되면 뭐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랑의 모양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습니다.
신학 박사들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모르고 인애를 모르는 신학 박사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설교를 하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목사입니까?
고아도 알아듣고 과부도 알아듣고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자도 알아들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자들을 쓰느라 영어를 하고 있고 헬라어를 하고 있고 히브리어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배웠는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세상 쓰레기 지식으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참담해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재를 쓰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가슴을 찢는 그런 회개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렇게 회개를 잘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회개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착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보면서 자기가 무슨 이스라엘이 되는 것같이 구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말씀을 안 드려도 이미 설교로 해서 말씀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를 매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언제 오시고 또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속을 이루시고 또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살 수 있는가 하는 시간표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정해서 이 절기를 매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이제 이 절기가 폐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절기를 우리가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이 절기는 시간표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년 이 절기를 지키라고 율법으로 정해 놓으시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습니다.
왜 매년 지킵니까?
하나님의 시간표는 일직선입니다. 유월절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시대 맥추절을 지나고 있는 때이고 앞으로 수장절이 올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시는 사역에 대해서 절기로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절기를 매년 지키는 것은 사람의 시간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잊어버립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년 3차례 이스라엘이 이 절기를 지켰던 것과 같이 이 절기에 대해서 늘 되새겨야 합니다. 이 절기를 잊어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매년 3차례 이 절기를 지키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표를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은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단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이미 유월절은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이 되셨습니다.
삼 차례 지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절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표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해야 하는 일을 모르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 시대 역시 문자적으로 이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단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스도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지키려면 성경대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안 지키려면 다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도 그렇고 정통이라고 하는교회라고 하면서 역시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감사절입니다. 한 나라의 감사절을 왜 우리 교회가 지켜야 하는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뭐가 다릅니까?
그렇게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큰 죄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사 제도가 폐해진 이때에 맥추절을 지키고 또 추수 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표를 자기들 마음대로 변경을 하는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마음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자기들이 마음대로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또 지키기 싫은 것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변경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매년 3차례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표를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 양으로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또 맥추절이 되어서는 내가 지금 정말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가 성경 안에서 정립을 해야 하고 그렇게 성령을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수장절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무교병의 절기 칠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매년 무교절이 오면 무교병을 먹으면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아니 문자적으로 이 절기를 율법으로 지키는데 최선을 다 했습니다.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반드시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은 무교병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누룩이 섞여 있는 떡을 받아먹고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무교병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교병을 먹어야 하는데 누룩을 섞어서 먹었다가는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칠일입니다.
온전한 숫자입니다. 이 칠 일은 우리가 평생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숫자로 칠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수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칠일이 아니라 애굽에서 나왔으면 구원을 받을 그때까지 아니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5:7-8절을 보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평생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이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행위에 대한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당연히 이 누룩 없는 떡 무교병을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이제는 구원을 받았으니까 더 이상 무교병을 안 먹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행위와 은사로 빠지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이제는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살아가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더욱 더 무교병을 먹으려고 합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무교병을 먹기 바랍니다. 절대로 누룩이 섞여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더 이상 무교병을 안 먹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더욱 무교병을 먹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무엇입니까?
율법이 누룩이고 이 세상의 사상이 누룩이고 또 은사도 누룩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무교병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무교병만을 먹으려고 하고 있지만 구원을 아직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도 못했으면서도 무교병을 자기가 다 먹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누룩이 섞여 있는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방이라는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이방에 있던 그 사상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이방에 있던 누룩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 역시 이 세상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아직 애굽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아는 것이 그렇게 쉽습니까? 성경에서 평생을 예수에 대해서만 알려고 해도 우리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무슨 율법의 행위를 배우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만 배워도 시간이 부족 합니다.
예수에 대해서만 알려고 해도 내가 평생을 성경을 보아도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방송에서 어떤 복음적인 교수라고 하는 분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복음적인 설교 2번에 행위적인 설교 두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다 안 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이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이야 할 정도가 되도 됩니다. 정말로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거지 같이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힘을 쓸 것이 분명하고 성경을 보는 이유도 단 한 가지 예수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무교절에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예물에 대해서 너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절기는 일 년에 3차례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일요일 날에 예배를 하는 것은 매주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가르쳐 주시고 그 절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시간표입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잊지 말라고 절기를 지키게 하셨지만 실제로는 일직선상의 시간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이 절기를 통해서 시간표를 알게 해 주신 것이지 이 절기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헌금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헌금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자로서는 이스라엘이 매년 삼 차례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그 얼굴을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시간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해진 율법의 절기를 지키면서 헌금을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폐해진 절기를 아직도 지키고 있고 그런 날에는 마치 헌금을 특별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10:8절을 보면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빈손으로 보이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빈손으로 안 보이기 위해서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율법적인 예물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내가 예물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그림자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헌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극 정성으로 내고 있는 헌금을 마치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있는 것 같이 헌금 후에 기도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커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쓸데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있고 그것을 내 보이려고 하다 보니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헌금을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 마음에서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그 어떤 헌금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자원하는 마음이라고 법으로 정해 놓은 헌금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림자가 나무로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나무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진짜 나무 인가를 살펴보고 난 후에 나무인지 아니면 돌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고 다 실체로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2:6절을 보면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우리는 빈손입니다.
생명을 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무교절에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자기 힘에 닿는 대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신 대로 예물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를 보였습니다.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시간표로 보여 주시는 절기입니다. 그 절기를 감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반드시 예물을 준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예물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의 속전이기도 했습니다.
거지는 어떻게 됩니까?
예물을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리고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께 자기 얼굴을 보이려고 나올 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사로를 사랑하셔서 그가 빈손으로 하나님께 보이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속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월절 양으로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하나님께 빈손으로 보이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속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 세상의 돈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돈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것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제가 헌금을 전혀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과합니다. 또한 헌금을 하는데 있어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그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지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하나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고 또 그런 종교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맥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맥추절에 대한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맥추절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면 그런 규례들을 성경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맥추절이 왔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맥추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난 후에 맥추절이 되어서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붙은 자가 되어서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무교절을 지낸 우리가 지금 맥추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고 난 후에 이제 보혜사가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를 성경 안에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해서 거듭난 자로 살아가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맥추절에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많은 열매가 맺혀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수장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지구의 태초부터 종말까지입니다. 이제 가을이 되어서 종말이 가까워지면 구원을 받을 성도들을 천국 창고에 들이신다는 것을 이 절기를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절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림자를 보고 있고 이 중에서 맥추절은 지키고 있고 성경에도 없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를 사람들이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다 자기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빠져 있는 이 시대 교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경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종교라는 마약에 취해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따라가고 있습니다.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매년 세 번씩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일직선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무교절을 지켜야 하고 또 맥추절이 지나가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거듭난 성도가 되어야 하고 이제 우리가 종말을 살아가면서 수장절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모릅니다.
세 번씩 보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매년 세 번씩 하나님께 보일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경륜을 우리는 늘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 그림자를 통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역시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가 거대한 종교가 되었듯이 이 시대 교회라는 거대한 종교가 탄생이 되어서 진리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율법은 폐해 졌습니다.
아직도 율법이 안폐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이런 절기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율법을 보고 그것이 자기를 구원해 주는 실체가 되는 것 같이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고 거기에 점점 더욱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보였습니다.
맥추절에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지금도 성도는 계속해서 이 무교병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무교병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맥추절이 되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강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수장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보인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육을 따라 행하지 마시고 영을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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