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막에 대하여

제14강, 그리스도의 영과 나

윤주만목사 2017. 2. 2. 21:12

로마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경은 영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들이 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40여 명이 넘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우리 인생들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모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 이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왜 적은가 하면 이 영의 비밀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 인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굳이 하나님께서는 이 두꺼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또한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성경을 비유와 은유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영의 일을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은데 방법이 없다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믿음을 가르쳐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영의 비밀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감동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육적으로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지만 이 영의 일을 믿는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아니 성경을 그래도 나름대로 안다고 하면서도 이 영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점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도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성경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에 속해 있습니다. 사실 이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영의 일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인도를 해 주셔야지 우리가 믿을 수 있지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이 영의 비밀을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하기 보다는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의 자아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성으로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해서 믿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쉽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고 있고 과학에 의해서 정의를 내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절대로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도 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것은 두 번 난다는 순 한글의 뜻입니다. 거듭남에서 강의를 할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거듭남은 우리의 어떤 육체의 변화가 아니라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 태어나는 영의 신비로운 역사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두 번 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거듭남을 믿을 수 있게 영의 비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두 번 났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쳤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냥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이 영의 비밀을 하나씩 깨달아지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 태어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사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 태어나는 생명이 나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 역시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이 육체의 나와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나를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해를 못한다기보다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직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이 둘의 관계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그것은 그가 아직 혈과 육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복음을 많이 들은 사람도 이 관계를 명확하게 성령의 감동으로 받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것 같습니다. 복음을 듣다 보면 가장 먼저 막히는 부분이 로봇 같은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고 선택이라고 하니까 그것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이 해결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걸리는 부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과 육체의 나와의 관계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넘어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요한복음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늘 말씀을 드립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로서 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영이 어떻게 났는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으로 관계를 가져서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해서 여자의 몸속에서 생명이 탄생이 됩니다. 그런데 영의 탄생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없다 보니까 하나님께 로서 난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탄생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정의를 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설명이 안 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이 영의 비밀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사람이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이 영의 비밀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거듭남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태어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학교에서 다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영의 탄생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영은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는 어떻게 진리의 말씀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가를 믿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압니다.

아니 이 정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있으면 이것조차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알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낳으셨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다 진리를 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이 영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는 것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이 거듭남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정의를 할 수 없을지라도 모두가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안에 있다고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의 비밀을 알기 보다는 문자적으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대로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문자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 문자 그대로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리스도의 영이 있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문자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구나 하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고 내 육체의 생명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내가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2:22-23절을 보겠습니다. (구 3쪽)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예표입니다.

성경은 예표라는 것을 먼저 알고 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아담과 하와를 예표로 영의 탄생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어떻게 탄생을 하는 가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이 예표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영의 일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만드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만드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보여 주신 표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와는 누구입니다.

아담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하와는 아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하와는 보고 나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다른 여자와의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은 아담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를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아담입니다.

그러나 또 하와이기도 합니다. 아담이면서도 하와를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예표입니다 그 예표를 바로 알아야 내가 어떻게 탄생이 되는 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는데 우리를 어떻게 낳는가 하면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진리로 우리를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와입니다.

아담이 없이는 탄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입니다, 그것을 아담과 하와의 육체를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정말 이 영의 일은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않으면 너무 단단하고 어려워서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 막힙니다.

그리고 너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을 설명하는 저 역시도 영의 일이다 보니까 이 정도 밖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이 정도만 말씀을 드려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충분히 믿어지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는가 하면 마치 하와가 아담이 없이는 탄생이 안 되는 것 같이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 안에 새 생명인 내가 탄생이 안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탄생이 될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당연히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고 믿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만든 하와입니다 그 하와는 바로 나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입니다.

아담이 자기 갈빗대를 취해서 만든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보고 똑같이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탄생이 되었듯이 또한 내 안에 있는 영도 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입니다

이것을 안 믿고 있습니다. 왜 안 믿고 있는가 하면 아직도 혈과 육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기 육체는 자기라는 것을 믿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나"라는 것을 도무지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혈과 육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혈과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은 혈과 육이 "나"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다 해도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 거듭난 사람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내가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자기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사람을 자기와 별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는 인정을 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왜 인정을 못 합니까?

그것은 아직 영의 비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육체의 나에 매여서 영의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 그렇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영이 나라면 그러면 나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누군가를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가장 기초가 안 서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자기 자아를 생각하고 있고 나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그 썩어질 육체가 무엇이 그리도 소중하다고 그 육체의 나를 계속해서 주장을 하고 있고 그런 주장이 결국에는 성화주의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만 죽었습니까? 그러면 사도 바울만 구원을 받고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이것이 믿어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리지들은 이것이 안 믿어지니까 자꾸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서 뭐 합니까?

그것을 찾아서 뭐 하겠다고 그것을 끊어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육체의 나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도 아니고 영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진짜 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렇게 모든 예표를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안 믿어집니까?

그럼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안 믿어지면 여러분은 성도라 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내 혈과 육에 속해 있는 이 육체의 것을 보면서 나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안에 누가 삽니까?

그리스도께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한 하와라는 말씀입니다. 그 하와가 자기 안에서 살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내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입니다

육체의 나입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질 나입니다 그렇게 썩어 없어질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더 좋은 나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영이고 그것이 썩지 않는 영원히 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더 좋은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탄생이 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영의 일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말로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자기가 누군가도 모르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 말씀을 믿어지지 않으니까 육체의 자기를 찾고 있고 그것을 찾다 보니까 성화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 믿어집니까?

이것이 안 믿어지니까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는 절대로 자기를 찾지 않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자기를 찾습니까? 이제 우리 육체의 것은 죽었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나입니다 왜 육체의 부모가 자기를 낳아 준 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낳으셨다는 것을 안 믿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까?

 

부탁드립니다.

성경은 나를 찾아 주고 있습니다. 그 나는 죽은 육체의 내가 아니라 영원히 살 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혈과 육이 살아 있어서 자기를 찾고 있습니다. 자기를 찾고 있으면서 성화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아직도 자기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나입니다. 어느 것이 진짜 나입니까? 아직까지 육체의 나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육체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나를 찾고 있다면 그는 예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바로 거듭납니다. 내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만이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과 욕심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단은 육체와 그리고 그 정과 욕심을 가지고 복음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육체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나를 생각하지 썩어질 이 육체의 정과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강의를 보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나를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예수를 믿지 말고 세상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강의를 더 이상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를 더 이상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육체의 나입니다. 그 육체를 따라 잘 행하고 싶은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그 육체를 통해서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이고 욕심입니다. 그것을 주장하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것은 썩어질 육체가 아니라 썩지 않고 영원히 살 나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육체의 내가 얼마나 삽니까? 그것은 팔십년을 살고 나면 사라집니다. 그 사라지는 것에 매여 있지 말고 영원히 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5:40절을 보겠습니다. (신 283쪽)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땅에 속한 형체가 나입니까?

그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하늘에 속한 형체가 나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땅에 속한 형체를 가지고 나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고 있고 정과 욕심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역시 성화주의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렁이입니다.

벌레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더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땅에 속한 나입니다 그런 나를 생각하면서 하늘의 것과 연결을 시키려고 하는 자체가 아직까지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이 땅에 속한 형체와 하늘에 속한 형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팔십년을 살고 죽는 이 육체를 보고 나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영의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썩어질 것을 천국에 가지고 간다면 얼마든지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늘에 속한 형제와 땅에 속한 형체를 나누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육체의 나를 찾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를 지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고 구더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벌레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구더기가 잘해 보아야 얼마나 잘합니까? 벌레가 무엇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의 육체의 나는 그 구더기보다 벌레 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나를 찾습니다.

자기가 구더기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 땅에 속한 형제의 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이 있어서 내가 그래도 세상에서 성도로서 의롭게 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닙니까?

 

성도는 땅에 속한 형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아직까지 못 박지 않고 있는 사람은 땅에 있는 형체를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이 하늘의 형체인 나를 찾아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땅에 있는 형체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은혜를 받은 자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찾고 있습니다.

 

시편103:15절을 보겠습니다. (구 877쪽)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나를 모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기를 왜 찾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회가 이것을 찾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하늘의 형체 하나님께 로서 난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나라는 것이 믿어집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나라고 하니까 그럼 자기 육체의 나는 무엇이냐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직까지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입니다.

그것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것의 나를 갖고 싶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사는 나를 갖고 싶습니까? 어떤 것이 나이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찾고 있는가에 따라 그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나를 찾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잘한다고 나를 찾습니까? 저 같으면 정말 내 육체의 나는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아마도 꽤나 잘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 육체의 나를 찾아서 무엇에 쓰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더 좋은 나를 주셨는데도 그것을 믿지 않고 구더기 같은 나를 벌레 같은 나를 지렁이 같은 나를 찾고 있습니다.

 

왜 나를 찾습니까?

세상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자기의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사도 바울보다도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문제는 제가 늘 말씀을 드리는 의에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 나를 찾고 있는가 하면 의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를 벌레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찾고 싶습니까? 아니 빨리 어떻게 하든지 지워 버리려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육체의 내가 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고 하니까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영의 일을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를 합니까?

 

고린도전서 15:43-44절을 보겠습니다. (신 283쪽)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영의 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는 욕된 것입니다 그 욕된 것으로 심어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아니 영의 일을 보고도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다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왜 육체에 미련을 버리지 못 합니까?

그것은 썩어질 것입니다. 육체의 나를 주장하는 것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아니 영의 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 육체의 나 때문에 영의 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성화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 육체는 천한 것으로 땅이 묻힙니다. 약한 자로 땅에 묻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인 내가 있어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것이 바로 나입니다. 내 육체는 그럼 무엇이냐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천한 것과 약한 것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에 내 육체의 내가 천국에 간다고 하면 아마도 너무도 부끄럽고 그것은 더 이상 천국이 될 수 없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천한 것과 약한 것을 사랑하셔서 그것을 그냥 죽이시지 않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람이 탄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의 예표가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 그것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도 소중합니다.

물론 그런 천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육체는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육체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 삶을 주장합니까?

주님이 누구를 구원하셨는가를 잊으셨습니까? 내가 죄인을 만나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기준이 있고 성도의 삶에 기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복음이 없는 성화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기준을 가지고 또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살인한 자요 강도요 간음을 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으로 그런 것의 기준을 두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목사로서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시험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누구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벌레 같은 인생입니다 구더기 같은 인생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기 육체를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구더기가 나를 찾아서 무엇 하려고 합니까? 그런 구더기를 죽이고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살려 주셨는데 그 구더기를 잊지 못해서 신령한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이 정도 밖에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내 육체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를 이 정도 밖에는 저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자기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는 자기 육체의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를 보고 있습니다.

 

육적인 몸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몸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인 몸은 반드시 우리 천하고 연약한 몸을 통해서 탄생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입니다. 우리 천하고 약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우리에게 썩지 않는 나를 주셨습니다. 그 내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니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을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이미 오류고 모순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영의 신비로운 일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으로 밖에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영의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사실이 안 믿어지면 지혜를 구해야지 사람의 이성으로 내 육체의 나는 무엇이고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영은 무엇인가를 논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0:28-33절을 보겠습니다. (신 131쪽)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만일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저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저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누구의 생각인가 하면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의 생각입니다. 왜 부활이 없다고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은 부활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에 있다고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부활이 있다고 했는데 사두개인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대답을 하지 못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에는 그 형의 아내가 있는데 아들이 없을 때 그 형이 죽은 후에 그 동생이 그 여자를 취하고 또 그 동생이 아들이 없을 때는 또 그 동생이 취하라고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생들이 여자를 취해서 아들을 낳게 해 주라는 것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너무도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자기 자아의 문제입니다. 내가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그 사상 때문에 지금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 보니까 사두개인들이 예를 들면서 이것을 봐라 이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될 수 있느냐면서 부활은 없다고 주장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바리새인들이 대답을 하지 못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부활이 될 때 자기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모양이든지 이 땅에 있는 육체의 어느 것이라도 가지고 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내세를 이야기할 때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되었을 때 지금 육체의 나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는 영의 비밀을 모르는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 자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온전한 형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혈과 육 그러니까 육체에 속한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육체의 어느 것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들은 역시 자기 육체의 자아 때문에 이 영의 비밀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사두개인들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집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계속해서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서로 부활이 있다 없다를 이야기 하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을 하지 못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육체로 산 율법을 보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천국에 갑니다.

그리고 이 여자도 천국에 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 세상 적인 생각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아를 너무 생각하고 혈과 육에 아직 매여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분명히 고린도전서에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에 주님이 오실 때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같이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을 정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삼위일체가 나왔는가 하면 바로 사람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정의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성으로 이 영의 일을 정의를 내리고 있다 보니까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정의를 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육체의 나는 썩어져 버리고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영에다가 주님이 오실 때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럼 육체의 나는 무엇이냐고 따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두개인들이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종교에서 내세를 이야기할 때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출발을 해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공덕을 쌓아야 자기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기독교 안에서 천국에서 더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20-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3쪽)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요한의 어머니입니다.

지금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주의 우편에 그리고 야고보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천국에 갈 때도 사도요한이 가고 야고보가 간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령이 오셔서 하늘의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 사도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아직도 혈과 육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야고보가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형상을 모르고 혈과 육을 생각하니까 당연히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도 요한과 야고보가 자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권리입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이 다 분을 내고 있습니다. 왜 제자들이 분을 내고 있습니까? 역시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나라가 올 때 자기들이 그래도 한 자리를 찾지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찬송가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만나보자. 만나보자. 천국에서 만나보자고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그러니까 자기가 구원을 받으니까 천국에 가면 자기가 있으니까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곱 형제가 다 천국에 가고 이 여자도 천국에 갔습니다. 만나니까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결국에는 이 사상이 성화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의 어느 것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니까 자기 육체를 잘해야 그것이 천국에 가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육의 이성으로 정의를 내리려는 순간 그는 모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 사두개인과 같은 생각 그리고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그럼 나는 무엇이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몰라서 묻습니까? 안개와 같고 그림자 같고 들의 풀과 같이 썩어져 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이 인생으로는 천국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에덴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범죄 한 인생이 에덴에서 살 수 없으니까 아담과 하와를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천국에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습니다.

 

아담으로 하와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진 혈과 육을 가진 형상입니다. 이 형상으로는 아니 이 형상의 어느 것도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의 신비로운 일로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거듭남이라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되고 또 영이 새로 탄생이 되는데 그 영이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또 그 영이 주님이 오실 때 신령한 형상을 입어 하늘의 형상으로 화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또 그럼 이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을 믿었던 그 육체의 모든 것이 다 썩어 버리고 신령한 몸은 이 육체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난다고 하니까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 것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하나님을 믿었고 또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았는데 자기의 아무 것도 기억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럼 나는 무엇이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왜 내가 믿어야 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형상이 천국에 가고 기억도 나지 않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첫째는 자기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천국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육체에 속한 혈과 육은 너무도 소중하면서 하나님께 로서 난 나는 전혀 소중하지 않고 그 영이 얼마나 귀한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 오히려 이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자기 육체의 나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에 속한 사람은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안 믿어지니까 자기가 성경을 보고 사람의 이성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결국에는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 영의 나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만세전부터 예정을 하셔서 이 육체의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이 탄생이 되어 그 사람이 하늘의 형상을 입고 천국에 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나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육체와 같이 욕된 것도 아니고 또 약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천국에 그대로 데려갈 수 있으면 이렇게 까지 성경에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성경에서 계속해서 썩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썩어지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편 94:11절을 보겠습니다. (구 872쪽)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려 하는 순간 그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영의 일을 자기가 모르면 그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을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어렵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영의 일을 말씀하니까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누가 받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깨닫지 못하는데 하늘의 일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의 일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이 믿음을 통해서 그것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믿음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 정의를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영의 일에 대해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약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었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다시 부탁을 드리지만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영의 일이 있으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거부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것을 제가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저 역시도 설명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해서 자기 이성으로 접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허무 합니다.

그 허무한 것으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더구나 하늘의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성경에 대해서 아주 조금 알면 마치 대단한 것을 아는 것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 허무한 생각으로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를 모르고 자기 이성으로 영의 일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 성경이 이해가 안 되면 지혜를 구하면 됩니다. 그것을 억지로 자기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두개인과 같이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고 하는 그 말에 대해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허무한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담은 땅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흙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흙에 속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아담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둘 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하시고 십자가에서 이 세상을 죄를 지고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서 나셨기 때문에 오백여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육체의 나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땅에서 났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아니고는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같이 땅에 속한 자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그 어느 것도 하늘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사람들이 이성적 생각에 팽배해 지다 보니까 아담에 속한 것이 하늘에 갈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안식일 교회 같은 곳에서는 다른 것은 다 못 가도 사람의 이성은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 이성이 성화가 되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입니다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래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저 천국에 간다고 하니까 무엇이 어떻게 가는 줄을 모르고 그저 자기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식하게 천국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아담으로부터 났습니다.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어떻게 하늘에 올라 가셨는가를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영의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땅에 속한 우리 육체는 모두가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육체든 정신이든 혼이든 어느 것이라도 하늘에 갈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 중에 어느 것이라도 하늘에 간다고 하는 사람은 고린도전서에 이 말씀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땅에 것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땅에 것을 가지고 가려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8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새번역입니다.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두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생명은 아담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늘에 올라간다는 말씀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자꾸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자기 이성을 좌지우지하다 보니까 혈과 육에 속해서 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자기는 자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자기 안에 탄생이 된 진짜 자기의 형상을 안 믿고 있습니다. 아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그럼 나는 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질문 자체가 땅에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그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다면 어떻게 자기 육체를 보고 그럼 나는 뭐냐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이 얼마나 좋은 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 나입니까?

물론 둘 다 나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소중합니까? 이것은 말하나 마나입니다. 하지만 이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육체의 나는 인정을 하지만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자기 안에 거듭난 생명에 대해서는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나를 하늘의 형상으로 입혀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만 자기라고 주장합니다.

그 썩을 것을 자기라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까 그 썩을 것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기도 하고 또 성화가 되려고 합니다. 이것이 다 자기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데서 나오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가 얼마나 잘났길레 그것을 자기라고 주장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저 같으면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성화가 아주 잘되어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흙으로 탄생이 되어 있는 그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9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새번역입니다.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두 사람입니다.

하나는 아담에서 속한 흙에 속한 내 육체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우리가 땅에 속한 형상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육체의 나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그것 역시 나입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나는 욕되고 연약하기 때문에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하늘에 속한 형상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게 하셨습니다. 진짜 내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이 하늘에 속한 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하늘이 속한 형상은 아담으로부터 땅에 속한 형상을 입고 탄생이 된 우리 인생이 욕되고 연약하기 때문에 하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사람의 이성으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의 비밀을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두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이상하게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사람을 찾게 해 주고 있습니다. 들의 풀과 같이 그리고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아담이 아니라 영원히 천국에서 축복을 누리는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로 난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나라는 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50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결론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유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니까 이 썩을 것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의 신비로운 일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듭난 생명으로 그것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혈과 육에 속해 있는 나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그것은 욕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 욕되고 연약한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것으로 주시기 위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람을 탄생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사람이 썩지 않는 나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화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다 성화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화주의에 빠지면 그 역시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화주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육체를 주장하는 것이 성화주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욕된 것입니다

그리고 약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들의 기준으로 정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 성화주의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는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한편 강도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혈과 육이 유업을 받는다면 한편 강도는 구원을 받아서는 안 되고 그 한편 강도가 구원을 못 받으면 나 역시도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 썩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는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둘은 다 나입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의 나이고 하나는 썩지 않는 하늘에 속한 자의 나입니다 내가 아담으로 말미암아 육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을 입어 썩을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썩지 않을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혈과 육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라고만 주장을 하고 있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은 자기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담으로 난 자기는 자기라고 주장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자기는 자기라고 믿지를 않는지 그것이 더 이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육에 속해 있으면서 정과 욕심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지 아담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 아담의 자손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 믿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영의 비밀을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믿음, 믿음 하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아담의 자손은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인 내가 내 안에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죽었고 이제 그 대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으로 나를 탄생 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영의 나는 욕되지도 않고 연약하지도 않고 썩지 않는 형상입니다.

 

안 믿어집니까?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안 믿어지면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어 질 때까지 구하는 성도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을 알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 이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이것을 사람의 지혜로 믿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구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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