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갈라디아서 강해

갈라디아서 강해42

윤주만목사 2016. 12. 28. 10:50

갈라디아서6:8절을 보겠습니다. (신 309쪽)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교회는 광야입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약을 보면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와 그리고 세상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 안에서 천국복음을 깨달아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비유로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마태복음25장에서 3가지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의 일입니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신약 성경의 모든 비유는 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비유를 보고도 마치 교회 안에 있는 그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입니다.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는 교회 안에 있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통과 이단을 비유로 해서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에서의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그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많은 율법이 아니라 할례라는 단 한 가지가 들어와서 진리를 변하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만 보고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아주 잘 심고 있어서 좋은 것을 거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요한계시록18장에서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저주를 받을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그저 문자를 알고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지금 구원을 받는가 아니면 저주를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과응보가 아니라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님이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육의 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은 지극히 적고 저주를 받는 사람이 절대 다수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아서 내 안에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을 입고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다 압니다.

그리고 자기는 천국에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모든 화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왜 모든 저주와 화를 당하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내가 심은 것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서 심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두 사람이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다수에 속한 한 사람은 다른 복음에 빠져 육체의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육체의 일을 함으로 해서 그가 준대로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서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화입니다.

그리고 저주입니다. 어느 일부의 한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아니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절대 다수가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이 진짜 한 사람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사람 전체를 한 사람이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어느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절대 다수에 속해 있는 저주를 받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둡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서 콩이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자기가 콩을 심는지 팥을 심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엇으로 심고 있는지를 모르고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생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아주 나쁜 의미의 단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회 안에서 다 좋은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단 하나의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내세입니다. 처음 창설이 되었던 에덴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시 창조가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육체의 일에 너무 깊이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서 콩 납니다.

내가 지금 교회 안에서 무엇을 심고 있는 줄을 정확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막연하게 나는 잘 심고 있다고 하지 마시고 내가 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심는 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가 하면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어느 농부가 밭에다 팥을 심어 놓고 콩을 거둔다고 생각합니까? 농부는 자기가 심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밭에 팥을 심었는지 콩을 심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심습니다. 그냥 아무 씨나 같다가 뿌리는 것이 아니라 팥인지 콩인지를 알고 심고 있습니다.

세상의 농부입니다

그도 자기 밭에 무엇을 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밭에 심은 것에 따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어느 것을 심었는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일도 그럴 진데 영의 것을 심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밭에 무엇을 심는지를 모르고 심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 일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보다도 못한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두기 위해서 수고를 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서 수고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을 거둡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절대 다수가 그저 거대한 종교의 물살에 휩쓸려 떠 내려가면서 다수가 가는 길이 맞는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자기 육체에 심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육체가 무엇인가를 모릅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알고 있다면 다행인데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육체가 무엇인지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내 몸이 육체입니다. 그러니까 내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이 다 육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보고 이성으로 알고 감정으로 느끼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다 육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자기 육체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육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로 하는 일을 영의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릅니까?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육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천국의 비밀을 안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듣고 믿음으로서냐 율법의 행위로냐 묻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해서 심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 심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이 육체에 상관된 계명인가 하면 이 율법을 지켜야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다 지키면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지 않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얻으면 생명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왜 죽었습니까?

그는 육체의 상관된 계명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만약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보여 주시면서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습니다. 선악과를 안 따먹었다면 아담은 이제까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죄를 짓지도 않은 아담이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은 죽었습니다. 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는가 하면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육체로 영생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세상에는 영생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성경이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체에 상관된 계명입니다.

성경에서 보고 있는 율법은 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육체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죽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썩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안 썩습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부터 우리는 썩습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반드시 썩습니다.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가 하면 그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어서 반드시 썩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육체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거둔다는 말씀은 그 사람은 반드시 죽어서 썩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그는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 육체의 썩는 것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다.

모두입니다.

지금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그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는 사망을 당해서 그 육체가 반드시 썩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이 따라 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키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육체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그 육체가 사망을 당하고 썩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는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보고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이냐 다른 복음이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아서 듣고 믿는 것이 복음이고 다른 복음은 성경을 보는 사람이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율법을 우리 육체로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은 자기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롭게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율법을 지키면 육체가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망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썩습니다.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반드시 죽게 되고 죽으면 썩는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0:3-4절을 보겠습니다. (296쪽)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인생은 육체입니다

이것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해도 역시 지금은 육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대로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에 있는 육체대로 행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정말 이 육체의 것을 끊어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육체를 끊기 힘이 들면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합니까?

또 이유가 있습니다.

육체로 행하는 순간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영이라는 말은 많이 해도 이 영과 육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로 행한다는 말씀은 육체를 가지고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육체로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갑니다.

그것을 부인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자기 육체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다 육체로 행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해도 육체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로 행하는 것은 다 썩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육체로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순교를 당했다 해도 그것 역시 육체로 행하는 일이고 그렇게 육체로 행하는 모든 일은 다 썩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로 행한 그것을 가지고 어느 것도 천국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썩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육체로 행하는 일에 열심을 냅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천국에 가져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와 같이 나중에 주님을 오시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리라는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육체로 행한 그것이 나중에 천국에서 상급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천국의 상은 오직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또 복음을 전하고 하는 일은 천국에서 더 큰 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천국을 은혜로 주시고 우리 성도들에게 그것을 부탁하셨기 때문에 하는 일이지 상급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썩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 해도 그 일을 육체로 해서 다른 영혼이 수백 명이 구원을 받았다 해도 그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일에 감사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그것으로 상을 받을 수도 없고 그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썩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육체로 행하는 모든 일들은 다 썩어집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거의 다수가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마치 천국에 가서 상급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상급은 오직 믿음으로 천국을 얻는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당연히 더 큰 상을 줍니다. 그러나 천국은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서 일을 한 것에 따라 상이 주어진다면 그곳은 더 이상 천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 그 자체가 우리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급인데도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실제로 생각하는 그 자체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을 하신다고 했는데 이 시대는 국어를 몰라서 비유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로 행하는 것은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을 받은 성도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강력한 진을 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이 도무지 알지 못하는 믿음의 비밀을 주시고 있고 오직 믿음으로 천국을 기업으로 얻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믿음이 있습니다. 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천국의 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나 사도 바울의 믿음과 내 믿음이 다릅니까? 그것이 아니라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믿음이라는 것은 동일한 상을 받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육체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체로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육체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로 싸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싸우고 있고 또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왜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는 절대로 육체로 싸우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내 죄를 내가 짓기도 전 2000년 전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하는 율법을 주님께서 오셔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의 부요함을 주님이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셔서 내가 영으로 부요하게 되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왜 안 믿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성경의 문자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안 믿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죄와 그리고 율법과 싸우기 위해서 자기 육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썩어집니다.

모든 것은 다 썩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교회 안에서 하는 그 행위가 천국에서의 상급인 줄로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의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육과 영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육과 영을 서로 섞어 버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과 영은 전혀 서로 다른 본질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하나에서 출발을 해서 마치 믹싱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육은 반드시 썩어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세상의 생각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마치 육의 어느 것이 영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들이 다 샤머니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육과 영을 분명히 따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남 입니다.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씨를 모릅니까? 아담으로부터 받은 것은 다 썩어질 씨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은 다 썩어질 씨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성경을 보아야 이 거듭남에 대해서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 썩어질 씨에는 우리 육체도 있고 정신도 있고 마음도 있고 지식도 있고 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썩어질 씨입니다.

율법의 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 모든 일도 다 육체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썩어질 씨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썩어질 것을 가지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썩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한 일을 가지고 상급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안식일 교회에서부터 출발이 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썩어질 것을 가지고 가려 하니까 교회에서는 더욱 더 열심을 내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썩어질 씨를 모릅니까?

그리고 육체를 모릅니까? 정말 이 시대는 답이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이 그저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끌려가고 있는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 문제로 인하여 그리스도편지에서도 복음을 듣다가 나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육체가 살아 있고 혈과 정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영의 일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썩어질 씨의 어느 것이라도 천국에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복음을 거절하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까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믿는 것같이 했다가 이 문제에 걸려서 결국에는 다시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제가 설명을 하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육과 영이 전혀 다른 본질의 것이라고 하니까 그럼 나는 무엇이냐고 하면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나가려면 자기 혼자나 나가지 다른 사람까지 미혹을 해서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영의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금 교만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저는 복음을 전하면 미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 자신 만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격고 나서 성경을 다시 보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교회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체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믿음으로 내 안에 또 다른 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썩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언젠가 반드시 썩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썩는 것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진짜 나를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살리시는 것이 영의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썩는 것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영의 신비로운 일로 하시고 있습니다.

누가 나입니까?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나입니까?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나입니까?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나라고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 어느 것이 나였으면 좋겠습니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나는 반드시 다 썩어 집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한 모든 일들은 육체가 했습니다. 그것은 다 썩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를 위하여 그 썩을 것을 가지고 심고 있고 심지어는 그 썩을 것을 천국에 가져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기 전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나서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에덴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냈습니다. 죄를 진 순간부터는 에덴에서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 아담의 종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아담의 종자가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리고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살았습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것 역시 아담의 씨며 썩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이 다 썩습니다. 그것이 의롭든 악하든 선하든 죄인이든지 다 썩는 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거듭남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또 다는 내가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육의 것의 어느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악의 종자입니다.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내 안에 영이 탄생이 됩니다.

아담의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모로 태어난 아담의 사람도 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내 안에 있는 영도 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둘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전혀 다른 본질의 것입니다

하나는 썩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썩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나이기를 바랍니까? 아담의 자손인 나를 나라고 인정하고 싶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나라고 인정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어느 것을 심느냐에 따라 그대로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것은 썩어질 씨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심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것을 아무리 의롭게 하고 또 선하게 한다 해도 그것은 썩는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 사람은 그 썩을 것을 위하여 교회 안에서 심고 있습니다. 그 썩을 것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것을 의롭게 하고 싶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 육체를 의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영을 의롭게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는 안 됩니다.

육체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로운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의 비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 육체를 의롭게 하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그 사람은 반드시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는 육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섞여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육의 일은 육으로 끝이 나고 영의 일은 영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육의 썩어질 것이 영과 연결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으로 영이라고 구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는 난 것이 어떤 영향을 줘서 성령으로 난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은 서로 본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이 영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 육이 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끝이 나서 썩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육으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썩었습니다.

그것을 아담을 통해서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느 누가 육으로 난 것이 영생을 했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다 썩어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육으로 난 것이 썩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실 때 그 육체의 죽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육체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은 서로 다릅니다.

물론 육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탄생이 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의 육과는 전혀 본질이 다른 영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자기들의 육에 심은 것에 따라서 자기들이 이야기 하는 천당을 간다고 하고 있고 또 그 육에 어떻게 심었는가에 따라서 다음 생에 더 좋은 것으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육으로 난 것은 다 썩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육체로 심은 것은 영이 탄생을 하는데 있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다 내세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성경은 절대 그런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육으로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이 말씀을 들으면 그러면 세상이 악해질 것 아니냐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내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더 많이 죄를 질 것이고 또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 합니다.

똑같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면 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성경을 모르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몰라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내세에 영향을 줘야 사람이 더 의롭게 산다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자기들의 종교에 열심을 내게 하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육으로 난 것으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지만 주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마귀의 자식인가 하면 육으로 난 것으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이 육체의 썩어진 것을 거두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서 사람의 이성을 따라 그것을 심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광명의 천사들을 교회 안에 세워 놓고서 그를 따라가게 하면서 육체의 썩어질 것을 위하여 심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으로 나서 마귀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육으로 났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입니다. 우리 역시 육으로 난 사람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게 해서 내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난 그리스도의 영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진짜 나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이 죽은 사람입니다. 실제 죽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의로워지려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나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난 것은 반드시 다 썩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무리 진심으로 믿었다 해도 육으로 난 것은 다 썩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를 위하여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는 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거두려고 회칠한 무덤과 같이 살았지만 주님께서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5: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내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까?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까? 이 문제를 바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원파 같은 경우에는 마치 자기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로 죄인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내가 의인이라고 해서 의인이 되고 내가 죄인이라고 해서 죄인이 됩니까? 마치 내가 죄인이라고 하면 구원을 못 받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내 육체입니까?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의 것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의 죄를 지고 가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지고 가신 것은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진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지고 가신 것이지 우리 육체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 지고 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정죄함에 이르렀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썩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탄생이 된 내 육체가 정죄를 받아 썩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영입니다.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다 썩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자손이 태어났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어 생명에 이르렀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부터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의 자손인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것이 나라는 말씀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만 죽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 역시도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어지지도 않고 또 이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내가 죽어야 그리스로 말미암아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26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세상의 이성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이 영의 일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육체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고 그들이 성령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왜 보내 주셨습니까? 사람은 늘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천국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빌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가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는가 하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가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셔야 진리의 하나님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는 사람도 안 됩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바라야 하는 생명에 대해서 인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 이성의 모든 것이 다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성령이 역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의 것으로는 썩어진 것을 거두기 때문에 육체가 아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성령이 내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그것이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하면 성령이 내게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성령이 아니고는 이 영의 일이 믿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믿어집니까?

육체의 내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이 내 안에 탄생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믿어집니까? 그 영이 더구나 내 육체의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어떻게 믿어집니까? 이것은 성령이 역사가 아니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영의 일에 대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한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내 안에 어떠한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믿어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빌 바를 모르지만 성령은 알고 있습니다. 그 빌 바를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면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내 육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성령을 위해 심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고 하니까 마치 내가 이성이 있어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육체에 심지 않게 하고 있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혀 다른 일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일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고 자기 육체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내가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인도를 하셔서 내 육체가 묶여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로마서3:2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어떻게 성령으로 심어 영생을 거두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가 죄에 팔려 죽게 되었는데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셔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파는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주님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때 다 같이 죽었습니다. 주님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것은 주님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육체로 살아 있는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갈라디아서 말씀은 잘 알고는 있지만 자기가 죽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지금 살아 있지만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담의 자손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성경에서 죽었다고 하면 지금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죽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어렵습니다.

죽지도 않은 나를 죽었다고 하니까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습니까? 잘 이해를 하시지 바랍니다. 그 사람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죽은 그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죽은 자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썩어집니다. 죽은 자는 반드시 썩어집니다. 썩어지는 그것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가지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반드시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할 때 그는 분명히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기가 분명히 못 박혔다고 믿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누구입니까?

아담의 씨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것이 죽어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가 내 안에서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육체의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입니다

그것을 아담의 씨로 난 내 육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를 누가 의롭다 하십니까? 죽은 자는 이제 썩기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을 위하여 심게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가 탄생이 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듣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감동을 받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고 믿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가 하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내 육체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안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썩어진 것을 거둔다는 말씀은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부터 어떻게 영생을 거두는가 하면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그 썩어진 것이 죽고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초보에서 벗어나 이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의 일과 영의 일이 있습니다. 이 육의 일과 영의 일이 서로 연관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의 일은 육의 일이고 영의 일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시대는 육체의 일과 영의 일을 분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육체의 사람에게 미혹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일을 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고 있다는 말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받은 영생이라는 것은 정말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은혜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이 영의 비밀을 알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성도가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육체의 내가 이것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은혜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몇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자기가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고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분명히 의롭게 보일지라도 이 모든 것은 육체로부터 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이미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그저 감성적으로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 자기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문자를 아는 것으로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아야 죽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구원입니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떻게 새로운 형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이성이 아닙니다. 하늘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나는 이제 죽었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이 시대는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행한 그 의로 말미암는 것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심지어는 성령이 오심으로 자기 육체가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말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들을 자기들이 지어 내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함으로 해서 마치 은혜를 받은 것 같이 속이고 있습니다.

빌립보서1: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18쪽)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내 지혜로는 안 됩니다. 내 능력으로도 안 됩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켜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성령이 우리를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위하여 심게 역사를 해야 합니다. 성령이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의 행위를 돕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볼 때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심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여 친히 간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 안에 오신 성령이 이렇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빌 바를 알게 되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내가 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도와 주셔서 마땅히 빌 바를 빌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은 알고 있지만 실제 그들을 보면 전혀 죽어 있지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를 위하여 심고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다가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부터 마땅히 빌 바를 감동 받아서 영생을 거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고 육체로 썩어진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많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단 하나의 할례로도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로 심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 육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심는 것이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나는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이고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맞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이 맞습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종교가 되어 버린 교회에서는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 밖에는 없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 이 두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지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모든 사람이 다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고 싶어도 심을 수 없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 아는 것이 역사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로는 이제 죽었고 이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감동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함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죽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막연하게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입니까?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다는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따집니다.

왜 우리가 죄인이냐고 저에게 따집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이 육체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육체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까? 아니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령 의롭다 하심을 받으면 뭐 합니까?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 해서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을 필요도 없고 설령 받는다 해도 내가 천국에 가는 것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 그것은 의롭다 함을 받아도 썩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썩어진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성령으로 난 우리의 영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기 때문에 그를 믿는 우리의 영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81쪽)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아담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아마도 제가 이 말씀을 물어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의 문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것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육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아담의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아담의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육체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었는데 나는 안 죽었다면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죽은 몸은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몸이 의롭게 된다 해서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육체는 썩습니다. 오늘 죽으나 내일 더 의롭게 살다 죽으나 썩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이유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를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한 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는 죽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면 나도 육체가 죽임을 당하면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모본입니다.

본래의 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래의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은 것이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 역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살리심을 받은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 영이 영생을 거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영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체에 빠져서 이 영의 비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 합니다. 의롭다 함을 얻지도 못하는데 왜 그것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복음이냐 다른 복음이냐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는 그것이고 썩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실제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 영이 영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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