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3:6절을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의 일과 육의 일에 대해서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육이 무엇이고 영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분별이 안 되고 그저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영과 육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무지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교리 체계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고 또 그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무려 2000년 가까이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이제는 성경 자체도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설교에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로 325년에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가 이제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들은 다 이 교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곳 말고는 거의 모든 이단도 이 교리를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어느 인터넷에서 성령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느냐고 하니까 대뜸 하는 말이 기독교의 기본교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삼위일체입니다.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성령에 대해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구차합니다. 솔직히 몇 가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아도 도저히 납득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시대는 성령에 대해서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 그대로 진리의 영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성경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번 설교에서도 성령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면서 오늘 말씀에 대해서 설교를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려면 언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그 사람들만큼 그 뜻을 이해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역시 또 문제가 되는 것이 비유와 은유 그리고 예표로 되어 있는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언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언을 통해서 각 나라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은 굳이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을 안 보아도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부족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언입니다,
이 시대 이 방언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나라 언어가 아니라 외국의 언어입니다. 이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이 편찬이 되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은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을 해서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는데 있어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거의 안 봅니다,
제가 설교나 강해를 작성할 때 참고로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기준으로 삼고 있는 성경이 한글개역성경입니다. 그리고 새 번역을 보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고 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를 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국어사전을 보고 있고 가끔가다가 성경대백과사전을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한글개역성경이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은 다 방언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이 번역을 했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방언을 받았다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라 해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여러 가지 성경을 번역을 했고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은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바로 알면 그런 것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런 은사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성경은 영의 말씀입니다.
이 영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오셨어도 이런 언어를 모르면 자기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는 있어도 언어를 모르게 되면 자기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언어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어를 잘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부싸움을 합니다. 그러면 싸울 때 더 화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더 화를 냅니까? 내가 한 말의 뜻을 상대가 이해를 못하고 동문서답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더 화가 나니까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대화가 잘 될 때는 정말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가 안 될 때는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아서도 잘 알겠지만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대화를 보면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동문서답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동문서답이 되는가 하면 바로 그것이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령입니다
진리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영이라는 말은 하고 있지만 이 영이 어떤 형태인지도 그리고 우리 사람과 같이 이성이 있는 것인지 솔직히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도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이상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 이상을 생각하다가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은 같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천사 역시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면 다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왜 하나님의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아서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에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까? 아니 비유나 은유로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조직신학 책이 루이스 뻘콥이 지은 책을 보고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행전5:3-4절을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 땅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팔고 막상 돈을 손에 쥐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절에 이 일이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속인 것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 되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가지고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마태복음10:40절을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니까 그럼 제자들도 하나님이 된다는 말입니까? 지금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하는 말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같은 일입니다, 단지 하나는 나쁜 것이고 하나는 좋은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성경을 속인 것이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되어서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은 제자들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니까 제자들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언어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국어를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가지고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것이 지금 기독교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가장 정통성이 있다고 하는 조직신학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3: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왜 성전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되었기 때문에 성전이 되었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에 보이던 성전이 이제 신약에 와서는 보이지 않은 성전이 되어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또 다른 보혜사가 오셨습니다,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성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언어의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데 전혀 다르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여기서 성령에서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하나님의 보이는 성전이 이제 우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된 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너무 확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성령에 대한 말씀에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하나님의 신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3: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너무 구차합니다,
지금 기독교 조직신학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에게 하나님의 명칭이 주어진 것을 성경 절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성경을 마치 그 성령이 하나님인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어떻게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성령을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격을 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존칭을 써서 말씀을 하는 것을 가지고 성령이 인격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격입니다.
참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그 인격이라는 것이 얼마나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모르고 인격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모릅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격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마치 성령이 대단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 이상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에 무슨 인격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우리 인생들에게 인격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최고의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인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모르니까 의인화를 해서 말씀하는 것을 인격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들을 보고도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입니까?
인격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한다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독하는 언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인격이라는 것은 우리도 역시 인격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격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영입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또 보혜사라고도 하고 진리의 성령이라고도 합니다. 영의 것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인생의 초등학문을 가지고 그것을 정의를 내리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그것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직신학에서 이야기 하는 성경말씀 조차도 너무 궁색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새번역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공동번역입니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킹제임스입니다.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육에서는 난 것은 육입니다,
그리고 영에서 난 것은 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리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면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육신으로 난 사람이 있고 성령이 오셔서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육체의 사람입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육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육체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럴지라도 그가 육체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아니 육신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그 육체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하는 그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성경의 기초가 너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육신으로 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믿었습니까? 이제까지는 자기 육체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육으로 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그것이 다 육으로 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으로는 영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태어난 다는 것도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에 대한 말씀은 사실 우리가 그래도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제가 육으로 난 것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많은 말씀을 설교로 올렸습니다. 그런 설교를 보고도 육으로 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이성을 버리지 않고 성경을 그 이성으로 보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으로 난 사람입니다.
우리 이방인 역시도 육으로 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으로 다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썩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썩어지는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썩어질 것을 가지고 매일 설교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 썩어질 것을 가지고 회를 칠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겉을 아름답게 회를 칠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저주를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영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영을 우리가 어떻게 정의하고 또 느끼고 만지고 감성적으로 경험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영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무형의 실체라고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이 영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정의를 내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체험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성령 하나님 오시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첨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자기들 마음대로 확대 해석하고 상상하다가 진리에서 스스로 벗어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령입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까? 만져질 수 있습니까? 체험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영은 무색무취합니다. 단지 내 안에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만 믿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으로 난 것은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성령으로 영이 났다고 하니까 자기와 느끼고 감정으로도 인격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으로 육에서만 알고 영으로 난 것은 영으로만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 주셔서 영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3: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땅엣 것입니다,
그리고 위엣 것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땅엣 것이 바로 육입니다, 그 육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지금 살아 있습니까? 그래도 성경에서 죽었다고 하면 죽은 것으로 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살아서 날뛰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습니까?
그것은 죽은 생명입니다, 아니 앞으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 죽어야 하는 생명을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육으로 난 것은 이제 죽고 성령으로 난 것이 우리의 진짜 생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둘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의 언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상관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잘라서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오셨습니까?
아담이 범죄 함으로 우리 인생은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죽은 자에게 다시 새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다시 죽지 않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을 이 시대는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성령으로 난 새 생명이 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죽었습니다,
아담으로 난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육신으로 난 것에 거한다고 하니까 마치 이 육신과 영이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성이 있고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한다 해도 성령으로 난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은 어떤 영입니까?
위엣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온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은 땅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로부터 났습니다, 이렇게 하늘로부터 난 생명을 영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 거룩하고 의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이 아니라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늘의 생명입니다, 어떻게 이 생명이 탄생이 되었는가 하면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이 오셔서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 영이 어떻게 있는가를 골로새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 어떻게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진짜 나라는 말씀입니다,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나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은 사단이 이 영을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사단이 어떻게 죽일 수 있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이 아니고는 내가 믿고 싶어도 안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습니까?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원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믿어집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는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제가 이 설교를 하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성도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성령이 오셔서 나를 감동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기 때문에 이 생명에 대해서 믿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제 안에 있는 생명이 어떠한 형태고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으로 난 영이 내 안에 있고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하나님 안에 어떻게 감추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믿어집니다.
그 생명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이 생명은 육으로 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차피 나중에 다 썩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이 생명이 신령한 하늘의 것을 입고 영원히 썩지 않는 형상으로 변화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이성으로는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고 있습니다,
왜 믿을 수 있는가 하면 성령이 오셔서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내가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게 인도를 하기 때문에 믿어집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육으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을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6:4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의 생명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 생명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육으로 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육으로 난 것으로 가지고 교회 안에서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허탄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입니다,
이것은 육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담으로 죽었던 우리를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생명이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육으로 난 것이 마치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의 내가 천국에 갑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난 영이 천국에 갑니다, 그것을 새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영이 태어났습니다, 아니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육으로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고 성령으로 태어난 생명이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생명은 전혀 다른 본질의 것입니다, 육신으로 난 나를 통해서 하늘의 것으로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이 지금 나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난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입니다. 이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영의 생명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으로 난 생명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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