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마태복음23:29-39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화 있을찐저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지나간 일들을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일이고 이제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시대도 똑같이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타락을 합니까?
그 조상들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성경에 이런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역시 똑같이 그 잘못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타락을 했으면 역시 이 시대도 똑같이 타락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화를 당하면 이 시대도 역시 다수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과는 무관한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선지자를 죽였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도 역시 직접적으로는 죽이지 않았지만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너무도 정당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한 조상들과 다르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인생들은 늘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바로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유적인 말씀을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자기는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늘 그렇게 자기들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럼 이스라엘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다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동조를 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은사주의에 빠지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의 의에 빠져 있는 그들이 화를 당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32:11절을 보면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너무 안일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아야 하고 또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정말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너무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모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이성적인 사고로는 분명히 잘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고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상은 거의 이 세상의 이성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그들의 입에서 예수를 믿으라는 그 말을 빼고 남녀 나머지는 불교에서 하는 말이나 천주교에서 하는 말이나 똑같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혼란을 겪습니다.
뭐가 다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편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편협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사상에 매여서 아주 편협한 사상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골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가장 잘 난 민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고 살았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도 정통 장로교에서 신학을 했지만 목사들의 모임인 노회를 참석해 보면 이 사람들이 과연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아니면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 사람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외식을 하는데 있어서는 이미 바리새인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바리새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는 그 행위를 믿음이라고 말하는 아주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 목사들이요 교인들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영의 종교입니다 육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경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영의 종교가 아니라 육의 종교로 철저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불교나 천주교나 기독교나 별로 차이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이동을 합니다.
어느 날 불교 신자가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고 또 기독교 신자가 불교에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철저하게 육으로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다만 자기들의 전통만 다를 뿐이지 실제 깊이 들어가 보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화가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는 반드시 화가 있습니다. 행위로 빠져 자기 행위를 보면서 너무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깨어서 내가 바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께 늘 질문을 하고 또 자기를 살펴서 바리새인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외식
이 시대 사람들이 과연 이 외식에 대해서 알기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어느 누구도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거의 다 외식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선지자의 무덤을 쌓습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고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선지자들을 무덤을 잘 쌓아 두고 있고 또 의인들의 비석을 새우고 있습니다.
정통성입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선지자들과 의인들의 비석을 자기들의 손으로 꾸며 놓고 그것을 잘 보호하고 있으면 마치 자기들이 그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있고 또 의인들의 비석들을 세우면서 그것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큰 교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자기 윗대에 있는 사람들의 기념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면 바로 자기들이 이렇게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선지자의 무덤을 쌓는다고 해서 내가 의인을 기념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이 정통이구나 하면서 그들이 하고 있는 외식에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런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이 시대 성지순례를 한다고 하면서 옛 사도들이나 믿음의 선진들이 세웠던 교회나 그들이 핍박을 당했던 장소를 돌아보면서 자기들이 그 자손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성지순례를 갔다 오면 자기들이 그들과 같이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설령 그것이 사도들이 세운 교회면 뭐합니까? 그곳에 방문한다고 해서 내 믿음이 생깁니까? 거기를 갔다 온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감동을 받고 있고 자기들이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돈이 있다 해도 굳이 거기를 가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그 지역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굳이 그런 외식을 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덤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을 보면서 자기들이 그들과 같이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성지순례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어디가 성지입니까? 이 세상에 거룩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을 아무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그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고초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그때 있었으면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을 기념하고 있는 자체가 이미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지가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의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물론 그들을 믿음의 선진으로 인정을 하고 살아가야겠지만 그 선지자들의 무덤이 의인들의 비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사도 바울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들어 쓰시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도 이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들은 안 했다고요?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 은사주의자들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현저히 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기념하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외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자기들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런 외식이 아니라 영으로서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을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외식으로 인하여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자기들이 이 선지자가 의인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자체가 외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모습으로 외식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백주년 기념 교회에 가면 묘비들이 있습니다. 그 묘비들을 얼마나 잘 가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는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안 해도 믿음이 있는 성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누가 죽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 의인들을 죽였습니다. 이 세상에 무덤을 만들고 이 세상에 기념비를 만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믿음의 선진들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업을 바라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그리고 의인들을 기념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외식입니다 그 선지자들을 그리고 의인들을 자기 조상들이 죽였습니다. 그들이 왜 죽였느냐면 바로 그들과 같이 외식을 하다가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똑같이 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또 의인들을 기념하는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자꾸 육으로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외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하는 그것이 바로 외식이고 또 너희 조상들이 죽인 것 같이 너희의 외식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는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묘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아니 오히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진리를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말하는 성지를 갔다 오면서 스스로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왜 그런 외식을 하면서 자기들이 그 자손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를 해야 합니까? 그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증거고 또 그 조상들과 같이 외식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너무 그런 것에 빠져서 성경에서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서는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너희도 똑같이 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고 난 후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역시 예수 믿는 의인들을 죽일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그 양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런 설교들이 얼마나 많이 행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목사들의 이야기가 설교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예화가 되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예수님께서는 외식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노골적으로 사단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있고 의인들을 기념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들의 무덤을 쌓고 그들을 기념하는 일을 하기 이전에 이스라엘은 왜 자기 조상들이 그렇게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회개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더 외식을 하면서 자기들의 행위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고 있지만 그런 그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면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누가 지옥에 가느냐면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외식을 하고 있는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을 하는 자들이 너무 거대하게 되어서 실제 의인들이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고 그것은 한 마디로 의인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왜 선지자의 무덤을 쌓고 왜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외식을 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있고 그런 행위가 자기들 역시 의인들을 죽이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선지자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세우고 있지만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을 보내면 너희가 역시 그들을 더러는 죽이고 또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박을 합니다.
외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심하게 반대를 하거나 구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주님께서 복음이 있는 자를 보내고 있지만 외식하는 자들이 있는 교회가 그들을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세상의 법이 있어서 죽일 수는 없겠지만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마도 매장을 시켜 버릴 것입니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해서 그가 더 이상 복음을 전하기 못하게 만들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이 시대 누군가가 십일조는 죄 악을 범하는 것이고 또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지옥 자식이 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전하고 있지만 제가 전하는 소리가 조금 더 커지면 그들은 분명히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선지자를 인정을 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가 웨슬레를 비난을 하고 또 칼뱅의 잘못된 것을 이야기 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의 양대 교리를 구축하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전하는 것 중에 잘못된 것을 이야기 하고 진리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저를 이단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칼뱅의 오대 강령은 분명히 성경 적입니다
그러나 칼뱅의 율법관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큰 교회의 목사였다면 장로교나 다른 감리교에서 저를 핍박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직 예수를 전하면 오히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하면서 심지어는 죽이자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만 아닙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외식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핍박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단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누가 죽였습니까?
물론 가인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사가랴는 이스라엘이 죽였습니다. 이 사가랴는 역대하에 나오는 인물로 추정을 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인용을 하셨습니다.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인들을 누가 죽였느냐면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가인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담의 장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을 믿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의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게 되면 진리가 가려져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죽입니까?
외식하는 그들이 죽입니다. 선지자들의 묘를 쌓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세우고 있는 그들이 오히려 의인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어야 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 기념을 해야 하는데 외식하는 자들은 그것을 드러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선지자들의 흘린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에 돌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대는 예수님께서 계실 때를 말씀을 할 수도 있고 아담의 자손 모두를 말씀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외식하는 자들에게 피의 대가가 다 돌아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그가 선지자라 해도 그가 의인이라고 해도 그것을 기념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외식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사람들을 기념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알아야 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습니다.
내가 구원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 역시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화 있을찐저 마태복음 23장에서 일곱 번이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는 말씀입니다
혹시 나 역시도 선지자의 무덤을 쌓고 있지 않고 또 의인들의 기념비를 세우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행위를 하면서 마치 자기들은 이스라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고 있는 그들이 외식을 하면서 선지자들의 무덤을 아주 좋게 쌓고 있고 의인들을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 받습니다.
여러분이 외식을 했다면 선지자들을 죽은 자들입니다 또한 의인들을 죽인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일곱 번을 말씀을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찐저 일곱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외식을 하지 말라고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외식을 하는 순간 그는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외식에 대해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이 시대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외식이라는 것을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선지자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역시 지금 이 시대까지도 죽이고 있습니다.
원치를 않습니다.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원치 않고 자기들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있는 자들을 보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외식에 빠져 복음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외식이 빠져 있는 가를 스스로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외식을 믿음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는 성도들을 따라 행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바로 외식이 되고 있고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면 오히려 그들을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단입니까?
아마도 이 시대 바른 진리를 전하면 분명히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전하면 예수만 믿으면 되느냐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나타내면서 예수를 믿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81:11절을 보면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누가 원치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가 원치 않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는 성도들과 같이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외식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가진 자들을 보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외식에 빠져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는 그들이 복음에 더 심하게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수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다수가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다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되느냐고 하면서 성도로서의 행위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천만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다면 그 교회들은 이미 황폐화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 외식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또 교회가 아무리 근사하게 지어져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외식을 하는 자들은 절대로 주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옥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외식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 외식으로 인하여 자기들이 지옥 자식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 외식을 보면서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단 한가지의 외식이 나를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도는 성경을 통해서 믿음의 비밀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성경을 보면서 더욱 더 외식에 빠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행위를 따라 가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같이 육을 따라 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영을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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