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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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윤주만목사 2016. 5. 21. 17:00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10:19-25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예배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공식으로만 있는 예배만 해도 10여 번이 넘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인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오히려 저 목사 이상하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영과 육을 분별이 안 됩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교회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종교로 전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어느 누구도 깰 수 없는 자기들만의 예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예배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모이기를 힘쓰고 있고 그런 모이는 자기들의 모습에 취해서 믿음이 좋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매일 새벽에 나가 기도를 하는 그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새벽 예배를 만들어서 그것도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 그들 스스로 믿음에 자부심이 대단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경 한 구절에 꽂히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그 말씀이 마치 성경에서 기준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성경에 나온 그대로 하려고 아주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말씀이 자기 마음에 와 닫으면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낼까를 고민하고 또 그런 것을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심합니다.

세상을 살기에도 교인들은 버겁기만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더욱 그들을 포승과 같이 꽁꽁 매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속이 되어 있는 그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가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나친 열심이 자기를 죽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만 나오면 하나님께 너무 열심을 내고 있고 그런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말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매일 새벽 예배는 기본적인 옵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는 매일 철야를 하면서 자기들이 그렇게 모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작정을 합니다.

개척 교회들은 교회 부흥을 위해서 매일 철야를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참석하는 것을 믿음이 좋은 척도로 삼고 있습니다. 또 대형 교회는 기도원을 만들어 놓고 그 기도원에서 매일 3-4차례 예배를 드리고 있고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지 않고 그런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배입니까?

아니 예배라면 저는 얼마든지 찬성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만족을 위한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지 그것을 예배라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모임에 가보면 전부 우상의 제물로 채워져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그런 행위는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일주일에 한번만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교회를 개척을 하면 아무도 안 올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저 교회는 이단이라고 하면서 배척을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교회 간판을 내 걸려면 이 시대 교회가 행하고 있는 예배의 형태의 기본적인 것은 그대로 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모임은 종교적인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많이 모임을 갖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히브리서 이 한 말씀에 꽂혀서 가능한 많은 예배를 만들고 있고 가능한 많은 모임을 만들어서 그렇게 자기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보시겠습니까?

 

출애굽기20:9-11절을 보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이것이 율법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실 때 하셨던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제 칠일에 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은 네 모든 일을 힘써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레위인과 일반 백성과는 다릅니다. 레위인은 매일 제사를 드리고 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엿새 동안은 자기가 하는 일을 힘써 행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그것에 따라 이스라엘은 엿새 동안은 힘써 자기들의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신앙생활을 십년을 해도 어린아이고 오십년을 해도 역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 많은 모임이 그들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모임에만 잘 참석을 하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교회가 그렇게 사람들을 세뇌 시키고 있고 교인들은 자기가 믿음이 좋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가 되면 뭐합니까? 그리고 권사가 되면 뭐합니까? 지식이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임에 충실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모임에 잘 참석을 해야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는 교회는 진리가 이미 사라졌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모이지를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합니다

모임 안에 들어가야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모임만 잘 참석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힘써 일해야 하는 것에 지장을 받으면서 까지도 믿음을 인정받기 위해서 그리고 그 종교에서 장로가 되기 위해서 권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많은 모임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답이 무엇입니까?

엿새 동안은 힘써 네 일을 하는 것이 답입니다. 물론 목사라든지 특별하게 자기가 복음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예외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전념을 해야 하지만 일반 교인들은 사실 엿새 동안은 자기 일을 힘써 행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을 매일 그렇게 듣는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매일 예배를 드린다고 믿음이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매일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전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이 그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상의 제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기초만 알아도 됩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교리만 알아도 웬만한 것은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본이 안 되다 보니까 평생을 매일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있지 않고 점점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됩니다.

그때 말씀만 바로 듣고 가면 그것으로 일주일을 지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일반 성도라 할지라도 말씀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것이 있다면 한번 정도의 모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으면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약 삼년 정도만 배우면 어느 정도 성경적인 기초의 교리가 잡힌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가 성경을 보면서도 말씀을 어느 정도는 다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심오하기 때문에 그것을 매일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구하고 있는 목사들에게서 바르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인들이 어떻습니까?

모태부터 신앙생활을 해서 70이 넘었어도 역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이 모이기를 폐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모임이 그들을 바보로 만들고 어린아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못 합니다.

교회에 나와야 하고 또 목사에게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을 시시콜콜 다 물어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의 연조가 있으면 이제 웬만한 것은 스스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너무 많은 모임을 갖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모이기를 폐하십시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그것에 반의 반 정도로 줄여도 됩니다. 많이 모인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그리고 많이 모여서 믿음이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매일 교회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교인들을 너무 그런 예배로 구속을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모이는 것을 완전하게 폐하라고 한다면 저는 이단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너무 많은 모임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교회가 그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왜 모이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임이 자기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모여서 교제를 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형식이 되고 그것이 종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모일 때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모여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는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담력은 어떻게 얻어졌습니까? 히브리서 10장은 율법이 폐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율법 아래 있습니다. 자기들이 모이는 예배의 순서가 안 그렇습니까? 삼가 지키고 있고 또 그것으로 정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그래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들의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폐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한국교회의 모든 예배는 다 율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인이라고 하면 새벽 예배를 드려야 하고 수요 예배를 드려야 하고 금요 철야를 드려야 하고 또 구역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주일을 지켜야 하고 또 자기들이 특별하게 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는 사람을 믿음이 없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율법이 되었습니다.

그 예배로 인하여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그렇게 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보고 자기는 그렇게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떻겠습니까? 목사는 믿음이 좋고 자기는 믿음이 없다고 스스로를 정죄를 하게 됩니다.

 

성소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반드시 율법이 폐해져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이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 율법이 피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이 폐해진 성도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성소는 더구나 이방인은 그 뜰에만 들어가도 이스라엘의 문지기들이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율법이 살아 있습니다.

절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율법이 폐해져야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서 한 가지라도 율법이 살아 있는 한 성소에 들어가면 죽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 법으로 정해져 있는 모든 예배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가 율법화 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 예배를 잘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으로 되어 있는 예배를 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성소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거기 들어가면 법 때문에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폐해져야 합니다.

만약에 예배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 어느 누구고 담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배를 법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법이 아니라고요?

아마도 제가 예배가 법이라고 하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삼가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정죄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법입니다 주일을 안 지키면 그리고 그런 예배들을 참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다고 하는 자체가 이미 법이라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담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지식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서 모든 율법이 폐해져 있는 성도만이 그런 담력을 얻어 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의 어느 한 모양이라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성소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의 피가 무엇입니까?

모든 율법을 폐하신 것이 예수의 피 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예수의 피가 무색해 졌습니다. 종교화 되면서 모든 것이 다 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법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안식일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그들을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것이 바로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소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피는 반드시 율법이 폐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새로운 율법들을 만들어서 그것을 예배라고 하면서 거의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법이 폐해지지 않는 동안에는 절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 길입니다.

우리가 성소로 들어가는 담력을 얻은 그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휘장 가운데로 들어갔다가는 모두가 율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휘장 안에는 제사장들도 못 들어갑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 일 차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그 길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오히려 다시 그 길을 닫고 있습니다. 율법을 만들어서 그 길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산 길입니다

이전까지는 그 길로 들어가면 모두가 죽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을 때는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이제 율법이 폐해지고 나니까 우리가 그 길로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수많은 예배로 그 길을 막고 있습니다. 예배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율법들을 만들어서 그 길로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휘장은 저의 육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성전에 있는 휘장이 찢어 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고 율법이 우리를 죽일 수 없어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왜 안 믿습니까?

그것은 그들 가운데 아직도 율법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따라 하고 있기 때문에 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안다고 성소에 들어간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으려면 반드시 내 안에서 율법을 완전히 폐해여 있어야 합니다.

 

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단 횡단을 하면 벌금을 물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배워서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있지만 법 때문에도 무단 횡단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이 가로 막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습니까?

내가 북한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습니까? 내가 아무리 가고 싶어도 법이 허락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법이 없으면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정해져 있는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종교에서는 절대로 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생각에 이미 법이 먼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시대는 법이 폐해졌다고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이 받아들이고 또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율법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레위 지파 자손이라야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는 유다 지파입니다

 

육신으로는 대제사장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결의 영으로는 하늘에 계시는 대제사장이라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죄를 다 지고 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대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은 우리를 깨끗하게 제사를 드려주고 있습니다.

 

깨끗합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예배가 있습니다. 수많은 예배를 만들고 있고 그 예배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을 하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대세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들을 믿는 것이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율법의 모양을 보면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너무 많은 예배를 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법으로 정해 놓으면 안 됩니다. 그 법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 사망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예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마음에 뿌려졌습니다.

그런 성도는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악한 자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율법이 되어 있는 순간에는 악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는 선을 행한다고 하는 그 일들이 거의 다 사실은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기 위해서 거의 매일 교회에 나가고 있고 그런 자기들을 보면서 마음에 부자가 되어가면서 진리를 배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는 물로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말씀으로 깨끗해졌습니다. 그런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한 성도만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입니다.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을 수 있는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온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은 있고 없고 입니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 믿음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안 폐해지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이 있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예배도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율법으로 정해져 있는 예배는 믿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오히려 온전한 믿음을 갖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예배를 드리면서 스스로 율법에 갇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단번에 속죄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속죄를 함으로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나의 흘리는바 이 피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사람은 다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니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에는 심한 갈등이 있으면서도 종교에 빠져 세뇌가 되어 가고 있고 나중에는 마치 문둥병자와 같이 진리에 대해서 감각까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가 다닙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에서 율법으로 정해져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자체가 이미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제가 모이기를 폐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도는 교제를 해야 합니다. 꼭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서로가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영지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복음의 모든 비밀을 안다고 해서 혼자 있으면 영지주의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제가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알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혼자 있다 보면 잘못하다가 영지주의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소망을 가진 자들끼리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또 선을 행하면서 돌아봐 주어야 합니다.

 

복음과 영지주의의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보았을 때는 복음이 있는 성도도 영지주의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 성도들이 모여야 하느냐면 바로 이 영지주의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나마 안 모이면 혼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여서 서로 격려를 하고 돌아보아주어야 합니다.

 

소망을 위해서입니다.

너무 율법적으로 모이는 것은 분명히 종교입니다 그러나 또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 역시 영지주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만드신 이유는 바로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서로 격려를 하고 돌아 보아주면서 천국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음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은 처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약 삼년 정도만 정말 복음을 아는 목사에게 배우면 됩니다.

 

성도는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늘의 소망을 더욱 믿음으로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몇 년을 제대로 배운 성도는 굳이 교제를 안 해도 구원을 받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약한 자도 있기 때문에 또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보여서 서로 격려를 하고 돌아보면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바로 영지주의에 빠져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더 이상 교제를 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하고 있습니다. 실제 복음을 듣다 보면 내가 왜 굳이 이런 모임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더구나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는데 누가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이 말씀으로 인하여 더욱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보이기를 폐하지 말고 더욱 힘쓰라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 교회 안에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예배에 참석한 자신을 보면서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는 다릅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입니다. 한번 모인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노예나 종으로 있는 사람들에게 모임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요일이 있고 또 거의 대부분의 직장이 토요일도 쉬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모입니다.

그것도 예배를 위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적인 율법에 의해서 보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 모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율법을 다시 살리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와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는 다릅니다. 성도는 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하고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내서 모여도 충분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역할을 하면 됩니다.

자기가 할 일이 없으니까 예배를 만들어서 교인들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서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니까 전혀 성경을 이해하지도 않고 그저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교회를 위해서이고 또 목사를 위해서 그렇게 모이기를 힘쓰고 있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도는 이 믿음이 있고 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야 하는 이유는 서로 돌아보고 또 서로 격려를 하면서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고 오직 은혜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