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디모데전서3:8-13절을 보면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장로, 집사
지금 이 시대 장로와 집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장로나 집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자에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교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집사를 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너무도 다릅니다.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 교회에는 많은 직분들이 있습니다. 그 직분들이 마치 수직적인 직분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사도, 장로, 집사 등은 수직적이라기보다는 협력자의 차원에서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많이 변질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집사들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집사들은 거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세워진 직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라는 직분을 주어서 교회에 충성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집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자기 행위를 통해서 헌신을 하고 있는 사람을 집사라고 했지만 초대교회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집사는 최소한 구원의 확신은 있어야 하고 또 믿음의 비밀을 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입니다
배우는 자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르치지는 자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집사들을 보면 성경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그들이 가르쳐야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배우려고만 하고 있고 또 자기가 모른다고 해야 마치 겸손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같으면 그런 사람은 절대로 집사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종교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교회가 커지다 보니까 그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 교인들은 교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든지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조건들이 아주 잘 맞아 떨어져 지금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일을 만들어서 주고 있습니다.
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 기간이 되고 또 어느 정도 행위를 보이면 아무라도 자기들이 기준을 정해서 집사를 선임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집사라는 호칭을 받는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새로운 욕구들이 생겨나다 보니까 그에 맞는 새로운 직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직분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직분을 만들어서 주는 것은 가급적으로 삼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그 직분을 장사를 하는 것 같이 많이 만들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그런 직분을 얻으려고 너무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기준이 됩니다.
그가 성경적으로 그런 자격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그저 그의 행위를 보고 그가 사람의 생각으로 잘 하고 있으면 직분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결국에는 더욱 율법주의 사상으로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되면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또 교회에서 어느 정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면 안수 집사가 되어야 하고 또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적인 기준에 따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보고 세우고 있다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심지어는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돈까지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천주교에서 면죄부를 파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직분을 얻기 위해서 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묵시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성경말씀을 보지도 않고 이제까지 교회의 관습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장로의 조건이 있어서 그런 사람을 장로로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되고 있는지 모르고 그런 행위와 여러 가지 조건을 따라 직분을 주고 있습니다.
장로가 되면 뭐 합니까?
집사가 되면 뭐 합니까? 목사가 되면 뭐하고 또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자기들이 원하는 직분을 맡으면 뭐 합니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직분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합니다. 차라리 직분이 없을지라도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받는 성도라는 이름이 더 귀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라 부르심을 입는 그 자체가 더 귀한 것이지 교회 안에서 그런 직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라고 세우는 직분이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집사를 세울 때 그에 따르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입니다 아마도 집사를 세울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셔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집사의 의무라고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행해야 집사를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가 아니가 다시 구약의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집사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율법의 집사가 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집사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의 일꾼만 있지 그리스도의 일꾼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3:9절을 보면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정죄의 직분입니다
율법을 강요를 하고 그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집사를 주는 것은 정죄의 직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의의 직분을 맡은 자지 정죄의 직분을 맡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가 십일조도 못 내고 또 주일도 잘 지키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런 사람이 무슨 집사냐고 정죄를 할 것이 아닙니까? 막상 집사로 세워 놓고 보니까 교회에서 요구를 하고 있는 십일조도 못 내고 있고 또 주일이나 기타 예배도 잘 참석을 못하고 있으면 그 집사를 정죄를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왜 정죄를 합니까?
집사를 세울 때 그런 것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의 직분을 맡은 것이지 의의 일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외적인 행위가 포함이 되어 집사를 세우고 있다면 정죄를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는 그런 규정들이 다 있습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집사를 세운다는 자체가 이미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정죄를 직분을 밭고서 그 직분대로 정죄를 안 당하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정죄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잘 하면 칭찬을 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반드시 정죄를 받게 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맡은 직분을 모릅니다.
교회에서 집사라고 세워 주니까 그저 감사하고 또 장로라고 권사라고 세워주니까 너무 황송해서 하라고 하는 대로 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음녀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을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이 세상의 종교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직분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느 직분을 맡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의의 직분이 아니라 정죄의 직분을 맡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교에 나와서 그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죄의 직분이 그렇습니다.
집사라고 하니까 다 집사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내가 진정으로 집사인가를 성경으로 살펴보고 난 후에 그 직분에 감사를 해야지 그저 교회 안에서 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주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 주는 그런 직분은 여러분을 반드시 사망으로 이끌어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직분에 욕심을 내고 있고 심지어는 장로가 되기 위해 권사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음녀에게 충성을 다 하고 있습니까?
정죄의 직분을 주는 곳은 음녀입니다
그런 정죄의 직분을 맡고도 자기가 의의 일꾼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 내가 집사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내 자신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마시고 또 시키는 대로 따라 하지 마시고 모든 것은 성경에 따라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집사의 조건입니다
우선은 단정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단정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집사를 세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적으로 단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일꾼을 세울 때 외모를 절대로 보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12-13절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어두움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반드시 집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단정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두운 일을 했기 때문에 빛이 와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율법
사람의 눈에는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어두운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사를 세울 때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이냐면 어두우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은 자라야 집사로 세울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입는 것이 단정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빛 안에 들어가는 것이 단정함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집사는 반드시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 단정해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집사를 세울 때 반드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집사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오히려 어두운 일을 해야 집사를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계명을 지켜야 집사의 자격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오히려 어두운 일을 정해 놓고 그 일을 잘 해야 집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의 일을 하면서 집사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집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에서 만들어 주고 있는 집사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반드시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단정하게 빛의 갑옷을 입은 성도를 집사로 세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주일이라는 것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율법의 행위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집사가 아닙니다. 아니 집사라고 불러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고 있고 또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나가도 아주 혼이 나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구이언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일구이언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로 믿는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 꼭 그러나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면 되었지 왜 뒤에 사설이 따라 붙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야고보서3:10-11절을 보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 입니까? 한 입에서 두 가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구이언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씀만 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꼭 저주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가는 것만을 가르쳐 주면 좋은데 저주의 말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정죄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일구이언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왜 지옥에 대해서 전하고 또 저주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미 집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또 사람들을 겁박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일꾼이지 저주를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일구이언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축복만 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저주를 전하는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한 입에서 단 물과 쓴 물을 같이 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집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복음이 일꾼이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정죄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지금 한국 교회에서 집사가 술에 인박힌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가끔 가다가는 술을 못 끊어서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술은 먹는 술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집사가 술을 먹는다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술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금기시 하고 있는데 전혀 성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서5:18절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율법입니다
율법은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너무도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가려져 있어 자기가 어떤 술에 취해 있는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집사의 자격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집사의 자격에 술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기들이 주는 임명장을 보면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독이 그리고 집사가 술에 취해 있으면 자기들 뿐 아니라 그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고 결국에는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집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술에 취해야 집사로 세움을 입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모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교회라는 거대한 종교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는 가져오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는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만의 불행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믿음에 따르는 행위라고 이상한 괴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시대 교인들이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에 싸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의 싸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믿음으로 가져와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의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자기의 의가 드러나게 되는 것은 더러운 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더러운 이를 탐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산상수훈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 재물이고 내 의도 재물입니다 그러나 이 재물이 동전의 양면성과 같아서 어느 하나가 드러나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둘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 얻고 나도 신앙생활을 잘 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이 둘 다 얻는 것이 참 좋을 것 같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이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가 드러나면 하나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서 내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헌신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복음을 위해서 일했다 해도 그것은 더러운 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을 위해서 일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더러운 이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는 설령 자기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존경할 정도로 빛을 냈다 해도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더러운 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정립이 안 되면 교회에서 평생을 헌신 했다가 결국은 더러운 이만 잔뜩 탐을 내고 만 꼴이 되고 버림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집사의 조건입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지 자라야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 행위이로 깨끗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끗해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5:3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집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아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이 무엇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집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어떻게 얻는가 하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가 되어서 자기 이성적 지식으로 믿고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믿을 수 있다고 해서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있게 감동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를 인도해 주셔야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믿음이 비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교회는 나와 있지만 실제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는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를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성경을 통해서 밝히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밀을 가지고 있는 자가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는 것이 비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시험해야 합니다.
집사들을 세울 때는 앞에서 말씀한 것에 대해서 반드시 시험을 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집사라고 하니까 지금 이 시대의 집사와 같이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집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빌립 집사 같은 경우에는 세례를 주기도 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앞서 말씀을 한 집사의 조건들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을 집사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지금과 같은 집사도 그로 인하여 사망을 당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을 집사로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아마도 앞서 말씀한 것과 다 반대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 집사로 세움을 받고 있습니다. 단정하지도 않고 일구이언을 하고 있고 술에 인박혀 있고 더러운 이를 탐하고 있고 깨끗한 양심도 없고 믿음의 비밀도 모르는 사람이 집사를 하고 있습니다.
재앙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 하나를 잘못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이 되는 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는 지금으로 하면 거의 목사 수준의 성경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집사와는 물론 다르지만 그렇다 해도 이 시대 자기가 집사라고 할 때 이 조건에서 틀리지 않는 가 스스로를 분별해야 합니다.
직분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잘못 하다가는 거짓 선지자가 되어서 오히려 주님께서 오실 때 더욱 큰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의 조건도 모르고 무조건 교회에서 오래 나와서 그리고 행위를 잘 하고 있다고 해서 집사가 된다고 해서 좋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에서 선생 된 자들이 잘못하면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선생입니다 물론 이 시대는 집사가 성경을 가르치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역 예배나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집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생이 되기를 좋아 합니다.
아직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기본적인 교리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집사가 되려고 하고 있고 장로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교회 안에서 교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낫지 그렇게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이 되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더 큰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얻기 전에 먼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내가 성도가 되었다고 믿음의 확신이 있을 때 그때 집사의 직분을 맡아도 또 장로가 되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고 있고 장로로 세우면서 그저 교회라는 우상에게 충성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앞에는 반드시입니다
그러나 지금 11-12절은 반드시는 아닙니다. 집사의 아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집사의 가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가능한 이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것은 집사가 되는 사람의 가지고 있는 교리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아닙니다.
집사가 아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은 물론 사도지만 아내가 없었고 가정도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집사로 일을 하면서 자기 가정을 꾸리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주님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복음에 헌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와 요구는 다릅니다.
8-10절은 반드시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그는 집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1-12절은 설령 그것이 부족할지라도 얼마든지 집사가 되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지금과 같이 교회에 봉사를 하는 집사가 아닙니다. 그 당시 집사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움을 입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 대한 것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것을 시험해서 그가 그런 믿음에 있는가 하는 기초를 살펴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것에 대해서는 요구 사항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집사의 자격을 모구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집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또 집사의 일을 하다 보니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집사로 세움을 입지 못한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그대로 사장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집사는 가능한 그런 외적인 것 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집사는 오늘날의 집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들은 실제 복음을 가르쳤던 사람들입니다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배우고 난 후에 사도 들이 가면 그 지역에서 전도를 해서 성도들을 가르쳤던 사람들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집사입니다
이 시대 집사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집사의 직분을 잘하는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지위는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집사는 최 일선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늘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까 그 지역에 감독을 다 세울 수 없을 때는 집사를 세워서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 일을 잘 하는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상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을 얻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담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집사로 세움을 입어서 복음을 바로 전한 일꾼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들어가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큰 구원의 담력을 얻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집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의 집사는 어떻게 보면 교회라는 우상을 섬기는 집사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집사는 어떻게 세웠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많은 집사들이 세워 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일을 잘 해서 복음이 바르게 전파 된다면 그 사람 역시 천국에 들어갈 담력을 얻을 것이고 또 그에게서 배운 사람들 역시 구원의 영광에 참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직분을 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고 직분을 밭아 그 일에 충성을 다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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