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6:36-40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영생,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아담으로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방법은 하나가 남았습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고 또 은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으로는 아니 예수에다가 무엇을 더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자체가 다 이단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를 보면 오직 예수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율법적인 행위가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에 대한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문자적으로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적인 율법은 다 그림자로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대로 지키려고 하다가는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도 성경에서 모두가 문자에 갇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왜 믿습니까?
그 기본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왜 예수를 믿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구에는 종말이 오는데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을 이 세상의 종말에서 건져 내어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종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는 종말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윤회를 이야기 하면서 이 지구가 영원히 존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종말이 있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지구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하늘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고 또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그 경륜을 바로 알게 되면 이것이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거기서 하는 모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다수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지만 그들이 믿음과 신앙생활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으로는 살았지만 믿음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3:9절을 보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비밀입니다
이 믿음을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이 굳이 비밀이라고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조상들도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런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그런 표면적인 교인이 아니라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았지만 남은 자만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표면적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믿음이라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종교가 아닙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믿음은 내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내가 누구를 믿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믿을 수 있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여 주셔야지 믿음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그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을 모르면서도 마치 교회만 나오면 다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그 중에 몇이나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 가운에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여호수아가 들어갔고 이방을 대표해서 갈렙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도 믿음이 없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생에 대해서 그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영생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또 사단은 자기가 교회에 나온 것으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아니 영생을 얻는 것으로 속게 만들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이 영생을 얻는 자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0절을 보면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무엇이니이까”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적을 구하는 것이 사실은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직접 무엇을 보고 믿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면 믿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사인이 있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난다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 생활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얼마나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까?
사실 믿지 않는 것이 더 기적입니다
아니 표적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적을 체험 신앙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표적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상식으로 맞습니까? 그것은 그 표적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예수를 보려고 하지 않고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사적인 체험을 합니다.
그것이 자기 믿음의 사인으로 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를 체험한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은사적인 체험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표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은사적인 체험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라는 것은 성령이 각각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고 그것이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 하는 것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또 그것을 가지고 믿음이 있다고 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요한복음6:31절을 보면
기록 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이스라엘이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대답하기를 하늘에게 저희에게 떡을 주어서 먹었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사십년을 사는 동안에 하늘에서 내려주는 떡을 먹고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떡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광야에서 떡을 먹인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해 주면 믿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이때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사천 명을 먹이고 했던 것은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렸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원초적인 요구입니다 우선 먹을 것이 있어야 그 다음에 믿는 것도 할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이 시대를 보면 아마도 이들이 이야기를 했던 것이 별로 틀리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다 돈입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반 소시민들의 자조적인 이야기가 바로 종교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지금 한국의 모든 종교를 보면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소시민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휴일도 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휴일이 있다 해도 교회에 나와서 절에 나와서 그들과 같이 한가하게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자기 육체의 고단함을 쉬어야 내일 또 일을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쉬는 것도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안식처입니까?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은 먹을 것이 해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폼 나게 일요일 날 교회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종교의 모습이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호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아주 열심을 갖고 힘들어도 교회에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역시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떡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만 나오면 나도 하나님의 일을 폼 나게 할 수 있게 돈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이 세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종교가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고 칭찬을 하니까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모세가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이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세를 통해서 자기 조상들이 그 떡을 먹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 적인 떡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서 자기 조상들이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 시대도 많은 사람들이 이 떡의 문제가 해결 되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떡을 주시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있는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그 영생을 얻는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생각은 자기들의 육적인 부분이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육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 떡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늘에서 참 떡을 내려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육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런 영과 육의 괴리감에서 사람들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의 일을 이해를 못하다 보니까 다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참 떡을 너희에게 내려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3절을 보면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떡을 내려 주시는데 그 떡은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이 세상일을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마치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입니다
착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은 다 세상의 일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그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말을 들어도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그리고 은사가 나타나는 일 그리고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로 복음을 위해서 하는 일은 모두가 세상일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생명과 관계가 없는 일은 절대로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고요?
설령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은 세상일입니다 지금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먹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또 이 떡을 먹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안 먹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또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어떤 행위들을 보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고 있고 마치 그것을 해야 성도가 된 것으로 교회가 율법의 행위로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4절을 보면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육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떡을 배불리 먹고 또 영생도 얻고 싶어서 그런 떡이 있으면 자기들도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대도 똑같이 이 떡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을 먹으면서 폼 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항상 달라고 합니다.
아마도 배가 터지 때 까지 먹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욕심을 부린 것과 같이 이 시대도 그렇게 많이 먹어서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고 있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떡을 먹어 배도 부르고 그리고 영생도 얻을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기 때문에 이 떡을 항상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떡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나니까 이제 그 떡을 항상 먹고 배부르게 살고 또 영생도 얻고 싶어서 그 떡을 항상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가난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배불리 떡을 주고 그 떡을 먹고 영생도 얻을 수 있다고 하니까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요한복음6:35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제 영적인 말씀을 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다가 이 말씀을 들을 때 이스라엘은 완전히 충격 속에 빠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보리떡을 배불리 먹이고 또 그 떡을 먹고 영생도 얻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다 물러 갑니다.
요한복음6장 마지막을 보면 이 말씀을 마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물러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리떡으로 자기들의 배를 부르게 하고 또 영생도 얻으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니까 아마도 이스라엘은 정신 나간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 물러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보리떡 몇 개로 배를 부르게 해 주더니 예수님께서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다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그 떡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역시 육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떡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 떡을 먹지를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6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믿지를 않습니다.
왜 믿지를 않습니까? 그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참 떡입니다
이 떡을 먹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떡을 먹으라고 하니까 이스라엘이 다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 있는 예수님을 먹으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또 이들에 영에 대한 일을 도무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이렇게 생명의 떡을 먹지를 못하고 율법주의에 빠져 교회가 종교화 되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을 항상 먹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아도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을 보면 볼수록 율법주의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으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먹을 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7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누가 먹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자만 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떡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이 이 떡을 먹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정말 주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됩니까? 또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은혜를 입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떡을 먹을 수 있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표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이 생명의 떡을 먹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예수님께로 왔는지 아니면 종교라는 교회로 왔는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에 나오면 다 예수님께로 나온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님께로 와야 하고 그렇게 예수님께로 나온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결코 내어 쫓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교회에 나와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다 보니까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8절을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신 참 떡입니다. 이 생명의 떡을 먹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정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세기부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셨고 이제 신약에 와서는 우리가 실체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율법의 행위와 은사적인 것을 먹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생명의 떡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이 세상 죄인들의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저희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없애 버리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를 않고 있고 또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가 안 보이고 있어서 떡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9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지고 가셔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오셨고 성경은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보면 성경은 이상하게 해석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또 그 십자가의 구속을 믿어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지를 못하니까 믿고 싶어도 믿지를 못하고 모두가 다 종교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보여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를 주님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 영생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이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더욱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환란에서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고 교회는 자기들의 행위로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영생입니다
다른 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 영생에 대해서만 보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려고 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까?
물론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은 성도는 자기 영생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 영생에 대해서 확증을 하고 또 확증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내가 혹시라도 예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는 가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은 성도는 다릅니다.
그는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자기가 혹시라도 잘못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내가 예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는 가 성경에서 그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성도는 이 영생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늘 묵상하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떡을 먹고 있습니다. 주리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먹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다면 그는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이 십계명에서도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고 그런 성도를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늘의 모든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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