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골로새서3:1-4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종교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종교화되어 가고 있는 교회를 결코 용납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거의 종교화가 되어 있어 믿음을 모르고 있고 다른 종교와 그 차이점을 별로 찾을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익히 우리가 보았듯이 신앙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이 불과 수십 년 만에 변절이 되고 했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잘 유지 했던 것 보다는 쉽게 변질이 되고 믿음에서 행위로 가는 것을 거듭 행해왔습니다. 그런 성경말씀을 보고도 이 시대는 깨우치지 못하고 이스라엘 보다 더 종교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자기 믿음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것이 사실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보래같이 많았지만 그들 중에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늘 소수에 불과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노아의 방주가 아닙니다.
교회는 쉽게 말해서 세상이고 또 광야입니다
그 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늘 상고해 보아야 하고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아 광야에서 죽은 것 같이 우리 역시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교회를 칭찬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생각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쉽게 가고 싶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적당히 하면서 쉽게 가고 싶지만 그때 마다 성령께서 저를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믿음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을 얼마나 어려운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수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보다는 그래도 다수가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늘 다수의 편에 서 있기를 좋아하고 또 다수의 편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면서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다수가 가는 길에서 자기 혼자 떨어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종교화가 되어 있는 집단에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됩니다.
믿음은 고독합니다.
아니 때로는 아주 처절할 정도로 자기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오죽하면 엘리야가 주를 믿는 자가 다 죽고 나 혼자 남았나이다 라고 고백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칠천 인을 남겨 두셨지만 엘리야가 볼 때는 자기 혼자 남은 것으로 생각이 되어 진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다툴 때 어느 한 사람도 엘리야 편에 서 있고 또 그에게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고독을 느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엘리야 시대 보다 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면 다수를 따라 바알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바알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고독합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 하고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다 주시지 않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다 주실 수도 있지만 천국을 주시면 이 세상에서는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10:2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로마서9: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요한계시록12:17절을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다수는 죽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수가 바다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 같은 수에서 나는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그래왔습니다.
처음 심판 때도 노아의 가족 불과 8명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고독했겠습니까? 비가 오지도 않고 비를 구경도 안 해본 사람들 앞에서 방주를 짓고 있는 노아의 가족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고 도무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같이 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늘 외로웠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처절할 정도로 고독을 느끼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감내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가 집단화 되고 또 거의 친목 단체 비슷하게 변질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수십 년 동안 그리고 많은 기간 동안 그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다는 것이 쉽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풍요에 끼고 싶어 그 다수를 따라 가야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제 설교를 보고 상담을 많이 받습니다.
그들이 한 결 같이 바른 교회를 찾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리고 저에게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상담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혼자 고독해 하는 것을 두려워 해 결국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생이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빼 내오기 전에는 불가능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아처럼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엘리야처럼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이 시대에 나 혼자만 남았나이다 하는 고백을 해 볼 수 있습니까?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증거 하다가 아무도 듣지 않는 그런 세월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11:38절을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서 유리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낮에는 더위로 견디지 못하고 밤에는 추위로 견디지 못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얼마나 혹독한 환경인가를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광야, 산중 암혈, 토굴.
이런 곳에 사람이 많이 있겠습니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그 시대가 악한 것을 알고 스스로 피해 그런 곳에서 유리하면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몸을 피할 곳이 있으면 정처 없이 떠돌면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늘 다수를 피해 자기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 시대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모든 풍요를 누리고 있고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명적 혜택을 누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자의 수가 바다보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노아시대 인구를 수억에서 수십억 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 남은 자는 노아의 가족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들어간 사람이 장정만 육십만 명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뿐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수는 늘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고 아주 소수만이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모르고 행위를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버림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가 똑똑하다고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 같이 교회사를 보면 다수는 악을 행했고 소수는 그 다수를 피해 유리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이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도를 핍박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관심이 없습니다.
성도는 너무도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대적을 하지 않지만 교회는 자기들의 뜻을 관철을 시키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성도들을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해진 제사제도를 안 지킨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 사람은 그 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거나 더 이상 그 교회에서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믿음이 바른가를 늘 확증을 해 보시고 믿음에 서서 하늘을 바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아니 교회에서 자기를 지키지 못하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면 올수록 교회는 큰 음녀가 되어 타락의 길로 간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그 음녀에게서 나를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우리는 다시 산 자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신 산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산 자는 육체가 다시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다시 살 수도 없고 다시 살아 보아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도 죽으셨습니다.
잠시 숨이 멎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신 그 육체는 완전히 죽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죽으시고 이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육체가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살아났습니다.
지금 살아났다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으로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 같이 우리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것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이 현대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는데도 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믿으며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살았습니다.
살아났으면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신앙인들을 보면 위엣 것을 찾기 보다는 아래 땅에 있는 것을 찾기에 급급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것을 위해 심지어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 것은 분복입니다
그 분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그것에 욕심이 과해서 결국은 교회 안에서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바알을 섬기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위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에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산 자들은 위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찾으면 됩니다. 예수만 찾으며 되는데도 뭐가 그리도 땅에서 할 것이 많은지 그것을 하느라고 치여서 하늘에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성경에는 우편이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이 있는데 좌편에서는 왕을 기름 붓고 우편에서는 대제사장을 기름 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면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 제사를 받아들이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은 죽임을 당하게 되어 줄로 끌어냅니다.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해서 죄가 없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대제사장으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는 담대하게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 죄를 안 짓고 깨끗하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에는 사망의 길로 가고 맙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리 죄를 안 짓기 위해서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안 짓기 위해 싸우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믿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 자체를 믿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유롭고 이제는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싸우고 자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위엣 것을 찾지 않으면 사도바울이 두 번씩 강조를 하면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 보다는 아래 있는 것을 찾고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고 오히려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율법을 지키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위엣 것이 아니라 땅엣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이 온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땅엣 것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땅엣 것에 모든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으며 그것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 현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사망의 길로 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이 땅엣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이 하늘의 것이라면 내 몸을 통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땅엣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땅엣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땅엣 것에 온 마음이 다 빼앗겨 있습니다.
땅엣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위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물론 땅엣 것이지만 교회 안에서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도 역시 땅엣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위엣 것이 무엇인지 땅에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고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를 그리고 신앙생활을 마치 위엣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망의 길입니다
내가 지금 어느 길을 가고 있는 가 냉정하게 생각하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고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버림을 받느냐 하는 문제인데도 아주 태평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교회 안에서 행한 모든 행위는 다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구원을 받는다 해도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한 모든 행위는 쓰레기입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하는 행위가 쓰레기이고 배설물과 같을지라도 우리는 은혜를 입었기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부정을 한다면 영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는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를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서 날 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은 자는 땅엣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는 것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땅엣 것에서 우리는 죽은 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땅엣 것에서는 산 자가 되어 있고 하늘에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땅엣 것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지 못하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2:20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해서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초등학문이 무엇입니까? 법을 어기면 죄라고 하고 또 법을 잘 지키면 의롭다 하고 또 죄가 있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이 학문이 율법 아래 있는 자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나 똑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세상 학문으로 생각을 하는데 세상과 같은 학문은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아는 것이 초등학문입니다
그런데 그 초등학문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는 그들이 아직도 초등학문에 매여 있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의를 쌓기 위해서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땅엣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생명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게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절대로 이해를 못하게 만들어 놓고 우리 생명을 감추어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서 대제사장으로 있는 것을 믿는 성도들의 영혼을 감추어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믿으세요.
여러분의 힘으로는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제사를 드려 주실 때 우리 죄가 없어지고 또 우리가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살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살아 나셨을 때 우리는 함께 살아났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도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죄가 없어졌다는 하늘의 비밀을 아는 성도만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육신이 하는 모든 행위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죽이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성도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람으로 구원을 받아 영광중에 나타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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