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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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윤주만목사 2015. 7. 5. 12:11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예레미야5:1-6절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찌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찌라도 그들이 아픈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찌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 자부심이 대단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표징을 갖고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다면 믿어야 하지만 그들은 전혀 믿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고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이 안 믿었으면 지금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안 믿었을지라도 자기들은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몰랐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행위에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아주 쉽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 보니까 진리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진리를 모른다고 생각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당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진리가 없다고 하면 그들은 오히려 선지자들을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기 때문에 그냥 두지를 않았습니다.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당시와는 다르게 지금은 출판이 발달을 해서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가 같은 경우 거의 모든 사람이 대학을 졸업했고 그러다 보니까 웬만한 책은 자기 이성적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듯 합니까?

이 세상의 책을 보는 것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공자의 사상, 논어의 사상, 그리고 육법전서를 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마치 대단하게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칼뱅주의는 선택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장로교 신학을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도 이 선택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의 생각에 따라서는 그것은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독제와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 선택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기를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선택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저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이 선택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기 때문에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믿습니다.

안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아도 그 눈이 소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고 또 거짓인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그들의 눈이 다 감겨져 있는데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9:4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안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보았습니까? 지금 사람들과는 게임도 안 되게 성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연구를 했고 심지어는 성경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그렇게 성경을 많이 보았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지혜가 부족합니까?

그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 지적인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지혜 있고 지적은 능력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보고 또 성경을 늘 곁에 두고 연구를 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신학 박사를 가지고 있다 하는 그들도 역시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신학 박사라는 것이 왜 있어야 합니까? 신학에 무슨 박사가 있다고 박사 학위가 있습니까? 그런 것을 하고 있는 자체가 이미 소경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박사가 있습니까?

성경에 누가 박사라고 칭했습니까? 아무리 자기가 성경을 많이 알아도 자기의 지적인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 대해서 소경이 되어 있으면서도 이 세상의 지적인 것으로 박사 학위를 따서 그 박사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 많이 한다고 알 수 있습니까? 제가 성경을 연구를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 안에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내가 성경을 볼 때 감동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내가 열심을 내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석학이라고 해도 그가 공부를 해서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은 문자적으로 많이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뭐가 다릅니까?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런 방법으로 성경을 알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이 연구를 해서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감동을 해 주셔야지 내가 성경을 볼 때 그 안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인생으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에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을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라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 당시를 말씀하고도 있지만 그것이 이 시대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점점 더 소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인터넷이 발달을 하다 보니까 이제 설교를 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설교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설교가 바른 가 아니면 소경이 작성한 것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들이 성경을 안 봅니다.

교인 하나가 생기면 그들을 관리하느라 모든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고 있다 보니까 성경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설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마음 아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이때는 이 말을 하고 저 때는 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일관성이 없고 듣는 사람은 도무지 무엇이 맞는지 조차 깨달을 수 없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로 진리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보아도 도무지 모르고 또 그저 맹목적으로 예수만 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목사가 소경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소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있는데 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소경이면 그 교회는 전체가 소경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도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만 명입니까?

그런 보이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 교회에 다닌다 해도 그렇게 눈에 보이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그런 숫자를 안 봅니다.

정말 그들이 복음 안에 있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정말로 똑같이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태평하게 자기들이 아주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말이 됩니까?

솔직히 이 말씀이 납득이 됩니까? 아마 이 시대 누군가 예레미야와 같이 교회를 다니면서 이 말씀을 그대로 한다고 하면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을 했던 것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쫓아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한 사람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다고 하시니까 아브라함이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가합니까? 하면서 의인 오십이 있어도 성을 멸망시키시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찾으면 내가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시고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이 있어도 멸망시키겠느냐고 하다가 결국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라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의인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미 수많은 예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찾아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가진 자는 고사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고 있는 자가 있는 가 찾아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멸망을 시키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육적으로 멸망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 예표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경계로 삼아 내가 정말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다 죽습니다.

공의를 행하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공의가 사라졌고 오직 율법만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해야 공의를 행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면서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십자가를 믿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한 모양이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공의가 사라지고 율법만 성행을 하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를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안 구합니다.

이 시대 누가 진리를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 자기들이 다 진리를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구해서 받지도 못했으면서도 자기들이 진리를 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이미 받았기 때문에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8절을 보면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구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고 구하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어떻게 설명이 될 수 있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고 하는 그들이 진리를 한 사람도 안 구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됩니까?

 

그러나 안 구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세뇌를 시키고 있어서 자기 안에 진리의 성령이 오셨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진리의 성령의 임도하심을 받고 있는 성도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아주 적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하면 마치 한국교회와 원수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이 예레미야 선지가가 쓴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대로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한국교회를 비판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안 보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으면 지금 역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도 그때는 육적으로 이스라엘을 멸망 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예표를 통해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죽을 때 까지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 버림을 받을 때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순식간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각이 없어 아무리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스라엘의 일로만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만약에 이 시대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이 된다면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면서 너무도 평안하게 교회 안에서 천국을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갑니까?

천국을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갈 수 있습니까? 천국은 내가 무엇을 한다 해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믿으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점점 행위에만 더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한 사람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진리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찌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거짓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에 그들은 겉으로 볼 때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새번역입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고, 주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말하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누구도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입술로는 맹세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짓으로 그랬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를 했고 또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내 진심이 무엇이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공의가 없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진심으로 아무리 그런 신앙적인 행위를 했을지라도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다면 그들의 진심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맹세를 하고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진심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정을 하면 뭐합니까?

그들이 공의를 행하지 않고 있고 진리를 구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아무리 진실이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심이라고 하는 그 말로 모든 것이 다 가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크게 착각을 하는 것이 자기가 진심이라고 주장을 하면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진심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셔야 합니다.

믿음을 주셔야 합니다. 내가 진리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심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공의를 행치 아니하면서 또 진리를 구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진심이라고 말 합니까? 진리가 내 안에 없는데 나 혼자 진심이라고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진심입니다 그러나 그 진심이라는 것은 내 편에서입니다 그런 진심 말고 하나님께 구해서 내 안에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자기가 진심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진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짓이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다른 마음으로 섬겼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 보다 더 진심으로 섬겼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구하는 자가 이스라엘 성에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 영혼을 위해서 진리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찌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찌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찾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찾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있는 자를 찾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단 한 사람도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명심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진리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때리셨습니다. 그렇게 치셨을지라도 이스라엘은 아픈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왜 아픈 줄을 모릅니까? 영적으로 문둥병에 걸려서 감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셔도 아픈 줄을 모르고 살아갔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문둥병입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치셔도 자기들이 왜 맞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픈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영적인 것에 감각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치셔도 아프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 합니다.

 

그들을 거의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전혀 징계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갈 때는 너무도 약했습니다. 국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은 늘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이유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이런 징계를 내리고 있는데도 그들의 얼굴을 바윗돌보다 더 굳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안 돌아 왔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고 말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돌아오고 말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데 돌아오고 말 것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입니다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비천한가를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오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우준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의 이스라엘과 영의 하나님 차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역시 우준하여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이스라엘이 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고 있는지 참으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각이 없어 도무지 깨닫지를 못했던 것을 이 시대도 역시 지각이 없어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에 대해서 정통했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길을 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고 하나님의 법을 몰랐습니다. 어느 길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길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법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몰랐습니까?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법을 율법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이 아니라 바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믿음의 법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무슨 말씀입니까?

좀 어렵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귀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를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길도 모르고 하나님의 법도 모르니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예레미야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오히려 예레미야를 핍박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지금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에 올라 가셨는데도 주님의 길을 모르고 법을 모르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솔직히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더 불쌍한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구약을 보고 하나님의 길을 알고 또 하나님의 법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귀인들도 모릅니다.

이 말씀은 그래도 교회 안에 있는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도 몰랐다면 이 시대 역시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고 있는 목사들이 모를 수 있고 그들이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핍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는 날 뛰었다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또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그 당시에 지도층에 있던 제사장과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날뛰면서 예레미야를 핍박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이 시대도 똑같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한 그것을 지금 이 시대는 영적으로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 합니다.

사자가 그들을 죽이고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다 나오는 자를 찢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인 이스라엘이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허물이 많았습니다.

 

왜 허물이 많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기 때문에 허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이사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해서 주님께서 상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으니까 그 허물이 그대로 그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패역이 심했습니다.

도무지 믿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행위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지만 실제 그들의 마음에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예레미야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너무도 잘 믿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그 생명의 길을 몰라서 안 믿고 점점 더 율법의 행위로만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패역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은 패역이 심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패역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경계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서 믿음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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