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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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윤주만목사 2015. 5. 12. 17:51

행복한 사람

신명기 33:2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행복 (幸福, Happiness)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행복하다고 말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늘 흐뭇하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는 순간적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이라는 것도 아주 잠시 짧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합니다.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이 마음껏 행복을 누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인생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진 인생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쫓아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 지식을 배움으로 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발달을 하고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를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흐뭇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쫓아가고 있지만 행복은 오히려 더 멀리 도망을 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누리는 박탈감에 더욱 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상대가 가진 것을 나도 갖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따라가고 있지만 그 역시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려 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내 손에 취해 보았지만 그것을 내 손에 가지는 그 순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 버리고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보고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비교하는 능력이 있어서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라고 늘 그 마음에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흐뭇해하고 있겠습니까? 그가 비록 재물은 최고로 많을지라도 그 역시도 부족한 것이 있어 그것을 보게 되면 자신을 보며 흐뭇해 할 수 없습니다.

 

거지와 왕자를 보세요.

정말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자지만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가 더 부러워 자기의 신분을 바꾸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거지가 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왕자의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그 거지가 더 행복하게 보였기 때문에 신분을 바꾸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행복 자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더 많은 것을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역시도 그 마음에 충분한 만족을 느끼며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면 행복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며 따라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고생입니다.

어느 정도 고생을 해야 하는 가를 야곱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47:9절을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나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죄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그 야곱이 바로 앞에 와서 내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세월이 얼마나 험악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야곱과 같은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역시 야곱과 같이 험악한 세월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모든 인생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 분들에게 그 인생을 질문한다면 역시 야곱과 같은 고백을 할 것입니다

 

어쩌면 야곱 보다 더한 인생 스토리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결과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는 고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순간순간 행복을 누리며 살아 온 것 같은데 그 결과를 보니까 험악한 세월을 산 자신의 인생을 뒤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 풀 스토리를 책 몇 권을 쓰고도 남을 이야기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파랑새를 잡으려고 오늘도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언젠가는 잡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한 사람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로 산 사람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 역시 험악한 세월을 산 자기 과거를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순간이 와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또 생각하지도 않은 일을 생겨서 눈앞이 깜깜해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순간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을 모두를 가진 것 같은 기쁨을 누리고 흐뭇한 마음에 들떠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도 험악한 세월이었으며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한 과정 역시 험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 (幸福) 잡으려 하면 할수록 힘이 듭니다.

그것을 잡고 나면 남이 누리고 있는 또 다른 행복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또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따라 가다가 결국에는 험악한 세월을 산 인생이 그저 낡아 빠진 한권의 책으로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행복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행복자인가를 모세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애굽에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영원히 종노릇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 만이 행복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싸워서 쟁취를 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얻은 자가 행복자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천국 모형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거저 얻은 것입니다 바로 그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위해서 거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4번 나옵니다

그 단어는 모두가 구원과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많이 취하고 명예를 얻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재물을 얻어서 명예를 얻어서 행복하다고 성경은 단 한 차례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들의 풀과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아무리 많이 얻었다 해서 그것으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명예와 재물 지혜를 모두 얻었지만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도서를 보면 그는 그가 얻은 그 모든 것을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된 것은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헛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가 험악한 세월을 살게 됩니다. 가짜 돈을 가지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돈이 수천억이 된다 해도 가짜는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근심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가짜 금이 1톤이 있으면 뭐합니까?

그것은 오히려 짐만 되고 어디다 버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행복은 모두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헛된 것으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늘 마음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행복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천국 모형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얻는다는 것은 내가 싸워서 그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는 것을 그냥 받는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얻은 자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그 칼로 대적을 무찌르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을 복종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누리는 이스라엘을 행복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나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자입니다 또 내 대적을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칼로 내 대적을 무찔러 주셨기에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이 행복자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늘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절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육적 이스라엘의 대적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적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사단입니다 이 사단의 손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대적 사단은 지금도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자와 같고 우리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싸움이 안 됩니다 아무리 양이 힘을 길러도 사자와 싸워서는 백번 다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자와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작은 싸움에서 이기는 나를 보지 마세요.

완전하게 이기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지는 자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잘 속고 있는 것이 아주 조금 이기고 있는 자기 모습에 도취가 되어 나중에 지고 마는 자기 존재를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자는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에덴에서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하와를 미혹 시킨 사자입니다

 

작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상처투성이로 변해 있는 자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이 작은 것으로 행복을 누리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싸워 이긴 것은 잠시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승리자의 기쁨은 충분한 만족과 흐뭇한 느낌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겨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을 내 것으로 가져 올 때 누릴 수 있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죄를 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정신 이상자입니다 그런데 죄악 중에 출생하여 매일 죄 가운데서 사는 인생이 조금 이기는 자기 육체의 모습을 보면서 지고 있는 또 다른 것은 애써 무시하면서 그것에서 행복을 누리려고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보다 수천 배 지혜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구원의 손길로 보호해 주지 않는 사람은 사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단의 계략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 하다가 오히려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망의 그물에 걸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행복을 찾으려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들 보다 행복했을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또 누구보다도 의롭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그런 노력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는데 일조를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노력이 내 영혼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내 열심이 내 영혼에 있는 충분한 만족과 기쁨과 그리고 흐뭇한 느낌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그 섭리를 모르고 하나님께 열심을 갖는 그 행위가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따라가다가는 오히려 저 말리 날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복을 듬뿍 안겨다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행복을 찾으러 교회에 나와서 자기 육체의 정욕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윗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6절을 보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다윗은 당대의 왕입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자기가 누린 육체의 행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왕이 되어서 행복하다 내가 이 세상을 정복해서 행복하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다 얻고 모든 것을 다 누렸지만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과 다윗의 행복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자기 육체의 문제를 가지고 늘 기도하고 하나님께 때를 쓰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행복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한 것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칭해 주신 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다윗은 율법적으로 사망을 당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적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밧세바와 간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아이를 가지니까 자기의 충직한 신하인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행위를 한 사람입니다 간음을 한 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자기의 충직한 신하를 죽게 만들어 버리는 죄를 진 사람입니다

 

물론 다윗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죄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욥과 비교를 해 볼 때 다윗은 정말 일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왕이 되었고 이 세상을 정복해서 모든 것을 다 취했지만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그는 정말 일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도 선을 행할 줄 알고 못하는 그것에서는 정말 일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 행치 아니하는 것은 죄 입니다.

우리는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에서 정말 일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와 줄 힘이 있으면서도 우리는 철저하게 외면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조금 행하는 선을 보고 다 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일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칭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의를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가진 행복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4:7-8절을 보면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사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 육체는 죄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오히려 불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누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고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선한 일들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실제는 그것이 불법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법에서 사함을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선은 불법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불법에서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불법에서 사함을 받고 우리 죄에서 가리우심을 받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죄를 인정치 아니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했습니다. 내가 도적질을 했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내가 죽어야 하는데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인데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금 죽게 되고 사형장에 있는 사람에게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사형수가 그 사형장에서 풀려나는 것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은 자기가 누리는 왕의 명예와 부를 자기고 행복하다고 하지 않고 자기 죄를 이정치 아니하는 그것에 대해 행복했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을 하고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의를 얻고서 행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인정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이 세상 죄를 모두 지고 가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고 가셨는데 무슨 죄를 인정하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행복을 찾기 보다는 자기 육체에서 행복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생명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행복을 누리려 하지 않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사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그 행복이 나중에 나에게 불행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1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육체의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행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으로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부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연락을 하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부자가 되지 마리기 바랍니다.

특히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도무지 지혜를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복음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렇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는 그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합니다.

 

행복하시고 싶습니까?

그것은 내 육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고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 행복합니다.

그 안에 있는 성도만이 불법에서 사하심을 받을 수 있고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심을 받을 수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험악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내 눈이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비록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