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3:14-18절(신386)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는 것은 창세전에 있던 영화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성경을 보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깨닫고 있고 그리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깨닫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후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인생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서 불교인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신앙생활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우리에게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동일하지 않은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 날을 지키는 것도 역시 우리가 평생 동일하게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태어나면서도부터 그 부모가 종교에 열심이 있고 또 그 아이도 평생을 종교에 열심을 가져 주일이라는 날을 빠지지 않고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죽는 날이 다르다면 주일을 지킨 날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헌금입니다
누가 동일하게 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굳이 일일이 예를 들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받은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저 종교 안에서 동일하지 않은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식입니다
무엇이 동일하고 무엇이 동일하지 않은가를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종교 안에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그 날에 종교적인 의식을 따라 행위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동일하게 했다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사도 베드로와 같이 받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어야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초가 되는 말씀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집단으로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마치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증거를 받은 일과 제가 증거를 받은 일이 같고 그리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 역시 같다면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같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일을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는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 역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동일할 수 없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는 누구라도 동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합니다.
누가 동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주님께서 완전케 하시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는 것은 얼마든지 동일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인생들이 철학으로 합리화를 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 자체로 거짓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일은 인생의 철학으로 깨달아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을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을 보는 사람이 이방의 종교인들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교회 안에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이 성경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성경을 보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이 서신을 보내고 있는지를 모르고 마치 세상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이 해석을 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저 아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4-5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나타나기를 힘쓰라
성경의 번역입니다. 그리고 원어입니다. 저 역시 헬라어를 보고 있고 최소한 3-4가지 성경의 번역을 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문자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인생들은 이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14절의 말씀도 오해를 하고 있고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 육체가 그렇게 되기를 힘쓰면서 더욱 더 종교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 인생의 언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니까 인생들은 이 말씀을 보고 자기 신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종교의 교리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내 영혼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 후에 태어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종교의 교리고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입니다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고 우리 인생의 결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우리 인생에 대해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거룩해질 수도 없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보는 성경은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이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창세전에 있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종자입니다. 종자가 그런데 그 종자가 점도 없고 흠도 없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너무 깊이 인생의 철학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같이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그럼 그들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점도 없고 흠도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창세전에 태초에 있는 생명이 흠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 후에 피조물을 보고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입니다. 바로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흠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자들을 믿고 있는데 그 생명이 흠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창조 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은 죄악의 종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창세전에 있는 생명, 태초에 있는 생명이 흠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의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이 생명을 얻은 자 되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고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태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정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그 죽은 십자가에 못 박은 그것을 점도 없고 흠도 없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동일하고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렇게 영생을 얻는 일을 믿었고 사도 바울 역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믿고 우리 성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신체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는 일을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예정이 되어 있고 우리 피조물이 그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입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이런 말씀을 보고 성경이 해석이 안 되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는 신체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나타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에서 창조라는 단어는 알고 있지만 창조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마치 인생들의 역사와 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 적인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고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책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2: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을 왜 지으셨습니까? 우리는 죄악의 종자고 우리 피조물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주님께서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과 같이 우리 육체가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 육체가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선택이라는 인생의 언어가 있으니까 더욱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을 하면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게임을 꺼버리면 그것은 그저 허무하게 사라지고 그래서 인생을 보고 허무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은 그 헛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흠이 없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의 구원은 바로 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는가 하면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인생의 지혜로는 구원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오래 참으시고 계시는데도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경계로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입니다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정말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제가 은사 자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무식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구를 무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툼은 바로 율법의 다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을 사도 베드로는 무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경계로 해서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율법은 비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둘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에서도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는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거의 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니까 종교는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성경을 억지로 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아도 역시 세상 초등학문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방의 종교의 교리를 보더라도 그들은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17.“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미리 알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어떻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14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그러니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믿음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는가 하면 사도 베드로는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법한 자들입니다
이 무법한 자들을 바로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미혹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에 대해서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서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고 묻고 있고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굳셉니다.
믿음에 굳세게 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에 굳세게 서 있는데서 거기서 떨어지는 일을 사도 바울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굳세게 서서 영생을 얻은 자 되어 있는데 이미 초기 교회 안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령을 받아 영생을 얻은 성도들에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목적을 분명히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그리고 무당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귀신을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이 다 신체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일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만이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의 날에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입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을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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