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3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구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경륜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성경에 모두 기록을 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 해도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 또한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다는 말씀은 문자를 아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구원에 대한 모든 말씀들을 자세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성경에 기록을 해 주셔서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힐문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호세아서의 말씀과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을 호세아서와 이사야서에서만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일일이 다 말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호세아서와 이사야서의 말씀만 인용을 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을 통해서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늘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들에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감동을 받는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이사야서를 보면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사야의 말씀에서 그것을 보았다고 해서 우리는 남은 자가 누군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면 그 남은 자가 누군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 남은 자가 누군가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저 교회에서 목사들이 우리가 남은 자라고 하면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에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기 마음에 정해 놓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성의 지식에 따라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정해 놓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육신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으로 이미 자기 마음에 정해 놓고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영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방인의 교회 안에 교인들의 수가 바다 모래 같습니다. 그 바다 모래 같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은 자가 되려하지 않고 다수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왜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까?
그 남은 자만이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다 모래 같은 사람은 모두가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남은 자만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그들이 많은 사람입니까? 그 남은 자가 얼마나 적은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씨를 남겨 주셔서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 이성으로는 어느 누구도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이성대로 그대로 두면 이 세상은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해서 이 시대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셨습니다.
목사입니까?
그가 신학 박사입니까?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입니까? 그것이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저 같으면 그런 것을 버리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종교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씨를 남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씨를 어떻게 남겨 두시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시대도 성령으로 난 씨를 남겨 두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입니다
이 남은 자에 대해서는 아카데미 강의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남은 자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왜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면 이 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호세아서에서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에서도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다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서도 역시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하나도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만 명입니까?
그런 보이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도 없다고 하면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 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남은 자가 얼마나 적은 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육신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적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어느 이단이 안 지킵니까? 그리고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호세아서의 말씀이 이사야서의 말씀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이제까지 로마서9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시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즉 입니다.
로마서9장1-13절의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는 그 말씀까지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그런즉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구원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 이 구원에 대한 모든 말씀을 기록하셨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다가 모두가 사람의 지혜로 올무에 걸려 사망의 길고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렇게 성경에 모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누가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히브리서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가 무엇입니까? 법을 잘 지키면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그 의를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교뿐 아니라 국가 사회 등 하다못해 작은 단체까지도 법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이 왜 율법을 지켰습니까? 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의를 얻기 위해서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율법을 지켰는가 하면 의를 얻기 위해서 율법을 좇아갔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유대인들이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 뭐가 주어지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너무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해도 다 용납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율법을 좇아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온 부자 청년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말씀을 하니까 이 부자 청년의 대답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지켰습니까?
의롭다 함을 받아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다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에 대한 기초가 너무 안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서 온전케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입니까?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의 기능을 몰라서 교회에만 나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이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지켰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율법은 의를 얻기 위해서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의를 좇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도로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입니다
율법을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무엇인가 하면 육체에 상관된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를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켰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여 하면서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겉으로 회를 칠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는 계명이 율법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든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 아닌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좇아가다가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해서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의를 얻어야 합니다.
그 의가 약속의 씨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의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얻는다고 하니까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또 다른 의를 주고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의를 좇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좇아가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음행, 음란, 간음 등 이런 말씀들이 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두 가지의 의를 좇아가기 때문에 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섬기지 못 합니까?
그것이 음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두 가지를 함께 섬기면 의를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를 얻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를 얻는 것은 내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약속의 씨가 의를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약속의 씨가 의로운 씨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왜 율법을 지켰는가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과 같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그들은 의를 얻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은 의를 좇지 아니하고 의를 얻었는데 이 의가 믿음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9절을 보겠습니다. (321쪽)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따르면 그는 분명히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이성이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이 계시가 되니까 그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그 모든 것이 자기에게 도리어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그것이 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져서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것은 단 한 가지라도 그 의를 가지면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의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에게 도리어 해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해가 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하는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그 의가 도리어 해가 되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육체로 지킨 율법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배설물로 여겼는가 하면 그것이 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를 좇아갔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성에 따라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니까 그것이 의가 아닙니다. 자기가 지켜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 그 의가, 의가 아니가 악이 되어 있었고 자기는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의를 배설물로 버렸습니다.
아니 자기가 지킨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배설물을 쌓고 있습니다. 아니 서로 경쟁을 하면서 더 많은 배설물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삼가 지키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진 의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이렇게 사도 바울이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이 의를 얻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율법에서 난 의가 없어야 합니다.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오직 이 의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이 의를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은 의입니다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닙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와서 내 안에 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얻은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를 어떻게 얻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약속의 씨가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약속의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겸하여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에서 난 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의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겸하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교법입니다.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됩니다. 아니 이 두 가지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성경에 문자 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의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의입니다
하나를 하면 하나는 반드시 얻지 못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 율법의 제3용도를 이야기를 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서 지켰다 해도 그는 의를 좇아간 사람이 되고 그는 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내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의를 좇지 아니한 사람만이 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의를 좇아가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지키고 있습니까?
이 율법을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순간 여러분은 의를 좇아간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따르게 되고 그 의무를 다 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이방인들은 어떻습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의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의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주일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고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아니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이라고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고 신학자들이 성경에 있는 613가지 율법을 발췌를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생각입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나는 지금 로맨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도 감각이 없습니다. 깊은 로맨스에 빠져서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마치 육체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 그들이 나중에는 죄의식이 없어지는 것과 같이 그리고 합리화를 시키는 것과 같이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로맨스를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죄를 지어서 사망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이 로맨스를 하다가 모두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탐심이 되고 있고 그 탐심이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의를 좇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습니까?
지금 이 시대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습니까? 성경에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고 하니까 교회에만 나오면 의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로맨스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 시대 이방인들은 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어서 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3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입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의를 얻기 위한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한 정의부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배우고 있는 신학이라는 곳에서 율법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배우고 있습니다.
율법도 의의 법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를 지키든 모든 율법을 지키든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의 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나는 율법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이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 핑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핑계 대지 못 합니다
왜 핑계를 할 수 없는가 하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해 놓으셨는데 자기들이 성경을 안 보고 지혜를 구하지 않고 종교에 끌려갔으면서 모든 핑계를 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순간 여러분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이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시대 이방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솔직히 성전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에 성전이 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에 가서 레위인을 모셔다가 제사까지도 드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못지않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씀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좇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실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가 아니면 속고 있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가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실상은 이스라엘과 같이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의의 법을 좇아갔습니다.
이 시대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역시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과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의의 법을 좇아갔고 이 시대는 자기들이 영생을 얻는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서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의 법을 좇아가고 있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가 고파 빵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빵이 있는데 욕심이 나서 빵을 훔쳤습니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사람은 빵을 훔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아무리 훔친 것에 있어 타당한 이유를 댄다 해도 빵을 훔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생을 얻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다 해도 율법을 지킨 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율법은 의의 법이 따라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만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 이방인들도 의의 법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의 법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 따라오는데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도리어 재앙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에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아니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next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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