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 : 21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율법은 같아지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미 같아 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끊임없이 같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같아지기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성령 안에서 이미 같아 졌다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모습은 같아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모습을 같게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육체적으로도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려야 함에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성도에게 있어 동일하게 요구되어 진다면 그것은 율법을 세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잠언에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미련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체질이 있습니다
세상은 가난한 자도 있고 부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교회는 모두가 부자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오해는 가난한 고아와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을 다시 범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일조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
성경에도 없는 주일 성수를 강요하는 것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네가 감히 뉘기에 하나님을 힐문하느냐고 말씀하면서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냐고 말할 수 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
십일조를 하는 것 가난한 자에게는 모두가 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에게는 그 형편이 안 되게 그를 섭리하실 수 있는데 강요하는 그 자체는 하나님을 향해서 힐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습으로 같아지려 하지 마세요.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늘 같아지려고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이단들을 보세요. 그들은 무엇인가 하나를 정해서 그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같아지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타락은 같아지려고 하는 사상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12 : 18절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성도는 동일한 성령으로 같아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행한다 하면서 성령에 율법을 포함하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성령을 받은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는 율법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율법이 포함되어 있으면 성령이 선물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은혜를 받는 자가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내가 잘해서 받는 것을 어찌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대가입니다
값을 주고받는 것이 어찌 선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잘 한다는 것은 값을 지불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했던 자를 베드로가 저주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 하지 않고 자기 열심으로 노력해서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주일을 잘 못 지키는 그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가난해서 십일조를 낼 수 없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잘 못하면 믿음이 없다고 심지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사기 치며 거짓말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자기 이를 취하기 위해서 거짓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는 자기가 하는 모습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다른 성도도 모든 것을 소유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만 모습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지으셨다면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열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를 위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후서에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 그리고 내 믿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믿는 성도가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모습으로 같아지려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동일한 믿음으로 같아지려는 성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감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혜사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 가운데로 행할 수 있게 감동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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