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5 :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행복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입니다
사서 고생은 할지라도 일부러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인생에게는 불행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간절하게 바라면서 살고 있습니다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열심히 땀을 흘리고 머리를 써 가면서 자기가 가진 행복을 지키려고 하지만 정말 왜 그랬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지나고 보면 불행한 가운데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더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어느 조사에서 보니까 신앙인들이 더 불행하다는 생각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행복해야 할 텐데 오히려 세상 사람보다 더 불행하게 느낀다면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일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지금 현재 행복한 일이 계속해서 있다면 잠시 동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남과 비교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큰 것을 바라보지마세요
이 세상은 수고와 고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죄가 들어온 후에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땀을 흘린다는 말씀은 전에 있던 행복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은 에덴에 있던 행복을 조금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극히 일부분의 모습을 보고 이럴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행복은 지금 세상을 사는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불행합니까?
그럼 천국을 생각해 보세요
히브리서12 :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세상을 보면 피곤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위해서 자기 몸으로 구속을 이루신 이를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지금 어디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객지에서 살다 보면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돌아갈 집이 있는 나그네는 그 힘든 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나그네는 절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노숙자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이 절망하고 자기 몸을 함부로 하는 것은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자기가 가면 반겨줄 집이 있다면 비록 지금 노숙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무엇이든지 해서 살아남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생을 보면 슬프고 때로는 고단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생뿐이면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씀 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남들은 즐기면서라도 살았는데 정말 성도로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살았는데 이생뿐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이 들 때마다 내가 가야할 천국을 바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행복이지만 우리는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으며 설령 못 누린다 해도 또 다른 행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세요.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자기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했다고 로마서 4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 있는 성도는 세상에서 힘이 들 때 마다 그 행복을 꺼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감사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심으로 이 세상에서 피곤치 않게 하시고 또한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1) | 2024.11.18 |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0) | 2024.11.17 |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 | 2024.11.16 |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0) | 2024.11.15 |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0) | 2024.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