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4: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언제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 할례를 받고 난 후에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아서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의로 여기심입니다.
아담의 자손인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장례식장을 갔다 왔습니다. 목사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를 들어보면 그들은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자손인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썩을 것이 무엇인가 썩지 아니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이 의로 여기심을 받아 그것이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입니다
썩지 아니할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썩을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든 비 생명이든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은 그 썩을 것이 받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사상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썩을 것이 잘하면 썩지 아니할 것이 되어서 극락에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하늘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할례를 받았습니까?
무할례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로마서를 쓰고 있는 때는 초대교회입니다 지금과 같은 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모두가 할례를 받았던 때도 아니고 또 이방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지 않았던 때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던 그때에 전에 할례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고 또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할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 613가지를 대표하는 것이 할례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어떤가 하면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대표해서 주님께서 한 부자를 비유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율법을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는 것을 대표를 해서 할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의미를 모르고 문자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에 이 말씀을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때는 이제까지 율법을 지켰던 유대인도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던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할례자냐 무할례자냐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아니 이미 기독교가 된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로마서의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자가 있었고 무할례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다 할례자가 되었고 무할례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간혹 가다가 자기들은 율법을 폐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율법을 폐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그들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배도 다 율법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성경에 문자적으로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폐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할례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할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같이 모두가 할례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할례자라고 하는 그들이 자기들이 어떻게 할례자가 되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613가지를 대표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모두가 할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래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해서 무할례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할례자가 없습니다. 기독교라는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에 모두가 할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까?
할례를 받기 전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기 전에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태생적으로 아니 뼈 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순간에 율법주의로 간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입니다
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약 5가지 정도 됩니다. 왜 그렇게 여러 가지 성경을 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개역한글성경은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어체로 되어 있다 보니까 글을 이해하는데 어렵습니다. 또 아무리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을 했다 해도 사실 완전하게 번역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해를 쓰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정말 앞뒤에 있는 문장이 연결이 도무지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여러 가지 성경을 보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뜻을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 절에서는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 전체 문장이 잘 번역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문장이 잘 번역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번역이 우리가 이해를 하는데 가장 쉽지 않은가 싶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 절에서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조금은 이해가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더 혼란이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할례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인정을 받은 표로 할례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어렵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에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정도로 영생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그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어려운 성경을 바로 풀 수 있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17:13-14절을 보겠습니다. (구 20쪽)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세기15장에서 아브라함은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희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왜 받아야 하는가 하면 이는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서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할례를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창세기에 있는 말씀을 보면 누구나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내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에만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네 집에서 난 자든지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율법에는 유월절을 먹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고 나서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하지 않으면 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난 자와 그리고 돈으로 산 자든지 모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의 살에 있는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율법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할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입니다
행위의 언약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일은 다 그림자로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보면 로마서에서 있는 말씀을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하겠습니까?
인정을 받은 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할레가 무엇인가 하면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레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의 살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로서의 할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힙니다.
골로새서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창세기17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창세기17장에서는 아브라함은 손으로 한 할레를 받았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습니까?
이제까지 할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진짜 자기 몸에 할례를 받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할레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은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체에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예표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할례를 받았는가 하면 손으로 하지 아니하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 할례를 골로새서에서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입니다
이 할레를 받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그가 내 언약을 배반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육체에 받은 할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할례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는 육체에 받은 할례를 말씀을 했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할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할례라는 단어만 보고 육체에 받은 그 할례라고 생각을 하면 로마서는 풀리지가 않습니다.
할례 받아야 합니까?
받지 말아야 합니까? 육체에 손으로 하는 할례는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왜 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에 받습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레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마음에 할레를 해야 하는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마음에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믿음으로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레가 무엇인가 하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으로 인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누가 배반을 합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할례를 하라고 했지만 손으로 하는 자기 살에 할례를 함으로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성도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사도 바울은 곧 육적 몸을 벗은 것이니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인정을 받는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어디에 할례를 받았는가 하면 우리 마음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할례는 곧 우리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할례당이라고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할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례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레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는 할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레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어디에 받아야 하는가 하면 우리 마음에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에 받는 할례는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이 시대는 할례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할례를 어떻게 마음에 행해야하는지를 모르고 문자만 보고 이야기를 하는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가 무엇인가 하면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감성적인 말로 죽었다고 하면 죽은 것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가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죽은 육체는 이미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장사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장사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이해를 못 합니까?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육체가 살아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죽은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면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없고 모두가 살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고도 자기가 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장사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까? 율법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장사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는 모두가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마음에 행하는 할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적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할레가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할례를 어떻게 받았습니까?
아브라함과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의 살을 베어서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 그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흔적이 마치 살을 베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는 것이 할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다 기록하고 난 후에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흔적이 어떻게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할례로 사도 바울의 몸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그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살을 벱니다.
얼마나 아픕니까? 마치 그와 같이 고통이 따릅니다. 그리고 한번 밴 살은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을 인치는 것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인친 것과 같이 마치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할레가 여러분의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 쳐 있어야 합니다. 마치 불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내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장사 되어야 합니다.
장사를 지낸 자는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어서 장사 지낸 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할례를 받은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지키지 않는가 하면 불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마음에 인 쳐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왜 할례를 받았는가 하면 그가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기 위해서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할례가 무엇인가 하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너희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누가 일으키심을 받았습니까? 육적 몸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서 그가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반드시 그것을 인치는 할례를 마음에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몸을 벗어 버리는 역사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영의 생명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진짜 생명이 어느 것인가를 모르고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몸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할레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할례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할례로 여러분의 마음에 인치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이라는 것은 거짓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입니다
불도장입니다 옛날에 가축들을 기를 때 자기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불로 달군 도장을 찍습니다. 그 도장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그와 같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할례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할례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할례의 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할례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인 쳐 있습니까? 마치 불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에 인 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장사 되었다는 것이 인 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죽지를 않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셨습니다.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인 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손으로 하는 할례를 받지 않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어서 우리로 의로 여기심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믿는 모든 자의 조상입니다
갈라디아서3: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무할례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역시 무할례자가 아닙니다. 손으로 하는 할례는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성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할례는 율법으로 보았을 때는 무할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을 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까?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손으로 하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믿는 자는 비록 손으로 하는 할례는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서 마음에 인 쳐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고 또 이방의 교회 역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보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세워서 그가 어떻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모두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있지 종교의 포승에 묶여 실상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우셨는가 하면 우리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오직 믿음을 전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브라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 여기심을 얻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신체가 아닙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영을 믿지를 않고 자기 신체가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고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를 의로 여기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 믿음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아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할례를 마음에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은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란 그저 할례를 받은데 그치지 않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보여준 믿음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가르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은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될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할례를 받은 자가 되어서 의로 여기심을 받아서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아브라함은 믿는 우리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만 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닫는 것이 언제입니까? 우리가 나면서부터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 역시도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할례가 이스라엘의 백성이라는 표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할례자의 조상이기도 하다고 하니까 마치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이기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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