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34-1,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윤주만목사 2024. 7. 27. 16:57

로마서4:7절을 보겠습니다. (244)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일을 하지 않고 의로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는 일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일을 했고 이방의 교회는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누가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 것이 없어서 거지와 같은 나사로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니 구원을 받는 성도는 절대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순간 여러분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차라리 성경을 안 보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냥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행복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전적인 뜻은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서 흐뭇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행복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 행복이라면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마치 천국과 같은 느낌을 가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행복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행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면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일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에 있어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도 세상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누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그것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면서 마치 자기들이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아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복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족감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지 영의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하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자기만족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영의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 것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만큼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일을 해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우리에게 일을 하지 말고 믿음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의로 여기심을 받은 성도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탄생을 시키시고 그 영을 의로 여기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로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을 통해서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 행복은 믿음을 받은 성도만이 알고 있는 행복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살아가고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니 어느 누구도 우리 성도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을 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시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일을 아는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다윗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윗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만 그런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간음한 자요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이 행복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성도는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가 그리고 과부가 나그네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을 어떻게 누를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성도도 사람이기에 때로는 그런 것을 바라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더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상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입니다

그것을 세상에서 누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는 복음을 아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육체의 기쁨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은 하늘의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이 아닙니다.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의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신체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탄생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2:1절을 보겠습니다. (824)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왜 사망을 당해야 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으로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을 믿든지 안 믿든지 내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신론자 중에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내세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고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 사람이 선하게 살려고 합니까?

율법주의자의 생각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롭고 선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자기들이 조금 지키는 율법을 보면서 마치 사람들이 죄만 짓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의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잘 지키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영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율법을 잘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세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더욱 율법을 잘 지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싶어 합니까? 아니면 죄를 짓지 않고 살고 싶어 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교회가 율법주의가 되고 있는가는 그것이 사람의 이성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죄인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인입니까?

이 세상에 감옥에 들어가 있는 죄인입니까? 그들이 처음부터 죄인으로 살고 싶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사람들이 진 죄를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의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 세상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도 사단이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를 아는 것으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지혜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죄를 짓게도 하지만 율법을 지키게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은 의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에서는 허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해서 사도 바울은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짓는 두 가지의 죄입니다.

불법이 있고 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허물

저지른 잘못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말을 할 때는 허물과 죄가 같습니다. 물론 뜻도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허물은 저지른 잘못을 말하고 있고 죄는 양심이나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물이라고 할 때와 죄라고 할 때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 허물을 불법이라고 할 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편19:12절을 보겠습니다. (816)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허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성경은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 중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없다고 하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린 아이라도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깨닫고 실수로 자기가 잘못을 했으면 그것에 대해서 숨기려고도 하고 또 그것을 알고 그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받기 위해서 스스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기 잘못을 깨달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물의 기초입니다

그러니까 불법의 기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허물을 범하게 되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는가 하면 잘못을 하고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물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허물에 대해서 불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허물을 깨달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우리도 이렇게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구하지 않고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무슨 허물이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다라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허물을 어떻게 알고 불법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허물에 대해서 그리고 불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 가운데 숨은 허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없어서 잘못을 하고도 잘못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가 이 잘못을 했습니다. 하면서 사해 달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잘못이라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신학을 공부했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그래도 나름대로는 읽었다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 평생 동만 성경만 읽으면서 살았습니까? 그렇다 해도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불법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숨은 허물입니다

그러니까 허물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허물을 알면 그것이 숨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본다 해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 허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에서만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허물에서는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는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가려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물에 대해서는 사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시편의 말씀과 같이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잘못을 깨달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깨달을 자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의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허물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불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6:14절을 보겠습니다. (29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이 말씀도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믿지 않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사업을 하는데도 믿지 않는 사람과는 동업자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런 육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초등학문입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칙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이 일이 다 교회 안에서 있는 일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 세상 사람들을 보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멍에가 무엇입니까?

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어야 하는 짐입니다. 그 짐을 믿지 않는 자와는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이방에 교회에 벌써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듣고도 믿지를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비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그때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복음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불과 100여년이 지나면서 교회는 종교가 되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시대는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들이 믿지 않는 자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내가 믿는 자인가 믿지 않는 자인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절대 다수는 믿지 않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주님이 오실 때가 다 되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징조들을 자기들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십니까?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주님이 오실 때가 목전에 왔다면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직 그래도 믿음이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은 주님이 오실 때가 임박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의와 불법입니다

빛과 어두움입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가 있는 성도가 있고 불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빛을 믿는 사람들이 있고 불법을 행하면서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허물이 그리고 불법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들이 왜 어두움에 있는가 하면 율법이 어두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시 말씀을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부탁을 드리지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두움이 무엇이라는 기본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이 율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두움에 거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모두가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의를 좇은 사람이 있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있고 빛을 믿는 사람이 있고 어두움을 따라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입니다

이미 교회는 종교가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도 없고 의를 좇아가는 성도도 없고 참 빛에 비췸을 받는 성도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자기에게 무슨 허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불법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불법입니다 이 세상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자기들이 믿음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불법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시편의 말씀 그대로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 못 합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불법이라고 하면 도리어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의와 불법입니다

함께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사람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위는 다 불법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다 의가 되고 있는데 그것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의와 불법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찌 함께 하며 라는 말씀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불법이 허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불법 율법의 행위입니다

어두움 역시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다 불법이고 어두움인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시편의 말씀 그대로 깨닫지를 못해서 허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6:15-16절을 보겠습니다. (292)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벨리알

무가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무가치한 것이 어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무가치한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 행위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무가치한 것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무가치한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조화를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는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조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그는 사람의 이성에 타당성이 있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사단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지혜로는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무가치한 것이 조화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단은 그것이 조화가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성경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을 사단은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합리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불법을 행하는 믿지 않는 자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 하리요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은 서로 같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서로 맞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일치하게 만들어서 불법을 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허물이 무엇인지 불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저 믿음이라는 말에 미혹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을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내 안에 오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것을 성전을 지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과 어찌 일치가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이미 로마서1장에서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시대는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고 의롭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정말 감동적으로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간증을 하게 되면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우상입니까?

그렇게 되고 싶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입니다 어떤 조각해서 만든 것이 우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고 그것을 따라하고 싶어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그런 우상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있고 그것을 예배로 찬양으로 기도로 여러 가지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사도 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시편에서의 말씀과 같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가 그렇고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아 아무리 보아도 믿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성경을 보고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일치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단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놓고서 일치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 허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깨닫습니까?

예배를 드리는데 형식에 맞추어서 드리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예배의 모든 형식이 다 불법이라는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것이 불법이라고 하면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묵상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신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성가대가 연주를 하고 있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있고 각종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또 때가 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과 같은 성찬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불법이라고 하면 저를 도리어 이단이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 죽은 자를 장사하고 나서 주님을 좇겠다고 말하니까 주님께서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두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육체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죽은 자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불법이 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죽은 자가 하는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고 죽은 자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이라고 하니까 마치 자기 육체가 성전이 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미 죽은 자이고 성전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믿음으로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능히 깨달을 자가 없어서 다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허물을 알아야 사함을 받을 수 있는데 아니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