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4:8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불법입니다
반드시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이 아니라 천국의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천국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불법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불법을 말씀하고 있지만 불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불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그런 잘못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불법을 말씀하고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사하심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건짐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대강 불법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목사들부터가 성경을 너무 쉽게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무슨 도덕책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보고 도덕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의 설교만 들어보아도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단순하게 보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은 쉽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면 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없어도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 한 사람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불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하심을 받아야 하는지 가리우심을 받아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불법에 대해서는 바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인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불법만 행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불법의 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극에 달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의 길로 갔고 그들은 불법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 교회는 완전히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 종교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오랜 기간 동안을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성도입니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가 되는 것을 싫어하시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는 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종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는 온갖 불법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인들은 다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는 오시지 않아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율법 아래 있지 말아야 하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도리어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성령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사하심을 받지 못하면 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믿음으로 행한다는 말로 미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세워지고 있는 교회에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성령을 거역하게 해서 사하심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영의 사람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육체의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실제 그들의 행위를 보면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불법을 행하지 않고 있고 그것을 사도바울이 사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
인정하다
(사람이 어떤 사실을, 또는 사람이 어떤 대상을 일정한 지위로)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 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내가 어떠한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떤 죄인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 죄에서 가리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죄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고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십계명을 보고 죄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있습니까? 간혹 가다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죄인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계명에 대해서는 아주 잘 지키면서 살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교인들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써서 주신 율법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들에게 주님께서 주님을 찾아온 청년에서 하시는 말씀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말씀하면서 계명을 지켰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인들도 그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주님을 믿었고 잘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살았다고 말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죄를 모릅니다.
십계명을 외우면 뭐 합니까? 그 계명을 보고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모른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아니 부자 청년과 같이 근심하면서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들의 육체는 교회에 있을지 몰라도 복음에 있어서는 이미 돌아섰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을 지켰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자입니다. 지금 기독교인은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기독교인으로 살 때는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가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계명을 지켰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 십계명에 대해서 설교를 올려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자기가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할 사람이 있으면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살 때 한 가지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도 유대교에 있었던 부자 청년에서 가르쳐 주셨지만 그 부자 청년도 자기가 십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잠언28:13절을 보겠습니다. (구 943쪽)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죄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어떤 죄인인가 하면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그들이 주님께서 청년에게 말씀하신 그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숨기는 자입니다
물론 죄를 짓고도 숨기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숨기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죄를 숨기는 자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죄를 짓고 숨기는 것이나 죄를 짓고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알아야 합니다.
죄를 모르면 숨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숨기고 싶어서 숨기지는 않을지라도 역시 숨기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은 고의는 아닐지라도 역시 숨기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입니다.
율법을 보았으면 내가 그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율법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주님이 오셔서 하시는 구속의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율법도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이것을 분별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율법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물론 육적인 것도 있겠지만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영적인 의미가 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내가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숨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고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면 고의는 아니더라도 숨기는 자가 됩니다. 죄를 알아야 그것을 자복할 수 있는데 죄를 모르게 되면 자복할 수 없게 되어서 숨기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십계명을 보고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자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죄를 자복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자복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할 정도로 자복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가 신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것을 가지고 간증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자기의 의를 쌓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우상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실수를 해서 누군가에게 미혹을 당해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자기 죄를 자복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죄를 버리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절대로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 죄도 모르는 사람이고 자복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또 버리지도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죄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 죄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자복하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인정치 아니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죄인입니까? 절대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자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죄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죄를 자복하고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해 주시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죄입니까?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이미 지고 가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지고 가신 그것을 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죄입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서 말하고 있는 죄입니다. 그것을 이제 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그런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죄라고 하고 있고 자복하면서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버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 죄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것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런 죄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아담은 에덴에서 선악과를 절대로 따 먹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의 어느 계명을 예전에 범했습니까?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면서 자복을 하고 나서 이제는 더 이상 그 죄를 짓지 않고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버리든 안 버리든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이 상관있다고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우상을 숭배를 했습니다. 나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기독교인은 다 우상을 숭배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들었던 사람 빼고는 모두가 다 우상을 숭배를 했고 지금도 교회 안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이제까지 우상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도 충분히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이 내 안에 계시가 되기까지는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들이 다 우상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을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보니까 죄를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죄가 아닙니다.
영적인 죄를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우상 한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우리는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문자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십계명이 실상은 다 죄가 되었습니다.
깨달은 성도입니다
내가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입니다. 그 죄를 자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자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살인도 하지 않고 있고 도적질도 하지 않고 있고 거짓 증거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죄를 버린 사람입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죄를 버린 사람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죄를 버린 사람입니까? 이것을 능히 깨달을 자가 없다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이것을 능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은혜라고 밖에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가 죄를 자복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죄를 자복하고 버렸습니까? 그들은 죄를 자복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우리 성도가 죄를 자복했고 또 죄를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시편32:2절을 보겠습니다. (구 824쪽)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정죄를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복을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복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에게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 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자복하고 그 죄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죄도 모르기 때문에 자복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율법 아래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그 의미를 알고 율법을 버리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율법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버릴 수 없습니다.
왜 죄인이 됩니까?
율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죄를 당하는 순간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정죄하고 있습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정죄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하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나를 죄인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신다면 복이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람이 어떠한 말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죄인이라고 해도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치 아니하십니다.
사람에게서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대언자입니까? 그도 사람입니다. 더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목사라면 그의 말은 전부 거짓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양이 있게 지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는 거짓에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도 모르고 있고 자복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버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누가 버렸습니까?
죄를 알아야 버릴 수 있는데 죄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죄도 모르는 사람이고 버리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아직까지도 십계명의 모든 계명을 어기면서 버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킨다고 하는 그 문자를 보고 버리지를 못해서 정죄를 받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죄를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서 정죄를 당해도 정말 힘이 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로부터 정죄를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정죄를 당하지 않는가 하면 마음에 간사가 없는 사람이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간사한 자인가 하면 잠언에서 그 진찬을 탐하는 자를 간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찬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게 하는 말이 진찬입니다. 그것이 간사한 자의 말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간사한 것이 없고 정죄를 당하지 않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스스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0: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96쪽)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십니다.
그 말씀은 주께서 그를 옳다고 인정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주님께 인정함을 받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도리어 정죄를 당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무엇으로 칭찬을 받습니까?
우리가 행위로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죄를 당하지 않고 옳다 칭찬을 받으려면 사람의 행위로는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행위가 스스로에게 정죄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지도 못하고 생명도 없는 그를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죄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복을 했고 이제는 그 죄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 성도를 칭찬해 주겠습니까?
아무도 안 합니다
우리를 보고 너희가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고 물을 것이 분명합니다.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옳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죄를 당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해 주시고 옳다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 우리 성도를 누가 칭찬해 주겠습니까? 누가 옳다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누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옳다 인정하고 우리의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입니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육체의 죄를 인정하셨기 때문에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육체의 죄를 인정치 아니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괜스레 십자가를 지신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기 때문에 은혜가 더욱 넘치고 있습니다.
로마서4: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행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복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하다는 것이 사전에서 말하는 행복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자기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서 흐뭇하면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은 분명히 사전적인 뜻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육체의 행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육체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예수 믿어서 행복합니까?
무엇이 행복합니까?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행복합니까? 마음껏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까? 그것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 종교에 의해서 누리고 있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우리 육체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영의 일에 있어서 행복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은 무색, 무미, 무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우리 육체가 느끼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복입니다
복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는 단 4번밖에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4장에서 두 번 나오고 있고 신명기에서 두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느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체험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는 것은 말씀 그대로 영의 일입니다. 영의 일을 느끼려고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서 행복합니까?
찬양을 불러서 행복합니까? 기도를 드려서 행복합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에 대해서 행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지금 4장이 무엇을 가지고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3장19-26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이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미치고 있습니다.
그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계속해서 로마서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즉 행복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 것을 행복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누리는 행복은 이 세상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행복이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된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 있는 결론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행복이라는 단어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 하면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 행복입니다
어느 행복인가도 모르고 그저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행복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보기 쉽게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장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볼 때는 그 장절만 보지 마시고 앞뒤에 말씀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가를 알고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행복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행복합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행복합니까? 그가 느끼는 행복은 육체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느끼는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경 말씀을 바로 알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을 확신하는 그것 뿐 입니다.
그런즉 이 행복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이미 3장에서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3장의 말씀을 알고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입니다
세상의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그 행복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next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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