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1-2,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윤주만목사 2024. 6. 29. 07:23

시편51:4절을 보겠습니다. (839)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참 되십니다 다윗은 자기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께만 범죄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께만 범죄를 하고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까? 다윗은 사람에게도 범죄를 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물론 다윗이 사람에게도 범죄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주께만 범죄를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범죄를 했습니까? 주께만 범죄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도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다윗이 주께만 범죄를 했다고 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윗이 주께만 범죄를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주께만 범죄를 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다윗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고 그리고 성막에서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죄를 사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는 이미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죄의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악의 문제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도 이 악의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역시 로마서에서 악의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만 짓는 것이 아니라 아니 이 죄의 문제가 우리를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다윗이 내가 주께만 범죄를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악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 그 판단이 순전하다고 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주께만 범죄 했습니다.

우리 성도 역시 주께만 범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우시다고 판단을 해 주시는데 그것이 순전하다는 말씀입니다 참 믿음의 비밀을 알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는 좀 뻔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의 이성에는 속된 말로 또라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늘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주께만 범죄를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누가 인정하고 누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아니 정신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습니다. 이미 죄의 문제는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진 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악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로 인도함을 받기 까지는 사람들이 이 악을 전혀 이해하지를 못 합니다 이 악에서 건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어서 이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에서 이깁니까?

교회 안에서 어리석은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이기려 하는 사람은 아직 유대인과 같은 사람이고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악입니다

우리는 주께만 범죄를 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종교인으로 살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사해 주셨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제 믿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참된 살과 참된 피를 먹으면서 믿음에 굳세게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악만 행하면서 살았던 우리를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 이기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시고 그것이 순전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비밀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역시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다윗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지만 주께서 의로우시다고 말씀을 하시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다고 말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누가 믿지 않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 역시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의문을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런 사람을 사도 바울은 다 거짓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오기까지는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다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윗이 믿음을 알고 난 후에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이렇게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만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은 성경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인용하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야 성경이 바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을 다 그렇게 풀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경을 풀어서 말씀을 드리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알레고리하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성경이 풀어준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렇게 풀지를 않고 그 말씀을 보고 거기서만 사람의 이성으로 풀다보니까 모두가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절대 안 풀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있는 말씀들을 많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냥 당신의 생각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나 다른 선지자들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 말씀만 인용을 하고 다른 말씀은 인용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우리가 보는 성경의 맹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마치 그 말씀만 인용을 한 것과 같이 각주가 달려 있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씀은 성경을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그것을 풀려고 하다가 베드로후서의 말씀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내가 지금 로마서3장을 보고 있습니까? 만약에 로마서3장만 보고 그것을 풀려고 하다가는 베드로후서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면서 억지로 풀고 있는 사람들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참 되십니다.

왜 하나님만이 참되신가 하면 우리 인생은 모두가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행하는 것은 다 거짓되고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악인에게 의롭다 함을 주시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께만 범죄를 했다고 하면서 주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만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모두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악인을 주님께서 건져 주시고 천국으로 구원을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 다만 악에서 건져 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3:5절을 보겠습니다. (242)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국어를 모르고는 성경을 절대로 풀 수 없습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습니다. 이 말씀을 연결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의입니다

로마서1장에서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 불의가 무엇인가 하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문입니다

그러니까 반어적으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1절부터 계속해서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은 장절이 있지만 실제 성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절이 있다 보니까 이렇게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하는 말씀들을 이해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 수 없는가 하면 사람은 다 거짓되고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입니다.

거짓입니다

구원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입니다. 구원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다윗의 시를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며 판단하실 때 그 판단이 순전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반어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께서 의로우시다 판단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 불의와 의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아서 불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성경을 풀면서 마치 세상 사람이 그리고 자기들과는 율법의 지키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다 불의합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드러나게 하고 있는가 하면 다윗이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을 해 주심으로 해서 의가 드러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지금 이 강해를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1:32절을 보겠습니다. (366)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선지자들입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받은 선지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선지자들이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그렇게 많이 보고 있고 신학 박사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사도 바울이 무슨 말을 하리요 하는 그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어떻게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허다한 선지자들이 어떻게 믿음으로서 이길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고 선지자들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게 이 성경을 기록했지만 성경을 보는 눈들이 다 감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믿어지게 하는 역사가 있어야지 그렇지가 않으면 아무리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 모든 선지자들도 하나님이 의로우시다 판단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을 하리요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사람의 이성을 개입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자의적인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신학이라는 것을 배우고 또 종교 안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 그것에 맞추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성경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본다 해도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필사를 하다가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붓을 다시 잡을 정도로 성경을 대하는 마음이 달랐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스라엘 못지않습니다. 그런 것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려고 하는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성경을 볼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성경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자기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맹목적입니까?

제가 맹목적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더 맹목적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에 따라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무슨 말을 하리요 하는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맹목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성경을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맹목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맹목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을 한다고 말씀입니다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면 무슨 말을 하리요 또 우리 불의로 인하여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의 예입니다

사람은 다 거짓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참 되십니다. 그럼 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불의를 하나님의 의를 들어나게 하는 것이나 또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판단이나 무엇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짓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정말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을 풀어내고 있으면서도 정말 어렵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성경 말씀을 비비꼬아 논 것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경을 풀고 있는 저 역시도 설명을 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한 절만 그렇게 기록이 되었어도 그나마 괜찮겠는데 계속해서 말씀이 꼬여 있으면 저 역시도 중간에 생각이 잊어버리려고 해서 집중을 하려고 애쓰지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 3장에 계속해서 그렇습니다.

어느 말씀하나 제대로 편하게 풀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저 앞에 것을 생각해야 하고 있고 또 인용을 한 말씀을 생각해야 하고 하니까 정말 집중이 잘 안 되면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푸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더 어렵게 느끼고 쉽게 문자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문에 반문을 하다보니까 한동안 써 내려 가다보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희미하게나마 성도님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4절을 보겠습니다. (25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는 절대로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의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불의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에서와 야곱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어머니 태 속에 있을 때에 택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선택을 받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아직 무슨 선이나 의를 행하기 전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불의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백번 이해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에서에게 진노를 내리시고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의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 성도님들은 절대로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불의하시지 않은가 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십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사람의 예대로 말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불의하시지 않은가 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가 되어서 그 의로 살게 해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너무도 큰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그 불의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리어 불의하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내리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왜 불의하시지 않는가 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서 진노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아서 스스로 진노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노를 받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예로 말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항상 악만 행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의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불의로 진리를 막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의를 주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해 주실 수 있는 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진노를 내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믿는 성도에게 내리시겠습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내리시겠습니까? 성경을 바로 안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하신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진노를 받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결코 불의하신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3:6절을 보겠습니다. (242)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물으면서 결코 그렇지 아니하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의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전혀 복음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단어를 아는 것으로 마치 복음을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의 하십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분명히 불의한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도리어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있고 믿지를 않아서 영생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저 대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의가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해서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불의는 이제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노를 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일이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스스로 의를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진노를 내리시는 것이 불의하십니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불의 하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노아의 홍수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도 왜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셨는가 하면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의하시면 그 심판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보는 눈이 감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복음을 모르면 지혜를 구하고 은혜를 구해야 하는데 도리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불의하신 분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자기들이 지킨 율법의 의를 가지고 판단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과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불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자기들을 영접해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면 정말 진실 되게 살려고 율법을 잘 지킨 자기들을 영접해야 하는데 주님은 병든 자들을 영접해 주셨고 또 잃어버린 자들을 영접해 주셨고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영접해 주셨습니다. 자기들과 같이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은 도리어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정죄하지를 않았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됩니까?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 자기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23장을 보아서도 알겠지만 이스라엘은 이 시대 교인들보다 더 진실 되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7번이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로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율법을 잘 지키고 산 바리새인들을 칭찬해 주어야 하는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록 그들의 눈에는 죄인으로 보이지만 그 불의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당시 로마에 세금을 걷어서 바치고 있는 삭개오에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 불의합니까?

그리고 그를 보고 잃어버린 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불의합니까?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예수님은 불의하십니다. 사실 삭개오는 우리나라로 하면 친일파입니다. 친일을 한 사람도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입니다

분명히 바리새인이 의롭습니다. 삭개오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삭개오를 영접하셨습니다. 왜 그를 영접했는가 하면 그에게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삭개오를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는 너무도 공평합니다. 이 공평한 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는데 불의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까지도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조그만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성도는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심판합니까?

만약에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괜히 아담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 해도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19:2절을 보겠습니다. (418)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그의 심판은 참 되십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눈에는 분명히 불의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으로는 우리 인생은 모두가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주 쉬운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고아도 받을 수 있고 과부도 받을 수 있고 나그네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구원이 부자만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정말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복음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은 그저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구더기 같은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이 하나님의 의를 믿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첫 사람이 바로 가인입니다 그는 제사에 열심을 내다가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를 얻게 하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음행을 하면서 스스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음행을 합니다.

누가 음행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음행을 하고 있고 교회가 음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시고 믿음으로 사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복음을 안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 해도 결코 불의하시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왜 불의하시지 않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의하시지도 않고 또 세상을 심판하신다 해도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