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2,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윤주만목사 2024. 6. 9. 08:17

로마서2:6절을 보겠습니다. (24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습니까? 누가 보아도 천국에 들어갈 성도와 같이 보입니까? 도리어 그 사람이 더 많은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교회 안에서 평생을 진노만 쌓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알 수 없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지혜가 있는 백성입니까? 최근에도 보면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백성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도리어 진노를 쌓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입니까?

우리가 이스라엘보다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선민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이방인들이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믿고 있는 사람보다는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는 그것을 똑같이 행하면서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있는가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것을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영생을 주십니다. 그러나 남을 판단하는 그 일을 똑같이 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노를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같이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진노를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믿고 있다고 하는 복음이라는 것은 다 거짓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어리석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가르치다 보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누가 보고 있습니까? 로마에 있는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 안에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이 세상 사람이 그렇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느 것을 행하느냐에 따라 그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로마서1장부터 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내가 무엇을 행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가 아니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5:29절을 보겠습니다. (15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성경을 보라고 해도 안 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성경을 안 보는데 세상 사람이 성경을 보겠습니까? 그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반드시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모두가 악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많습니까?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까?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이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다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으로 난 사람을 찾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래도 나름대로는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한 행위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악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기초입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악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에게 불쌍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평생을 악한 일만 하다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그가 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합니다.

행한다고 하니까 육체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도 행하는 것이고 육체로 율법을 지키는 것도 행하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느 것을 행하느냐에 따라 그가 생명의 부활로 갈 수 있고 심판의 부활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선합니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하신 이가 없습니다.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사람의 이성에는 선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부탁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도 선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그것 역시도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하십니까?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아무도 못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그 의가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선한 일이 아니라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실상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선한 일을 육체로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선한 일을 한다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입니다

조금 규모가 있다고 하는 교회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의료 지원을 한다든지 또 그들의 어려운 환경을 개선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생명의 부활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백번 옳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성경을 보는 성도지 세상의 이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선한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내가 생각하는 선한 일을 하면서 그것이 선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신문으로 잡지로 또 주보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생명의 부활을 받는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모두가 그것을 선하다고 해도 성경이 선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라고 말씀하면 그런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악한 일을 하면서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지혜를 깨달을 수 없어서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만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한 모든 일은 악한 일입니다. 선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라면 그 답은 빤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고집을 부리면서 회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1:3절을 보겠습니다. (396)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마치 선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 때는 악한 일을 했었고 이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하는 것을 선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모든 행위는 사실은 다 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악한 일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내가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기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증거하니까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니 그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증거하니까 진리대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이렇게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그가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진리가 전해지고 있습니까?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진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어떻게 막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고 그것으로 도리어 정죄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그러나 육체의 행위는 너무 잘하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 선하신 이를 믿는 일은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둘을 함께 하려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까?

그는 불의로 진리는 막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습니까? 그는 절대로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둘을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이 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사람은 주님이 하신 일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도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그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진리를 듣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진리를 듣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하면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그 사람도 분명히 자기 딴에는 진리를 듣고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한 대로입니다

정말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행했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가르쳐 줘도 그저 자기 지식이 되고 있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서 진리로 인도를 해 주시면 마음으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를 주님께서 선한 일을 했다고 말씀을 하면서 생명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7절을 보겠습니다. (290)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사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하지를 않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선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굳게 믿으면서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그는 악한 일만 하다가 진노를 쌓고서 그 쌓은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거꾸로 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1010절에 마음으로 믿고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어떻게 의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이성에 받아들여집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자기가 의롭게 살아서 의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서도 얼마든지 의에 이른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로는 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면 이 말씀을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면 절대로 불의로 진리를 막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그것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지 않아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율법을 안 지키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사람은 율법을 안 지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믿음으로 행할 때 역사한다는 말씀입니다.

행합니다.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육체로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에는 육체로 행하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비밀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해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까?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은 육체로 행하는 사람이지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매주 헌금을 하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보는 것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히 믿음으로 행해서 생명의 부활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고 있으면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믿음은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는 사람의 눈에 그리고 이성에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행하고 있으면서 믿는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하나는 보는 것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말씀할 때는 한 가지를 하면 한 가지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도 행하고 보는 것으로도 행할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안 되니까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어를 모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히브리어 헬라어보다 국어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물론 때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푸는 데는 국어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말씀을 국어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헬라어에 능통하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교입니다

그러면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도 행하고 보는 것으로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면 보는 것으로는 행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행하면 믿음으로는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율법을 지킨다는 성경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보응입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받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에 너무도 설득력이 있는 믿음도 좋고 행위도 좋은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하려하고 있습니다.

억지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어느 한 가지를 하고 있으면 하나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자기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속는가 하면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자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는 것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보지를 않으니까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아니 듣고 있는 말이 성경적인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8절을 보겠습니다. (29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우리는 담대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모르겠습니까?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합니다.

사실 어찌 생각하면 믿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보이는 것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아무 느낌도 없고 감정도 없습니다. 그래도 보이는 것으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찬송가를 부르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 느낌이라도 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성도로 보입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그래도 보이는 것으로 행해야 성도와 같이 보여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사람들이 와서도 가장 고민하는 것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 강의에 와서 그저 말씀만 듣고 믿으라고 하니까 도저히 사람의 이성으로는 믿어지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도 압니다.

누군가는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믿음으로 행하면서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도리어 굳세게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보이는 것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 인생이 보이는 것을 좇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합니까?

내 육체의 정욕이 얼마나 나를 사망으로 끌로 가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기고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보이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배도 드렸고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는 찬송가가 나오고 있고 식사를 하기 전에는 무의식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감성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오죽 하면 초대교회에 사도 바울이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무엇을 행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이성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입니다

선이 무엇인가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이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도 믿음으로 지키고 있고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도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다보니까 보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해도 그저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속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에게 어떠한 보응이 임할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37)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그가 선한 일을 했으면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고 그가 악한 일을 했으면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그가 믿음으로 행했으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것으로 했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사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제사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고집을 꺾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이 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행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 믿음의 비밀을 알 수 없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보이는 것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전에는 그가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져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알지 못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무엇을 알지 못 했습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런 사람이 교회 안에 절대 다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해서 도리어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긍휼을 입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보이는 대로 행하다가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하심으로 이방에 사도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보이는 대로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이렇게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노아의 때 못지않게 교회 안에 죄악이 관영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보이는 대로 행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었습니까?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그 믿음으로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이성을 따라 행하면서도 그 고집을 꺾지 않고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next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