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1,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윤주만목사 2024. 6. 9. 08:16

로마서2:5절을 보겠습니다. (241)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벌써 이 지구는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해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니까 사랑이 넘치시는 분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사랑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말씀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용납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판단을 하는 것까지도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죄인이 죄인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판단을 받는 사람보다 판단을 하는 자기들이 더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릅니다.

아니 성경에서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그리고 이성에 생각이 되는 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진 사람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있는데 누군가 그것을 하지 않을 때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여인들이 순리대로 쓰는 것을 바꾸어 역리대로 쓰고 있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서 부끄러운 일을 육체적으로 행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설령 누군가 동성연애를 한다 해도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찬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상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시대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로마서에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진리를 모르다보니까 그저 자기들의 이성으로 알고 있는 문자를 보고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연애를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을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것을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또 예배를 드리고 자기들이 정한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을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정해서 하는 헌금만 해도 아마 십여 가지는 족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길이 참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이 참으시고 있으니까 자기들이 잘 해서 별 일이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또 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을 하고 있고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 이방에 포로가 되게 하고 이방을 들어서 이스라엘로 그들을 섬기게 한다면 바로 돌이킬 수 있지만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시대는 그런 징계가 없으니까 계속해서 멸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 자체가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와 같이 거의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멸시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두어서 점점 더 율법에 빠지게 그들을 내버려 두셨지만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마음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각종 헌금을 정해서 하고 있는 자기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의 행위가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멸시를 하면서도 그저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한 마디를 하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들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나타내 주셔서 우리가 복음에서 나타나는 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완고해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런 자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릴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벌을 쌓아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누가 회개할 마음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렇게 나쁜 의미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설교하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고 자기들과는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완고해져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있는 사람이나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절대 다수에게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표는 현재도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만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이방의 교회 역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회개를 하지 못 했습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사람의 이성에는 바르기 때문에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를 하지 않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있을 진노를 계속해서 더 많이 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2:10절을 보겠습니다. (385)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고집입니다

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지켜서 우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 있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을 말리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습니다.

사람의 의견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고 의견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국가와 사회 그리고 모든 종교가 이 율법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면서 살라고 그렇게 배워왔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입니다

이 세상 사람보다 더 국가의 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국가 제도와 법에 순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가의 법도 고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집단은 자기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그렇게 국가에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생각하는 의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율법을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소경이 되어서 그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무엇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육체를 따라 행하는 더러운 정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모든 율법이 육체를 따라 행하는 더러운 정욕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것이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의견이 그렇다 해도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세상 의견을 따라 성경을 보다보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로운 일인지 악한 일인지 깨끗한 일인지 더러운 일인지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견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면 그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연히 그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복음에 순복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더욱 더 아집에 사로 잡혀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까?

그것이 사람의 의견에는 의롭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육체를 따라 행하는 더러운 정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버리지를 못했고 이방의 교회 역시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이 시대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외식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고집을 부립니까?

그것이 나쁘다면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도 그것이 나쁘다면 고집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 고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의견에 그것이 너무도 옳기 때문에 진노하시는 날까지 그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해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정말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더러운 정욕이라는 것을 알면 어느 정도 고치려고 생각이라도 할 텐데 사람의 의견에 옳기 때문에 진노의 날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고집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고 그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미 정도를 넘어서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고쳐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고집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율법을 버리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고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고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289)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완고,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다고 말 합니다.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모르면서도 그저 문자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성경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학업 능력이 있다 보니까 이제 한글 성경을 보는 것은 너무 심심합니다. 한글을 보고 말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서 일반 교인들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고 있고 심지어는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를 배웁니다.

그리고 영어로 예배를 드립니다. 솔직히 그들이 한글개역성경을 알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한글개역성경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개역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깨닫는 것도 평생을 다 바쳐서 해야 하는 일인데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영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만 알아도 충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수십 년을 공부해도 영어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을 가지고 영어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성경에서 복음을 아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뜻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정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나는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지렁이 같고 벌레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조금 가지고 있는 지적인 능력으로 인격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성행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 마음이 완고해서 오늘날까지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고합니다.

고집이 있어서 아직까지 수건을 벗지 않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스라엘과 똑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볼 때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그것을 자기들이 행위로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그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아서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드리고 각종 날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수건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수건을 쓴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서 수건을 쓰고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렇게 율법을 보다가 주님으로부터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으면서도 그들보다 더 완고해져서 구약을 읽을 때 수건을 쓰고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편지에서 구약에 율법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올려 드렸습니다. 수건이 벗겨지지 않은 사람이 보고 있는 율법과 수건이 벗겨진 사람이 보는 율법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는 성도님들은 깨닫고 있는 줄 믿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입니다

수건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는 사람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반드시 그 수건이 벗겨져야 하는데 이 시대 역시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이방의 교회는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그 도덕법으로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도덕법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심지어는 이단이라고까지 서로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완고합니까? 세상의 의견을 따라 완고해져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세상의 의견을 따라 고집을 부리다 보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수건을 벗으려고 하면 이단이라고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서에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영이 우리 안에 오시면 수건이 벗겨질 수 있지만 복음이 계시가 되지 않아서 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고집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의견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을 가르치는 곳에서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보니까 목사들도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개인이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전체가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자기 의견을 고집하려고 하면서 왜 믿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구약을 볼 때는 수건을 벗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냥 보고 있습니다. 그 고집으로 진노의 날에 자기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성도라고 부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이 고집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하나님께 순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5:7절을 보겠습니다. (121)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 세상의 회개입니다

그것은 죄를 진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도덕적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회개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도 그런 것을 회개라고 말을 하고 있고 회개를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누가 회개를 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진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리와 죄인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영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말씀 그대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신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영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누가 해야 하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세리와 죄인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인이 없다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그들과 같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를 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데 도리어 주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시는 것을 보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다 보니까 자기가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인가도 모르고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해야 합니까?

사실 주일을 안 지킨 사람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죄를 짓기도 전에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상은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주일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의인 아흔 아홉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땅에 있으면서도 의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땅에는 없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의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의인은 아니더라도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고작 회개를 한다는 것이 자기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그런 도덕적인 죄를 회개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회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입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바리새인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무엇을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도 죄인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도 죄인입니다 태어나면서 복음을 알고 믿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알기 까지는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집대로 산 것을 회개를 해야 하는데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람의 이성에 고집대로 사는 것이 옳다보니까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6:11절을 보겠습니다. (415)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종말의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때가 왔는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종말의 환상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죽음이라는 종말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 안 합니다

누가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회개를 안 하고 있습니다. 아니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또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감격해 하고 있는 그들이 회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회개를 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개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사람의 의견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견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옳습니다. 그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합니다.

그 행위가 무엇입니까?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면서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는 사람을 판단을 하면서 자기도 교회 안에서 똑같은 영적인 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니 더 악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입니다

왜 죽을 때까지 회개를 하지 않는가 하면 자기 의견이 옳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한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회개를 할 수 있는데 자기 의견이 너무도 옳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싶어도 회개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무엇을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도리어 남을 판단하면서 회개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두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자기가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제가 회개를 하라고 하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줄로 모르고 오히려 반문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게 되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진노를 받습니다.

고집을 부르면 진노를 받습니다. 회개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진노를 받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교회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집도 버리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스겔22:24절을 보겠습니다. (118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진노의 날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미리 안 자를 선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세상 사람에 대해서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목사만 선지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모두가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선지자들에게 진노의 날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는 누구를 예표 하는 선지자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정결함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회를 칠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비를 얻지 못한 땅이라는 말씀은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진노를 쌓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입니다

그리고 비를 얻지 못한 땅입니다 어떻게 정결함을 얻습니까?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정결함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능력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정결함을 입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누가 그런가 하면 진노의 날에 곧 우리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9:15절을 보겠습니다. (419)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날에 임할 진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교회 안에서 고집을 부리고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 진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날에 임할 진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계속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이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고 있고 또 종말이 왔을 때 얼마나 큰 진노를 받는 줄을 아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도리어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진노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이 진노를 쌓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말을 이야기 합니까?

이 시대는 아직 종말의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가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종말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습을 보아도 아직까지는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어떤 일만 있으면 종말을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이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언젠가는 종말이 온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말씀 그대로 종말입니다. 이 지구까지도 없어지는 종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말보다는 더디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진노를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진노를 쌓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그들은 종말이 오면 짐승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짐승과 사람이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입니까?

짐승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짐승도 이 세상에 나와서 본능에 따라 살다가 죽습니다. 역시 사람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본능에 따라 살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해도 역시 본능대로 산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짐승이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세상 죄인은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반드시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의인이고 세상 사람들은 악인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이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그 날에 임한 진노를 쌓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쌓습니까?

반드시 그 날에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누가 그 안에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판단을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따라가게 되어 있고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노를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이 로마서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이것을 누가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진노를 쌓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next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