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1-2,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윤주만목사 2024. 6. 8. 10:06

로마서2:3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이런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어느 일부의 사람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나쁜 것은 거의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꾸로 보다보니까 성경을 전혀 다르게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풀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이 일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을 다시 보고 내가 혹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장에서 모든 불의를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판단을 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육적으로 행하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이 있다 보면 실제 육적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전히 누구의 기준입니까?

율법주의자의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성적인 기준으로 추악하고, 탐욕이 있고, 시기가 있고, 악독이 있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고, 교만하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 이러한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살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대부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분쟁이 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만 겉으로 표출이 되지 않을 뿐이지 사람의 이성에는 다 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 자 뿐입니까?

솔직히 복음을 가진 우리도 이성적으로는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서 믿고 있다 해도 역시 육체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설령 판단을 하다가도 바로 공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다가도 오직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계시가 되기까지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기 전까지는 지금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역시 예전에는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같은 일을 하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같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으로 내어 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왜 모릅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지만 그러나 자기는 영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는 눈이 없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를 않아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러니까 복음을 알아서 듣고 믿지 않는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3:33절을 보겠습니다. (40)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화 있을찐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3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7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보면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외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은 남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남이 안 지키면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의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판단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이미 교회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자기들이 이성에 반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이 마태복음23장에서 하고 있는 말씀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하고 있는 말씀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은 판단을 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판단합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외식을 했는가 하면 자기들과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실제 복음서에서 보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손을 씻지 않고 먹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또 제자들이 시장해서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판단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왔습니까?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것으로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하나도 자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역시 이방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율법의 모양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하는 그것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지만 그 판단하는 순간에 영적으로 너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알고 있지 않느냐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강조를 해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고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불의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이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강조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강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 같은 일을 행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으니까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지도 말고 영적인 의미를 바로 알고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은 복음이 안 보이니까 율법을 보고 있고 그것으로 판단을 하면서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영적으로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는 살인한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영적으로 영혼을 살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았으면 내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살인한 사람을 보고 판단을 하고 있는 그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을 지키면서 외식을 하고 있고 그 외식하는 것으로 남을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4절을 보겠습니다. (240)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그대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자 하셔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회개를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그것이 잘하는 것인 줄로 알고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는 회개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판단하는 그 사람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 죄를 진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그 죄를 진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십일조라는 율법을 교회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아마 이해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서 믿고 있는 성도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는 거꾸로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은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율법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자기 개인의 일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그 설교를 듣는 사람이 자기가 주일을 개인적인 이유로 지키지 못했다고 하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주일은 율법이기 때문에 회개할 가치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지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지고 가셨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죄라고 해도 우리가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판단했으니까 회개를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까?

예전에 70년 대 에는 머리를 기르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통행금지가 있어서 자정이 넘어서 다니면 즉결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다 폐하여 졌습니다. 지금 누가 머리를 기른다고 처벌을 한다고 하면 아마도 그 사람이 도리어 처벌을 받게 되어 있고 자정이 넘어서 밤을 새면서 거리를 다녀도 어느 누구도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거리를 배회하면서 다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판단을 했다면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머리를 기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밤을 새워 가면서 거리를 배회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누가 생각해도 그것을 판단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판단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판단하고 있고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당연히 그것을 판단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기르고 안 기르고는 이제 어느 누구도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겠습니다. (312)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싸움은 제가 글을 쓰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으면서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면서 실상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주일 율법입니다 그리고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이 다 율법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70년대 장발을 단속했던 것이 폐하여졌다는 것과 같고 또 통행금지가 폐하여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일부가 폐하여졌지만 성경은 율법 전체가 폐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자들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들이 제사법과 시민법이 폐하여 졌고 도덕법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율법에서 제사법과 시민법만 폐하고 도덕법은 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 폐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폐하여 진 법도 있고 새로 생기는 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주일이라는 날 율법입니다. 절기 율법입니다. 절기에는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율법입니다. 그리고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주일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한 날에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군가 자기 볼 일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 어려운 일이 있어서 십일조를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물론 율법을 지키는 그 사람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이러한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판단한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정죄를 하면서 회개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소자들은 복음을 모르니까 목사들이 회개를 하라고 하면 자기들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무지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영의 일입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에 대한 문제가 있는 성경을 너무 쉽게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죄를 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회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2:25절을 보겠습니다. (34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회개입니다

무엇을 회개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합니까? 아직까지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로마서에서 판단하는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함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만 하느라고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는 것을 마치 회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늘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그들이 실상은 누가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회개하라고 하는 그들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케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상실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는 자를 기다리시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가지고 다툼을 하다가 주님으로부터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복음을 거역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복음을 거역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복음의 깊은 비밀을 알지 못하면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하는 것이 스스로를 정죄에 빠뜨려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고 악을 행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진멸을 한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넘치셔서 그런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도리어 자기들이 판단하는 그 사람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하면서 복음에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거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판단이 자기를 정죄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을 회개케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보여 주셨습니까? 욥기를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욥의 회개의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죄를 짓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오래 참으셔서 진리로 인도를 하셔서 회개케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에서 진리를 아는 성도만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세상 이성에 따르는 죄를 진 것을 가지고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를 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회개하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죄를 진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다수입니다. 아니 이 시대를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회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6절을 보겠습니다. (337)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이 누구였습니까?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자라는 것을 디모데전서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해서 그렇게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뼈 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이유가 바로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에는 옳습니다.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다보니까 더욱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남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고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율법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진리로 인도하시고 회개케 하고 있지만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멸시합니까?

계속 율법을 지키면서 멸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율법 외에 새로운 한 의를 주셨지만 그 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일깨워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긍휼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깨달아 질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것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것을 자기가 긍휼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율법주의에서 회개케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긍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케 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모르고 점점 더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 누군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그것을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알면 절대로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이 시대 교인들이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면서도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시편10:3절을 보겠습니다. (809)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입니다

누가 감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악인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니까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율법의 의로 자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를 얼마나 자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멸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의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의를 믿지를 않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 의를 나타내고 있다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그 율법을 지키면서도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악인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악인과 의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있는가 하면 악인이 더 많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간증하면서 자랑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악인들을 오래 참으시면서 회개케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회개를 하기 보다는 점점 더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율법주의에서 회개를 할 수 있게 인도를 해 주시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멸시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next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