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3-2, 참고 선을 행하여

윤주만목사 2024. 6. 10. 13:16

고린도전서15:40절을 보겠습니다. (283)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성경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여 영광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국어를 독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아니 대학이라는 지성을 공부한 그들이 국어를 독해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들이 육체로 어떤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하라고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평생을 교회 안에서 진노를 받을 것을 쌓는 일만 열심을 내서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지고 영광을 구한다고 하면서 그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악한 자는 그렇게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는 그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받는 그런 영광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나타내지도 않고 있고 그것으로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로 하는 일입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는 행위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했다 해도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어리석은 자는 그런 영광을 구하다가 진노를 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진노를 쌓는 일을 하면서 이 시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자기들이 영광을 구한 성도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하는 일 다 썩습니다.

성경이 썩는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썩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위해서 구하는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본질을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니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성도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공자가 되면 뭐하고 성불이 되어서 부처가 되면 뭐 합니까? 아니 천주교에서 말하고 있는 성인이 되면 뭐 합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칭 성도가 되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까? 그럼 그 영생을 놓치지 않게 계속해서 성경을 통해서 내 영생에 대해서 확증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일만 하는데 평생의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언제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고 언제 제사를 드릴 시간이 있습니까?

영생을 얻는 성도는 다릅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영생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생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아는데 자기 청년의 때를 허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제사에 그 청년의 때를 다 허비하고 있습니다.

배가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무수한 제물에만 배가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무수한 제사에 그리고 제물에 배가 부르시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면서 이 땅에서 영광을 받으려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불의가 되어 악한 일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당연한 행위와 같으니까 고집을 꺾지 않고 있습니다.

시편16:3절을 보겠습니다. (812)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존귀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존귀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나 성도라고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성도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까? 로마서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모릅니다.

이 시대는 누가 성도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존귀한 자가 성도라는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런 문자를 보고 그저 자기가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하면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이런 문자를 그대로 인용을 해서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이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존귀를 구합니다.

그 말씀은 성도가 되기를 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로 성도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누군가를 알고 성도가 되어야지 말로만 성도라고 하는 사단의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기들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마귀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성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야 성도라고 부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성도가 되기를 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도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존귀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존귀한 성도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진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알아야 성도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진노를 쌓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 성도입니까?

예수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사람을 성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 안에 거룩한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사람이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자기 안에 없는 사람은 성도라고 부를 자격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아닙니다.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올라서 그들이 말하는 극락에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체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는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영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조직 신학에서도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영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이 영의 생명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도가 됩니까? 영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기독교인이지 성도는 아닙니다. 존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성령으로 난 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시대는 존귀를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존귀한 자입니다. 그리고 성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존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로 진리를 막으면서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가 다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남들이 성도라고 하니까 성경도 보지 않고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부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누구를 성도라고 하는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성도라고 합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는 지금 이 시대 교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에 나왔어도 성도라고 부르심을 입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신체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룩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그리스도의 영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의 영인데 마치 신체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을 보겠습니다. (37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썩지 아니함을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는 있어도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과 성도가 믿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종교입니다

그들의 종교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분명히 썩지 아니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썩지 아니하는 거듭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듭남 입니다.

한글로 말하면 두 번 낳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 낳은 것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에 살다가 교회 안에 들어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영원히 있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그들이 성경에 거듭남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났습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진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번 낳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번 낳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씨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씨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거듭남입니다. 아담의 씨와 그리스도의 영은 어느 형태로든지 섞이지도 않고 혼합이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씨와 그리스도의 영은 마치 콩과 팥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담의 씨는 콩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은 팥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밭에서 자란다 해도 전혀 다른 씨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둘이 합쳐져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스스로 모순이 되고 있는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나는 것은 썩는 것이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지 혼합이 되거나 섞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듭남인데 이 시대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썩지 아니하는 것을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신체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섞이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섞이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씨와 하늘의 씨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 거듭남에 대해서 그리고 썩지 아니하는 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사람의 이성 때문에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하는 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그러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기는 누구냐고 하면서 자기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씨인 사도 바울은 살아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뭡니까?

그것을 몰라서 묻습니까? 지렁이 같은 나는 죽었습니다. 벌레 같은 나는, 구더기 같은 나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렁이를 벌레를 구더기를 찾으면서 이 시대는 인격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살려서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구더기가 천국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난 씨는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난 내가 한 모든 행위가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썩어 없어진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나는 무엇이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렁이가 썩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벌레가 썩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 썩은 것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입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로는 오직 믿음이라고 하고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진노를 쌓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판단하는 그것을 행함으로 해서 진노를 쌓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8절을 보겠습니다. (241)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서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좇지 않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진리를 좇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문자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고 있는 목사들이 성경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믿는 대상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진리를 찾겠다고 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서는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보는 성경이고 그들에게 쓴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로마서를 보면서 자기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나입니다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는가 하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내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런 말씀들이 자기 이성에 보여 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단이 아닙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실제로 이렇게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는 자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자기가 진리를 좇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나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그리고 약간의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 시대 교회 전체가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할 것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은 진리를 좇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3:12절을 보겠습니다. (228)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누가 당을 짓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당을 짓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당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이단과 정통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진리를 좇아서 정통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진리를 좇는 교회는 없고 모두가 당을 짓고 있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당을 지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을 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니까 그 율법 문제로 사도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당을 지었습니다. 이 시대도 모두가 당을 지어서 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당을 짓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만든 교리로 당을 짓고 있습니다. 그 교리에 율법의 행위를 따라 이단이다 정통이다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이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 당을 짓고 사도 바울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는 다 당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당이 무엇입니까?

천주교가 당입니다 기독교가 당입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장로교가 당입니다. 감리교가 당입니다 침례교가 당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하는 모든 교회가 다 당을 짓고 진리를 좇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가 진리를 좇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곳은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당입니다

이 시대 교회 이름을 붙이고 있는 모든 곳이 다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는 곳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교회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이름을 붙이는 자체가 당을 짓는 일이며 그들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아내인 교회에 자기들이 지은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가 다 당을 짓고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거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당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 합니다.

요한계시록2:6절을 보겠습니다. (400)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빌립보서3:2절을 보겠습니다. (321)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니골라당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니골라당의 형태를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달리 담임 목사가 교회의 모든 전권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다 니골라당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골라당이 무엇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자기들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당입니까?

그 속에는 진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담임 목사의 전권이 있는 그런 교회에서는 절대로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되는 순간부터 진리는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손할례당입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손할례당이라는 말씀은 할례를 육체에 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할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손할레당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대표입니다

손할례를 한다는 것은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이 당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손할례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손할례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을 짓는 교회는 진리를 좇지 않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손할례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까? 다 손할례당에서 나온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습니까? 역시 손할례당이며 진리를 좇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좇고 있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좇는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613가지입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손할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모든 것은 실상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손할례당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천국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당을 짓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는 말씀은 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율법의 대표가 바로 손할례입니다.

삼가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자키고 있다면 그는 진리를 좇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진리를 좇는 것이 무엇이고 불의를 좇는 것이 무엇이라는 그 기초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서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입니다. 이 시대는 진리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입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불의는 무엇입니까? 내가 한 모든 행위는 다 불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불의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겠습니다. (30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의롭다 함을 받아 영생을 얻습니다. 진리를 좇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그것이 내 의가 되어서 내 안에 의로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불의가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불의입니다.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의롭다 해 주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불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만약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율법은 진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전적인 단어를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불의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안다 해도 성경에서 의미하고 있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이 의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진리가 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진리와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들조차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우리를 의롭다 해서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 율법의 행위는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있는데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지키는 율법이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 의는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좇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의를 좇으면 그것이 불의가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이렇게 진리를 좇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좇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14:10절을 보겠습니다. (413)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불의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다른 이유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갚아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노와 진노로 벌을 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진리를 좇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해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하나님의 노와 분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어느 일부의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율법을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비유를 모르면 자기가 무엇을 마시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에서는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주의 깊게 보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의를 좇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 불의로 인하여 불과 유황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방의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next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