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6-1,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윤주만목사 2024. 6. 2. 07:42

로마서1:16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대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없고 초대 교회와 같이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래도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베드로의 설교가 있은 후에 삼천 명이 회개를 했고 또 이방에서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유대교보다 더 지독한 종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편협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인들보다 더 편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스스로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이 쉽게 전파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영광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성도지만 이 세상에서는 복음을 전하려면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고난이 올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나 빌립 집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 부탁을 외면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꼭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복음으로 교제를 하고 있는 예배에 참석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예배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새 생명이 탄생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를 주장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거리가 멀고 또 사정이 있어서 예배에 참석을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 역시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중요합니다.

물론 이 시대 교회는 이미 음녀가 되어 있어서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피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교회가 있는데도 그곳을 여러 가지 삶의 이유를 대면서 나오지 않고 있다면 솔직히 그가 아무리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모든 비밀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속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전합니까?

물론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전하고도 있습니다. 그곳을 알려 주는 것도 한 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려고 그 더운 대낮에 우물가로 갔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들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너희에게 가서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설교를 보고 듣는 사람과 예배에 참석해서 듣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꾀려고 합니까?

그래서 제가 하는 아카데미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장소는 거의 차 있습니다. 몇 명만 더 와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작은 사무실이기 때문에 사실 사람이 많이 와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보고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 많아서 복음을 듣는 사람이 많다면 그 자체로 기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 심히 염려가 되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기 때문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주 적은 사람만이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적은 사람이 받았으면 그 적은 사람은 모두가 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를 해야 합니다.

백 명이 됩니까?

아니면 천 명이 됩니까? 정말 그 정도의 숫자만 되어도 저는 이렇게 말씀을 안 드립니다, 우리는 빨리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도 적은 사람이 이 복음을 듣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려고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가 되어서 각자의 삶에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께서 하신 부탁을 듣지 않아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복음을 가진 자가 너무도 적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하는데 힘써 행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모든 일이 서먹서먹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들이 다 부끄럽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뜻으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주님으로부터 직접 너는 이방의 사도라고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될 때까지 성경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복음입니다

지금 이 시대 복음을 전하려면 성도라고 해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썩지 않는 하늘의 생명을 주는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담대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당당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당당하게 그것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전하고 있는 복음은 참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전하고 있고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35:4절을 보겠습니다. (826)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생명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복음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가 하면 이 생명에 대해서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알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말씀드립니다.

이 시대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로마서1장에서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복음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편지를 보고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생명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하고 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을 알아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복음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령으로 난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영이 생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이 영이 의롭다 함을 받은 깨끗한 생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내 안에 영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고 자기 안에 어떤 생명이 거듭나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이 영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도리어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씨 썩어져 없어질 그것이 다시 깨어난다는 성경과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소자들은 성경을 모르니까 그저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생명이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기 육체로 천국을 가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 말씀은 생명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생명이 없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6:15절을 보겠습니다. (4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옷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보고 진짜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이런 말씀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가운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나타내는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가운을 입습니다.

목사만 입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가대도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들이 다 성경을 초등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누가 가운을 입고 누가 성가대의 옷을 입었습니까? 이단일수록 이 옷을 입는 것으로 자기들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옷으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었다는 말씀은 생명이 없다는 말씀이며 생명이 없으니까 벌거벗은 것과 같이 자기의 부끄러움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육체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생활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내 옷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 생명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생명을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주어서 굳세게 하고 있지만 믿음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없는 자는 마치 벌거벗은 것과 같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하면 이 복음을 믿는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복음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다 믿는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전혀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의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는 의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의 옷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아니 의로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내 육체는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을 해 주셔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다면 마치 옷을 벗은 것과 같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내가 무슨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복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까?

그래서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 성도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하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이다가 썩어 없어지는 생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영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싸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천만 명이 칭찬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비록 거지와 같이 살아가면서 개들이 그 헌데를 핥을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가 지혜로운 성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바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의롭게 살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거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저주를 받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내 안에 있는가 하면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함으로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영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율법의 의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고백에는 내가 율법을 지키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다 보니까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저주를 받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로마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이 이렇게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했다면 기독교는 자기들이 원하는 율법을 그들 못지않게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있는데 그 말씀이 율법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면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아니 그 이면에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못 찾는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미련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성도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복음과 율법은 서로 충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로마서에서도 그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마치 방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이 강하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방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문자적인 율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살아야 합니다.

율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아니 율법이 마침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찬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도로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그것을 수십 년을 신앙생활 했다고 하는 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복음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키고자 하는 율법이 도리어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믿어야 하고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4절을 보겠습니다. (26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로마서의 말씀과 거의 같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능력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능력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도 누구는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누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사단과의 싸움에서 질 수 있다면 아니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능력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런 능력이 없다면 미리 약속할 수 없습니다. 만의 하나라도 실패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미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약속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싸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한 없이 강한 사단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사단도 만드신 창조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왜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가 하면 그분만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모르면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능력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할 수 있는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니까 다른 것에 있어서 능력을 이야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체의 일에 있어서 나타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능력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힘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 구원에 있어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는 그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능력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욕이고 탐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다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지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을 해 주시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에 있어서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구하는 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으로 망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정욕이고 무엇이 탐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사단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지구의 임금은 사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아담이 죄를 짐으로 해서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겨서 사단이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왕과 왕의 전쟁에서 아담은 사단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천국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맞지만 이미 이 지구는 사단이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 주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누구 것입니까?

사단이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사단은 이 지구의 주인으로서 주님이 시험을 받으실 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내게 경배를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지구는 사단의 것이기 때문에 주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구입니다

그 안에 교회도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그 영광을 누가 줍니까? 사단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준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썩지 않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다 사단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이 지구까지도 불못에 던지 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모든 것을 다 불못에 던지겠다고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능력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있는 일을 가지고 주님께서 능력이 있으셔서 도와주심으로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줄 수 있을 때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능력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초대 교회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까?

그리고 초대 교회가 비참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또 이 지구의 주인이라면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한 마디로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사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설령 바란다 해도 주실 수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사단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의 것은 하나님의 능력 밖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무엇이든지 다 구하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 안에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단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해 주시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있어서 능력이라는 말씀을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next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