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1, 아들로 말하면

윤주만목사 2024. 5. 30. 06:12

로마서1:3절을 보겠습니다. (239)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는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 성경을 볼 때 복음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기쁨이 오면 그것을 마치 복음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기초가 서 있지 않다 보니까 복음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말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복음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그것이 복음이 되는 것이지 그저 성경말씀을 이야기를 하면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복음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복음이 됩니다.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면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지만 다른 복음을 보면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안에는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가 있고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는 사실 성경말씀의 비유에 해당이 안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일이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는 해당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에서 비유로 하고 있는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서 볼 때 그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이 성경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 처녀도 없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긴 자도 없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도 없고, 양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구약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신약 성경이 기록이 되어서 그것도 다 해당이 되겠지만 구약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복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어두움에 거하다가 참 빛을 못 보고 결국에는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구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지혜로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 다른 복음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정말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도 없고 그런 교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교만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한 가지만 보아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도 못하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듣는 것으로 마치 복음을 듣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졌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온 것은 인간적으로 감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교회는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부터 타락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왔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종교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래도 감사한 일이 있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들이 비록 다른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게 하셨고 우리가 구원을 받기에 그러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보기에 충분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복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이 누구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율법에서 율법 그 자체를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보아야 하는데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는가 하면 성경에 미리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49:10절을 보겠습니다. (79)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야곱의 예언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열두 아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냥 이 세상에 불쑥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을 하신 그대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그 약속을 성취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하신 약속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입니다.

그 자손 중에서 다윗이 태어납니다. 성경의 족보를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는 이 말씀 그대로 주님은 왕으로 오셔서 모든 백성이 주님께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주님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왕으로 오셨습니다. 왜 왕으로 오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 모두가 사단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이 세상 임금인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왕으로 오셔서 싸움에서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을 하게 됩니다.

모든 백성입니다. 복종을 하는 백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복종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반드시 주님께 복종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합니다.

복음에 복종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성취를 하신 모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알고 믿는 그것이 그에게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복음에 복종하겠지만 사단의 백성이라서 율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들에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왕입니다. 그러니까 다윗과 같은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저 소설을 쓰듯이 그냥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말씀 하나하나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성경에서 복음을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32절을 보겠습니다. (87)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구약의 다윗은 당시 그 주변국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자기 조상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기를 아직까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그런 왕이 다시 나와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로 만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누구입니까?

그것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영원한 왕으로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혈통입니다

그것은 왕의 혈통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성경에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그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실제 우리가 족보를 보아서 알겠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다는 것은 왕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같은 왕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다윗은 영원한 왕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알겠지만 그 별이 다윗의 별입니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은 잊혀 지지 않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로 하면 세종대왕보다 더한 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왕에 대해서는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살다보니까 왕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왕정 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국가에서 살다보니까 왕이라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5:5절을 보겠습니다. (404)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습니다.

그 말씀은 왕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도 왕으로 오셨고 또 천국에서도 영원히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것은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왕이 무엇을 합니까?

왕은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왕이 싸움에서 지면 그 백성 모두는 포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조선시대에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왕이 일본에게 강점을 당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본의 일반 국민이 와도 우리나라의 대신들도 함부로 하지를 못했습니다.

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할 때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징집이 되어서 원하지도 않는 싸움에 나가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는 위안부만 해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우리 왕이 강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지만 왕이 일본에 패하고 나니까 일본은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좋은 것은 다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우리 백성은 다 일본의 종이 되었습니다. 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왕이 싸움에서 이기면 그 나라의 백성이 이기는 것이고 왕이 싸움에서 지면 그 나라의 백성이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그런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셨다는 말씀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자를 보고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이기셨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성경에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 이겼다고 말씀을 하니까 막연하게 이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무엇을 이기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주님이 다윗의 위를 가지고 오셔서 이기셨다고는 하지만 무엇을 이겼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싸움에서 이겼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 싸움에서 이긴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아야 주님이 우리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왕입니다

그 왕이 무엇을 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그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 그가 한 일에 복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는 복음에 복종치 않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이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복종할 수 있는데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사단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은 우리를 주님께서 싸움에서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영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우리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게 하고 있습니다.

시편18:48절을 보겠습니다. (815)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미리 성경에 약속하셨고 그것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그리고 대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가 있고 대적이 있습니다. 이 원수와 대적이 우리가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지 육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아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습니다.

무엇을 이기셨는가 하면 내 원수가 나를 죽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대적이 나를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적하는 그 원수와의 싸움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이 되는 우리 성도는 이긴 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집니다.

원수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집니다. 그리고 대적과의 싸움에서도 반드시 집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원수와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우리를 건져 주신다는 것을 선지자들로 성경에 미리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모릅니다.

자기 원수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대적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면서 원수라고 하고 있고 대적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떻습니까?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조금 이기는 모습을 보고 주님이 자기들의 대적을 그리고 원수를 이기게 해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간증이라고 하는 것으로 말하면서 마치 전쟁의 무용담을 이야기 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이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이긴 것은 이미 진 것입니다. 성도는 영의 싸움에서 주님이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구약에 이기는 것은 우리가 육으로 이기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이기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누가 이겼습니까? 사도들만 해도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요한 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다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밧모라는 섬에 귀양을 가서 평생 노역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육적으로 이기는 것을 보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백성은 왕이 이겼으면 다른 것은 다 이긴 것이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천국을 가는데 있어 이겼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세상에서 비록 질지라도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자기 육체로 이기려고 하고 있고 성도는 주님이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편에서도 주께서 내 원수와 대적에게서 나를 건져주셨다고 하는데 왜 자기들이 싸우려고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이 보여야 믿어질 수 있는데 이 복음이 안 보이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이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어서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겠습니다. (312)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2:14절을 보겠습니다. (326)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고린도후서3:7절을 보겠습니다. (288)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원수입니다.

그리고 대적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원수가 누군가 대적이 누군가를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원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고 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저주 받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자는 율법이 그에게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라고 요구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저주를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의 이성에 좋은 것이 좋다고 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율법은 우리의 원수고 대적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원수고 대적인가 하면 우리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킬 수 없어서 율법으로는 저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원수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왕으로서 하신 일을 믿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시편에 미리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원수와 대적에게서 건지신 것을 믿는다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원수입니다

왜 원수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미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은 유기체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이 율법을 제사법과 시민법 그리고 도덕법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법과 시민법은 폐하여 졌고 도덕법은 살아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제사법과 시민법은 율법이고 도덕법은 율법이 아닙니까? 성경은 분명히 율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에 직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십계명이고 도덕법 아닙니까? 성경은 그 돌에 써서 새긴 율법이 우리를 죽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을 나누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성경 어디에 그것을 나누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도리어 야고보서에서 간음을 하지 않은 네가 살인을 했으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누구입니까?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원수입니다.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법과 시민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가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율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서울이 있습니다.

강남도 있고, 강북도 있고, 강서고 있고, 강동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서울이라고 합니다. 저 강북의 끝을 서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따로 떼어서 행정적으로 분리를 했으면 서울이 아닐 수 있어도 일단 서울이라는 주소 아래 있으면 다 서울입니다. 설령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 해도 서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은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저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고린도후서에서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으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

아니 저주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제사법도 율법입니다. 시민법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도덕법도 율법입니다. 이 모든 율법이 우리를 죽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저주 받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가 되고 대적이 됩니다. 우리는 이 원수와 대적과의 싸움에서 다 진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수입니다

왜 원수인가 하면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원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대적과 원수에게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오셨다고 선지자들로 미리 성경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시편을 통해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안 믿습니다.

주님이 이 원수와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신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왕이 싸움에서 이겼으면 백성이 다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왕이 이긴 싸움을 왜 싸웁니까? 그것은 왕이 싸워서 이긴 것을 믿지 않을 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싸움에서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왕이 오셔서 하신 일을 믿지 않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시편에 미리 약속하신 대로 이기셨는데 그 복음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우리에게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주고 있습니다.

왕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왕을 믿는다는 것은 왕이 싸워서 이긴 것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로 오셔서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는 자기 행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왕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위를 이어서 오신 왕입니다. 그런데 왜 왕이 하신 일을 믿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이기신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원수를 이길 수 없지만 주님이 왕으로 오셔서 그것을 이기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셔서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이 왕이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왕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실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 원수가 누구고 자기 대적이 누구고 자기를 죽이는 것이 누군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미 기독교가 되어 있는 종교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폐하셨습니다.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죽게 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시고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왕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왕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왕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왕은 이 영의 일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이겨 주셨습니다. 그 이김이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1:4절을 보겠습니다. (239)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수와 대적에게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하는데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로 오신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율법이 폐하여졌고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영의 부활입니까? 정말 기초가 되는 이 문제도 모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영의 부활이라고 하니까 영 자체로 부활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이 영의 부활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은 같지만 그것이 신체에서냐 영에서냐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신체가 부활하셨습니까? 영이 부활을 하셨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육신이 부활을 했는가 영이 부활을 했는가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부활의 기초가 되는 그것부터를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는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기초가 되는 말씀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초가 흔들리게 되면 성경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활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다시 8장에서 말씀을 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나 기초가 되는 말씀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확실하게 기초를 다지고 가야 합니다. 영의 부활에 있어서 이 기초가 흔들리면 부활에 대해서 성경을 볼 때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성령으로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번역에서 거룩한 신성으로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에서는 거룩한 영으로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주로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아마 거의 같은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신체의 부활을 주장합니다.

무덤에 있던 신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님이 오실 때 깨어나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부활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조직신학에서 목사들이 배우는 교리입니다. 왜 그런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나입니다

아담의 자손인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그리고 무신론자까지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면 자기가 세상에서 어떻게 믿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그럴 듯합니다

아니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고생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는데 너무도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런 내 신체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부활을 해서 이 세상에서 함께 믿었던 성도들도 만나고 주님도 만나고 사도들도 만나고 믿음의 선진들도 만나고 너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내 부모도 만납니다.

그리고 내 형제도 만나고 내 아들도 만납니다. 그러면 수고 했다고 하면서 이제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우리 함께 축복을 받자고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부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살았습니까?

내 신체가 천국에 들어갈 만큼 잘 살았습니까? 그것이 천국에 들어갈 만큼 성결합니까? 그것이 천국에 들어갈 만큼 거룩합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목사들이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거의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신체로 부활하셨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신체가 부활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부활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을 모르면 그는 주님이 오실 때 절대로 부활의 형상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next 2-1